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69)

방아쇠를 당긴순간 굉음이 터지며 묵직한 탄환이 만주족 기마병의 갑주를 관통하며 박혀들었다.

크억! 단 한발에 즉사.

말위에서 튕겨진 기마병은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더니 지면으로 추락했다.

“총소리다!”

“어디냐?”

누데치가 소리쳤다.

마을에는 아무도 없는줄 알았는데 적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명령을 내릴려는 찰나 입구쪽에서 굉음이 터져나왔다.

수십여기의 군마들이 돌진했고 그위에는 조선의 기병들이 고삐를 움켜쥐고 있었다.

“누데치님! 조선군 기병들 입니다.”

“저놈들이 미쳤구나? 청의 기병을 상대로 도전을 해?”

상대가 조선의 기병이란걸 확인하자 누데치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기병대 기병의 전투란것은 까다롭고 보병을 상대할때보다 위험했다.

그러나 청의 기병.

특히 팔기군에 속하는 기병들은 적수가 없을정도로 강력했다.

그것을 조선에게 보여준적이 있지 않은가?

조선인들은 청나라 기병이라면 공포에 질리고 청에게 복속당한 다른 국가들도 두려움에 떨었다.

돌진해오는 조선기병들은 숫자도 자신들보다 적었다.

기껏해야 7-80여기 정도.

“이럇! 돌격해라!”

“와아! 해치워라.”

누데치의 기마부대가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조선의 기병대를향해 검을 뽑았다.

말위에서 검투를 겨루는 부분에서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양쪽 기병대의 거리가 좁혀지는데도 조선 기병들은 검을 뽑지않았다.

그것을보며 누데치가 히죽거렸다.

“화살공격을 시도할 셈인가?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는 짓이다.”

청의 기병부대는 적들이 발사하는 화살공격에대한 훈련도 받았고 대응력도 뛰어났다.

때문에 기습적으로 당하지않는 이상은 피해도 받지않았다. 누데치는 조선군이 등신같다고 생각했다.

청의 기병부대를향해 도전한 댓가는 전멸이다.

이것은 누데치만이 아니라 명령을받고 돌진하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을 뽑아들며 쇄도했고 얼마후 상대의 목을 벤다는 생각으로 히죽거렸다.

돌진해오던 조선 기병들이 한팔을 아래로 내렸고 뭔가를 꺼내들었다.

“저건 뭐야?”

“조선놈들의 화승총인가 봅니다.”

“미쳤군! 기병이 화승총을 사용할수 없는건 기본지식인데 바보들이군.”

달리는 말위에서 화승에 심지를 붙이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기병들의 무기는 대부분이 기병검과 창, 그리고 활등이다.

그런데 조선군은 스스로 자살돌격을 해대는것과 마찬가지다.

“저놈들에게 기병전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라!”

“물론입니다. 돌격!”

누데치의 지시를받은 선두그룹이 돌진했다.

기병검으로 달려드는 순간, 탕! 타타탕! 고막을찢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크억! 일제사격이 터졌고 돌진하던 청의 기병 20명이 나가 떨어졌다.

“어떻게 된거냐? 매복한 보병들의 기습이라도 받은거냐?”

“아닙니다! 조선기병들이 화승총을 발사한거 같습니다.”

“믿을수없다.”

누데치의 표정이 경악으로 구겨졌다.

청의 기병들이 화살이나 적의 창공격등은 충분히 막아낼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근접에서 총을 발사한 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청의 기병들에게 방어조차 불가능했다.

“저놈들이 당황한거 같습니다!”

“눈앞에서 총포를 맞을줄은 꿈에도 몰랐을거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제 2 격을 발사한다.”

“알겠습니다.”

홍상준의 명령에 돌진하던 조선기병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들이 무장한 백두철포는 2연발의 기병총이였고 아직도 남은 한발이 총신에 있었다.

혼란에빠진 적을향해 돌진해가며 2번째의 사격을 퍼부었다.

탕! 타타탕! 칼을들고 돌진하던 청기병들은 공포에 질렸다.

동료들이 공격도 못해본채 나가떨어진 것이다.

홍상준의 기병대는 누데치의 기병부대를 관통하며 나아갔다.

백두철포로 적의 기세를 제압한뒤 신속하게 검을 꺼내어서 목을베었다.

한번의 돌격으로 누데치의 기마부대는 반으로 줄어들었고 일부는 비명을 토해냈다.

“반격해라! 조선놈들이 괴상한 재주로 총포를 발사했지만 더이상은 사격을하지 못할것이다.”

“그건 네놈의 생각일 뿐이지.”

누데치를향해 홍상준이 돌진했다.

다른 쪽에있던 백두철포를 꺼내었고 누데치를향해 연속으로 사격을 하였다.

탕! 타탕! 크윽! 청의 기병들은 백두철포의 탄환에 픽픽 쓰러졌지만 그래도 누데치는 두목이라 실력이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면서 한발을 피했지만 다른 한발이 어깨를 관통하며 지나갔다.

