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를 출발한 이스트 프론티어 소속의 선박 마리너호가 영국에 도착할 때까지 수개월에 이르는 시간이 걸린다.
항해도중 중간중간 물자보급과 기타의 상황을위해 항구에 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바다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따라서 영국에 도착하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은 현지에대한 적응을 준비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언어적응은 필수적인 부분중에 하나였다.
오경석도 철종의 큰뜻을 이해했다.
그리고 오경석 옆에는 김도영의 동생으로 영국까지 동행하는 김도진도 있었다.
깨어있는 양반유생 정대성과 박상호의 역활도 큰몫을 하였다.
“아이엠어 보이(I am a boy), 나는 소년이다... 라는 뜻입니다.”
오경석이 준비된 묵판에 글씨를썼다.
조선에서는 한지에 글을쓰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사용하는 묵판(칠판)은 너무나도 편리한 것이다.
얼마든지 쓰고 지우고를 반복할수 있었다.
오경석이 영어를 가르치는 앞에는 50명의 조선인들이 그것을 반복하며 배웠다.
다른 곳에서도 정대상이 30명의 조선인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처음에 국제유학생단의 평민과 중인들은 갓을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두명의 양반유생, 정대상과 박상호를 껄끄럽게 여겼다.
그것도 당연했다.
대다수가 자신들과 비슷한 신분인데 양반 유생들과는 신분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서먹했던 감정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까지 거들먹 거리는 양반과 유생들만 보아왔는데 정대상과 박상호는 달랐기 때문이다.
하찮고 힘든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범을 보였고 신분 차이가있는 나머지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어느덧 정대상과 박상호는 국제유학생단의 나머지 사람들이 믿고 따를수있는 지도자같은 위치로 대접받았다.
단순히 그들의 신분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실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서태후의 야망과 권력
청제국의 수도인 연경(북경)-
도성내 사람들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분주하게 아침을 맞이하였다.
평소와 다를것없는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였다.
둥둥둥둥! 북경의 중심에있는 황제의 궁궐이자 거대한 자금성.
그곳에서 아침부터 북소리가 사방으로 울려나갔다.
“무슨 일이지?”
“저걸보니 엄청난 사건이 생긴거 같은데... 혹시?”
몇명이 추측하며 말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 듣기라도 한다면 단번에 불경죄로 무슨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연경(북경)에있는 사람들은 예상하고 있었다.
자금성에있는 청제국의 황제, 도광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새해들어 도광제는 급작스런 병으로 누웠고 더이상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금성에있는 어의, 그리고 북경에서 용하다는 의원들이 모두 투입되었지만 병세를 호전시키지 못하였다.
황제의 나이가 70세에 가까울 정도로 노쇠했기에 병세를 이기기 힘든것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황제의 목숨이 얼마남지 않았다는걸 느꼈지만, 북경에서는 수시로 황제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행사와 기도식이 열리곤 하였다.
둥둥둥! 두두두둥! 자금성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더욱 커졌다.
얼마후 처처척! 처척! 성안에서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며 나왔다.
자금성을 지키는 친위병사들이다.
그들이 세운 깃발에는 황제의 죽음을 알리는 표식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북소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전날밤에 30년동안 청제국을 통치하고 군림했던 도광제가 죽은 것이다.
“아이고 폐하!”
“흑흑! 앞으로 대청제국은 어쩌란 말인가?”
황제의 부고를 표시하는 깃발.
그것을든 대열이 나아가자 대로변에있던 사람들이 모두 엎드려서 통곡하였다.
개중에는 정말로 슬퍼서 하는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주변의 눈치를보며 엎드렸다.
얼마후 연경(북경) 내부에는 황제의 죽음을 추모하는 울음소리로 가득 메워졌다.
그런데 처음에는 도광제의 사망소식에 충격받았던 사람들이 다른 의문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새황제는 누구란 말인가?
* * *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단 말인가?”
“맞습니다. 믿을수없고 황당할 정도입니다.”
한명이 탄식하자 옆에서 동조한다.
드넓은 자금성 한켠에있는 관청의 내부.
그곳에는 이십명의 인물들이 모여있었다.
선대인 도광제가 병들었지만 여기있는 관료들은 기대감을 가졌다.
