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169)

나에게는 그녀가 새어머니와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알수없는 연민마저 느껴진다.

이제부터 그녀의 어깨에 드리워진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을 덜어줄 생각이다.

그것을위해 사신단에대한 부분을 내가 하기로 한것이다.

“이제는 주상께서 타국의 사신단을 맞이하실 정도로 정사에 익숙해지는 모습을보니 기쁘군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대비마마.”

순원왕후를향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것에대해 영의정을 포함해 나의 측근들은 흐믓한 미소를 짓는다.

그에반해 김좌근 세력들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철종으로 환생하고 임금이된 나에게는 순원왕후가 유일한 부모다.

그녀에게 강대한 조선제국의 모습.

변화된 조선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오늘은 첫번째 출발점이 된다.

순원왕후와 나의 관계가 친밀해지는걸 발견한 김좌근의 눈빛이 여러차례 변하였다.

그전에는 남동생인 그가 이용해먹기 딱좋은 누나쯤으로 생각했던 순원왕후가 달라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얼마후 예조관원이 들어오더니 보고했다.

* * *

“전하. 사신들이 조금후면 도착합니다.”

“그들을 여기로 안내하라.”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관원들이 예를 올리더니 밖으로 나갔다.

임금이 된후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외국의 사신들이다.

조선이 강국으로 발전하면서 더많은 외국의 대표들과 만날것이다.

이번에는 조선에게 수백년동안 굴욕과 치욕을준 청나라의 사신들을 만나는 자리다.

이후에 외교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는건 예조판서 장우영을 포함한 예조관원들이 될것이다.

하지만 외교정책과 길잡이를 제시하는건 임금의 역활인 것이다.

청나라에대한 외교정책은 이미 결정된 상태다.

과거의 굴욕적인 사대주의 외교에서 벗어나는게 첫번째다.

조선과 청나라는 대등한 관계.

더 나아가 청나라를 압도하는 외교를 펼치는것이 목표니까 말이다.

얼마후 장우영을 선두로 청의 사신단이 들어온다.

“앞쪽에 있는 자가 양무이고, 그뒤에가 등비입니다. 양무는 사신단의 대표인 정사입니다.”

승정원 관료가 말했다.

입장하는 사신단 대표들 두명을 관찰했다.

두명의 얼굴에는 조선에대한 우월감이 있었다.

선두의 양무가 주위를 한차례 보았다.

그때 좌측편에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예상하고 있었는데 들어맞았다.

양무는 과거에도 조선에 사신단 일원으로 참가한적이 있었다.

조선에 온것이 두번째라는 뜻.

저자가 이번에도 사신단 대표로 온것은 이유가 있었다.

조선에 인맥이나 커넥션이 있다는 뜻.

그 커넥션은 예상대로 김좌근이다.

찰나지만 양무와 김좌근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리고 서로간에 신호를 보내었다.

‘이것들 봐라.’

뭔가 울컥했지만 그냥 두었다.

지금은 청에서 온 사신단에 집중할 때니까 말이다.

“연경에서 한양까지 먼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용상에서 사신단을향해 말했다.

선두의 대표 양무가 내쪽을보며 미간을 꿈틀거렸다.

표정이 썩어있는건 둘째치고 시선을 김좌근쪽으로 향한다.

사신단을 안내해왔던 예조판서도 내쪽을 쳐다보았다.

양무가 장우영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뭔가를 수근거렸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짐작된다.

과거 청나라 사신들이 조선에오면 임금이 용상에서 내려가 청의 사신들을 마중했다.

무릅까지 꿇고 절까지 하면서 청나라 황제의 교지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가 용상에서 내려가 과거처럼 할 이유는 없다.

예조판서 장우영을향해 말했다.

“예판. 조금전 사신들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려주겠소?”

“전하. 조금전 사신단 대표인 양무는 왜 조선임금이 용상에서 내려와 대청제국 황제의 교지를받는 예를 올리지 않느냐고 합니다.”

“허어. 저들이 청의 황제가 아닌데 조선백성들의 아버지인 과인이 그래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과거의 선대왕들은 대청제국의 사신들이 올때에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선대왕들께서 그랬던 것은 청제국의 역대황제들이 현명했기 때문이고. 그것에대한 예를 보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청의 새황제는 현명함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니, 이후에 새황제(함풍제)가 그같은 역량을가진 뛰어난 황제가 된다면 과인이 그 예를 다할것이요. 이말을 사신단에게 전해주시요.”

대답을듣자 주변에있던 신하들이 술렁거린다.

지켜보던 순원왕후도 당황한듯 보였다.

그럼에도 내말에 동감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전 내말은 상대에대해 빅엿을 먹이는것과 동시에 당근도 주는 것이다.

이것이 교묘한 외교적 수사중에 하나인 것이지.

청의 역대황제들에 대해서는 나름 칭찬을했다.

그러나 새황제가된 혁저(함풍제)는 조선에게 인정을 받은것이 아니라는 뜻.

예조판서 장우영이 내말을 통역해 양무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양무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다.

장우영을향해 따지듯이 만주어로 주절거렸다.

장우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의 신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예판에게 미리 언질을주고 준비를 시킨것이 이럴때 효과를 보네.

장우영이 따지는 청의 사신을향해 반박했다.

말빨에서는 장우영도 지지않은 상황-

얼마후 양무가 식식대더니 고개를 숙였다.

조선땅에 사신으로 온놈이 임금에게 인사도없이 따지고 들어?

