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169)

루퍼트가 만족했다.

처음에 루퍼트는 광저우에서 영국까지 운송할 화물이 대량의 인삼이란걸 듣자 욕설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가 알고있는 진생(인삼)은 보관이 불편하고 쉽게 썩어버린다.

때문에 유럽에 인삼이 수입되는 경우도 거의없었고 과거에 몇몇 무역상들이 시도를 하다가 완전히 실패했다.

무엇보다 인삼은 현지에서 구입하는 비용도 비싸지만 썩어버리면 쓰레기에 불과해 버린다.

그런데 조선에서 제조된 홍삼은 그런 인삼을 특수하게 건조시킨 것이고 보관상태도 상당히 우수했다.

광저우에서 영국까지 몇달에 이르는 항해에도 전혀 변질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선죽상회의 김도영이 새로 고안한 홍삼의 보관기술과 포장기술도 적용이 되었다.

습기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한지를 이용해 홍삼이 변질되거나 썩는것을 방지한 것이다.

이런 신기술이 활용했기에 조선의 홍삼이 영국까지 무사히 도착할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인가?”

정대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거쳐왔던 항해기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얼마후 국제유학생단의 조선인들도 갑판으로 나와서 구경을 하였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영국항구의 모습-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중이다.

* * *

“호호호- 어서오세요. 나리!”

기루의 여성들이 손님을 맞이하며 교태어린 미소를 지었다.

청제국의 수도인 연경(북경).

그곳은 광대한 규모 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북경에는 돈많은 갑부들부터 권세를지닌 관료들까지 살았다. 그들을 만족시켜 주기위한 향략적인 시설들도 가득했다.

그중에 하나가 사내들이 어린계집을 옆에끼고 술을 마시고 즐기는 기루다.

북경에는 유명한 기루들이 많았다.

평민들은 엄두조차 내지못할 정도로 비싸고 고급스런 장소들도 있었다.

이곳에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두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이전에도 여기의 단골인듯 손님을 맞이하는 기녀들과 인사를 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기녀들에게 두명은 돈많은 단골손님이다.

실제로 두사람은 북경에서 활동중인 비호국 요원들이다.

철종에게 지원받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돈많은 갑부 행세를하며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비호국 요원들은 재능과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분을 위장했다.

지금 들어온 두명은 중국어외에 만주어까지 가능했다.

그것으로 청제국의 지배계층인 만주족 행세도 할수있었다.

철종은 비호국이 조선에서 최고의 인재들을 선발할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때문에 비호국 요원들중에는 실력은 있지만 빛을 보지못한 몰락한 양반(잔반)들도 있었다.

그리고 평민이지만 재능을갖춘 인재들도 많았다.

신분에 관계없이 재능과 실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비호국 요원이 될수있는 것이다.

자리를잡은 그들은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일부러 지금 시간대를 고른것이다.

예상대로 기루에는 고위급 관료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다.

북경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큼의 만주인 귀족들도 있었다.

술과 안주가 나왔다.

기녀들이 옆에서 교태를 부리면서 시중을 들었다.

두명은 술을마시며 기녀들에게 자랑하듯이 떠벌렸다.

“이보게. 소문 들었어?”

“뭔데 그러나?”

“얼마전 요동지역에 다녀왔는데 말이야.”

“자네 거기서 큰 돈을 벌었다고 했지.”

“물론이지.”

큰돈을 벌었다고 말하자 시중들던 기녀들도 관심을 보인다.

그녀들의 눈빛이 탐욕으로 변한다.

말을꺼낸 사내는 품속에서 은화와 금화를 꺼내더니 기녀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기녀들의 입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주변에있던 손님들도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떤 놈이기에 돈을 물쓰듯 하는거야?

부러움과 시기심도 드러났다.

말을꺼낸 사내는 신경쓰지 않았다.

계속해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였다.

“요동에서 엄청난 소문을 들었지 뭔가. 글쎄, 요동 파견군에서도 정예로 속하는 지르칼손 기마대가 전멸을 당했다고 하더군.”