그럴것이 다음번 청제국 황제로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둘째황자, 혁흔이 차기황제가 될것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혁흔의 지지세력들만 아니라 연경(북경)내의 만주귀족들, 그리고 백성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첫째인 혁저가 황태자의 위치기는 했지만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중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둘째, 세째 황자들이 승계를받는 경우가 많았던 터였다.
“선대황제께서는 혁저한테 무슨 장점이 있다고 황위를 준것인지? 자금성내 신하들 사이의 인망은 둘째치고, 황제로서 필요한 용맹과 패기. 모든것이 둘째황자(혁흔)께서 혁저를 능가하고 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터져나온 불만의 목소리는 연달아 진행되었다.
여기모인 20명이 자신들처럼 둘째황자인 혁흔에게 충성하고, 혁저를 반대하는 것으로 믿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끝쪽에 앉아있고 모임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양재사는 동료들의 성토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지만 속으로는 딴생각을 품었다.
‘멍청한 친구들. 이미 첫째 황태자가 황위를 물려받고 대세가 기울었는데... 아직도 둘째인 혁흔에게 충성하고 있다니! 잘못하다가는 나조차도 이들하고 같이 끝장날수 있다. 최소한 목숨이라도 보전하려면...’
양재사가 며칠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복면을쓴 사내들에게 납치를 당하였고 목에 칼이들어온 상태에서 협박을 받았다.
상대는 그가 둘째황자인 혁흔을 지지하는 세력중에 한명인걸 알고있었다.
협조하지 않으면 양재사는 물론 가족들까지 죽을것이라 하였다.
겁에질린 양재사는 협조를 약속하고 풀려났다.
그래도 혁흔이 황제가되면 복수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차기황제는 첫째인 혁저가 된것이다.
자신이 살수있는 방법은 한가지.
차기황제인 혁저의 세력에 복종하고 협력하는 것외에 없었다.
“이대로 포기할수는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대청제국의 운명과 미래를 위해서도 제대로된 황제가 필요합니다.”
그말속에는 새황제인 혁저(함풍제)에게 반기를 들어서라도, 자신들이 충성하는 혁저를 황제로 세우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서로간에 눈빛을 보내며 결의를 다졌고 양재사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정말로 감축드립니다.”
“대인께서 황태자께서 새로운 황제가 되시고, 또한 제국내에서 황제폐하를 모실 신하들 중에서는 일등공신이지 않습니까?”
“허어. 선대황제께서 서거하신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우리들끼리 좋아하고 있다가는 남의 눈치가 보이네. 자중하게.”
“그렇군요.”
주광비의 충고에 양손을 포권하며 축하하던 관료들이 헛기침을 하였다.
청제국의 권력을쥐는 대권경쟁에서 이긴 상황이지만 적당히 분위기를 파악할 필요는 있었으니 말이다.
몇명이 주변상황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쨌든 대인께서 먼 준가르에서 연경(북경)까지 오시고, 동시에 저희들과 황태자 전하를 지지해주신 은혜는 뭐라 갚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급한데 어찌 변방에서 느긋하게 있을수 있겠는가? 당연히 도와야지 안그런가.”
“맞습니다.”
몇명이 아부하며 미소를 지었다.
부하들에게 둘러쌓인 주광비는 그들보다 머리하나는 클 정도로 험악한 인상에 체격도 상당했다.
그럴것이 주광비는 연경에서 명성을 날리던 장수였다.
그뒤에는 도광제의 지시에따라 변방인 준가르(위구르)지역으로 파병을 나갔던 것이다.
이후 도광제가 병으로 눕게되자 친위부대중에 일부를 데리고 북경으로 복귀했다.
이전까지 혁저가 황태자라해도 그를 지원하는 세력은 상당히 부족했다.
특히 둘째인 혁흔의 경우, 사냥도 잘하고 무예도 출중했고, 용맹했기에 혁흔을 따르는 신하와 세력들이 많았다.
선대황제인 도광제도 둘째에대해 칭찬과 격려도 틈틈히 하였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도광제 다음에 차기황제는 당연히 둘째인 혁흔이 될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도광제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기전 선택한 후계자는 황태자인 혁저였고 이때문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물론 혁저도 나름대로 힘을 키우면서 준비는 하였다.
특히 전공을 세우고 무장으로 명성높은 주광비가 그를 지원했고 이때문에 혁저도 야망을 키울수 있었던 것이다.
