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169)

조선수군이 사용하는 판옥선도 중형의 경우에는 대략 180~200톤의 수준으로 나름 덩치가 있었다.

일본이 사용하는 왜선들이나 중국의 청나라가 사용하는 정크선들에 비해서도 뒤쳐져지않고 우수할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대항해 시대부터 시작된 범선들에 비하면 소형이고 왜소해보일 수준이다.

판옥선으로 거대한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너겠다고 도전하면 항해시작후 며칠뒤에는 풍랑에 뒤집어지며 물고기 밥이다.

판옥선이 소형인것도 있지만 결정적인건 바로 선체구조의 다름과 차이다.

주둥이로 싸우나 ?

“전하, 소신들이 살펴보니 이양선들은 조선의 판옥선과 다르게 배의 아랫부분이 볼록하게 되어있군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역시 병조의 실무형 관료들이라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양선들이 멀고먼 구라파에서 여기 동방의 조선까지 바다를 통과해 오는건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배의 선체가 대형인것도 있지만 지금 경들이 본것처럼 배의 아랫부분이 볼록하게 되어있고, 이것이 큰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도 버틸수있는 원인입니다.”

조선의 판옥선과 다르게 서양의 범선들과 증기선들은 모두 첨저선(尖底船)이다.

그에반해 판옥선들은 평저선(平底船)이라 불린다.

다만 이런 평저선도 나름 장점은 있었다.

연안에서 전투시 신속하게 전후좌우로 방향을 바꾸기 쉽다는 것인데 대신에 대양에서는 파도와 풍랑에 취약하다.

그에반해 첨저선은 수심이 얕은곳으로 잘못 들어가면 배가 뒤집어지는 위험이 있지만 대신에 무게중심을 선체의 아래쪽으로 유지하면 대양의 거친 파도에서도 버티면서 나아갈수 있었다.

“전하. 여기있는 몇몇 양이들의 범선은 그래도 돛이 있어서 바람을 이용해서 항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있는 배들은 판옥선처럼 좌우쪽의 노도 없으며, 돛대도 없으니... 대체 어떻게해서 물살을 헤치며 나아갈수 있겠습니까?”

증기선의 모형을 살펴보던 관료들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범선이야 모양이 좀 달라도 그들이 알고있던 바람을 이용해서 나아가는 배였으니 이해가 가능했다.

그런데 증기선들은 완전히 다른 것이니 말이다.

노꾼들이 사용하는 노도 없고 돛대도 없다?

이런 배를 그들이 멀리서 본적은 있어도 그 모형을 눈앞에서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내가 목공장인 최덕진을 시켜서 만든 증기선의 모형들은 3가지다.

첫번째가 선체후방에 회전식의 차륜이 달린 형태.

이것은 주로 유럽이나 미국등의 강이나 하천에서 사용되는 증기선 들이다.

두번째가 선체의 양쪽에 대형의 차륜이 달려있는 것인데, 현시기의 유럽과 미국등의 서구열강들에서 대양항해와 국제무역을위해 사용하는 증기선들이다.

물론 전투용의 함선들도 이런 형태로 만든다.

미국이 1853년에 일본을 개항시킨 쿠로후네(흑선)사건때도, 미국함대의 증기프리깃 미시시피함도 선체 양쪽에 대형차륜이 장착된 함선이였다.

현시대에 증기선이라고 한다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고 서구열강의 증기선들 대부분이 이런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세번째가 핵심이다.

내가 최덕진을 시켜 만든 3번째의 증기선 모형은 선체의 후방 아래쪽에 스크류형의 프로펠러가 달려있는 것이다.

이 형태가 21세기까지 이어지는 근현대식 선박들의 기본이되는 것인데 증기선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건조하는 서양에서도 아직 스크류 추진의 증기선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비록 1845년에 미국에서 스크류를 사용하는 증기선의 제작이 시범적으로 되었지만 외륜증기선을 대체할 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따라서 조선이 발빠르게 움직이면 세계에서 처음으로 스크류를 사용하는 강력한 증기선박과 함선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해군에 배치할 기회가 생길수도 있었다.

