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69)

양무가 불쾌함을 느끼며 따졌다.

“대청제국의 칙사들을 맞이하는 귀관은 누구인가?”

“전하의 어명을받은 박민준이요.”

“그런데 자네는 조선왕에게 어떤지시도 받지 못했는가? 대청제국의 사신들을 맞이하는 관리가 상국에대한 예를 올리지도 않고 뻣뻣하게 있다니 말이다. 어서 꿇어라! 그리고 뒤에있는 조선놈들도 모두 꿇어라! 감히 누구 앞이라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

양무가 소리를 질러댔다.

땅딸보에 눈까지 찢어진 양무가 발악하는 모습에 박민준과 정찰대원들이 피식- 냉소를 지었다.

어디서 뭐같은 놈이 지랄이야? 하는 조소다.

한숨을쉬던 박민준이 양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청국에서 온 사신단의 정사인가 보군. 물론 전하를통해 귀국의 사신단에대해 지시가 내려왔소. 전하께서 하명하시기를 당신들, 청국의 사신들은 조선의 근린국가인 유구국(오키나와), 그리고 왜국의 사신들과 같으니, 그에맞게 마중하고 안내하라고 하셨소이다. 물론 이것도 그대들 청국의 사신들이 순순히 따라줄때의 것이고, 만약에 문제를 일으키면 그에 합당하게 조치를 하라는 어명이였소.”

“지금 뭐라고 했나? 대청제국의 사신인 우리들이 유구국이나 왜국놈들과 똑같다고?”

“이놈들이 미쳤나?”

양무와 등비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고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였다.

청제국의 사신을 허접한 유구국이나 왜국에서 온 사신들로 치부하다니?

몇년전만해도 청제국 사신들에게 굽실거리던게 조선인데 말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무튼 당신들이 조선을 방문한건 고맙소. 이제는 조선땅에 들어왔으니 이곳의 법도에따라 행동해 주셔야겠소.”

“그건 무슨 소리야?”

양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외국의 손님이기에 예를갖추어 대접할려고 하는데 그런식으로 나오면 곤란할수도 있소.”

“조선놈 주제에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떠드는거냐?”

말을 타고있던 호위대 무관이 발끈했다.

그는 팔기의 소속이였다.

여기온 병사들도 대부분 팔기의 정예병들을 차출한 것이다.

팔기무관의 외침에도 박민준은 꿈쩍하지 않았다.

“청나라 팔기들은 어설프게 나서지 않는것이 좋을것이요. 지금부터 당신들에게 요구하는건 한가지요. 여기부터는 조선땅이니 쓸데없이 무기를 가지고 다니면 조선인들에게 민폐를 끼칠수있소. 따라서 안전은 우리들이 책임져 줄테니까 걱정할 필요가없소. 그러니 사신단의 정사는 지시를내려 호위로 따라온 팔기병사들의 무장을 해제하도록 하시요. 당신들이 갖고왔던 병장기들은 이후 사신단이 조선을 떠날때 돌려드리겠소.”

그말을듣자 양무가 충격을 받았다.

신하국에 불과한 조선무장이 대청제국의 사신단을 깔보는것도 모잘라 무장해제까지 시킬려고 하는것이다.

옆에있던 호위대 무관들이 발끈했다.

“더이상 참을수없군. 오냐, 네놈이 죽을려고 환장했구나.”

“대장님! 더이상 봐줄필요 없습니다. 속국의 무관주제에 대청제국의 사신단을 능멸한죄는 황제폐하에대한 반역입니다.”

“좋아! 이자리에서 그죄를 처벌하겠다. 돌격해라!”

콰두두두-

호위대 팔기무관을 선두로 수십명이 돌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날카롭게 휘어진 기병도를 빼들었다.

몇명은 활을꺼내 조준까지 하였다.

고난의 행군

“저놈들이 죽고싶어서 환장했군.”

박민준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처처척! 후방의 간도정찰대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양손에는 총검이 장착된 현무철포가 있었다.

돌진하던 팔기들은 비웃었다.

“멍청한 조선놈들. 과거 병자년에도 그딴것으로 팔기들에게 덤비다가 개박살이 나고도 정신을 못차렸군.”

그들은 자신만만했다.

조선군이 사용하는 화승총은 사거리도 짧았고 탄환장전도 오래걸렸다.

병자호란 때도 화승총을 들고있던 조선군들을 기병돌파로 박살내버린 전과도 있었다.

조선보다 성능좋은 화승총을 가졌던 명나라 군대도 팔기앞에 갈기갈기 찢겨나간 상황이다.

그런데 저런걸로 덤비다니!

하지만 그들의 비웃음은 얼마가지 못하였다.

“그래도 손님으로 온 뒈놈들이다. 불쌍하니까 목숨은 끊지말고 말을노려라.”

“알겠습니다. 대장님!”

