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169)

지르칼손이 명령을 내렸다.

상당한 피해가나온 상황인데도 지르칼손의 지시를받은 청의 기마병들이 달려들었다.

결과는 똑같을 뿐이였다.

현무철포로 무장한 조선군의 전열보병과 방어진은 굳건했다.

사격과 재장전이 빨라지며 막대한 화력을 청의 기병들에게 퍼부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다.”

“뒈놈들의 팔기군도 별거 아니군.”

현무철포를 장전하던 조선군들이 외쳤다.

정면에는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청군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개중에는 목숨이 붙어있는 자들도 보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으아. 살려줘!”

탕! 퍼억! 현무철포의 사격에 청군의 머리가 박살났다.

조금전까지 달려들던 지르칼손의 부하들은 경악했다.

이제는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와도 눈치를보며 주저했던 것이다.

여기에 지르칼손이 광분했다.

그의 눈에는 조선군 보병들이 운좋게 팔기군을 막아낸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팔기군은 최강이다.

그것이 지르칼손의 망상이였다.

얼마후 남아있던 부대들까지 모조리 돌격을 시킬려던 찰나.

“적들의 측면이 노출되었다.”

“지금부터 조선 기병들의 실력을 보여줄 차례다.”

홍상준이 지휘하는 기병들이 돌진을 시작했다.

그가 신재식과 세운 작전은 기발했다.

지르칼손의 팔기군을 방심시키는 것이 첫번째.

두번째로 신재식의 휘하에있는 보병들이 강력한 현무철포로 청 기병의 돌진을막고 피해를 가중시킨다.

마지막으로 홍상준이 지휘하는 정예의 조선 기병들이 적의 헛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지르칼손의 기병대가 막대한 피해를당해 전열이 흐트러진 상태다.

지금이 최적의 돌격시기였다.

“조선 기병대가 아군의 빈틈을 노린다.”

“막아라.”

“여전히 숫자는 우리가 유리하다. 겁먹지마라.”

지르칼손의 부대장들이 외치며 돌격했다.

홍상준이 지휘하는 기병들은 백두철포에 탄환을 장전해놓은 상태였다.

쾌속으로 돌진하며 일제사격을 개시했다.

탕! 타타탕! 퍼퍼퍼퍽! 총격음이 진동하는 가운데 청의 기병들이 튕겨져 나갔다.

개인별로 2정씩 지급받은 백두철포의 화력을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숫적으로는 청의 기병대에비해 열세여도 충분히 만회할 정도였다.

“더이상은 버틸수 없다.”

“도망가자.”

동료들이 시체로 변하고 머리가 박살나는걸본 지르칼손의 부하들은 공포에 질렸다.

이제는 늦어버린 상황이다.

돌격하는 기세를 이용해 홍상준의 기병들은 적의 진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기병들간의 전투에서 전투진형을 유지하는건 중요했다.

그것이 무너지면 오합지졸로 변해버린다.

지금 지르칼손의 팔기군이 그런 꼴이다.

홍상준의 정예 기병들이 팔기군을 타격하는 사이.

신재식이 지휘하는 조선군 보병들은 빠르게 전진했다.

총검을 현무철포의 앞쪽에 장착했고 탄환을 장전한뒤에 돌격한 것이다.

유럽의 전장에서도 뇌홍을 사용하는 퍼커션캡 방식의 소총이 본격화되며 전술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화력을 집중할 때에는 전열보병의 형태로 일제사격을 퍼붓는다.

적의 전열이 무너지고 붕괴되는 조짐이 보이면 착검을 시도하면서 돌격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보병들이 개별적으로 발사와 재장전을 반복하면서 적을향해 지옥을 선사한다.

지르칼손의 팔기군이 그런 상황에 처해버렸다.

일부는 도망갈려고 시도했지만 홍상준의 정예기병에 목이 잘렸다.

나머지는 양쪽에서 압박하는 신재식의 조선보병들과 현무철포에 난도질 당하는 상황이였다.

“지르칼손 대장님! 잘못하면 여기에서 몰살 당할수도 있습니다.”

겁에질린 측근들이 소리쳤다.

분노로 시뻘겋게 변해버린 지르칼손이 주먹을 쥐었다.

자신의 정예 팔기부대가 이런꼴을 당하다니.

부하들의 말대로 여기서 버틸수는 없었다.

지금은 후퇴해 복수를 해야하는 상황.

그러나 지르칼손과 부하들의 목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놈이 지르칼손이고 조선인들을 학살한 놈이다.”

홍상준의 기병들이 돌진했다.

