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69)

“배가 고프면 3개정도까지야...”

“하지만 거기서 끝이아니야. 3개뒤에 5개가 또 추가로 주어지는 거야. 분명히 파이는 맛있는 음식이고 먹을때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낄수 있지. 그런데 이제 배가부르고 한뒤에 계속해서 파이가 주어진다면... 그 파이를 바라보는 너의 느낌은 어떻겠어?”

박철준의 질문을받자 알프레드가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더이상 맛좋은 파이가 아니라 이제는 지겨워질거 같은데.”

“그말이 정답이야. 통상적으로 인간은 더많은 재화를 원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욕심은 끝없다는 것인데, 조금전 내가 말한대로 계속해 똑같은 파이가 주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거지.”

“듣고보니 정말로 흥미로운 것인데.”

“나중에는 경제에서도 이런 부분을 설명하는 학자들이 나올거라 생각해. 조선에서도 재물에대한 욕심이 과하면 도리어 그것으로 정신을 망친다는 옛말도 있으니까.”

박철준의 말을들으며 알프레드는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자신이 알아왔던 경제에대한 새로운 접근법이고, 동양적인 사고방식이 상당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알프레드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조선에서온 유학생인 박철준과 벌인 토론을통해, 그는 이후에 위대한 경제학자들중에 한명이 된다는 것.

동시에 경제학에서 핵심적인 이론중에 하나인 한계효용(marginal utility)-이란 학설을 발표할거라는 사실.

동시에 그 자신이 케임브리지 학파와 미시경제학을 선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알프레드는 박철준에게 영향받은 동양철학의 사상이 결합되어 나중에는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애덤 스미스와함께 경제학의 양대산맥중에 한명인 메이나드 케인즈를 제자로받고, 그를 지도해서 거시경제학이란 새로운 분야까지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사건의 시발점은 알프레드에게 엄청난 영향을준 조선에서온 유학생과의 만남이였다.

* * *

헉헉! 거친 숨소리가 계속해 흘러나왔다.

터벅거리며 걸어가던 양무는 눈앞이 핑핑돌 지경이다.

옆에있는 동료 등비도 마찬가지다.

“대청제국의 사신으로 조선에오면 극진한 대접을 받을거라해서, 모든걸 팽개치고 당신을믿고 따라왔는데, 이게 무슨 꼴이요?”

등비가 양무를 노려보았다.

이것에 양무는 변명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개취급을 당할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한참을 투덜거리는 두명을향해 정찰대장인 박민준이 재촉했다.

“이보시요. 두사람이 게으름을 피우니까, 행렬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잖소.”

“말이라도 탈수있게 해주시요.”

“무슨 소리요? 다른 사람들도 걸어가고 있는데. 그리고 당신들이 가져왔던 말들은 팔기들이 모조리 죽여버리지 않았소?”

“그건....!”

박민준의 대답에 양무가 발끈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자신들이 걸어가는 신세가 된건, 호위대로 참가한 멍청한 팔기들이 조선군을향해 돌진하면서 벌어진 것이다.

박민준이 지시를내려 돌격했던 팔기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그들이 타고있던 군마들은 현무철포의 탄환에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것이다.

다만 박민준이 청나라에서 온 사신단을향해 말을 준비해 줄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처음부터 순순히 따랐으면 몰라도, 조선을 깔보고 덤볐으니 그 댓가를 받아야 하는것이다.

그뒤로 속칭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간도정찰대원들의 체력은 강했기에 신의주 나루터부터 남쪽의 한양을향해 걷는건 어렵지 않았다.

조선보다 더넓은 만주에서도 임무를위해 수백리를 걷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편안하게 생활했던 두명, 양무와 등비에게는 죽을 맛이였다.

몇년전에 양무가 참가한 청의 사신단이 조선에 도착하면, 가마꾼들이 대기했고 조선인들이 교대로 가마를 운반했다.

청의 사신들을 떠받들기위해 자존심까지 내팽개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준비된 가마는 커녕, 타고갈 말도 없다.

대신에 신의주에서 한양까지 1000리(400km)에 가까운 길을 걸어서 이동한다.

그것도 하루 80리(32km), 어떤날은 100리(40km)에 가까울 정도의 강행군을 지속한 것이다.

헉헉-거리는 두명을향해 박민준이 여유롭게 덧붙였다.

“나로서는 상국인 청에서 사신들이 왔으니, 당신들에게 조선의 아름다운 금수강산들을 감상할 기회를 충분히 드리고 싶었던 것이요.”

“.....”

