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69)

감옥시설은 열악했고 몸이약한 노인들과 아이들중에는 병사하는 경우도 나왔다.

그때마다 지르칼손의 부하들은 조선인 시체들을 내다버렸다.

“그런데 지르칼손님은 왜 갑자기 본대를 데리고 출동하신 거야?”

“자네도 알잖아. 지르칼손님의 오른팔이고 최측근인 누데치 부장님과 부대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건 좀 이상한 일인데.”

“그때문에 지르칼손님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급히 떠난거야. 걱정마!”

“하긴 그렇군. 어쨌든 출동한 본대가 빨리 돌아와야 저것들을 노예로 내다팔고 우리들도 한몫 챙길건데 말이야.”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지금까지 이런걸 몇년이나 해왔는데 별일 없었잖아. 그리고 조선놈들은 어차피 우리 청국을향해 꼼짝도 못해. 등신같은 노예 놈들이거든.”

“크헤헤! 맞아! 듣기로는 청에서 조선으로 사신을 보내면 조선왕이란 놈이 청의 사신앞에 엎드린다고 하더군.”

“그게 상국인 청제국을 대하는 조선놈들의 자세지.”

간수들이 낄낄거렸다.

그리고 간수들의 말은 반정도 사실이였다.

조선은 중국에서 사신이오면 왕이 직접 한양외곽에있는 영은문까지 나가서 중국사신을 영접한다.

영접하는 자리에서 최대한의 예를 갖추면서 아부까지 해대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있는 간수들은 조선군이 자신들의 주둔지로 습격해올 가능성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개같은 뒈놈들이 수백명의 조선인들을 납치하고 감옥에까지 가두고 있다니!”

“드디어 복수의 날이 찾아온거야.”

청군의 주둔지를 지켜보던 몇명의 병사들.

그들은 회령숙영지에서 훈련을 받았던 인원들이다.

그리고 지휘관의 명령에따라 정찰을 나왔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령숙영지의 만호 신재식은 홍상준과 합동작전을 벌였다.

그중에 하나가 실력이 뛰어난 군관 권이강에게 조선인들의 구출을 지시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홍상준과 신재식이 지르칼손의 본대를 유인하고 난뒤에 비어있는 적의 근거지를 습격하는 것이다.

이후 권이강은 훈련을마친 100명의 부대원들을 이끌고 강행군을 시작했다.

김정호가 제공한 지도.

그리고 양강촌의 포로들을통해 알아낸 정보들.

그외에 지르칼손 기마부대의 습격을피해 도망쳤던 조선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적의 주둔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낸 것이다.

신재식과 홍상준은 지르칼손 본대를 끌어내기위해 측근인 누데치와 다른부대를 연달아 기습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지르칼손은 본대를 이끌고 주둔지를 떠났고 이곳에는 250명정도의 부하들만이 남겨진 상태였다.

남겨진 부하들이 맡은 임무는 지르칼손이 복귀할 때까지 주둔지를 지키고 포로로잡은 조선인들을 감시하는 것이다.

이윽고 정찰을마친 조선 병사들은 신속하게 후퇴를 하였다.

그리고 후방에 대기중이던 권이강에게 보고하였다.

“감옥위치는 여기와 여기를 포함해서 몇군데가 있습니다.”

“적들의 병력숫자는?”

“25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쉽지않겠군.”

권이강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르칼손 본대가 빠져나간 상황임에도 주둔지에는 아군보다 2배나많은 적들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조선군에게 유리한 부분은 있었다.

권이강의 부하들이 무장한 보총(보병총)은 화력이 뛰어났고 신속하게 적들을 조준할수 있었다.

사거리도 이전 화승총에비해 증가했다.

따라서 기습의 잇점과 신무기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면 적들을 섬멸하는게 가능했다.

“병사들은 전투준비를 갖추어라! 보총에 화약과 탄환을 미리 장전해라.”

“알겠습니다.”

지시가 떨어지자 조선병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권이강의 지시에따라 3개의 방향으로 나누어져 접근을 시작했다.

주둔지 주변으로 넓은공터와 잡풀들이 있었다.

조선병사들은 몸을 낮추면서 나아갔다.

이전부터 조선군들은 화승총을 사용할 때에도 대단위의 전열보병 보다는 은폐물을 이용해 사격하고 방어하는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

이것은 조선병사들의 사격술이 뛰어난것을 적극 활용한 부분이다.

