소설리스트

93화 (93/169)

청 황제의 성지(聖旨)를 읽어갈때는 기고만장한 표정을 지었다.

김좌근 패거리가 충격받아 당황하는 표정들이 드러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놈이 조선말을 모른다해도 돌아가는 분위기를통해 감지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인지 두번째를 읽어나갈 때에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후의 내용은 더 황당했다.

“아니 배상금이라니!”

“그것도 은 5000만냥의 배상금을 요구하다니! 아무리 청이 조선의 상국이라해도 너무한 처사이지 않습니까?”

“조선에 그만한 돈이 어디에 있다고?”

“그뿐이요? 조선의 여인들을 5000명이나 공녀로 바쳐라니.”

조선군이 청의 팔기를 전멸시켰다는 사실.

그것에 당황했던 신하들도 두번째 내용을듣자 분노를 끓어올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좌근과 패거리들은 사신단의 눈치를 보고있었다.

예상했지만 저놈들이 가져온 개소리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조선군이 저지른 만행과 사죄를위해, 임금인 나에게 북경에와서 황제앞에서 무릅꿇고 사과하라는 것이다.

병자호란때 삼전도의 굴욕을 북경에서 재현해 보겠다는 것인가?

그렇게되면 새황제가된 혁저(함풍제)의 위치는 급상승 하겠군.

이것이 혁저의 머리에서 나온것은 아닐것이다.

배후에있는 천기대신 주광비가 주도해서 작성한 것이다.

양무가 요구사항을 떠벌린뒤에 협박을 시작했다.

조선이 하나라도 거부할때는 청제국의 대군을 움직여 조선을 박살내고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

신하들은 충격으로 신음을 토해냈다.

성지를 읽어나간 양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게 대청제국의 위용이다.

좃밥인 조선과 조선왕은 내앞에서 무릅을 꿇어라!!!

하지만 너의 착각일 뿐이지.

“청의 황제가 과인에게 전할말은 그것이 전부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차피 크게 놀랄일도 아니다.

그러나 내말을 전해들은 양무의 표정은 당황하고 있었다.

설마 너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애걸할줄 알았냐?

“조선왕은 들으시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르는 것입니까? 폐하께서 명하신대로 따르지 않으면 조선과 한양은 불바다가 될것이요.”

불바다라... 어디서 많이듣던 소리인데.

피식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만주의 팔기군에게 있는데 그 잘못을 조선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다니. 청의 황제는 현명하지 못하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까? 조선왕은 정말로 대청제국을 거역 하겠다는 것이요?”

“그런데, 청은 기껏해야 양이인 영길리(영국)에게도 쩔쩔매던 귀국이 대청제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지도 궁금하군.”

“어떻게 그것을.”

더듬거리는 양무의 모습.

신하들도 놀라고 있었다.

몇년전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개박살난 주제에 조선을 상대로 위세를 떨다니.

지금까지 조선에서는 아편전쟁의 실상에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청나라가 조선에게 자신들의 치부와 흑역사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입을통해 완전히 까발려진 것이다.

“청제국이 양이에게 당했다니.”

신하들 표정에서 분위기를 감지할수 있었다.

그들에게 청나라는 넘볼수없는 거대한 제국이였다.

그런데 서양오랑캐인 양이에게 박살났다니.

중요한것은 내말에대해 사신단의 대표가 부정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청나라가 더이상 과거와같은 엄청난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조선을 상대로 협박과 위세를 떨고있지만 실제로는 서양 오랑캐에게도 쩔쩔매는 신세라니.

신하들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충분히 감지될 수준이다.

그럼에도 김좌근 패거리들은 나와 사신단 대표와의 신경전을보며 쩔쩔매는 중이다.

어차피 저놈들에게는 기대도안한 상황이라 상관없다.

어차피 사신단에게 아편전쟁에대한 청나라의 굴욕사건을 꺼낸것은 다른 신하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니까 말이다.

“청의 사신단은 들어라. 당신들은 조선을 상대로 겁박을 하기전에 청국에 굴욕을 안겨준 서양오랑캐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어떠신가? 그것도 해결못한 상황에서 조선을 상대로 허세를 과시할려고 하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무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조선왕은 반역을 하겠다는 것이요?”

