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69)

이제는 박규수의 설명을통해 이양선들이 내부에 증기기관을 사용하고 선체 양쪽에있는 대형수차를 이용해 쾌속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되자 판옥선들이 그런 상대를 따라잡지 못한것이 설명되었다.

그나마 운좋게 아직까지 이양선들과 조선의 판옥선들 사이에 함포전이나 해상전투가 벌어진건 아니다.

그러나 박규수의 말을통해 이양선들에 장착된 함포의 사거리가 월등하게 길다는 말을듣자 그 상황에서 서로간에 해전이 벌어지면 어떤 결과로 끝날지는 분명했다.

“전하께서는 앞으로 조선수군에도 서양의 이양선들같은 크고 강력한 함선들을 들여올 예정이군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전하께서는 더 중요하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서양의 이양선들을 구입해서 흉내를 낸다해도 조선수군들이 그것을 제대로 운용할줄 모르면 모래성같은 수준일 뿐이라고 하셨지요.”

“허어. 탁월한 식견이십니다.”

송상기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진왜란때 조선수군이 맹활약을 한것도 판옥선이라는 강력한 함선도 있지만 더 중요한것은 해전을 능숙하게 할줄아는 지휘관과 수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임진왜란때 원균같은 등신이 판옥선들을 버리고 도망치고 그 판옥선들중에 일부를 왜군들이 나포했지만 조선수군처럼 제대로 쓰지도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크고 강력해 보이는 함선들보다 더 중요한것이 바로 인적자원과 능력이란 부분에서 송상기는 뜻을 같이했다.

얼마후 박규수와 송상기, 그리고 동행한 병조의 관원들은 전라좌수영에서 항해술과 증기선을 운영할 인재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 * *

쏴아아. 두척의 선박들이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

배의 상갑판에 모여있는 조선인들은 정면으로 보이는 거대한 항구도시에 감탄했다.

“청나라의 광주(광저우)에 대해서는 소문으로 들었는데, 정말로 광대한 크기를 가졌군요.”

“조선도 저렇게 큰 항구를 보유하고 전세계의 국가들과 교역을하며 발전시켜야 할건데 말이지요.”

박철준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예조를통해 선발된 150명 가량의 조선인 국제 유학생들중에 한명이다.

그의 아버지는 호조의 말단 관원중에 한명인 박기웅이다.

호조에서는 예전부터 다수의 중인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주로 하부의 말단관원으로 그들이 담당하는건 간단한 장부정리, 또는 호조에서 사용되는 각종 지출에대한 비용등을 합산하는 경우다.

이때문에 수리에 밝은 중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만 중인이라는 신분때문에 관원이라해도 그들이 중상급으로 진출하거나 승진하는건 애초부터 불가능이다.

박철준도 아버지를따라 어릴때부터 장부정리나 수리에대한 부분을 공부했다.

비슷한 또래의 양반 자제들이 유교경전이나 외우면서 성리학 탈레반으로 변해갈때 그는 조선내의 상업활동이나 경제분야에 일찍부터 눈을뜬 것이다.

‘아버지의 조언대로 국제유학생의 선발에 지원하고 여기까지 오다니. 무엇보다 나같은 중인에게도 기회를 주신건 주상전하의 큰 은혜다. 영길리국에서 많은것을 배우고 이것을 조선에 적용해서 발전을 시켜야한다.’

박철준이 열정을 드러냈다.

그는 영국의 명문대인 케임브리지 대학.

그중에서도 경제학과에 유학하고 공부할 인원에 선발된 것이다.

여기에는 박철준외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할 인재들도 있었다.

이들도 대부분 박철준과 비슷하게 중인이거나 평민 출신들이 많았다.

박철준을 포함한 유학생들은 예조를통해 선발되고 그뒤에 개성으로 가서 선죽상회에서 마련한 배를타고 광저우로 향했던 것이다.

선죽상회가 보유한 선박은 개성과 광저우를 왕래하는 화물선이고 지금도 철종의 지시에따라 많은 화물들을 조선내로 들여오고 있었다.

갑판에는 박철준을 비롯해 여러명의 유학생들이 나왔고 자신들이 도착할 광저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조선왕에게 제대로 낚였다.”

제이든이 홍삼차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조선이라는 국가를.

그리고 조선왕을 이용한다는 생각이였지만 어느새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조선왕은 제이든이 광저우에서 만났던 허접한 청나라 관리들이나 상인들과는 틀렸다.

