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본격적인 거사를 하기도전에, 천기대신 주광비, 그리고 그가 보유한 친위부대가 급습을 해온것이다.
포악한 성격을지닌 주광비가 천기대신-이라는 엄청난 직책과 권력을 갖게되자 여기에 반대하는 자들이 많았다.
둘째황자인 혁흔을 따르던 무리들이 그러했고, 주광비는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배신자를 심었고 그가 바로 양재사다.
“설마 네놈이....”
장역지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최후의 결전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양재사는 뒤쪽으로 빠지더니 다가오는 주광비의 친위부대와 합세했던 것이다.
“장역지! 항복하시요! 이미 대세는 결정되었소. 지금 청제국은 새로운 황제폐하와 천기대신 주광비에게 복종하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개같은 놈! 헛소리마라!”
“끝까지 싸우겠다!”
장역지와 동료들이 돌격했다.
하지만 주변을 포위한 친위부대의 숫자만도 수백명이다.
팔기로 구성된 친위부대가 달려들며 장창을 찔렀다.
챙! 크악! 장역지 일행들이 결사적으로 싸웠지만 소용없었다
하나둘씩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얼마후 그들의 온몸은 수십개의 창날로 난도질을 당하였다.
주광비의 부대장이 오더니 양재사에게 말했다.
“수고했소. 이제부터 당신은 주광비 어르신께 충성하면서 부귀영화를 보장받을 것이요.”
“감사합니다.”
양재사가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동료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배신을 안했다면 자신도 저곳에서 처참한 꼴로 뒹굴었을 테니까 말이다.
* * *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경들이 과인과 동행해 주는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전하! 오늘같은 날에 어찌 소신들이 빠질수 있겠습니까? 소신은 그동안 군기시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볼수있기에 기대가 되옵니다.”
병조참지인 박규수가 대답했다.
옆에는 의정랑을 맡고있는 흥선군 이하응도 따라오는 중이다.
생활의 대부분을 창덕궁에서 보내다보니 갑갑해질 상황이였는데 오랜만에 궁을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렇다해도 멀리가는건 아니고 도성의 외곽에있는 군기시로 온것이지만 말이다.
평일에는 형식적이나마 조참이나 상참같은 조회에도 참가해야하는 상황이기에, 조정의 업무가없는 휴일날을 선택한 것이다.
다만 군기시 관료들이나 장인들에게는 임금이 행차한다고 쉬지도 못한것이 좀 미안하지만 어쩔수없다.
이번에 진행되는 신형화포의 시범사격을 본뒤에 고생한 군기시 관원들과 장인들에게 두둑하게 포상이라도 해주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전하. 소신은 아직도 조선의 화포들과 양이들의 화포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하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병조참지인 박규수는 이 부분에대해 어느정도 지식이 있었지만, 이하응은 행정과 문과쪽을 담당하다보니 그런것이다.
현재 직책도 영의정을 보좌하는 의정랑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도 깨어있는 지식인중에 한명이다.
이번에 실제로 눈앞에서 화포사격과 차이를 확인해보면 깨닫게 될것이다.
잠시후 군기시에서 일하던 장인들이 다가왔다.
수석장인 한기준을 포함해 조선군에게 보급할 신무기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세운 인재들이다.
그들은 얼마전 수령한 캘버린 화포에대한 정비를 끝내고, 시범사격을 준비한 것이다.
캘버린 화포들은 이스트 프론티어를통해,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무기창고에 보관중이던 화포들이다.
구형이고 군데군데 녹이 슬었지만 군기시 장인들의 뛰어난 손재주를통해 새것처럼 바뀌었다.
이제부터 그 위력을 드러낼 순간이였다.
캘버린포 발사와 위력
“전하께서 친히 군기시까지 오셨다. 이제까지 너희들은 밤낮으로 준비를 하였다. 따라서 한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된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지금부터 최종점검을 시작한다.”
한기준이 지시를 내렸다.
그의 앞에는 20명의 장인들, 그리고 군기시에 소속된 병사들과 화포장들도 있었다.
이들은 수석장인 한기준과함께 오늘의 시범사격을위해 여러차례 훈련을 하였다.
때문에 한기준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신뢰와 존경심이 흘러나왔다.
화포시범을위해 마련된 장소는 군기시에서 떨어진 한강변의 공터였다.
이시대에 한강의 남쪽, 강남지역은 한양에서도 외진곳으로 인식되었다.
때문에 21세기에 살았던 나에게는 저땅과 토지들이 21세기 대한민국, 그것도 서울에서 금싸라기 땅이라고 불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보니 지금 한양의 규모나 도시발전의 수준은 엄청나게 낙후되어 있구나. 언제쯤 한양을 런던이나 파리같은 수준으로 올리지?’
현시대 유럽, 그중에서도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의 수도, 런던이 좋은 도시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국제적인 도시인건 사실이다.
다만 영국은 석탄사용량이 급격하게 늘어가면서 공해가 시작되었다.
그중에서 런던의 대기오염은 심각하게 변하는 중이다.