“그것이 사실인가? 믿을수없군. 자네 일전에 지르칼손을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못만난거 같군.”

“연경에 있을때 지르칼손과 술도 마시고 했었지. 요동으로 좌천된뒤 소식도 들을겸해서 갔는데...”

여기부터 두명은 만주어로 이야기를 하였다.

조금전까지 한족들이 사용하는 중국어를 쓰다가 만주어로 바꾸었다.

그것을보며 기녀들은 놀라고 있었다.

시중을드는 두명이 평범하지 않다는걸 느꼈으니까 말이다.

대신에 두명이 만주어로 이야기하자 주변에있던 고위급 한족 관료들.

그리고 만주족 귀족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정예기병을 거느리는 지르칼손의 행방이 알수 없다는것.

요동에서 떠도는 소문중에 지르칼손과 정예부대가 전멸을 당했다는 것까지.

그들에게 엄청난 소식이였고 몇명은 표정이 굳어졌다.

두명의 대화에서 나온 지르칼손이 요동으로 좌천된 상태이긴 했다.

하지만 그가 속해있는 집안은 북경에서도 알아주는 만주족 귀족가였다.

‘반응이 확실하군.’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박은식은 냉소를 지었다.

일부러 중국어와 만주어를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한말에대해 상당한 무게감을 더해졌다.

효과는 제대로 먹힌것이다.

만주어를 사용하는 상대가 허튼소리나 농담을 하지는 않을것이니 말이다.

이것이 허튼소리도 아니다.

요동파견군에 소속된 지르칼손의 부대는 얼마전에 전멸당했다. 지휘관인 지르칼손도 조선군과의 전투에서 목이 잘렸으니까 말이다.

박은식은 지르칼손 부대가 전멸당했다는 소문만 퍼뜨릴뿐.

누구에게 당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첩보작전과 심리전은 모든것을 100% 털어놓는것이 아니다.

몇가지 단서들만 툭툭 던져놓는다.

상대가 미끼를 물도록 유인하는것이 핵심이다.

주위에있는 사람들이 알아챌수 있도록 단서를 던진뒤.

두명은 화제를 바꾸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주변에있던 몇명은 두사람의 대화에 반응하면서 옆에있던 시종을불러 비밀지시를 보내고 있었다.

잠시 몇잔의 술을 마신뒤에 두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러 술시중을든 기녀들에게 상당한 은자도 쥐어주었다.

“호호호! 다음에 또 오세요. 나리!”

두명을향해 기녀들이 문앞까지 나서서 배웅하였다.

기루를떠난 두명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다른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루에있던 만주족 놈들이 걸려든거 같더군.”

“대단하십니다.”

“이제 시작이지. 앞으로 몇군데 더 들리면서 사전작업을 진행해야지.”

“알겠습니다.”

대답하던 요원들이 옷을 꺼내었다.

그들은 청풍대장을통해 철종에게 지시받은 임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얼마전 조선군에게 전멸당한 만주족 지휘관 지르칼손과 기마부대에대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요동파견군 사령관인 엄세번은 한족 출신이다.

때문에 휘하에있는 만주족의 지휘관인 지르칼손이 죽은것을 숨기고 있었다.

그것이 상부에 알려지면 지위가 위협받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종은 기병총과 보병총포로 무장한 특수부대를 파견해 지르칼손과 기마부대를 완전히 전멸시켰다.

그뒤에는 요동지역에 비호국의 요원들을 파견했다.

요동사령관인 엄세번과 지휘부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처음부터 요동사령관이 한족출신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지르칼손의 죽음에대해 묻어둘것이라 예상했다.

철종의 예상은 적중했다.

조선군이 만주족 기마부대를 전멸시키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음에도 중앙에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철종에게는 준비할 시간을 번 셈이다.

상황이 조선과 철종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이제부터 지르칼손 문제를 꺼내어 공작을 시작한 것이였다.