“경들이 보기에 저 배들이 비록 돛이 없다해도 충분히 물살을 헤치면서 나아갈수 있습니다. 저들에게 시범을 보여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최덕진이 대답했고 2명의 제자들과 준비했다.

이들에게 3가지 형태의 증기선 모형들을 만들때에, 동력원이되는 증기기관을 장착하는건 못하지만 대신에 다른 방식으로 수차들을 돌리게 하였다.

어릴때 만들고 놀았던 고무동력기와 비슷한 것인데 조선에 천연고무가 도입되는건 아직이고 대신에 탄성이강한 비단실을 꼬아서 만든 줄을 사용했다.

비단으로 만든 끈들을 고무동력기의 고무처럼 꼬으면 그것으로 탄성 에너지가 축적되고 나중에 그것을 풀어버리면 비단으로된 끈들이 고무처럼 풀리면서 수차를 돌리는 방식이다.

“허어. 이럴수가...!”

“선체에 노가 없어도, 그리고 바람이 없는데도 스스로 나아가다니!”

외부에 장착된 수차를 돌리면서 나아가는 증기선의 모형들을 본 박규수와 병조 관료들이 탄성을 토해냈다.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을 해보면 깨닫는게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비단끈을 꼬아서 간단하게 수차를 돌리는 방식으로 만들었지만 실제로 이양선들의 내부에는 증기기관이라는 상당히 큰 기물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 증기기관들은 석탄을 때서 물을 가열시킬때에 나오는 증기를 사용합니다.”

어차피 내가 말해줘도 증기기관에대한 설명은 반정도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긴 일상에서 흔히 볼수있는 수증기의 힘이란것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인류가 깨닫는데만도 10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으니 당연하겠다.

한동안 박규수를 포함해 병조 관료들도 어린애들처럼, 최덕진과 제자들이 가져온 증기선의 모형들을 살펴보며 가지고 놀았다.

또한 비단실로 만들어진 끈을 꼬아서 돌린뒤 직접 수차를 돌려서 배가 나아가는 모습들도 확인하였다.

이런게 바로 현장 학습이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해보면 말로 설명하고 떠드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한동안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던 박규수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전하. 소신에게는 한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전하께서 장인들에게 지시해 만든 저 증기선들이 물위를 움직이고 나아가는 것들은 신묘합니다. 다만 여기 소신이 들고있는 증기선의 모형에비해 나머지 두가지 형태의 증기선 모형들은 큰 약점이 보입니다.”

박규수가 뭔가를 발견한 것인가?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어떤 약점인지 설명을 해보시요.”

“소신이 병조에 관련된 직책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선체의 외부에 저렇게 큰 수차들이 붙어있는 증기선들은 만약에 해상에서 전투가 벌어졌을때, 저 대형 수차들이 가장 큰 목표가 될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적함에서 발사한 포탄이 저 수차들에 명중이되면 당연히 파손될 것이고 그뒤에는 외부로 드러난 수차를 사용하는 증기선은 항해능력과 전투능력을 완전히 상실할수도 있습니다.”

옭거니! 바로 이거다.

역시 박규수의 재능은 탁월하다.

그리고 박규수를 병조참지에 넣은 선택은 탁월했던 것이다.

박규수의 설명대로 대세를 이루었던 외륜형 증기선들이 1850년대 초중반부터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스크류형으로 대체된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해전을 벌이는 함선, 그리고 함포를 발사하는 상황에서 저렇게 큰 외륜은 집중 타격이자 목표다.

폭발성의 작렬탄까지 필요없고 물리충격을주는 쇠구슬과 라운드탄 몇발이면 충분하다.

그러면 외부로 드러난 수차가 망가지며 상대함선은 더이상 기동을 못할테니까 말이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물속에 추진용의 프로펠러가 잠겨있는 스크류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즉 증기선의 발달단계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다만 밀덕인 나는 이런걸 알고있으니 조선군의 함선 제작의 방식은 중간단계의 실수없이, 저 스크류형을 장착한 증기선으로 직행하면 그만인 것이다.

동시에 이런 부분을 파악하고 나에게 직언하는 박규수의 능력도 뛰어났다.