영국의 축축하고 흐린날씨와 더해서 런던시민들 조차도 매연과 공기오염에 고통받을 정도다.
런던이 유럽인들에게 발전된 도시이긴 하지만, 아름다운 도시로 평가받지 못하는 반면에... 프랑스의 파리는 좀 다르다.
물론 지금의 프랑스 파리도 런던과 비슷한 수준이고 도시내의 위생이나 청결상태, 제멋대로 지어진 건물들로 난장판이다.
하지만 파리가 이후 대대적인 도시계획을거쳐 새롭게 태어난뒤로 프랑스의 파리는 유럽의 상징.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파리의 로망(Romance of Paris)-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다.
‘이후에 청나라와의 한판승부를 성공시키고 조선을 본격적인 신흥강대국으로 키우게되면 한양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도시계획과 개발을 시작해야 되겠다. 물론 기준은 프랑스의 도시계획과 개발을 일정부분 참조하면 충분하고 말이지.’
앞으로 진행될 한양의 도시계획과 발전에대한 구상을 해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성을 관통하는 저큰 한강에 제방을쌓고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여름의 장마철마다 한강이 범람해서 홍수가 나는것은 한양에서 매년마다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도 심각했다.
특히 홍수로 넘쳐나는 물과 그뒤에 진흙탕이된 웅덩이에서 발생하는 전염병이나 위생적인 문제도 해결해야될 부분이다.
21세기에 살았던 나의 관점으로 볼때, 지금 한양은 물론 조선사회의 공중위생 수준은 한숨이 나올정도다.
‘이거야말로 조선판 뉴딜(New Deal) 프로젝트가 필요한 상황이군. 대규모 토목공사를 할려면 자금도 엄청나게 필요할거다. 그리고 조선을위해 필요한 돈은 역시나 아시아의 종이호랑이 신세로 변해가는 놈에게 뜯어내는것도 한가지 방법이고, 그놈을통해 일부는 충당할수 있겠지.’
머리속으로 과거에 본 그림이 떠올랐다.
그것은 근대 세계사에 관련된 것이였고 19세기말 유럽의 신문에 올라온 만평과 화보다.
청제국이라는 맛좋고 거대한 피자를두고 모여있는 국가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를 포함한 서구의 열강들이 모여서 청나라를 서로 쪼개서 나눠먹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저 그림에 조선은 없었지만 이제부터 다를거다.
왜냐하면 저 그림의 앞자리에서 가장 큰 부분을 쪼개서 가지는건 조선이 될것이니 말이다.
잠시후 한기준과 장인들이 다가와 준비가 되었다고 알렸다.
“전하께서 지시하신대로 화포사격을 진행하겠습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한기준을향해 대답하며 허락했다.
이번에 실시할 화포사격과 시범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졌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시킨 것이다.
첫번째는 조선군이 그전부터 보유한 화포들을 조선에서 생산하고 제조한 화약을 사용해 사격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광저우의 이스트 프론티어를통해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보유했던 캘버린포를 사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포발사에 사용하는 화약도 동인도 회사의 것이다.
캘버린포나 화약이나 현재 영국군이 사용하는 것들에 비해서는 구형이지만 지금 조선의 상황에서 도입하고 활용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럴것이 조선이 당장은 영국하고 대립하거나 영국군하고 전투를 할 가능성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이후에는 조선이 신흥강대국으로 전세계의 패권경쟁에 뛰어드는것도 나의 대전략중에 하나다.
따라서 그때를 위해서도 준비해 두는건 필요했다.
“먼저 조선군이 사용하는 화포들과 화약입니다.”
한기준이 외쳤고 흥선군 이하응이 긴장한 모습이다.
병조의 소속이고 군사경험도 많았던 박규수는 화포사격도 여러차례 보았기에 덤덤했다.
그에반해 흥선군 이하응은 한양에서 지냈고, 저런 화포사격을 눈앞에서 본것도 처음일 터였다.
조선말 역사에서 풍운아와 패기로 명성을 날렸던 흥선군의 저런 모습을보니 특이한 느낌이다.
지금 흥선군의 나이는 기껏해야 20대후반.
역사에서 쇄국정책을 소리치며 척화비를 세우던 그때의 패기와는 다르니까 말이다.
끼릭! 끼릭! 장인들과 화포병들이 각각 10문의 화포들을 밀고나왔다.
포격시에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였고 화약과 포탄, 그리고 장전등을 과거 조선군이 하던 방식대로 하였다.
능숙한 동작이기는 했지만 지켜보던 나로서는 여기저기 문제점들이 보였다.
“포격준비!”
“포격준비!”
화포장이 외쳤고 횃불을든 포수들이 심지에 불을붙였다.
치지직! 화포위에 끼어진 심지가 타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얼마후.
쾅! 콰콰쾅! 10문의 화포들이 시커먼 연기와 불꽃을 토해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포탄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쿵- 하는 굉음을 내었다.
이시대의 화포들이 사용하는 포탄들은 묵직한 쇠구슬형의 라운드탄-이 일반적이다.
