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169)

이것은 궁의 앞쪽에있는 돈화문(敦化門)만이 아니라 후문쪽도 마찬가지다.

“거기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후문에 배치된 호위청 병사들이 외쳤다.

잠시후 병사들의 옆에있던 무관이 다가왔다.

그러자 선두에있던 최원상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마패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려진 문양은 달랐다.

창공을향해 솟아오르는 봉황의 모습이 그려진 명패-

이것을 확인하자 무관이 고개를 숙였다.

“소문으로 들었던 비호국의 높으신 분들이군요.”

“전하께 장계를 드리고 보고할 부분이 있어서 찾아왔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요.”

무관인 김성중이 두명, 최원상과 강기석을 안내했다.

호위청과 금군에 속해있는 무관이나 병사라해도 비밀에 가려진 비호국의 국장인 최원상과 부국장인 강기석의 얼굴을 알지는 못했다.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비호국 소속의 신분을 증명하는 명패를가진 사람은 특별히 통과시켜라는 것이다.

호위청과 금군에 속해있는 병사나 무관들 중에서도 비호국으로 선발되어간 인원들도 있었다.

다만 누구든지 비호국 요원이되면 그뒤부터는 철저하게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며 비밀리에 행동하는게 원칙이다.

이것은 철종이 비호국을 창설한 최원상과 강기석에게 내린 운영원칙과 활동지침중에 하나였다.

그럴것이 비밀활동을하는 첩보원이 신분을 드러내거나 들키면, 그것은 첩보원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호국장인 최원상은 철종의 지시내용등을 충분히 이해했다.

처음에는 실감되지 않았다.

그러나 본인이 비호국을 설립하고 다수의 요원들을 선발해 훈련시키고 비밀활동을 진행하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것이다.

실제로 21세기의 정보기관들.

그중에서도 현장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블랙요원(Black Agent)-들은 가족들도 그가 첩보원인지를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이처럼 철종은 최원상을통해 창설한 비호국이 최고의 은밀성과 작전능력을가진 첩보조직이 되도록 준비했던 것이다.

얼마후 후문을 통과한 그들을 마중나온건 송내관이였다.

“어서 오십시요. 전하께서 두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즘 전하께서 상당히 많은 일들을 하시는지, 한성내의 백성들 사이에 여러가지 소문들이 떠도는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이번에 전하께서 경들을 부르신것도 아마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흠....”

송내관의 대답을듣자 최원상이 침을 삼켰다.

이제까지 임금의 지시대로 비호국에대한 많은것들을 해왔지만, 시작일 뿐이였다.

임금이 비호국에 원하는건 더 큰것이 있다는걸 느꼈다.

* * *

“전하!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소신들은 예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비호국장인 최원상, 그리고 부국장인 강기석이 놀라며 입까지 떠억-벌어진다.

두명이 첩보를 수집하는 조직의 수장이라해도 이런건 생각도 못해봤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 진행할 작전은 내가 비호국을 설립할 때부터 염두에둔 계획들중에 하나일 뿐이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두명도 잠시후 설명을 진행하자 조금씩 이해를 하였다.

이미 중국과 만주쪽에 비호국 요원들을 잠입시키는 작전이 진행중이다.

따라서 영국과 유럽이라고 못할것은 없지.

그들도 일전에 중국쪽에 비밀요원들을 보내라는 명령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했지만 서구열강들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경들도 알다시피 조선은 청과의 일전을위해 준비중에 있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들이 과인의 명을받아 비호국을 창설했고, 동시에 만주와 연경(북경) 그리고 광주(광저우)에도 간자(첩자)들을 보내는 일을 진행중에 있소.”

“전하의 명에따라 현재까지 대략 60명의 비호국원들을 파견했지만 아직도 그 수가 부족한것은 사실입니다.”

부국장인 강기석이 대답했다.

그나마 조선인들 중에는 중국말이 가능한 인원들이 제법 되었다.

또한 비호국의 요원들에게 중국내부로 침투를위해 중국어를 가르쳐줄 인원들도 있었고 말이다.

삼남지역 보다는 한성이북에 살고있는 조선인들중 중국어가 가능한 인원들이 꽤 있었다.

지금 비호국에서는 이들을 포섭해서 비밀요원으로 활용중이다.

그렇다고 삼남지역의 인원들중에 인재가 없는건 아니다.

삼남지역에는 주로 남쪽방면. 즉 일본이나 대만, 그외에 유구국(오키나와)의 말이 가능한 인재들도 있다.