“거총!”

신호에따라 총포를 들어올렸고 조준을 시작했다.

“저것은 뭐냐?”

“수상하다.”

몇명이 소리치는 가운데 현무철포가 사격을 개시했다.

탕! 타타탕! 귀를찢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화승총보다 먼 거리에서 일제사격이 벌어졌다.

발사된 탄환들은 팔기들이 타고있던 군마들을 피떡으로 만들었다.

퍽! 퍼퍼퍽! 히잉! 히히힝!

집중사격을 당한 팔기의 군마들이 날뛰었다.

돌진하던 말들이 한꺼번에 꼬꾸러졌고 팔기병들은 차례로 바닥에 쳐박혔다.

“크악!”

“커억-”

바닥에 쳐박한 그들은 정신이 없었다.

몇명은 팔다리가 부러지며 비명까지 내지른다.

그래도 운이좋은 편이다.

보총에 머리가 박살나는건 면했으니 말이다.

진흙으로 범벅된 팔기군관을향해 박민준이 다가갔다.

“그쪽이 먼저 칼을 빼들었으니 이자리에서 죽어도 할말이 없겠지?”

“허억. 그것은...”

공포와 두려움에빠진 팔기군관이 더듬거렸다.

이제는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호위대장이 박살난걸 보자 사신단 대표인 양무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조금전까지 보였던 허세와 우쭐함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어떻하겠소. 계속해서 버티겠소. 설마 몰살당하고 싶은건 아니겠지?”

“젠장. 무장을 해제하라.”

갈등하던 양무가 지시를 내렸다.

호위대중 몇명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러나 어쩔수 없었다. 날뛰어봐야 조선군들의 보총앞에서 고깃덩이가 될 뿐이다.

“두고보자. 개같은 놈들!”

“네놈들을 그냥두지 않을것이다.”

“얼마든지 해보시요.”

두명이 악을쓰며 말했다.

그것에대해 박민준은 냉소를 지었다.

얼마후 박민준이 신호를 보내자 정찰대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호위대로온 팔기군들의 무기를 회수했고 한곳에 모았다.

무기를뺏긴 팔기들은 분노하며 식식거렸다.

“이제부터 우리가 당신들을 한양까지 안내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요.”

“.....”

박민준의 말에 대표인 양무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런 수모를 당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군의 지시를 따르는게 전부였다.

* * *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란건 아이작 뉴턴이 만들어낸 운동법칙들 중에서도 3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모든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그만큼의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는 힘도 있다는 것인데...]

노년의 교수가 칠판에 분필로 수식들을 적었다.

이것을보며 학생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수식만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그런데 해리스 교수가 설명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란 개념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물리학 강의를듣는 학생들은 그래도 영국내에서 선발된 학생들이다.

그럼에도 교수가 설명하는 뉴턴의 물리학에대한 강의는 어려웠고 몇몇 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가운데 동방에서온 학생은 눈동자를 빛내면서 감탄했다.

‘해리스 교수님이 말하는 뉴턴이란 학자는 정말로 대단하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자연현상을통해 세상에있는 수많은 사물들이 움직이는 원리를 파악해 내다니!’

처음에는 양이의 학자가 만들어낸 이론에대해 가볍게 생각했던 지석준은 수업을듣고 공부할수록 새로운 경지를 깨닫게된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강의를 따라오지못해 헤매는 상태에서도 동양에서온 유학생의 학구열과 열정적인 모습에 해리스 교수는 감탄했다.

‘처음에는 동방에서온 기부입학생이란 사실에 기대감도 없었는데, 짧은시간에 물리학의 기초를 통달하고 이제는 나의 강의를 이해할수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하다니. 대체 저 학생이 태어난 모국. 아시아의 끝쪽에있는 조선이란 국가는 어떤 곳인가? 정말로 흥미로운 나라다.’

명문인 케임브리지대는 외국학생들, 그중에서 다른 대륙에서온 유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중 상당수는 신분자체가 해당국의 귀족이거나, 또는 왕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문에 그들이 명문인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하고 유학생으로 공부해도 대부분은 수업도 못따라가고 학구열도 별로였다.

단지 유럽의 선진국인 영국, 그것도 명문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는 경험치나 쌓는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선에서 온 지석준은 강의를 충분히 이해했고, 이때문에 해리스 교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후, 데엥~ 캠퍼스 내부로 수업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퍼져나갔다.

“오늘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각자 강의한 내용들을 한번더 복습하도록. 다음번에는 이번에 강의한 부분에서 좀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교수님도 너무하시네.”

“그러게 말이야. 뉴턴이 위대한 학자인건 인정하는데, 운동법칙이나 물리법칙을 좀더 쉬운 방법으로 남겨주시지.”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동료 학생들의 불평을 들으며 지석준은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펜촉에 잉크를뭍혀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였다.