경험많고 닳고달은 영국의 거상이나 실력자를 상대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은건 사실이다.

광저우의 청나라 관리들이나 상인들은 허상에 불과한 중화주의에 빠져있는지 유럽의 실정에대해 제대로 몰랐다.

그것은 청제국의 수도 베이징에있는 황제나 신하들도 마찬가지다.

그때문에 광저우의 영국령 동인도회사는 지금도 중국인들을 속이고 있었다.

심지어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면서 엄청난 이득을 몰래 챙기고 있었다.

그에반해 조선왕은 어떤가?

처음에는 제이든이 원하는 홍삼의 판매권을 얻었다.

그런데 유럽전체가 아니라 영국만이다.

홍삼이 영국에 반입되면 그뒤에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지는 뻔했다.

홍차를 즐기던 수많은 중상층 영국인들이 홍삼에도 열광할 것이다.

그것으로 얻게되는 수익은 막대할 정도다.

유럽에는 영국만 있는게 아니고, 프랑스 독일, 스페인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까지 조선의 홍삼을 수출할 시장은 엄청나게 큰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은 제이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이 홍삼의 수출과 이권에 대해서는 단계적인 협상안을 제안했다.

제이든에게 희망고문을 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주도권이 완전히 조선왕에게 넘어간 상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조선왕은 영국령 동인도회사의 졸부들처럼 탐욕만 가득한 인물이 아니였다.

제이든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있었다.

홍삼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많은 이득이 제이든에게 생길것은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조선의 임금께서 원하시는것은 광저우에 도착한 150명의 조선인들을 유럽으로 데려가는 것이군요.”

“제이든씨 당신이 직접 하실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당신이 광저우에 설립한 이스트 프론티어(East Frontier)의 직원들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선죽상회의 부행수 김도영이 대답했다.

제이든이 김도영에게 전달받은 내용들은 간단하면서 제이든을 놀라게 하였다.

조선왕이 자신에게 홍삼판매를통해 이득이나 챙길것으로 생각했는데 달랐으니까 말이다.

광저우에 도착한 조선인들을 유럽으로 데려가는것.

그다지 어려운것도 아니다.

이스트 프론티어를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선박을 이용하면 되었다.

조선인들이 영국에 도착한뒤 그들이 여러분야의 현장에서 일하는것에 대해서도 런던에있는 시필드 가문의 영향력을 이용하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유럽에 도착한 조선인들이 각 분야의 현장에서 일하는건 무보수거나 약간의 임금만받고 하는것이다.

따라서 일손이 부족한 영국내 제철소나 제련소, 그리고 선박을 제작하는 조선소에서는 얼마든지 그들을 고용할 것이다.

처음에는 시필드 가문에서보낸 인원들을 이용해 통역을 실시하거나 조선인들이 스스로 언어를 배우는 방법도 있다.

어차피 영국으로 향하는 항해길은 수개월이고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다.

이후에는 유럽으로 파견된 조선인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통역사들을 길러낸다는 계획이다.

또한 150명의 조선인들이 영국과 유럽에서 지내는 비용이나 모든것은 조선왕을통해 선죽상회에서 부담한다는 부분도 있었다.

이런 지원을 해주는 제이든과 시필드 가문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례금과함께 다양한 인센티브도 있었다.

조선왕과 선죽상회에서 귀중한 홍삼을 제공해 준다는 계약까지 있었기에 제이든은 꿩먹고 알먹는 상황이다.

따라서 거부한다는것 자체가 미친짓이고 막대한 기회를 차버리는 행위이다.

그래서 제이든은 조선왕의 페이스에 말려든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거부할수 없었다.

동시에 선죽상회의 김도영이 제이든 앞에내놓은 막대한 양의 홍삼들을 보는순간 그런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차피 광저우의 이스트 프론티어를통해 영국으로 대량의 홍삼을 운반하는건 필요한 일이다.

그와함께 150명의 조선인들을 영국과 유럽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어쨌든 런던에있는 메칸티 형이 이사실을 알게되면 어떤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제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얼마전 런던에있는 시필드 가문에 편지를 썼다.

정확히는 자신의 형에게 편지를 쓴것이다.

거기에는 자신이 조선을통해 홍삼이라는 엄청난 제품을 찾아냈다는 사실도 기록했다.

영국에 수입한 홍삼을 어떤식으로 판매하고 사업적으로 이용할 것인가에대한 상세한 정보들도 추가했다.