현대식의 포탄처럼, 폭발하며 파편을 사방으로 비산시키는 후장식 대포와 포탄과는 다르지만 위력이 없는건 아니다.
묵직한 쇠구슬의 물리적 충격은 진격해오는 적 보병의 하체와 다리를 산산조각 내버리고 돌로된 성벽을 무너뜨린다.
제대로 착탄된 라우드탄 한방에 전열보병이 볼링공에 무너지는 핀처럼 일렬로 쓰러지는 것이다.
이때문에 지상전투에서 화포가 가지는 위력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나폴레옹의 경우에는 포병을 잘 이용해서 유럽을 제패했을 정도였다.
“엄청나군요.”
흥선군이 고막을 울리는 대포소리. 그리고 포탄들이 날아가는 모습에 탄성을 토해냈다.
10문의 화포들이 포탄을 일제히 발사하는 광경은 충분히 뛰어났다.
다만 내가 불만이라고 느낀것은.
“병참께서 보기엔 어떻소?”
“전하. 조금전 발사한 10문의 조선군 화포들이 대단한건 사실이지만 포탄들이 떨어진 지점들이 모두 제각기 입니다.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렇게 전하께서 준비하신 포격시범을통해 확인하니, 역시 이 부분이 실전에서는 적에게 집중적인 타격을 주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리고 군기시의 장인들이 세워놓은 목표에도 사거리가 짧아서 도달하지도 못하는군요.”
“제대로 보셨소이다.”
병조참지인 박규수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군사와 무기분야에 탁월한 식견이 있었다.
조선군이 보유한 화포들은 사거리가 부족한건 둘째치고, 포탄이 떨어지는 낙하점들이 사방으로 퍼져있었던 것이다.
밀덕으로서 조선군의 화포들이 21세기 자주포들처럼, TOT-사격을 한다거나 또는 목표에 10발의 포탄들이 한꺼번에 퍼퍼퍼펑! 하면서 꽃히는 효력사 같은걸 원하는건 아니다.
최소한 각각의 포들이 발사한 포탄의 낙하점들이 일정반경 내에는 들어와줘야 하는것이다.
하지만 지금 조선군이 사용하던 화포들은 성능이 부족해 이것마저도 잘 안된다.
이후에 몇차례 더 포격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포탄들이 떨어지는 지점은 더 분산되었고, 집중도가 형편없는 수준이다.
거기다 또다른 문제도 발생했다.
쩌엉! 콰직! 10문의 조선군 화포들중에 2문이 8번째의 포사격에서 포신에 금이가며 쪼개져버린 것이다.
“설마 저런일이 발생하다니!”
“괜찮소.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까.”
한기준을향해 손을들어 격려했다.
조선군의 화포들이 지닌 또다른 문제점.
바로 내구성이 엄청나게 떨어진다는 부분이다.
조선이 과거부터 화포를 만들때 사용한 방법은 쇳물을부어 주조하는 형식이다.
다만 이것은 일정한 틀에 쇳물을 부으면 되기에 만드는건 충분히 되는데, 포신내부의 화약이 터질때의 압력을 오래견디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실제로 이런건 유럽의 화포제작에서도 문제가 되었고, 그때문에 현재 유럽열강의 화포들, 그중에서도 캘버린포는 열처리 가공을한 내부포신을 먼저 만들고 그뒤에 다시 주조해서 만드는 2중 제작기법을 썼다.
이걸통해 포탄을 여러발 쏘아도 포신이 충분히 견디면서 동시에 내부의 장약이 폭발하는 압력을 그대로 포탄에 전달하는 성능을 낸것이다.
첫번째로 진행한 조선군의 화포사격은 조선의 화포성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재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때문에 박규수도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 이번에는 광주(광저우)의 양이들로부터 받아온 화포를 사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소. 그런데 저번에 과인이 지시했던 부분과 개량은 충분히 해놓았습니까?”
“전하의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소인들이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전하께서 만족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걱정마시요. 일단 확인을 해보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한기준이 준비를 하였다.
처음에 실시한 조선군의 화포시범은 본편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진짜인 것이지.
선죽상회가 선박들을 이용해 조선으로 들여온 영국제의 캘버린포들.
구형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군이 사용하는 화포들에 비해서는 우수한 편이다.
하지만 밀덕으로서 포병의 역사와 전사를 알고있는 나로서는, 캘버린포를 효과적으로 개량하고 활용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중에 하나가 군시시의 장인들에게 지시해 캘버린포에 포각조절기를 다는것이다.
현재 영국군이 사용중인 신형의 캘버린 화포들에는 포신의 각도를 조정하는 장치들이 달려있다.
동시에 포신이 몇도로 세워졌는지를 나타내는 포각계도 달려있는 상태다.
이때문에 영국군이 보유한 신형 캘버린포의 탄착점이나 정확도는 다른 국가들에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조선에 들여온 구형 캘버린포에도 이것을 적용했고 군기시의 장인들이 밤낮으로 개량을 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