따라서 비호국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선발해서 활용할 방법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그에반해 영국과 유럽, 더 나아가 미국등에 배치할 비밀요원들은 지금부터 준비시켜야 했다.

유능한 첩보원들을 기르는게 하루아침에 되는것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했고 특히 조선과 연관이 없었던 서양쪽 국가들에 파견하고 침투시킬 비밀요원들은 조건이 까다롭다.

“하오면 전하께서는 어떤 계책을 생각하고 계시옵니까?”

부국장인 강기석이 기대감을 표시하며 질문했다.

최원상이 비호국장으로서 총괄하는 직책이라면 강기석은 선배인 최원상을 보좌하면서 새로운 인원들의 선발과 교육등을 담당했다.

때문에 이번에 유럽과 구라파로 비호국의 요원들을 파견하고 잠입시키는건 강기석이 맡은 임무중에 하나다.

“이번에 조선에서는 국제유학생단을 선발해서 영길리국(영국)을 포함해 구라파(유럽)에 보낼 예정입니다. 물론 대다수는 서양에있는 여러 학문과 기술을 배우기위한 인재들이 될것입니다. 동시에 이 기회를통해 비호국의 요원들도 일부 선발해서 현지에 보내고 그들이 이후의 활동을 할수있는 발판과 은거지를 만드는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확실히 전하의 말씀대로 비호국의 영역을 확대하는것은 이후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 될거 같습니다.”

최원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명을 비호국의 국장과 부국장으로 선택하면서, 그리고 이들에게 막중한 책임을 맡기면서 여러가지를 지시하고 가르쳤다.

그럴것이 조선에서는 아직 현대적인 정보전이나 첩보전에대한 개념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두명도 처음에는 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의 세계전략과 대응에서 정보전과 첩보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충분히 인식하는 단계다.

즉 과거에비해 엄청난 성장을 한것이다.

“앞으로 구라파(유럽), 그리고 미리견(미국)등에 파견할 비호국 요원들의 숫자는 계속해 늘려갈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현지에서 수행할 비밀임무등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뒤에 나는 최원상과 강기석에게 서양에 파견된 비호국 요원들이 수행하게될 몇가지 임무와 비밀작전들을 설명해 주었다.

두명은 이것을 들을때마다 깊은 숨을삼켰고 눈빛은 열정적으로 변해갔다.

앞으로 이들에의해 조선의 비호국은 미국의 CIA,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사드를 능가하는 최강의 첩보기관으로 성장할 것이다.

전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조선의 첩보요원들-

이것이 조선을 강력한 제국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될테니까 말이다.

* * *

두만강에서 북쪽으로 280km 정도 떨어진 무단(茂丹)-

이곳은 조선인들 마을을 약탈하고 수많은 조선인들을 납치해간 청의 기마부대. 그중에서도 지르칼손이 지휘하는 팔기부대가 근거지로 삼고있는 장소였다.

본래 지르칼손 부대가 주둔하는 곳은 요동군의 본부가있는 심양의 근처다.

하지만 조선을 약탈할때 지르칼손은 이곳 무단으로 부하들을 이동시켰고 근거지로 삼았던 것이다.

넓게펼쳐진 벌판위에는 수십개의 막사들이 모여있었다.

주변으로는 무장한 팔기병들이 경계를섰고 외곽을 순찰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양강촌을 습격해왔던 청의 기마부대를 박살낸 조선군들은 반격을위해 준비했다.

홍상준은 적의 포로를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했고 정교한 작전을 준비했다.

특히 홍상준이 중점을 둔것은 무단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을 구출하는 것.

이것은 그가 철종에게 받은 명령에도 포함된 것이다.

“크하핫! 이맛에 조선놈들을 사냥하는것이 아니겠느냐?”

지르칼손이 광소를 터뜨렸다.

앞에는 조선인 마을과 촌락을 약탈하며 챙긴 재화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마을을 습격하며 잡아온 조선인들의 숫자만해도 수백명이다.

그중에는 노인과 아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숫자는 노예로 팔아먹기에 적당한 사내들과 계집들도 있었다.

조선인 여자들은 만주족과 한족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고 비싼값에 팔려나갔다.

“처음에 요동으로 밀려나고 봉금지대의 관리나 담당하는 한직으로 생각했는데 여기가 명당자리구나.”

“그렇습니다. 대장님.”

측근부하가 아부하며 히죽거린다.

지르칼손은 베이징에있는 만주족 귀족의 출신이다.

중앙의 팔기군에서 출세가 보장되던 상황이였는데 줄을 잘못타서 신세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베이징에서 요동지역으로 좌천된 것이다.

