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총포들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야?”
“화승심지도 없고 총열 앞에는 칼날이 달려있잖아! 그런데, 칼날을 붙였다가 뗄수도 있으니 참으로 편하군.”
신형의 현무철포를 구경하던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초산숙영지에서 주둔중인 병사들이다.
주된 임무는 압록강변을 정찰하고 방어하는 것이다.
초산숙영지를 담당하는 만호 윤상민은 부하들에게 신뢰받는 지휘관이였다.
일전에 그는 함경도의 회령숙영지에서 온 동료 신재식의 방문을 받았다.
그리고 신재식은 다른 사람들도 같이 왔는데, 그들은 얼마전 벌어졌던 특수작전.
철종의 비밀지령을받아 지르칼손의 만주족 팔기들을 섬멸하는데 활약했던 지휘관들이였다.
그중에서 홍상준은 현지에서 작전을 총괄했다.
이후에 지르칼손과 적부대를 전멸시킨 그는 철종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받았다.
평안도와 함경도에있는 북방군에게 신무기를 보급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홍상준은 임금이내린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청나라와의 전쟁-
그 전쟁에서 핵심을 담당할 부대는 바로 북방군이다.
수백년전 조선은 평안도와 함경도의 북방군을 제대로 키우고 준비하지 못했기에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하였다.
이런 참극을 스스로 자초한 것은 멍청한 인조였다.
뿐만아니라 인조는 광해군이 키워놓은 북방군을 이괄의 난을통해 스스로 말아먹는 짓까지 해버렸다.
그후에도 인조는 북방군 전력을 일부러 약화시켰고, 조선사 최대의 치욕중에 하나인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알고있는 철종이기에 청나라와의 전쟁을 대비하고 승리를위해 북방군의 전력강화는 필수였다.
이미 홍상준이 지휘하는 특수부대의 작전을통해, 청의 팔기병과 청군을 어떻게 상대하면 되는지를 조선군 스스로 알게된 것이다.
이런 실전경험을 그대로 썩히면 바보짓이다.
때문에 철종은 홍상준에게 명령을 내렸고 이제는 홍상준을 포함해 실전에 참가한 무관과 병사들이 다른 숙영지를 다니면서 신무기를 보급하고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게된 것이다.
동시에 한양의 군기시에서 생산되는 대량의 백두철포와 현무철포등의 신병기들은 선죽상회의 수송망을 이용해 북방지역의 숙영지로 보내주는 것으로 하였다.
특히 선죽상회에서 마차운반과 수송을 담당하는 인원들의 솜씨는 뛰어났다.
수천정의 신형 철포들을 군기시에서 받은뒤에 안전하게 초산숙영지까지 배달한 것이다.
* * *
처처척! 대열을 맞추어 나아가는 병사들.
양손에는 군기시에서 제작된 신형보총인 현무철포들이 들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화승총과 다른 형태때문에 당황했던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은 병사들이 현무철포를 능숙하게 다루는 수준에까지 올랐다.
잠시후 훈련을 담당하는 무관이 소리쳤다.
“화망사격 준비!”
지시가 떨어지자 2열횡대로 늘어선 병사들이 허리에서 화약이 들어간 약포를 꺼내었다.
찌익- 입으로 약포를 찢었고 현무철포의 총구를 세운뒤 그속으로 화약을 넣었다.
이전에 조선군 총포병들은 화승심지를 갖고 다녀야했다.
그리고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는 화승심지에 불을붙여서 보관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동시에 화승총 사수들은 심지의 불이 꺼지지않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해야했고 본격적인 전투와 사격에도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현무철포를 지급받게되자 이런것들은 필요없었다.
“이거야말로 신기방통하네. 이제는 더이상 화승심지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화약주머니에서 엉뚱하게 화약을 넣다가 실수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야.”
“그것뿐인가? 추가로 장전하는 속도도 엄청 빨라졌지.”
현무철포를 사용해본 병사들은 모두가 감탄했다.
병사들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약포의 화약을 넣었다.
그뒤에는 격자로된 나무토막과 탄환이 일체화된 삽탄을 꼬질대로 끼워넣는다.
구형 화승총을 장전할때는 이런 동작들만해도 10단계로 나뉘어지고 복잡할 정도였다.
이제는 2-3번의 동작만으로 탄환장전이 완료된다.
그뒤에는 대나무에 한지를 감아놓은 뇌홍(퍼커션캡)을 끼우고 방아쇠를 당기면 끝이다.
끼릭- 방아쇠를당겨 노리쇠를 고정하자 언제든지 발사가 가능한 상태다.
특히 철종에의해 개발된 뇌홍(퍼커션캡)은 1회용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고, 유럽에서는 황동으로된 캡을 이용했다.
그에반해 조선에서는 황동대신에 손쉽게 대나무를 구할수있고, 그것을 잘라서 질긴 한지를 이용해 감아놓으면, 뇌홍이 폭발할때의 충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나무가 깨지는것도 방지했다.