때문에 제이든이 150명의 조선인들을 이스트 프론티어의 직원들과함께 동행시키면 그뒤는 시필드 가문의 큰형이 모든것을 처리할수 있을것이다.

자신이 영국으로 갔으면 좋겠지만 광저우에서 영국까지의 거리도 상당했고 항해하는 시간도 꽤 걸린다.

그리고 자신은 광저우에서 이스트 프론티어의 사장으로서 해야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걱정마십시요. 저와 시필드 가문을믿어 보십시요.”

“제이든씨의 협조에대해 전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나중에 기회가되면 전하를 직접뵙고 싶군요.”

“그 말씀도 전해드리겠습니다.”

김도영이 말했다.

제이든은 김도영의 동생인 김도진과함께 밖으로 나갔다.

광저우의 중국인들과는 다른 복장을한 150명의 조선인들이 있었다.

제이든은 김도영에게 그들이 누구인지에대한 설명을 들었다.

조선에서도 여러분야에서 활동하던 기술자와 장인들이다.

낯선 이국땅과 광저우에 도착해 긴장감이 가득했다.

여기는 그래도 조선과 가까운 중국이다.

이후에 그들이 도착하게 될 유럽과 영국은 또다른 신세계다.

이들의 표정에는 새로운 세상에대한 기대와 탐구욕이 강력했다.

광저우에서 거드름이나 피우는 한족 관리들이나 상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제이든은 조선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암살과 은폐공작

이럇! 말고삐를 잡아채며 전령이 속도를 높였다.

말을 갈아타면서 계속해 달렸던 것이다.

때문에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잠을 자는것도 줄이면서 이동했다.

긴급한 소식을 전해야하는 임무를위해 쉬지않고 달렸다.

그는 지금까지 전령으로 여러차례 활동했다.

이번에 갖고있는 서찰에는 중대한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때문에 조금도 지체할수 없었다.

얼마후 그의 앞으로 심양의 성벽이 보였다.

심양은 만주에있는 군사도시들중에 하나이면서, 동시에 요동군부(遼東軍部)라는 명칭도 있었다.

그럴것이 이곳 심양이 만주지역을 총괄하는 요동파견군의 사령부가 존재했고, 청나라 만주족들에게는 청태조가 세운 후금의 수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성문을 열어라! 긴급소식이다.”

전령이 소리쳤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병사들이 전령이내민 명패를 확인하자 서둘러 문을 개방했다.

그리고 전령은 문이열리자 말을 달리며 나아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만주지역의 방위를 담당하는 군사령관 엄세번이다.

“사령관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부하의 말에 엄세번이 짜증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럴것이 엄세번은 심양에서 미녀로 소문난 기녀를 데리고 술과 안주를 즐기던 중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자신의 측근도 데려와서 질펀하게 노는 중인데 방해를받은 것이다.

이윽고 엄세번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부하가 전령을 데려왔다.

수일동안 거칠게 말을달린 전령의 모습은 구질구질했고 땀냄새마저 진동했다.

이때문에 엄세번이 코를 찡긋했고 부하가 전령에게 서찰을받아 건네었다.

잠시동안 서찰을 살펴보던 엄세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도저히 믿기지않는 내용이다.

“지금 말한것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어르신!”

전령이 움찔하며 대답했다.

엄세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것이 요동지역을 담당하는 군사령관으로 별탈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사고가터진 것이다.

“믿을수없다.”

“상세한 내용들은 서찰에 적혀 있습니다.”

“알겠다! 물러나서 대기하라.”

엄세번이 손을 흔들자 전령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후 측근인 한탁주가 다가왔다.

“전령이 가져온 서찰내용은 무엇입니까?”

“지르칼손! 그놈이 데리고있던 팔기군과 기병부대가 모조리 전멸되었다는 소식이다.”

“.....”

한탁주가 숨을죽였다.

그리고 엄세번이 건넨 서찰의 내용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한탁주도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보다 지르칼손의 팔기군과 기병부대는 만주에 배치된 요동파견군(遼東派遣軍)에서도 핵심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엄세번의 직속 부하중들에 하나다.

직속부하라고 하지만 상황은 좀 달랐다.

엄세번은 한족으로서 운좋게 출세하여 요동파견군 사령관이 되었다.

청나라에서 멸시받던 한족이 출세하여 한지역을 관장하는 부대의 지휘관이 된다는것.

이것은 개천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엄세번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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