박규수는 확실히 미래의 병조판서 감이다.

이후에는 조선제국의 국방장관을 맡기기에 충분한 인재인 것이다.

“경의 말대로 후방에 차륜이 장착된 증기선이나 선체 양쪽에 차륜이 보이는 증기선들은 큰 약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조선수군이 보유할 증기선들은 지금 경이 들고있는 증기선의 모형같은 함선들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물론이요. 조선의 수군은 과거 임진왜란때 활약하신 충무공(이순신)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바다는 넓고 조선의 수군이 갈곳은 많습니다. 과인이 경들을 여기로 불러 이양선들과 증기선들의 모형을 보여주고 직접 체험하도록 한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

대답을듣자 박규수와 병조관료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때 동아시아 최강의 해군이라고 인정받았던 조선수군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조선의 바다조차 지키지 못해서 이양선들이 마음대로 들락거리고 거기다 남쪽에는 왜구들이 또 설친다.

이런 사실들에 분개하고 있던 박규수와 병조관료들은 나의 대답을듣자 모두가 엎드렸다.

“소신들은 전하의 대업을위해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외침-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선수군을 대양해군으로 만들기위해 해야할 것들이 엄청 많다.

그리고 신료들이 스스로 나서며 일하겠다고 난리다.

앞으로는 엄청난 야작(야간작업)에 입에서 단내가 날정도로 일을 시켜야겠다.

* * *

“어서 움직여! 이놈들아.”

조선군 병사들이 소리쳤다.

잠시후 포승줄에 묶인 팔기병들 몇명이 어슬렁 거리며 나아갔다.

이것을보던 정포수가 발차기를 날렸다.

퍽! 퍼퍽! 두명이 쓰러지며 노려보았다.

그러자 정포수가 신속하게 현무철포를 녀석의 얼굴쪽으로 겨누면서 말했다.

“뭐야? 네놈들도 저기있는 동료들처럼 고깃덩이가 되고 싶어?”

“.....”

정포수의 그말을듣자 청의 팔기병이 움찔거렸다.

양강촌에서 벌어진 전투후 군데군데 널브러진 시체들을 치우고 있지만 꽤 많은 시신들이 남아있었다.

정포수와 조선군에게 끌려가는 12명은 전투과정에서 겨우 살아남은 팔기병들이다.

양강촌의 전투는 조선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이났다.

처음에 누데치는 양강촌에 매복해있던 7-80명의 조선 기병들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였다.

홍상준이 지휘하는 조선기병들이 마을의 내부에서 치고빠지는 전투를하며 누데치의 팔기병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사이에 화령숙영지에서 훈련받은 조선군 보병들이 양강촌 마을의 주변을 포위하며 사격을 개시했던 것이다.

얼마후 누데치의 팔기부대는 그물에 걸려버린 물고기 신세였고, 일부는 탈출을위해 발버둥치다 현무철포의 사격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적두목인 누데치의 목을 베어버린 홍상준의 모습에 적들은 사기가 떨어졌고 차례로 섬멸당한 것이다.

그 숫자가 족히 300이 넘었고 조선군의 대승리에 양강촌 주민들도 기뻐하였다.

“나리! 포로들을 데려왔습니다.”

정포수가 보고를 하였다.

무관들과 대화하던 홍상준이 팔기병들을 보았다.

사로잡히던 중에 얻어맞은 상황이지만 포로들이 반항을 시도했다.

“네놈이 누데치님을 죽였다고 좋아하지 마라. 조선놈들이 감히 대청제국을향해 반기를 들었으니, 이제부터 그 댓가를...”

탕! 크억! 홍상준을향해 떠들던 포로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홍상준이 장전된 백두철포로 한방에 즉사시켜버린 것이다.

이것을 본 포로들이 움찔거렸다.

일부는 겁을먹었고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

“쓸데없이 말이 많은 놈이군. 요즘 청나라 팔기병들은 주둥이로 싸우나?”

“듣기로 청태조인 누르하치가 금을 세울때에는 팔기병들 실력이 뛰어났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합니다. 뭣보다 요즘 청의 팔기병들은 실력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부모나 선대로부터 그 자리를 물려받은거 뿐이니까요.”