어차피 뇌홍에 사용되는 화약은 소량이며 폭발력도 약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던 것이다.
“조준!”
차착! 장전을마친 병사들이 총구를 들었다.
타타타탕! 신호가 떨어지자 선두열의 병사들 30명이 일제 발사를 시작했다.
30발의 총탄이 한꺼번에 퍼부어졌고 사격을마친 선두열이 빠르게 후방으로 이동했다.
재장전을 진행하는 사이에 뒤쪽에있는 30명이 앞으로 나오며 2번째 사격을 개시했다.
사격이 끝나자 후방에서 재장전을마친 대열이 나오며 다시 사격을 개시하고 이것이 몇차례 반복된다.
신형보총인 현무철포를 이용한 집중화망과 사격방식이다.
이것은 적들이 다수로 몰려올때 한순간에 화력을 퍼부어서 격멸시키는 사격방식이였다.
이것만 있는건 아니다.
“각개전투 사격!”
“진격해라!”
각개전투 사격-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허리에있는 총검을 꺼내어 현무철포에 결합했다.
총검은 한자(30cm)길이의 수준이고 탈부착이 손쉽게 되었다.
조금전까지 2열 횡대를 만들었던 병사들이 빠르게 좌우로 흩어지면서 나아갔다.
각자의 판단에따라 적을향해 사격하면서, 발사가 끝나면 멈춘뒤에 재장전을 실시했다.
과거 플린트락 머스켓에비해 현무철포-같은 퍼커션캡 방식의 전장식 소총이 가지는 큰 장점이 이것이다.
보병 개개인이 진격하며 신속하게 재장전을하고 적을향해 조준사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과거 조선군은 화승총으로도 이런 사격법을 썼는데 이제는 더 강력해지고 편리해진 현무철포를 갖게되자 위력은 순식간에 커졌다.
탕! 타탕! 타타탕! 전방에 세워놓은 표적들이 탄환을 맞으면서 구멍이 뻥뻥뚫린다.
이것을 지켜보던 신재식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후 초산숙영지의 윤상민 만호가 다가왔다.
“덕분에 전하께서 보내주신 신무기를 병사들이 충분히 다룰수있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윤만호 같은분이 있기에 전하께서 진행중인 대업이 더 빨리 성공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앞으로의 결전이 기대됩니다.”
윤상민이 대답하며 시선을 북쪽으로 향했다.
압록강을 건너면 만주벌판이 펼쳐져있고, 그곳이 바로 한민족이 대대로 지내왔던 곳이다.
이제는 그곳을 되찾을 기회가 오는것이다.
* * *
콰두두! 두명의 기마대원들이 말을달렸다.
등뒤에는 군기시에서 제작된 백두철포를 매었고 안장에도 한정의 백두철포가 끼워져 있었다.
둘다 20대 중반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본래 조선군 소속은 아니다.
그전에는 간도의 조선인 촌락들에서 생활하다가 새롭게 탄생한 부대에 자원한 청년들이다.
철종이 파견한 홍상준과 특수부대들이 대전과를 거둔뒤 조선인들이 모여사는 간도지역에는 강력한 전투부대가 탄생했다.
간도 정찰대-라는 것이였고 여기에는 간도지역의 조선인 마을에서 선발한 청년들이 상당수 포함된 상태다.
지금 간도 정찰대는 크게 서간도 정찰대와 동간도 정찰대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간도 정찰대원들이 사용하는 무기와 장비는 군기시에서 제작된 신형 기병총과 보총들이다.
한편 간도 정찰대를 이끄는 지휘관들은 이전에 특수작전에 참가했던 무관들중에서 선발했다.
철종의 지시에의해 창설된 간도 정찰대의 주된 임무는 만주와 요동지역에있는 청나라쪽의 움직임을 감시하는것.
두번째로는 간도지역에있는 조선인들의 마을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허재용이 지휘하는 서간도 정찰대, 제 1 지대는 앞으로 다가올 전투를위해 부대원들이 무기를 점검했다.
“어떻게 되었나?”
“예상대로 놈들이 여기 석장곡(石壯谷)을향해 다가오는 중입니다.”
“자네의 말대로군.”
정찰을보낸 2명의 부하들이 보고하자, 1지대장 허재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있는 중년사내를 보았다.
처참한 몰골을 하고있는 중년사내 등보는 간도 정찰대를 만난것을 행운이라 생각했다.
누구도 자신들을 지켜줄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엄청난 전투력을 보유한 조선인 부대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놈들에게 당한 민사촌(悶思村) 주민들의 억울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립니다.”
“걱정말게. 여기가 놈들의 무덤이 될테니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정말로 감사합니다.”
등보가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했다.
“지대장님. 어차피 그놈들을 계속 놔두면, 나중에는 조선인들이 살고있는 마을까지 습격할수도 있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네. 지금은 기껏해야 한족들의 마을이 몇개 당했지만 이후에는 간도의 조선인들도 피해를 당할수 있으니까.”