자신은 삭막한 만주에서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만주지역에는 그의 더러운 욕망과 잔혹함을 채워줄 사냥감들이 곳곳에 널렸다.

대상은 힘없는 조선인들이였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와 힘겹게 농사를짓고 수확을 끝내면 지르칼손이 지휘하는 부대가 습격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지르칼손은 두만강까지 도강해가며 조선영토의 내부로 들어가서 약탈까지 하였다.

그것은 조선과 청의 국경선을 넘는것이고 엄청난 범죄 행위였다.

지르칼손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조선은 상국인 청에게 대들지 못하고 기껏해야 눈치만 볼뿐이다.

청에게 복종하는 노예국가인데 신경쓸 필요가 없는것이다.

“이대로 계속해 재물을 모으면 연경(북경)에있는 인맥을 동원해 중앙으로 진출할수 있어. 그리고 조선 놈들은 나의 출세를위한 수단일 뿐이지.”

지르칼손과 부하들이 히죽거릴때 막사로 여자들이 끌려왔다.

부하들의 눈빛이 음흉하게 변하였다.

“조선의 계집들은 얼굴이 반반하군요.”

“한족 계집들은 숫자만 많을뿐이지 얼굴이 괜찮은 계집들은 얼마 되지도 않더군.”

지르칼손이 빈정거렸다.

북경에 있을때 많은 한족여자들을 품어보았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그에반해 조선의 여자들은 지르칼손의 눈을 사로잡을 정도로 미모의 여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중국의 4대 미녀들중에 3명이 동이족 출신이라는 말들이 있던데 사실인거 같군.”

“맞습니다.”

지르칼손과 부하들이 잡혀온 여자들을 상대로 수작을 부릴때.

병사한명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조선인들의 마을로 습격을 나갔던 누데치부대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럴리가 있느냐? 그놈들은 일주일전에 떠났는데 지금쯤은 복귀하고도 남았어야지.”

“그래서 다른 부대를 파견했는데 그들도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멍청한 놈들!”

지르칼손이 술잔을 던지면서 일어났다.

모든것이 순조로운데 상황이 기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작전나간 부대들이 예정보다 늦게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수색을나간 부대까지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는 특이했다.

“할수없군. 부대를 소집해라.”

“별일이 아닐수도 있는데 과민반응을 하시는것이 아닙니까?”

“그럴수도 있지만 확실히 해야지. 그리고 아직 사냥을 끝내지못한 조선놈들의 마을도 많이 남아있다. 따라서 기왕 출동한 김에 더많은 사냥을 하는것도 좋겠지. 물론 사냥의 성과가 좋으면 너희들에게 내려질 포상도 클것이다.”

“좋습니다. 안그래도 몸이 쑤시던 상황인데 이번에는 조선의 국경과 두만강까지 넘어가서 더많이 챙겨오는게 어떻습니까?”

“역시 정예병들다운 생각이다.”

지르칼손이 명령을 내렸다.

주둔지에서 준비를 시작했다.

감옥에 갇혀있던 조선인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자신들의 운명은 뻔했다.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굶어죽던가 그것도 아니면 노예로 팔려나가는 신세.

“개같은 청나라 놈들!”

“이놈들이 어디를 째려봐. 죽고 싶어?”

텅! 터텅! 간수들이 조선인들을 협박하며 창으로 두들겼다.

그때문에 겁먹은 아이들은 훌쩍거렸고 어른들은 몸으로 막아서며 아이들을 달래었다.

나라가 힘이없어서 겪어야하는 비극과 굴욕.

상당수의 조선인들은 두려움에도 이빨을 깨물며 복수를 다짐했다.

기습 & 구출작전

휘이잉! 찬바람이 불어왔다.

감옥에 갇혀있던 조선인들은 냉기에 몸을 움츠렸다.

흑흑! 한쪽에서는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실하게 살아가며 농사를짓고, 미래를 꿈꾸던 어린 소녀들은 자신들에게 닥칠 운명을 저주하였다.

청나라 군대에 잡혀갔던 수많은 여성들이 강제로 팔려나갔다.

그뒤의 삶은 끔찍했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여자들도 나왔을 정도다.

수백년간 중국에게 당해온 조선의 역사.

이것은 백성들의 삶도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계집들이 재수없게 지랄이야? 어디서 씨끄럽게 울고있어?”

“.....”

간수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지르칼손의 부하들이 납치해온 수백명의 조선인들은 여러곳에 만들어진 감옥안에 수용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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