양무는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사신단에 편성된 팔기들마저 무장해제를 당했고, 이제는 그들도 강행군에 지쳐서 혓바닥마저 튀어나오고 있었다.

“대장님. 소문으로는 팔기들이 쎄다고 하더니, 정말로 형편 없는데요. 겨우 이정도 걸었다고 나자빠질 상황이니.”

무장해제시킨 팔기들을 데리고 이동하던 간도정찰대원들이 피식 웃었다.

이것에 팔기병들은 식식거리며 분개했지만 몇명은 걷다가 중심을잃어 자빠지고 망신창이로 변했다.

박민준에게 재촉받으며 걷던 두명, 양무와 등비의 관복도 너덜해졌고 군데군데 흙투성이 상태였다.

얼마후 서쪽으로 노을이 질 무렵, 일행들은 한양외곽에있는 영은각에 도착했다.

영은각은 영은문과함께 청에서 온 사신들이 지내는 숙소였고, 조선에서는 엄청난 돈을들여 꾸며놓은 곳이다.

눈앞에 영은각이 보이자, 양무와 등비는 드디어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우에엑! 강행군에 탈진한 등비가 헛구역질을 해댔다.

이것을 지켜보던 배동석이 냉소를 지었다.

이런 개고생은 처음이지 ???

“전하! 송내관 입니다.”

“무슨 일인가?”

“비호국의 배동석이란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마침 잘되었군. 들라해라!”

“알겠사옵니다.”

송내관이 밖에서 대답했다.

후원에서 산책이나 해볼까 생각하던 중이였다.

그런데 배동석이 왔다는 송내관의 말을듣자 반사적으로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그럴것이 배동석은 내가 전해준 교지와 비밀서찰을들고 얼마전에 간도정찰대를 찾아갔다.

간도정찰대장인 박민준은 유능했고 믿을수있는 무장들중에 한명이다.

이제 배동석이 무사히 한양으로 복귀했고 오늘밤 왔다는건, 박민준이 임무를 제대로 해냈다는 뜻이다.

얼마후 배동석이 송내관을따라 들어왔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보였지만 표정은 어느때보다 밝았다.

간도정찰대와함께 청국 사신단들을 데려오며 재밌는 상황들을 많이 경험하고 본것이 분명했다.

그곳에 내가 없었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다.

청나라 사신과 팔기들이 아쎄이(신병)- 취급받으면서 빡세게 구르는걸 봤어야 했는데.

“소인 배동석! 전하를 뵙습니다.”

“그동안 임무를 수행하느라 수고했다.”

“모든건 전하께서 지시하신 계책, 그리고 간도정찰대장의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간도정찰대원들과 박민준의 상황은 어떤가?”

“전하께서 지시하신대로 청에서온 사신단 일행들을 영은각으로 안내하였습니다. 그뒤에는 영은각에서 좀 떨어진 장소에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현재는 나머지 대원들은 휴식을 취하고 일부는 영은각에대한 감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역시 박민준의 솜씨는 훌륭하군.”

배동석이 상황을 보고했다.

정찰대장은 청나라 사신단을 빡세게 굴리면서 강행군으로 한양까지 도착한 것이다.

영은각에 도달한 뒤에는 압수했던 무기들을 호위대인 팔기들에게 돌려주었고 나중에는 영은각에서 철수했다.

이미 간도정찰대에게 기세로 압도당한 팔기들이다.

때문에 무기를 돌려받은 뒤에도 덤비지 못했다고 한다.

하긴 창이나 활, 기병도를 돌려받았다고 그걸로 덤비다가는 백두철포와 현무철포에 몰살당할 뿐이니까.

어쨌든 간도정찰대원들도 신의주에서 한양까지 천리길을 행군으로 왔기에 그들에게도 휴식은 필요했다.

그리고 간도정찰대는 이후에 벌어질 비밀작전에서 중요한 역활을 할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부대원들이 쉬면서 힘을 보충하는게 필요하지.

“사신단의 대표가 양무란 녀석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부사는 등비란 자이고, 둘다 북경에있는 천기대신 주광비의 심복들입니다.”

“주광비가 선발해보낸 놈들이라면 어떤 목적으로 조선에 왔는지는 뻔하군.”

지금 신하들 사이에서는 청에서 사신들을 갑자기 파견한 이유를 얼마전 북경에서 새황제(혁저)가 나온거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중이다.

과거에 청에서 새황제가 나오면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청에서 사신단을 파견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있다. 바로 내가 북경의 비호국 요원들을 시켜서 한바탕 난리를쳤기 때문이다.