위기에 몰리자 지르칼손이 검을 빼들면서 막았다.

몇차례 불꽃이 튀었다.

전의가 상승한 홍상준의 정예기병들이 더 날렵했다.

지르칼손의 주변에있던 측근들이 시체로 변했다.

지르칼손이 괴성을 내지르며 홍상준에게 덤벼들었다.

홍상준이 신속하게 상대의 검을 피하면서 급소를 파고들었다.

선혈이 튀어올랐고 지르칼손의 목이 단번에 잘려나갔다.

마상전투와 근접전에서도 지르칼손은 상급무사인 홍상준에게 상대가 안되었던 것이다.

얼마후 홍상준이 지르칼손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와아아!”

“드디어 해냈다.”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의 복수다.”

승리의 함성이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 * *

“나리! 눈앞으로 좌수영이 보입니다.”

동행하던 관원이 박규수에게 말했다.

박규수가 정면을 보았고 저절로 감탄사를 토해낸다.

“조선제일의 수영답게 규모와 위세가 상당하구나.”

“그렇다해도 과거에비해 주둔하는 수병들과 군선들도 많이 줄어든 상황이긴 합니다.”

“정말로 비참한 상황이다. 한때 최고의 위세와 군세를 자랑하던 조선수군이 어쩌다가...”

박규수가 고개를 저었다.

조정에서 병조참지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박규수는 희망을 보았다.

그럴것이 현재의 임금은 박규수가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군재와 능력을 보여주었다.

얼마전 임금이 주최한 만찬에서, 그리고 임금이 시범적으로 보여준 서양의 이양선들 모형과 선박들이 대양을 항해하는 이유를 알게되면서 야망이 생긴것이다.

‘전하의 말씀대로 조선수군은 거대한 바다를 목표로 해야한다. 언제까지 조선의 바다에서만 배를띄우고 지낼것인가?’

박규수만이 아니라 만찬에 참가했던 병조의 관료들도 충분히 느꼈던 것이다.

이후에 박규수는 임금에게 놀라운 명령을 받았다.

‘조선이 서구의 이양선들에 감탄하고 부러워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될것이네. 이제부터 방법을 알았으니 조선수군을 그에 맞게 바꿔야하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박규수도 무슨 뜻인지 알지못했다.

이후에 설명을듣자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전하께서는 오래전부터 조선수군의 군선들을 양이들의 증기선과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들로 바꿀 계획을 갖고계셨다. 동시에 그것을 위해서는 역시...!’

서구열강의 함선들을 조선이 보유하는것.

그중에 빠른 방법은 역시나 서양의 함선들을 돈주고 사는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올바른 방법일까?

역사에서 서구처럼 근대화를위해 추진하던 국가들, 그리고 서양무기의 놀라운 성능을 목격한 국가들은 앞다투어 서양의 함선들을 구입했다.

그것도 엄청난 황금과 은화를 퍼부어서 말이다.

역사에서 청나라는 막대한 돈을주고 전함과 순양함들을 구입했고 북양함대라는 자랑스런 대함대까지 만들었다.

북양함대가 출항할때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만세를 외치며 기뻐했다.

이제는 중국도 서양에 뒤지지않은 강력한 함대를 갖게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북양함대는 일본함대에게 완전히 개털렸다.

그당시 돈으로 쳐바른 북양함대의 위용을본 사람들은, 일본함대쯤은 가볍게 박살낼거라 생각했다.

그럴것이 북양함대의 전함과 함선들은 일본함대보다 더 크고 함포도 대구경이다.

북양함대의 지휘관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청의 조정에서도 일본함대를 박살내고 전공을세울 북양함대의 제독을위해 환영식을 준비해둘 정도였다.

하지만 김칫국 쳐마시고, 돈으로 쳐바른 북양함대는 실전에서 개판이였고 허접함이 완전히 드러났다.

결정적인 부분은 크고 비싼 전함이나 순양함이 아니라, 함대지휘관의 전투능력, 그리고 각함대에 배속된 수병들의 능력과 차이였다.

밀덕으로서 이런 부분을 알고있는 철종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수는 없었다.

서구열강들의 크고 강력한 함선들을 구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각각의 함선들을타고 싸울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박규수는 병조의 관원들을 데리고 전라좌수영으로 가게. 듣기로 조선내의 수영들중에 그나마 제대로된 장수와 지휘관이 있는곳이 전라좌수영이라고 하더군.’

‘그러하옵니다. 전라좌수영을 맡고있는 송상기는 비범한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경은 전라좌수영으로 가서 조선수군의 토대와 핵심이될 인재들을 선발하게. 과인은 그들을 영길리국(영국)에 보내서, 서구의 항해기술을 배우고 앞으로 조선이 보유하게될 강력한 함선들을 지휘하고 운영할 인원들로 키울 생각이네.’