허재용도 부하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는 서간도 정찰대에 소속되었고, 제 1 지대장으로 5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있었다.
서간도 정찰대에는 1지대부터 시작해서 6지대까지 있었고, 각각의 지대마다 50명씩 총 300명의 정찰대 병력으로 구성된 상태였다.
숫자는 적어보이나 서간도 정찰대가 보유한 전투력은 막강했다.
한편 허재용은 며칠전에도 간도의 촌락들을 주변으로해서 정찰과 수색을 진행하던중에 목숨만 붙어서 살아온 등보를 만나게 된것이다.
한족마을이 습격당해 도망친 등보는 허재용에게 상황을 이야기했고 신속하게 부하들을 지휘하며 여기까지 온것이다.
지금 석장곡을향해 오고있는건 만주지역에서 악명높기로 유명한 마적들인 귀수당(鬼獸堂)이란 무리였다.
두목은 한족인 귀종팔이고, 그밑에 부하들은 대다수가 한족이면서 일부는 다른 야만족들이다.
이처럼 귀수당같은 마적들은 같은 한족마을을 약탈하면서 패악질을 하였고 이제는 간도지역까지 침범하는 상황이였다.
“놈들의 숫자가 아군에비해 세배나 되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전투다! 전원 위치를 잡아라.”
“알겠습니다.”
허재용의 지시를받자 대원들이 움직였다.
잠시후 목표인 귀수당의 마적들이 협곡의 입구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피해를당한 한족들을통해 알아낸 귀수당 마적들의 본거지는 조도산(照度山)이다.
그리고 석장곡의 협곡은 지름길이였고 약탈을 한뒤에 귀수당 무리들이 복귀시 이용한다는 첩보를 얻었다.
그에따라 미리 협곡내부에 진을치고 준비한 것이다.
얼마후 진입한 마적떼들이 느긋하게 떠들어댔다.
선두쪽에는 두목인 귀종팔이 보였고 그뒤로 150명에 이르는 부하들이 따라왔다.
한쪽에는 밧줄에묶여 끌려오는 한족마을의 여자들과 어린애들도 있었다.
귀수당 마적떼들은 잔인했고 습격한 마을에서 여자와 어린애들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죽이는 학살을 벌였다.
“이번에도 성과가 좋구나.”
“그렇습니다. 두목님!”
“조도산의 산채로 돌아가면 잡아온 계집들중에서 일부는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마.”
“그것이 정말입니까? 역시 두목님은 화끈하십니다.”
귀종팔의 말에 부하들이 환호성까지 내지른다.
그때 옆에있던 측근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그런데 두목님! 요즘 만주쪽에서 설치고 다니던 팔기병 놈들이 보이지 않는게 수상하군요.”
“지르칼손 그놈 말인가? 하긴 그놈때문에 우리들이 제대로 기를 못펴고 있었지. 어쨌든 그놈이 데리고 다니던 팔기병들이 없으니 잘된거 아닌가?”
“소문에 듣기로는 지르칼손과 팔기병들이 조선군에게 당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나 마찬가지고 겁쟁이 놈들인데... 청제국의 팔기병들을 건든다고? 네놈이 뭘 잘못 먹은거 아냐?”
“하긴 저도 이상해서 믿기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한족들 마을만 습격해서는 크게 한탕 하기도 힘드니까, 다음번에는 간도쪽의 조선인 놈들이 모여있는 곳을 노려야겠어. 조선놈들이 농사도 잘짓고 계집들도 반반한 것들이 많다고 하니까.”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측근부하가 키득거리며 웃어댔다.
핑- 찰나간 공기를찢는 소음이 진동하며 귀종팔의 옆에있던 부하의 목에 화살이 박혔다.
그것도 보통의 화살이아닌 편전용의 애기살이였다.
크억! 털썩! 애기살에 목을꿰뚫린 부하가 피거품을 내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간도 정찰대 (02)
“적이다!”
“어디서 날아온 것이냐?”
당황한 귀수당 마적들이 소리쳤다.
몇명은 상대를 찾기위해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조금전까지 아부를 떨어대던 부하가 시체로 변한것을 목격한 귀종팔의 눈빛이 흔들렸다.
찰나간 두려움과 공포가 흘러갔다.
부하의 목에 꽃혀있는 화살을 본순간 그의 두눈이 커졌다.
저렇게 짧은화살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건 오직 조선놈들 뿐이다.
특히 저 화살은 소문으로 들었던 조선의 편전이다.
그리고 편전에 사용되는 애기살은 쾌속으로 공기를 가르며 암살용으로도 쓰인다.
만약에 저것을 자신이 맞았다면?
순간 귀종팔의 미간이 꿈틀거리며 소리쳤다.
“어떤 놈들이냐? 모습을 드러내라. 비겁하게 숨어있는 것이냐?”
부하들 앞이라고 귀종팔이 허세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