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할거 같습니까? 전하께서 소인을불러 이르시기를, 이번일을 해낼수있는 배짱좋은 지휘관은 간도정찰대장께서 적임자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해내야지. 그리고 전하께서 내리신 어명일세. 무슨일이 있어도 완수해야지. 그것이 우리같은 백성들에게 뛰어난 무기를 지원해 주시고, 스스로 지킬수있는 힘을주신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니까.”
박민준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것을보며 배동석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북방지역과 간도지역에 온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곳의 병졸들과 무관들은 한양에있는 임금을향해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배동석은 압록강을건너 조선땅으로 들어올 청국의 사신들이 어떤꼴을 당할지 기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조선을 깔보고있던 그들에게는 치욕의 순간이 될것이니 말이다.
죽고싶어서 환장했군
평안도의 신의주 나루터-
주변으로 천막들이 세워져 있었다.
외곽에는 무장한 조선군 병사들이 경비를섰고, 몇명은 압록강 건너편을 주시하는 병졸들도 보였다.
이들은 얼마전 한양에서 출발했고 청나라 사신을 마중나온 영접단의 인원들이다.
“내일이면 상국의 칙사분들이 탑승한 배가 도착한다. 그때를위해 준비를 철저히해라.”
영접단을 지휘하는 변재성이 소리쳤다.
청나라를 상국으로 모시는 조선의 사대주의 외교는 굴욕의 수준을 넘어설 정도였다.
후대의 일부 역사가들이 속칭 조공외교 따위로 포장했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그냥 속국일 뿐이다.
이런 속국신세에 분개한 조선말 개화파들이 영은문을 때려부수고 거기에 독립문을 세웠을 정도다.
그런데 후대 역사가들이 그건 조공외교야~라며 포장질을 해댔으니 얼마나 웃기는 짓인가?
“상국의 사신들에게 바칠 공물은 이상없이 준비되었나?”
“물론입니다.”
“칙사분들에게 봉사할 계집들은?”
“저곳의 천막에 몇명 데려다 놓았습니다. 젋고 얼굴도 반반한 계집들이라 칙사분들이 좋아하실 겁니다.”
“아무튼 계집들에대한 교육을 잘시켜라! 만약에 조선의 계집들이 제대로 봉사를 못해서 그분들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사태가 생기면 큰일이니까.”
“걱정마십시요. 만약에 허튼짓을하면 가족들이 무사하지 못할거라고 협박해 놓았습니다.”
“역시 최군관. 자네의 솜씨는 확실하군.”
변재성이 만족한 표정으로 히죽거렸다.
상관인 병조판서를통해 이번 임무를 지시받았다.
그전에 청국에서 사신들이 왔을때에도 영접단을 지휘했고 청국의 사신들은 꽤 만족했다.
이번에도 병조판서는 그를 믿고 맡긴것이다.
‘흐흐. 상국의 칙사분들을 잘 대접하면, 병판께서 높은 자리를 나에게 주실거다.’
변재성이 받게될 포상을 기대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신의주 나루터에 진을친 영접단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 * *
“대장님! 저놈들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데요. 바로 기습해 버리는게 어떻습니까?”
신의주 나루터에서 떨어진 숲속-
그곳에는 100명의 병사들이 보였다.
눈빛은 강렬했고 여러번이나 실전을겪은 노련한 병사들이다.
이들은 나루터에서 천막이나 치고있던 영접단과는 다르게 만주에서 활동하던 간도정찰대의 정예들이기 때문이다.
간도정찰대는 철종에의해 만들어진 특수부대다.
주임무는 동간도와 서간도에있는 조선인 마을을 보호하고 정찰과 토벌임무를 담당했다.
특히 간도정찰대가 전투를 펼치면서 조선족 마을과 한족마을을 약탈하던 마적떼들은 차례로 섬멸당했다.
겨우남은 마적떼들은 간도정찰대가 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겁을먹고 항복하거나 도망칠 정도다.
“전하께서 지시하신 어명은 저기있는 영접단 대신에, 우리들이 청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마중해주고 환영인사를 해주라는 명령이다. 그뒤에 사신들을 임금이계신 한양까지 호송하는것도 포함이고. 다만 영접단의 병사들도 우리와같은 조선군의 병사들이니 불필요한 살생은 피하는것이 좋다.”