“역시. 그래서 생각보다 허접하군.”

홍상준이 부하 무관에게 대답했다.

무관이 말한것도 사실이다.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고 홍타이지가 중원을먹고 청을 건국할 당시만해도 팔기군은 세계최강의 군대라해도 충분했다.

다만 그건 수백년전의 일일 뿐이다.

이후에 청의 팔기군은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속칭 팔기군에대한 순혈주의와 전통을 강조하면서 팔기병들을 실력을 경쟁해서 뽑는게 아니라, 그자리를 선조와 부모를통해 물려받는 식으로 계승된 것이다.

즉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팔기군을 했으면 그 아들이나 손자도 팔기군이되는 구시대적인 방식이 유지되었다.

그것은 몇년전에 벌어졌던 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군의 공격에 팔기부대가 숫적으로 많았으면서도 한꺼번에 박살나고 패주한 것에서 증명된다.

이번에는 홍상준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아편전쟁때의 영국군처럼 청의 팔기부대를 완전히 괴멸시킨 것이다.

“네놈들을 모두 사살해서 들개밥을 만들수도 있다. 그래도 개중에 몇놈은 살수있는 기회를 주겠다. 너희들이 지르칼손의 부하들인건 이미 알고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지르칼손과 너희들이 소속된 부대에대한 모든걸 자백하는 놈은 그나마 생명을 건질수있다. 자아! 어떻게 할거냐?”

“....”

홍상준의 말에 포로들이 반항하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피식-하며 한차례 냉소를 보였고 육중한 백두철포를 가볍게 한손으로 돌리며 말했다.

“호오! 그래도 팔기병 나부랭이의 고집을 부려보겠다고? 하지만 후회할걸. 네놈들에게 한가지를 보여주지. 조선에서는 너희들같이 반항하는 놈들의 버릇을 가르쳐주는 방법이 있지. 여봐라!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홍상준의 지시를받자 양강촌 주민들이 뭔가를 가져왔다.

이것을보며 포로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럴것이 양강촌 주민들이 가져온것은 제법 널찍한 모양의 멍석이다. 그것도 포로들의 숫자에맞게 10개 이상을 가져온 것이다.

“살고싶은 놈은 자백하겠다고 소리쳐라. 안그래도 네놈들 때문에 양강촌 주민들을 포함해 조선인들이 고통을 당했으니, 그 댓가를 받아야지. 지금부터 멍석말이를 시작해라.”

“저놈들을 멍석에 넣어라!”

지시가 떨어졌고 양강촌 주민과 조선군들이 달려들어 팔기 포로들을 멍석위에 강제로 넣었다.

그리고 반항하는 놈들에 대해서는 발길질이 가해졌고 얼마후에 포로들이 들어있는 멍석이 둘둘 말려진다.

“으아아! 이게 뭐야?”

“어떠냐? 조선이 자랑하는 멍석말이다. 실컷 즐겨라.”

홍상준이 소리쳤고 신호를 보내었다.

곧바로 멍석에 말려있는 포로들을향해 몽둥이 찜질과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퍽!퍽! 크아악! 멍석에말려 좌우로 굴러가는 포로들의 신세. 양강촌의 장정들과 조선군이 신나게 찜질을 시작했다.

한참후 몇놈은 악에받친 소리를 내뱉다가 죽었다.

나머지 녀석들은 1시진(2시간)정도 당하게되자 더이상 버티질 못하고 애걸했다.

“제발! 살려주시요! 아는걸 모두 말할테니까.”

“이제야 정신을 차리는 놈이 나오는군.”

팔짱을낀 홍상준이 냉소를 지었다.

영국에 첩보원을 침투시키는 작전

어둠에 쌓여가는 창덕궁으로 걸어가는 두명의 사내들.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일전에 철종에게 선택받아 비밀조직을 결성했다.

그리고 비호국의 수장을 맡기전 그들은 조선에서도 실력있는 무관들에 속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이지만 창덕궁 주변에는 호위청과 금군의 병사들이 철통같은 경비를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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