“반역이라. 우스운 일이군. 청의 팔기군이 먼저 조선의 백성들을 습격하고 학살했는데 잘못은 청에게 있지 않은가? 조선의 용맹한 군사들이 반격하여 팔기군의 죄값을 물었으니 청이 우리에게 고마워 해야할 것이요. 원래라면 팔기군에대한 관리를 잘못한 천기대신 주광비가 조선에와서 사죄를 해야 마땅할 것인데... 조선을향해 당치도않는 요구를 하다니! 아무튼 사신단이 하고싶은 말은 들었으니 더이상은 시간낭비일거 같소.”

그렇게 말한뒤 장우영을향해 신호를 보내었다.

장우영이 사신단을향해 나의 말을 전달했다.

양무의 표정이 여러차례 바뀐다.

녀석도 날뛰어봐야 소용없다는걸 깨달은듯 보인다.

임금인 내가 겁을먹고 엎드려야 녀석도 위신이 사는데 완전히 생까고 무시해 버렸으니 말이다.

“지금은 돌아가겠소. 하지만 조선왕은 이번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것이요.”

“예판은 저들을 영은각으로 안내해 주시요.”

“알겠습니다. 전하.”

장우영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과정에 대해서는 장우영에게 맡겨두면 충분했다.

사신단이 가져온 요구사항은 처음부터 개소리에 불과했다.

청에게 5000만냥의 은화를 바치라고?

그 돈이면 조선군을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수도인 북경으로 쳐들어 가겠다.

아편전쟁으로 영국한테 개털린 녀석들이 조선을 상대로 우쭐대다니 비웃음이 나올 수준이다.

처음에는 청의 위세에 눌렸던 몇몇 신하들도 이제는 사신단을향해 냉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청 제국이 서양오랑캐인 영국에게 털렸다는 팩트를 꺼낸것은 효과가 있었다.

조선군도 청의 팔기를 상대로 전멸시켰지 않은가?

더이상 청 제국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것이다.

나로서는 사신단이 여기까지와 난리친것이 득이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저놈들은 먼길을와서 손해만 본 것이지만.

지금 청나라는 종이호랑이 신세로 변하가고 있다.

아편전쟁을통해 청의실력을 확인한 영국은 이후에는 제 2 차 아편전쟁을 벌이면서 청을 더 박살낸다.

그뿐인가.

서구열강의 다른 나라들도 청을 뜯어먹기위해 달려든다.

조선만이 청나라가 종이호랑이 신세란걸 모르고 지금까지 벌벌떨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청나라를 상대로 이득을 챙기고 주도권을 가지는것은 조선이 될것이니까 말이다.

* * *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선두의 두명이 외치자, 이번에는 뒤에엎드린 40명이 동시에 따라한다.

이것들을 의금부로 압송해 곤장 50때씩의 선물을 줄까?

그런 생각이 솟아올랐지만 일단 참았다.

내앞에 엎드린 40명의 선두, 홍문관 대제학과 사간원의 대사간의 저 모습을보니 웃음밖에 안나온다.

어제는 청의 사신단 놈들을향해 빅엿을 먹이고, 좋았던 기분이 오늘 아침에는 더럽게 변해버린 것이다.

대충 예상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두명의 노친네들이 사간원과 홍문관의 관료들을 모조리끌고 내앞에 오다니?

창덕궁 후원인 부용정에서 흥선군 이하응, 그리고 박규수를 불러서 정사를 논의중에 이들이 갑자기 쳐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40명이 엎드리더니 저것을 반복중이다.

“경들이 원하는건 과인에게 영은각에 머물고있는 청나라 사신단에가서 빌어라는 뜻이요?”

“소신들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 청의 사신단이 조선에서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은 들지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청은 조선의 상국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예법에서도 타국의 사신들을 그렇게 모욕하는건 결코...”

홍문관 대제학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변명거리로 생각해낸게 그건가?

참다못한 흥선군 이하응이 앞으로 나섰다.

“경들은 전하를향해 무슨 망발을 하는것이요?”

“흥선군은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신다는 것입니까? 전하께서 아직 어리고해서 사신단을향해 자존심을 내세우신건 젊은 혈기로인한 것으로 사료되고 소신들도 이해할수 있습니다. 허나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시고, 청의 사신단이 더이상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을 달래는것도 군주의 도리입니다.”

노친네가 혓바닥은 잘 놀리네.

그럴듯 하지만 중요한것은 다 빼먹고 있잖아.

같이따라온 나머지 40명의 인원들.