“저도 대장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배동석이 박민준에게 말했다.
철종의 밀서를 전달했던 배동석은 간도정찰대와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이들의 활약을 두눈으로 보고 싶은것도 있고, 철종이 정찰대장인 박민준을 지원하라는 명령도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저들과 대화를 해보도록 한다. 무엇보다 우리들은 전하의 어명까지 받고 있으니! 그러나 만약의 사태가 있을지도 모르니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박민준의 지시를받자 정찰대원들이 준비하였다.
“어? 저들은 뭐야?”
“복장이나 모습을보니 조선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혹시 우리들을 지원하러 나온건가?”
영접단의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이에 부하들이 변재성에게 보고했다.
“나리! 정체를 알수없는 무리들이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기분좋던 변재성이 서둘러 측근들과함께 나갔다.
다가오는 박민준과 정찰대를향해 소리쳤다.
“멈춰라! 네놈들은 누구냐? 여기가 어딘줄 아느냐?”
“당신이 청국의 사신들을 마중하러온 영접단의 책임자인가?”
“그렇다.”
변재성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는 병조판서의 심복이면서 한성부(漢城府)에서도 높은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일개 무관들하고는 달랐다.
그가 데려온 100명의 영접단 병사들도 한성부에서 특별히 차출한 인원들이다.
변재성이 기세좋게 외쳤지만 그의 병사들은 눈앞에 나타난 정찰대원들에게 당황했다.
그럴것이 박민준을 포함해 30명의 대원들은 백두철포를 매었고 나머지 인원들도 화승총을 개조한 신무기, 현무철포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그 위세가 상당했기에 변재성의 부하들은 움찔했다.
박민준이 변재성을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우리들은 전하의 특명을받고 활동중인 간도정찰대다.”
“간도정찰대라고? 조선에 그런 부대가 있다는건 들어본적도 없다.”
“그거야 지금까지는 어명에따라 만주와 간도에서 활동을 했으니까 그런것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특명에따라 우리 간도정찰대가 그대들을 대신해 청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영접하기로 하였다. 먼 한양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소. 하지만 지금부터는 우리들한테 맡기고 물러가도 좋소.”
“.....”
박민준의 말을듣자 변재성이 당황했다.
하지만 기세를 높이며 대응했다.
“헛소리마라! 나는 김좌근 대감과 병조판서의 명을받고 여기온 것이다.”
“믿지를 못하는건가? 여기에 어명이 있는데도 말인가?”
박민준이 품속에서 배동석을 통해받은 교지를 펼쳐보았다.
테두리가 금실로 장식된 것이다.
교지에는 옥쇄의 직인과함께 조선왕가의 상징인 문장까지 있다.
이걸본 병사들은 수근거렸다.
“전하께서 저들에게 영접단을 맡으라고 하신게 맞나봐.”
“하긴. 저들이 갖고있는 무장을보니 보통이 아니고. 뭔가 주상전하의 친위부대인거 같은데.”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말소리.
영접단의 병사들이 동요하자 변재상이 교지를 잡아채더니 바닥에 던졌다.
“뭔 개소리야? 이나라의 임금은 허수아비에 불과할 뿐인데, 이딴 교지로 내앞을 가로막아? 김좌근 대감께서 네놈들을 벌하고 능지처참을 할거다.”
변재상의 간악한 행동을보자 박민준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자가 미쳤나? 감히 주상전하의 교지를 바닥에 던져? 안되겠다. 이놈들에게 쓴맛을 보여준뒤에 전하의 어명을 실행해야겠다. 행동을 개시해라.”
“오냐! 네놈이 김좌근 대감을향해 도전해?”
변재상이 소리치며 검을뽑았다.
박민준을향해 돌진했고 박민준이 신속하게 백두철포로 변재상의 칼을 막아냈다.
캉! 불꽃이 튀겼고 박민준이 날렵하게 발차기를 후렸다.
퍽! 쿠억! 일격을당한 변재상이 움찔하며 비틀거렸다.
그사이에 끼릭! 박민준이 신속하게 노리쇠를 당기더니 백두철포를 발사했다.
탕! 공기를찢는 굉음.
발사된 탄환이 변재상의 발밑에서 흙먼지를 튀겼다.
“한발 더 남았다! 이번에는 네놈의 심장을 뚫어줄까?”