성질 같아서는 곤장 50대로 패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그러나 청에서온 사신놈들이 밉다해도 그정도까지 할수는 없고.

사신단이 격하게 반응하자 지켜보던 김좌근이 당황하며 나선다.

“전하. 저들은 청에서 온 사신들입니다. 그들을 소홀히 대한다면 이후에 어떤일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김좌근 표정을보니 똥줄이 타는거같다.

저놈이 조선에대한 애국심으로 그런거라면 인정해줄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사실.

조선과 청의 관계가 악화되면 손해보는게 김좌근과 안동김씨 세력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당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야.

“이판의 조언은 감사히 듣겠소. 그런데 지금 중요한것은 저 사신들이 뭣때문에 왔는지를 알아보는게 최우선이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전하. 이판대감! 전하의 말씀대로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지 마시요.”

흥선군 이하응이 반격하였고 공조판서도 동참했다.

여기있는 신하들중 일부는 삭막해진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후면 달라질 것이다.

사신단이 온 목적을 듣는다면 그들도 기분이 더러워질 테니까.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예판. 청의 사신들이 뭣때문에 온것인지를 알아보시요.”

“알겠습니다. 전하.”

장우영이 양무에게 질문을 하였다.

양무가 노려보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황금색으로 장식이 되어있는 두루마리.

청의 황제가 조선으로 파견되는 사신단에게 전달하는 문서다.

그것도 모두 3개였다.

지랄. 많이도 갖고왔네.

이제부터 청나라 놈들이 어떤 개소리를 적어왔는지 들어볼까.

어차피 짐작되지만 나만 알고있는 것과 여기서 수많은 신하들이 듣는것과는 다른 부분이지.

사신단 대표가 첫번째 교지를 펼치더니 읽기 시작했다.

일부러 만주어로 읽었다.

만주족 부심을 드러낼려고 하는것인가.

예판인 장우영은 중국어와 만주어에도 능통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장우영은 상대가 읽어가는 청 황제의 교지를 곧바로 통역하며 말하였다.

문제는 양무가 읽어가는 내용이다.

“조선왕은 듣거라. 조선은 대청제국의 속국으로 지내면서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청제국의 신하국으로서 충성을 바쳐야 마땅하거늘, 어찌하며 대청제국의 팔기군을 습격하는 반역을 저질렀는가....”

주절주절 흘러나오는 내용.

내용이 진행될수록 모여있는 신하들이 충격을 받았다.

가장 놀란것은 김좌근이다.

이제는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는 중이다.

그에반해 나의 측근들은 예상했기에 덤덤히 듣고 있었다.

흥선군 이하응은 냉소까지 드러낸다.

첫번째 교지의 내용은 이렇다.

앞부분의 거창한 서론들을 건너뛰고.

핵심을 요약하면 간도에서 조선인들을 습격하고 악행을 저지른 지르칼손과 팔기부대의 몰살에대해 조선이 책임을 져라는것.

“조선군들이 만주에있는 팔기를 전멸시켰다니!”

“예조판서! 조금전 내용이 사실인가?”

내용을 처음들은 신하들이 수근거렸다.

김좌근은 새파랗게 질리며 장우영을향해 질문을 하였다.

이럴때는 임금인 내가 나설차례다.

개같이 털린 놈이 누구한테 ???

“듣자하니 조선군이 반격한 팔기부대가 다른것도 아니고 조선인들을 약탈하고 학살한 지르칼손의 부대를 공격한 것인데 뭣때문에 지휘관을 문책해야 한다는 것인가? 오히려 임금인 내가 조선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준 그와 병사들에게 상을주어도 모자랄 지경인데.”

“......”

김좌근이 나를향해 노려보았다.

눈빛이 여러차례 변한다.

이제는 저놈도 바보가 아닌이상 눈치챈 상태다.

지르칼손 부대를 찾아내 복수전을 전개한 전투.

단순히 일개 지휘관에의해 벌어진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말이다.

“전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까?”

“간도의 백성들에게 벌어진 학살과 비극에 울분을느낀 해당지역의 무장이 과인에게 요청을 하기에 허가를 해주었소. 그런데 생각보다 조선군들이 잘싸우고 용맹을 떨친거 같군요.”

“전하께서는 어쩌자고 중대한 사항을 소신들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벌이신 것입니까?”

“이판에게 상의를 해볼려고 했는데 경이 바쁜거 같아서 말이지요.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라서 먼저 허가를 한것이요. 그리고 조선인들을 걱정하는 만고의 충신인 이판대감이 설마 반대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김좌근이 머뭇거렸다.

오랜만에 네놈을 충신이라고 추켜세워 주었다.

여기서 딴소리 하지는 않겠지?

조정에서 실세를지닌 너라도 수많은 신하들과 임금.

순원왕후까지 지켜보는 상황에서 헛소리 할수는 없을테니까.

시선을돌려 순원왕후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처음에는 놀란 모습이였다.

이제는 나를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간도의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사건.

그녀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는데 조선군이 그 학살범들을 응징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내가 사람보는 눈은 그럭저럭 괜찮다.

역사에서는 순원왕후에대해 권력을 탐하고 두번이나 수렴청정을 하면서 세도정치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하지만 사실은 달랐던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애민정신이 강한 조선의 큰어머니였다.

사신단의 대표가 두번째 교지를 읽어나갔다.

조금전까지 당황하고 어쩔줄 모르던 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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