처음에는 두명을따라 목이 터져라고 통촉하시옵소서~ 어쩌고 했지만 표정이나 행동은 달랐다.

‘딱보니 위에서 시키니까, 억지로 끌려온거네.’

이것을보자 대제학과 대사간이 괘씸하게 느껴진다.

두명이 사간원과 홍문관 관료들을 아침부터 끌고와서 난리를 피워대는 이유가 보였다.

내가 청사신들에게 빅엿을 먹인뒤 가장 똥줄타는 놈들이 누구일까?

바로 김좌근이지.

그런데 김좌근은 오전의 조회에도 안나왔다.

하지만 내앞에서 간청하고 빌어야 하는게 김좌근이다.

그러나 김좌근은 나를 우습게봤고, 내앞에서 무릅꿇고 빌기에는 자존심 때문에 도저히 할수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낸것이 저 두명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럴즈음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럴때는 21세기 인터넷 싸움에서 종종 나오는 니가족충~~ 을 시전해볼까?

두명을 내려보며 냉소를 지었다.

“대제학과 대사간은 조선에대한 충절이 대단하시군요.”

“가, 감사합니다. 전하.”

두명이 당황했다.

하지만 좋아하기에는 이르지.

“대제학과 대사간이 고집을 부린다면 과인이 청나라 사신단들을 달래볼까 생각할수도 있소.”

“그것이 정말입니까?”

“하지만 그게 공짜로 되겠소? 사신단들이 가져온 청제국 황제의 성지(聖旨)대로, 은 5000만냥의 배상금과 공녀 5000명을 보내야하지 않겠소? 그런데 은 5000만냥의 배상금은 조선에도 당장은 돈이없으니 힘들겠고, 대신에 공녀 5000명은 가능할거 같소이다.”

“그렇기도 하옵니다.”

대제학이 얼떨결에 대답한다.

그리고 대제학을 내려보던 나의 표정은 꽤 사악하게 변했다.

역시 나란 인간의 본성은 좋은게 못된다니까.

“그래서 말인데, 5000명의 공녀를 채우기위해 먼제 대제학이 속해있는 집안과 가문의 여자들부터 징발하는게 어떨까 합니다. 호구조사를하면 20살 이하의 여자들이 몇명인지 모두 나오니까, 먼저 대제학의 집안에서부터 최소 5-60명은 차출할수 있겠군요.”

“.....”

내말을듣자 대제학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지.

영은문(迎恩門) 박살내기

“대제학 다음은 대사간 당신의 집안이요. 그대의 집안에서도 청국에보낼 공녀들 몇십명은 충분히 바칠수 있겠군요.”

“전하. 그것은...?”

“왜 당황하는 거요. 상국인 청을 달래기위한 것인데, 그렇다면 먼저 경들이 솔선수범을 보여야하는 것이지않소.”

“.....”

“또한 여기서 시위하는 사헌부와 홍문관 관료들의 집안에도 공녀들의 징발을 실시하면 되겠군요. 그러면 최소 1000명정도의 공녀들은 먼저 그대들의 집안에서 차출이 가능하니까, 그것만으로도 과인에게는 큰 도움이 될거같소.”

“.....”

대제학과 대사간을 따라온 40명의 관료들 집안에서도 공녀들을 차출하는 것이다.

그러자 뒤쪽에있던 사간원과 홍문관의 관료들이 웅성거렸다.

일부는 내쪽을 바라보며 애걸하는 표정이다.

전하! 제발~ 저의 집안의 여자들은 안됩니다. 전하! 흑흑!

아주 표정에서 그런것이 뚝뚝 흘러나온다.

일부는 자신들을 끌고왔던 대제학과 대사간들을 노려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런 전개가 될줄은 생각도 못했을거다.

“의정랑은 어떻게 생각하시요?”

“전하의 말씀이 타당한 줄로 아뢰옵니다.”

흥선군 이하응이 화답하며 말했다.

눈치빠른 이하응은 저들을 압박하는 수법이 뭔지를 파악한 것이다.

“좋소. 그대들 주장대로 청에게바칠 공녀들을 차출할때, 그 임무를 여기 의정랑에게 맡길것이요. 그리고 대제학과 대사간을 포함해 40명의 관료들이 포함된 집안부터 공녀에대한 징발을 하시요. 저들을통해 일단 1000명을 채우고 나머지 숫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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