“.....”
코앞에서 자신을겨눈 백두철포의 총신.
이것을보자 변재상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갔다.
변재상이 움찔하는 사이 지시를받은 간도정찰대원들이 허공으로 총탄을 발사했고 나머지 병사들이 바닥에 엎드렸다.
자신들 대장마저 당해버렸는데 더이상 반항할수도 없었다.
“이것은 주상전하의 명령이다. 만약에 어명을 거역하고 반항하겠다면 그래도 좋다. 대신에 병사들이 발사한 백두철포와 현무철포에 바람구멍이 날것이다. 하지만 전하의 명령에따라 합류할 자들은 손을들어라. 그러면 최소한 같은 조선군으로서 대접을 해줄것이다.”
박민준의 외침이 주위를 울렸다.
엄청난 기세에 영접단의 병사들 대부분이 순순히 항복했다.
그럴것이 박민준이 임금의 교지까지 보여주었다.
또한 보통의 병사들에게는 김좌근과 안동김씨같은 놈들이 설치는것도 마음에 들지않았던 것이다.
다만 김좌근을 숭배하는 변재상을 포함해 몇몇 군관들이 반항했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정찰대원들이 포박하였다.
“네놈들은 상국의 칙사분들에게 무슨짓을 할려는 거냐?”
“전하의 어명을 수행할 뿐이다! 임금이 내리신 교지를 바닥에 던지는 네놈같은 역적은 지켜보면 되는것이야.”
퍽! 퍼퍼퍽! 박민준이 분노했고 변재상의 아구통을 몇차례나 날려버렸다.
그나마 조선군 소속이고 어명에는 불필요한 살생은 피하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이쯤정도로 끝낸것이다.
* * *
쏴아아. 물살을 가르며 목선들이 나아갔다.
돛이 순풍을 받았기에 항해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목선이 항해하는 곳은 바다가 아니다.
북쪽에있는 압록강-
중국에서 조선으로 들어올때 사용하는 압록강 하구와 신의주 나루터.
강폭의 넓이가 상당했다.
바다를 보는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조금후면 조선땅에 도착 하겠군요.”
“강 건너편의 조선인들이 우리를향해 얼마나 성대한 준비를 해놓았을지 기대됩니다.”
“상국이자 청제국의 칙사들이 가는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트집을잡아 조선왕을 문책해야 겠습니다.”
“크하핫! 그것도 괜찮군요.”
양무가 동료인 등비를향해 폭소를 터뜨렸다.
조선에서는 자신들을 마중하기위해 성대한 준비를하고 있을 것이다.
이전부터 조선은 청국의 사신들이 방문할때는 국빈으로 대접했다.
양무는 몇년전에도 사신단 일원으로 조선을 방문했다.
조선에서는 그들을위해 모든것을 준비했다.
술과귀한 음식은 기본이다.
아름다운 조선의 여자들도 얼마든지 품을수 있었다.
사신들을 대접하기위해 나왔던 조선의 관리들.
상전을 모시듯 앞에서 굽신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뿐인가?
조선의 임금조차도 사신들 앞에서는 청제국의 신하로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그때의 우쭐했던 기분과 쾌락은 지금도 기억에 남았다.
이번에도 그것을 기대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이윽고 압록강을 통과한 선박은 반대편에 도착하고 있었다.
“보십시요. 벌써부터 조선놈들이 마중하러 나왔군요.”
“상국의 사신들을 접대하는건 기본이지 않겠소?”
두명이 우쭐거렸다.
청에서 파견한 사신단 숫자는 100명 정도였다.
사신단 대표는 양무와 등비 두명이다.
양무가 사신단의 대표인 정사(正使)이며 등비가 부사(副使)였다.
그리고 통역등을 담당하는 관료와 호위병력들까지 있었다.
한편 조선에서 받아갈 막대한 금과 은을 운반할 짐꾼들.
마차들도 준비된 상태다.
“연경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사신단이 도착하자 간도정찰대장 박민준이 말했다.
순간 양무는 박민준의 말과 태도에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전에는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조선관료들이 모두 엎드렸다.
청제국 사신들을 맞이하는 조선인들의 예법이다.
그런데 마중나온 조선무장은 그런것도 없었다.
주위에있는 조선군들도 눈빛이 냉랭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