역사에서도 나선정벌때, 조선군의 사격실력은 뛰어났고 일발필중의 솜씨로 노서아군(러시아군)을 공포로 몰아넣었을 정도다.

그때에는 구형의 화승총으로도 이런 전과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더욱 강력해진 병기로 무장했다.

조선병사들이 무장한 보총은 과거의 화승총에비해 사거리가 증가했고 뇌홍(뇌관)을 이용한 퍼커션캡 방식의 머스켓이였다.

유럽군대의 경우에도 퍼커션캡 머스켓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과거의 전열보병식의 사격법이 아니라 병사 개개인의 판단에따라 사격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때문에 부대장인 권이강은 신형보총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전술을 펼치기로 하였다.

“저놈들은 뭐야?”

“적이다!”

경계를 담당하던 청의 병사들이 경악했다.

몇명이 검을빼들며 돌진했다.

조선병사들이 선두로 나아가며 사격을 퍼부었다.

탕! 타타탕! 선두로 나아간 10여명의 사격에의해 적들이 쓰러졌다.

백발백중의 사격솜씨다.

사격을 완료한 인원들은 신속하게 뒤로 후퇴하며 재장전을 시작했다.

나머지 인원들이 돌진을 개시했다.

회령숙영지에서 맹훈련을 실시한 결과 조선병사들이 보총을 사용하는 방법은 능숙했다.

청군은 돌진해가던 동료들이 총격과함께 시체로 변해버리자 경악했다.

일부는 겁에질려 다리가 떨렸고 일부는 적의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저놈들! 우리 조선군의 보총위력을 보고도 덤벼드는군.”

“그래봤자 결과는 똑같습니다.”

“물론이지. 한놈도 살려두지마라! 지금까지 저놈들은 조선민들을 납치하고 약탈한 도적들이다. 자비는 없다!”

권이강이 명령했다.

선두열이 재장전을 개시하는 사이 후방의 대열은 돌격을 개시하며 나아갔다.

혼란에빠진 적들을향해 마음껏 사격을 퍼부었다.

탕! 타타탕! 숫자로는 적들이 많았지만 총격이 터져나올 때마다 청군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일부가 정신을 차리고 근접까지 파고든다.

“보총사격을 마친 자들은 착검해라!”

명령이 떨어지자 조선병사들이 신속하게 총검을꺼내 결합했다. 신형보총은 총검까지 결합되어 길이가 2미터에 달했다.

이것은 적이 코앞까지 왔을때 창으로 쓰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회령숙영지에서 총검을 보총에 결합한뒤에 백병전을 펼치는 총검술까지 훈련을 받았다.

“조선놈들이 화승총을 창처럼 사용하고 있다.”

“믿을수없다. 어떻게 저런것이 가능한거야?”

코앞까지 돌진해 칼을 휘둘렀던 청의 병사들은 당황했다.

기세좋게 검을 휘둘렀는데 창처럼 길어진 신형보총에 막히면서 움찔거렸다.

후방에서 재장전을마친 대열이 합류하며 적에게 사격을 퍼부었다.

“크악! 비겁한 놈들.”

“뒈놈들이 어디서 헛소리야? 죽어라!”

푸욱! 기세가 흔들린 청군의 헛점을노려 총검으로 찔렀다.

상체가 관통된 적군이 쓰러졌다.

“감옥에 갇혀있는 조선인들을 구출해라.”

권이강의 지시를받은 병사들이 돌진했다.

조금전까지 조선인들을향해 협박하던 간수들이 총탄에맞아 피가 솟구쳤다.

“어서 나오시요! 우리 조선군이 당신들을 구출하러 왔소.”

“이게 꿈인가?”

감옥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감격했다.

그들은 공격해온 조선군들과 합류했고 일부는 청군의 무기를 집어들어 전투에 참가했다.

“조선놈들이 여기까지 돌진해온다!”

“막아라! 여기는 지르칼손님의 주둔지다! 대청의 명예를위해 싸워라.”

마창소가 소리쳤다.

그는 지르칼손의 명령을받고 주둔지에대한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모든게 순조로웠는데 조선군들이 기습해온 것이다.

처음 보고에서는 아군보다 숫자도 적었다.