일부러 북경에있는 청의 권력자들이 요동에서 벌어진 사건을 감지하도록 소문을내기 시작한 것이다.

슬쩍 미끼를 던진다.

북경에있는 상부가 상황파악을 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철종이 다음수를 대응할 시간은 충분했다.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인물이다. 청제국의 황제가 바뀌고 혼란기를틈타 비밀작전을 시행하고 계시다니.’

북경에서 활동중인 청풍대.

그곳에서도 상급요원에 속하는 박은식은 감탄하고 있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대해 기대감을 가졌다.

조선임금은 청제국의 내부사정을 꿰뚫어 보는중이다.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노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 임금들중에 이런 일을해내는 사람은 드물었다.

과거에 조선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통해 청제국에게 당한 치욕을 갚아줄 때가 다가오는 것이다.

반격의 최일선에는 박은식과같은 비호국 요원들이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었다.

걸려 들었군 !!!

덜컹! 덜컹! 여러대의 마차들이 정문을 통과했다.

화물칸에는 짐들이 한가득 실려있었고, 마부석에는 낯선 동양인들도 군데군데 보인다.

선두로 통과한 마차에 타고있던 정대상, 그리고 김도진과 오경석은 눈앞으로 보이는 저택의 규모에 놀랐다.

“광저우에서 만난 제이든이 저렇게 큰 저택과 가문의 소속이였다니. 우리가 생각보다 거물급 집안과 인연을 맺게된거 같군.”

“저도 자세한건 모르지만 제이든씨가 속해있는 시필드 가문은 과거 런던에서도 사업과 금융으로 상당히 큰 명성을 쌓았던 집안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형편이 곤란해졌고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군. 아무튼 전하께서는 시필드 가문이 조선을위해 많은 도움을 줄것으로 기대하고 계시네. 물론 전하께서도 여기 시필드 가문을 중요한 협력자로 생각중이지. 따라서 조선이 부국강병으로 발전하는만큼 시필드 가문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으면 좋겠군.”

정대상이 김도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도진은 일행중에서 어린나이에 속했다.

그러나 형인 김도영과함께 일찍부터 선죽상회의 일을 담당했고, 이후에는 광저우의 시필드 제이든과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다.

총명해서 영어를 빨리배우고 능숙했던 김도진은 제이든이 설립한 회사 이스트 프론티어(East Frontier)의 업무도 지원하면서 많은 시간을 가졌다.

이때문에 제이든에게 시필드 가문이 런던에서 과거에 어떤명성을 가졌고 지내왔는지를 알게된 것이다.

“오랜만에 저택에 활기가 넘치는군.”

보킨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시필드 가문의 집사로서 마리너호를 타고온 조선인들이 항구에 도착했을때 마중을 나왔다.

덕분에 국제유학생단의 인원들이 영국으로 입국하는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미리 연락받은 보킨스는 마리너호에서 하역할 물품들을 운반할 마차들도 준비하였다.

그럴것이 광저우의 제이든이 보낸 전보를통해, 마리너호가 싣고온 화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시필드 가문도 영국에 무역회사를 갖고있기에 모든 화물들은 신속한 하역작업을통해 저택으로 수송이 시작되었다.

시필드 가문의 저택은 런던의 시내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외곽의 넓은부지를 바탕으로 지어진 곳이다.

상당히 큰 정원과함께 정문에서 본관 및 저택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군데군데 나무들도 심어져 있었다.

이 저택은 시필드 가문이 과거 영국에서 경제와 금융등을 쥐고 명성을 쌓았을때의 영광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다.

다만 지금은 김도진의 말대로 가문의 재정상태가 열악했고, 이 넓은저택을 유지하는 것만도 쉬운게 아니였다.

“동방에서 온 물품들은 정말로 신기한것들이 많군.”

“집사님! 저 실크(비단)들의 색깔이나 상태는 차이나(중국)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던 것들보다 더 우수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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