기쁨에 들떠있는 부하들을향해 주광비가 충고하듯이 말했다.
“지금은 새로운 황제폐하의 신변에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네.”
“알겠습니다. 대인!”
참석자들이 대답했다.
그럴즈음 시녀가 들어오더니 주광비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서태후 마마께서 여기로 오신다고, 그게 정말인가?”
“단순한 방문이니까 크게 준비할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알겠다.”
주광비가 대답했다.
얼마후 문이열리며 금실로된 화려한 옷을입은 서태후가 방문을 하였다.
주위로는 20명의 시녀들이 뒤따랐고 철갑옷으로 무장한 호위병들이 좌우로 늘어섰다.
주광비와 관료들이 모두 서태후의 등장과함께 엎드렸다.
서태후가 당당하게 걸어가며 상석으로 간뒤에 앉았다.
얼마전까지 그녀는 자금성에서 일개 궁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새황제의 황후라는 엄청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서태후 전에 혁저가 황후로맞은 동태후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동태후는 대부분의 시간을 본인의 처소에서 지냈다.
또한 글을 모르는 문맹이면서 신하들과의 교류도 별로 없었다.
그에반해 서태후는 권력을 이용해 단번에 혁저파의 신하들을 휘어잡는 정치력이 있었다.
“태후마마. 소신 주광비. 인사를 올립니다.”
“귀공이 준가르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고, 이번에 직접 연경(북경)으로 온뒤에 폐하를 도운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과찬이옵니다. 태후마마. 소신은 그저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겸손하시군요. 하지만 폐하께서 청제국을 이끌어 가는데는 여기있는 신하들의 도움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귀공인 주광비에게는 각별히 천기대신(天機大臣)-의 직위를 내릴수 있도록 폐하께 간언해 보겠소.”
“태후마마! 그것이 정말이옵니까? 소신 주광비. 충심으로 폐하와 태후마마를 받들겠습니다.”
주광비의 내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공로를 세웠기에 나름대로 큰 자리가 주어질것은 예상했다.
그런데 천기대신은 주광비의 예상을 넘어선 부분이다.
청제국에는 이전부터 병권을 책임지고 조정에서도 큰 목소리를 낼수있는 군기대신(軍機大臣)이란 직책이 있었다.
그리고 천기대신은 과거의 군기대신이란 자리에 이부상서-라는 막강한 직책까지도 추가되는 것이다.
이때문에 청제국 역사에서도 오직 한명의 신하만이 천기대신-의 자리를 맡았을 뿐이다.
그것을 서태후가 부활시켜 주광비에게 맡긴것이다.
이것은 주광비가 병권과 이부상서의 인사권까지도 쥐게되는 상황이였다.
‘현재 병부놈들은 상당수가 둘째인 혁흔을 따르는 놈들이다. 이놈들을 숙청하고 제거하기 위해서는 주광비같이 무력이 뛰어난 인물이 필요하지. 동시에 이부상서의 인사권까지 우리쪽에서 통제할려면 천기대신을 부활시키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니까.’
서태후가 주광비를 내려보면서 냉소를 지었다.
그녀는 권력에대한 야망을 본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것을 이용할 방법으로 주광비를 선택한 것이다.
* * *
어둠에 잠겨있는 연경(북경)의 뒷골목-
헉헉! 거친 숨을 헐떡이며 이십명의 사내들이 달려갔다.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얼굴에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놈들이 먼저 선수를 쳐올줄이야?”
“우리들이 방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알아냈다는 것입니까?”
“그말은 우리들중에 배신자라도 있다는 뜻이요?”
양재사가 발끈하며 외쳤다.
나머지 사람들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반박을 못하였다.
그때 후방에서 외침소리가 나왔다.
“저곳이다! 포위해라.”
“이번에는 놓치지마라.”
콰두두두! 말굽소리가 들리며 무장한 기마병들이 쇄도했다.
앞뒤로 포위된 상태.
비밀모임을 주도했던 장역지가 칼을뽑았다.
그는 북경에서 무장으로 실력이 출중했고 병부에서도 중요한 직위에 있었다.
때문에 자신을 따르는 세력과 병사들을 모아서 혁흔을 지원하고 반격의 기회를 노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