박규수의 뇌리에는 임금에게 받은 명령이 떠올랐다.

저곳에 조선수군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있는것이다.

얼마후 도착한 전라좌수영의 규모는 상당했다.

좌수영이 위치한곳은 전라남도의 여수쪽이다.

해안가를 끼고있는 수영에는 둘레만 2km-에 이르는 성벽이 둘러쳐져 있고 내부에는 각종 관아쪽의 건물과 수영에 소속된 민가들이 있었다.

해전을 주로하는 수영에 성벽을 철통같이 쌓은것은, 만약의 사태에 발생할 육상에서의 전투도 염두에 둔것이다.

이처럼 전라좌수영은 조선수군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이 만들어놓은 기반에따라 아직도 그 위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력한 함대를 만들기위한 조건

“나리! 저기를 보십시요. 수군의 판옥선들 입니다.”

동행한 관원이 가리켰다.

선착장에는 10여척의 판옥선들이 대열을 이루며 늘어서 있었다.

일부는 낡아 보이지만 관리상태는 좋았다.

동시에 해상훈련과 기동을 마치고 수영을향해 복귀중인 판옥선들도 확인할수 있었다.

선체양쪽에 뻗어나온 노를저어 움직였고 능숙한 노꾼들이 합을맞춰 앞뒤로 해수면을 저어대자 판옥선들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이전의 박규수 였다면 저런 모습만으로도 조선수군의 전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철종을통해 서양의 증기선들 모형과, 그것이 판옥선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한 상태였기에 박규수는 오히려 안타까움을 느꼈다.

‘여기 좌수영과 현장에 직접와보니 조선수군의 판옥선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들이 제대로 보이는구나. 이상태로는 도저히 서양의 증기선들이나 함선들과는 대적하기 힘들다. 동시에 지금 왜국에서는 일부 지방세력들이 서양의 기술을 전수받아 강력한 함선들을 만들고 있다는 첩보도 들어온 상태다. 더 늦기전에 준비를 하지않으면 조선의 국방력에 차질이 생길수 있구나.’

박규수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얼마후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즈음 수영의 내부에서 전라좌수사인 송상기가 무관들과함께 나타났다.

“병참께서 남쪽의 좌수영까지 오시다니. 정말로 반갑습니다.”

“오히려 경의 업무를 방해한것이 아닐까 염려되는군요.”

“무슨 말씀을... 한양의 조정에서 바쁘신 분께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필시 이유가 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아. 안으로 드시지요.”

좌수사 송상기가 반갑게 맞으며 박규수를 안내했다.

내부로 들어온 그들의 눈에 보인 전라좌수영의 모습.

넓은공터에서 훈련에 땀을흘리는 수병들과 그것을 지휘중인 군관들이 있었다.

병사들의 군기나 모든것이 훌륭했고 박규수는 임금이 전라좌수영을 선택한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였다.

얼마후 관청내부의 집무실에 도착했고 대기하던 하인들이 간단하게 차와 다과를 준비했다.

그리고 전라좌수사와 마주한 박규수가 방문한 목적을 설명했다.

한동안 설명이 이어지면서 송상기의 표정은 여러차례 변하였다.

한양에서 새로운 임금과함께 새로운 바람이 불고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이정도 일줄이야?

“전하께서 거기까지 안배를 하셨을 줄이야.”

“서양으로 떠날 국제유학생들에 대해서는 선발을 마쳤고, 얼마후에는 예조를통해 은밀하게 출국을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제가 좌수영으로 온것은 이후에 출발할 인원들. 즉 영길리국(영국)에가서 그들이 사용하는 이양선들에대해 공부하고, 대양을 통과하는 항해술을 배울 인재들을 모집하고 선발하기 위한 것입니다.”

“서양의 여러 국가들중에서 영길리국의 해군이 강력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항해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좌수사인 송상기가 대답했다.

그도 조선의 해안쪽에 출현하는 이양선의 존재, 그리고 조선에 접근한 이양선들이 얼마나 크고 강력한지에대해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부하들이 장계로올린 몇차례의 보고에서도 나타났다.

바다에서 조선수군의 판옥선들이 어쩌다 서양의 이양선들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혀 추격하거나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도 생겼다.

어떤 이양선들은 노를 사용하는것도 아니고, 바람을받는 돛이 있는것도 아닌데 자력으로 움직였고 그 속도가 판옥선보다 더 빨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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