그에게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생활, 그리고 물리학 수업과 강의가 너무도 흥미로웠던 것이다.

* * *

복도를따라 걸어가는 두명.

한명은 금발에 왜소한 체격이다.

옆에는 영국식의 단정한 슈츠의 옷차림이지만 검은머리와 흑색눈동자를지닌 동양인이 보였다.

“알프레드, 네가 빌려준 <국부론>을 읽어보니 정말로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어. 고마워.”

“나중에 필요한 책이 있으면 말해. 얼마든지 빌려줄 테니까.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지.”

“물론이야. 특히 <국부론>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대한 고찰은 나로서도 감탄할 부분이였어. 경제분야와 시장에서 핵심요소인 수요와 공급에대해 말 그대로 보이지않는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수요와 공급의 양을 조절한다는 것이니까 말이야. 사실 물건값이 비싸지면 그만큼 살려는 사람이줄고, 물건값이 싸지면 구매자가 늘어난다는건, 이전부터 반복된 현상인데 그것을 어떤법칙으로 설명했다는건 놀라운 통찰력이였어.”

박철준이 감탄했다.

알프레드 마샬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난 외국인 유학생 박철준에게 깊은 흥미를 느꼈다.

둘다 같은 경제학의 수업을 들었다.

처음에 알프레드는 낯선 동양인 박철준에게 서먹함을 느꼈다.

그럴것이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격적인 도시생활을 한것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따라서 알프레드가 처음으로 만난 동양인이 박철준이였던 것이다.

그러던중 체격도작고 소심했던 알프레드가 다른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을때 적극적으로 나서 도와준것이 박철준이다.

물론 박철준이 엄청나게 강하거나 그런건 아니고, 알프레드를 괴롭히던 학생들도 갑자기 동양인이 등장하자 놀라서 피해버런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뒤부터 둘은 친해졌고 이제는 서로간에 책을 빌려주고 토론하는 사이로 변하였다.

“나중에 기회가되면 철준(Chul Jun), 네가 온 조선이란 나라를 방문해보고 싶어.”

“글쎄. 지금 당장은 외국인들이 조선을 손쉽게 입국할수없는 상황이긴해. 그러나 전하께서는 우리들이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많은 것들이 변해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 따라서 그때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조선을 방문할수 있을거라 확신해.”

“조선의 국왕은 대단한 분인가 보군.”

“나도 직접 뵌것은 한번뿐이지만, 전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게되면, 애덤 스미스란 사람이 영국의 경제와 산업발전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하게되었는지를 깨닫게 될것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정말이였어.”

“정말이야? 믿을수없군. 멀고먼 동방국가의 국왕이 애덤 스미스란 사람을 알고있다니...”

알프레드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애덤 스미스란 경제학자에 대해서는 영국내, 그리고 유럽내의 지식인들이야 충분히 알았지만, 그걸 동방국가의 군주가 알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였다.

“듣기로 임금이 되시기전에 다양한 문물을 접하신 경험이 있다고 하시니, 그때문에 동방에온 영국인이나 유럽인을통해 들으신거 같아.”

“그럴수도 있겠네.”

알프레드가 어느정도 납득했다.

두명은 애덤 스미스의 명저인 <국부론> 그리고 애덤 스미스가 이룩해낸 경제학의 부분들을 토론했다.

그러던중 박철준이 생각난듯 의견을 내놓았다.

“확실히 애덤 스미스가 말한대로, 사람들은 더많은 물건을 가지고 싶고, 그것을 계속해 즐기고 싶다는것이 분명하네.”

“인간의 본성이라고 볼수있지.”

“그런데 말이야. 이런건 어떨까? 만약에 너가 배가 상당히 고픈 상태야. 그래서 눈앞에 파이가 있어서 그걸먹었어. 배가 고프니까 금방 먹어버리고 상당히 큰 만족감을 얻을수 있어.”

“당연하지. 배가 고프면 끔찍한 장어젤리도 먹을수 있을걸.”

알프레드가 대답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상상만해도 괴랄한 맛에 소름이 돋을정도지만, 그래도 배고프면 뭔들 못 먹겠나?

“너가 말한 장어젤리는 솔직히 좀... 하지만 그 말대로 배가 고프면 충분히 가능하지. 그리고 영국인들도 자국요리에 불만이 많다는건 신기하네.”

“모든 영국요리가 그런건 아니지만, 아무튼 유럽에서 영국요리의 악명이 높은건 사실이지. 과거에 유행한 그놈의 금욕주의인지 뭔지 하는것 때문에 그런것도 있고.”

알프레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에 박철준도 동의하며 이어나갔다.

“알프레드, 너의 말대로 정말로 배가고프면 끔찍한 장어젤리도 해치울 정도이고 어쨌든 파이를 즐겁게 먹을수있지. 그런데 이번에는 파이가 추가로 2개가 더 주어졌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