충분히 방어하고 적들을 섬멸시킬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는 전혀 반대다.

마창소가 데리고있던 250명중에 상당수가 당해버렸다. 겨우남은 80명은 안쪽까지 몰리면서 방어만 할뿐이다.

“마창소님!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입니다.”

“개같은 놈들이! 목숨을 살려줬더니 대청군을향해 칼을들어?”

마창소가 울컥했다.

공격해오는 상대중에는 조선군만이 아니라 조금전까지 감옥안의 조선인 포로들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보자 마창소가 소리쳤다.

“전원 군마에 탑승해라! 대청 기병대의 돌격으로 저놈들을 돌파한다. 그뒤에는 지르칼손님의 본대와 합류해서 조선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린다.”

“알겠습니다.”

지시를받은 부하들이 군마에 탑승했다.

이럇! 돌격해라! 괴성을 내지르며 마창소의 패잔병들이 달려들었다.

권이강은 그것을보며 냉소했다.

“멍청한 놈들! 조선군의 신형보총 앞에서 그딴것은 소용없다.”

처처척! 돌진해오는 마창소의 기병들을향해 조선군이 조준을 완료했다.

발사! 권이강의 명령에따라 100보 전부터 보총들이 불을 뿜었다.

수십발의 탄환들이 정확하게 날아가며 마창소의 기마병들을 휩쓸었다.

폭풍이 지나가는것과 같았다.

돌진하던 마창소의 옆에있던 부하들이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마창소는 겨우 전방까지 돌진하며 검을 빼들었다.

지휘하던 권이강이 보총을 조준했다.

타앙! 단 한발.

권이강이 발사한 탄환은 마창소의 얼굴을 관통했다.

마창소의 머리가 반으로 터져나가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조선군의 집중사격이 펼쳐지자 나머지 청의 기병들은 차례로 소멸되었다.

“조선인들의 구출은 어떻게 되었나?”

“모두 성공했습니다.”

“다행이군.”

보고를받던 권이강이 안도의 숨을쉬었다.

이번작전의 목표는 지르칼손의 주둔지를 습격하는것 외에도 잡혀있던 조선인들의 구출이 핵심이였다.

권이강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에 젖었다.

“우리 조선군이 엄청나게 강해졌네.”

“이전에는 못보던 새로운 화승총까지 들고있고.”

“이것은 한양에서 주상전하의 지시로 군기시에서 새로 만든 신형보총이요.”

“그럴수가? 새로운 주상전하께서 이처럼 대단하신 분이라니!”

구출된 조선인들이 함성을 질렀다.

지금까지 뒈놈들에게 당해오기만 했는데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 * *

“오랜만에 자네들을보니 반갑구만.”

“저희들도 같은 기분입니다.”

정대상의 대답을들으며 예조판서 장우영이 미소를 지었다.

앞에있는 두명, 정대상과 박상호는 장우영이 아끼는 후배들이다.

그나마 장우영은 운이좋아 과거에 급제하고 이후에 예조판서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두명은 그렇지 못했다.

실력이 있음에도 과거에는 몇차례나 낙방했다.

이후에는 자포자기 상태로 재야에 뭍혀지냈던 상황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것에 장우영도 안타까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재야의 인재들이 중앙으로 진출할수있는 과거시험-

그것은 철저하게 안동김씨과 세도가들의 입맛에따라 결정되었던 것이다.

장우영은 실력도없는 간신배들이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 진출하는 모습들을 지켜봤다.

다만 그가 할수있는건 예조판서로 있으면서 실력없고 세도가문에 줄을대서 급제한 무능한 관료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박살내서 한직으로 쫒아내는게 전부였다.

이런 장우영 덕분에 그나마 예조는 6조에서 공조와함께 제대로 업무가 진행되는 부서가된 것이다.

“예판대감께서 갑자기 불러서 오기는 했지만 대체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자네들이 조정으로 진출도 못하고 많은 핍박을받고 고생한것을 알고있네.”

“아닙니다. 그래도 예판께서 조정에서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시고 종묘사직을위해 헌신하고 계시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것도 새로 등극하신 주상전하의 덕분이긴 하지만 말일세.”

“아직 저희들이 전하를 뵌적은 없지만 정말로 대단하신 분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도성내의 백성들중에는 전하에대한 칭송이 점점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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