북경의 비호국 지부인 청풍대 요원들이 실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지르칼손이 속해있던 보란세칸 가문의 수장이 주광비를 만나러 간것까지 확인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사신단 파견을 주광비가 주도했기에 그뒤의 상황은 불보듯 뻔한것이다.

“듣고보니 정찰대장인 박민준이 청나라 놈들을 제대로 굴렸구만.”

“행군도중에 팔기들도 체력이 부족해 몇번이나 쓰러지고, 흙바닥을 구르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재밌는 광경을 놓친것이 아쉽군.”

배동석이 말해주는 사건들을 들으며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전하. 청나라 놈들이 미운건 사실이나, 사신들을 이렇게 한것은 전례없던 상황입니다. 뭔가 다른 목적이 계신것으로 생각는군요.”

“제대로 보았네. 청풍대를통해 북경에서 심리전을 한것. 그리고 이후에 청에서 온 사신들을 푸대접하고 굴린것도 한가지 이유지.”

“어떤 것입니까?”

“김좌근을잡고 안동김씨 놈들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지.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이 재밌어 질거다.”

“.....”

처음에 배동석은 내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김좌근이 살고싶다면 처신을 제대로 할것이다.

즉 마지막 기회를 주는것이다.

하지만 상황파악을 못하고 날뛰기 시작하면, 그뒤에는 내가 준비한 무덤을향해 스스로 뛰어들게 되는것이다.

* * *

쾅!쾅! 맹렬하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음이 흘러나왔다.

이른 새벽이였고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다.

“어떤 미친놈이 꼭두새벽부터...?”

잠에서 깬 김좌근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밖에있는 하인을 불렀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나리! 부르셨습니까?”

“대문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봐라.”

“알겠습니다.”

지시받은 하인이 달려갔다.

그사이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커지고 있었다.

조선제일 권세가인 김좌근의 저택에서 소란을 피울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때문에 김좌근은 새벽잠을 깨게만든 놈이 누구인지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식식-거렸다.

그런데 잠시후 하인이 올린 보고는 뜻밖이였다.

“그래. 어떤 놈이냐?”

“저... 그게, 호조판서가 찾아왔습니다.”

“호판이 무슨 일로?”

김좌근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호조판서는 측근이기에 무슨 이유로 새벽에 방문했는지 알아봐야했다.

김좌근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호조판서가 숨을 몰아쉬면서 달려왔다.

“뭣 때문에 새벽부터 경망스럽게 구는것이요?”

“이판대감! 지금 큰일이 생겼소.”

“큰일이라니? 일단 상황을 말해보시요.”

“그러니까, 상국인 청제국에서 온 칙사들이 도착했소.”

“그들이 조선에 도착한건, 경도 알고있는 사실이지 않소?”

“그게 아니라, 한양 외곽에있는 영은각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뭣이라고?”

김좌근이 당황했고 호조판서를 바라보며 미간을 꿈틀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놀리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비록 호조판서가 술을 좋아하고 주사가 심하기는해도, 새벽에 집에까지 찾아와 이런짓을 할 배짱은 없다.

지금은 꼴을보니 술냄새는 커녕 정신도 말짱해 보인다.

“그게 확실한 것인가? 만약에 허튼소리를 한것이라면, 경이 책임을 져야할 것이요.”

“소관도 처음에는 믿을수없어 아랫것들을 시켜 확인해 봤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영은각에 대청의 칙사단이 머물고있고 주변에는 팔기들이 경비중인 모습이 확인되었소. 영은각으로 보낸 부하가 이르기를 청의 칙사단이 영은각에 도착한건 이틀전이였다고 하더이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예정대로면 최소 두달후에나 한양에 도착할 것인데.”

“소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갑작스런 변고가 생겼으니 이를 어쩌면 좋소?”

“이럴때가 아니라 병조판서부터 만나봐야 겠소.”

“그건 뭣때문 입니까?”

“이번에 상국의 칙사단을 마중하기위해 병판에게 영접단을 구성해서 보내라고 했소. 병판에게 믿을수있는 부하를 골라서 이번일을 맡기라고 했는데, 에이! 대체 뭘 한것인지...!”

김좌근이 이를 갈았다.

얼마후 김좌근과 호조판서는 출발준비를 하였다.

새벽부터 벌어진 상황때문에 김좌근 저택의 하인들은 모두 일어났고 내부는 한바탕 뒤집어진 것이다.

* * *

“절대 그럴리없소. 상국의 칙사단을 영접하는 변재상은 눈치도 빠르고 칙사단을 충분히 대접할 능력이있는 인물이요. 무엇보다 몇년전 조선을 방문한 청제국의 칙사단을 영접한것도 그였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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