분노로 휩싸인 누데치가 기병도를 휘두르며 파고든다.

홍상준도 빠르게 장검으로 막았다.

챙! 카캉! 둘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조선놈! 제법이구나! 하지만 마상검투에서 네놈들은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홍상준이 누데치의 기병도를 쳐내면서 고삐를 죄었다.

군마가 빠르게 측면으로 돌아가며 홍상준이 누데치의 헛점을 파고든다.

조선기병들에게 백두철포라는 신무기가 주어졌지만 그것은 적의 전열을 제압하기위한 무기인 경우다.

평소에 갈고닦은 마상전투의 실력과 검술도 결코 청의 기병에게 뒤지지 않았다.

몇차례 불꽃이 튀겼고 홍상준은 누데치가 헛점을 보이자 곧바로 돌진했다.

누데치의 어깨쪽으로 검을 휘두르며 찍어버렸다.

크억! 누데치의 입에서 피거품이 터졌고 상대가 흔들리는 찰나 홍상준은 누데치의 목을 정확하게 베었다.

“누데치님이 당했다.”

높이치켜진 누데치의 머리.

그것을 움켜쥔 홍상준의 모습에 적들은 경악했다.

혼란에빠진 청의 기병부대를향해 조선기병들이 달려들며 사격과 공격을 퍼부었다.

전투가 끝나자 그곳에는 누데치와 부하들 수백명의 시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 *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사양말고 드시게. 이자리는 병조에서 일하는 경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니 말일세.”

술을 권하면서 덕담도 한마디씩 했다.

그때마다 임금인 나를 바라보는 관료들의 눈에서는 아예 눈뽕(?)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확실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겨우 이정도의 술자리만 마련했는데도 저렇게 좋아하다니.

물론 그 술자리가 보통의 것도 아니고 임금이 친히 마련해준 자리니까 그렇지만.

내가 권한 술을비우며 병조참지 박규수는 감격한 표정까지 지었다.

안그래도 이런 자리가 한번쯤 필요했는데, 마침 다른 부분도 있고해서 겸사겸사 진행한 것이다.

오늘 소집을받아 모인 이들은 병조참지 박규수를 필두로해서 병조에서는 실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이다.

대부분 당상관 이하의 관직이고 병조에서도 상부로의 출세길은 막혀있는 상태.

그럴것이 김좌근이나 세도가에 인맥을 만들고 아부한 자들은 그들보다 먼저 출세했고 높은 자리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병조나 군사에 대해서는 개뿔도 모르는 낙하산들이 그들의 머리위로 떨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중 내가 재야에 지내던 박규수를 발굴해, 병조참지로 발탁한 부분에대해 그들은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비록 박규수가 병조에서 서열 4위라해도 하부에있는 실무형의 관료들과 잘 지냈던 것이다.

동시에 내가 박규수를 병조참지로 넣은것도 이런 이유인데 효과는 제대로 나타났다.

이제 병조에서 핵심을 담당하는 실무형 관료들은 박규수를 중심으로 뭉쳤고 많은 일들을 해내는 중이다.

그러니 박규수와 이들을불러 술자리를 마련하는건 임금의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병참(병조참지)은 혹시 이양선을 본적이 있소?”

술자리가 기분좋게 돌아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즈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받자 박규수가 잠시 멈칫했고 참석한 병조의 관료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임금이 왜 갑자기 저런 질문을 던질까?

그 속내를 생각한다고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다.

박규수는 이전에도 나와함께 조선군과 국방에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금방 깨달았다.

동시에 박규수는 나의 밀명을받아 수행중이다.

바로 간도의 조선인 촌락을 습격한 청군 기마부대를 박살내는 특수작전과 부대를 편성해서 보냈을 정도니까 말이다.

다만 내가 박규수에게 이양선에 대한건, 말을 꺼낸적이 없기에 저런 반응이 나온건 당연했다.

“전하, 소신의 경우에는 이양선을 한번 목격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번 정도라.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어떻소?”

“소신은 직접 본것은 아니라 단지 소문을통해 들었습니다.”

참석한 관료들이 하나둘씩 대답했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18세기, 19세기 이양선의 출몰!

이러면서 열심히 빨간펜으로 밑줄 쫘악~ 긋고 배우기는 한다.

그런데 지금 1850년에도 조선에서 서양의 이양선들을 제대로 본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되지 않는다.

그럴것이 대다수의 서양배들, 즉 이양선들이 조선의 근해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이 중국의 남지나해, 그리고 일본쪽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지금도 일본에는 데지마-라는 개항장이 있고 거기로 네델란드 선박들이 빈번하게 들어가니까 말이다.

이처럼 조선의 지리적인 환경도 조선이 근대화를 시작하는데 큰 단점중에 하나였다.

다만 그런걸로 조선이 근대화를 못하고 뒤쳐진것의 변명거리가 되지는 못한다.

“그대들이 이양선에대해 잘 모른다해서 책망할 생각은 아니요. 또한 그대들의 잘못도 아니고. 다만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

나의 대답을듣자 신료들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임금이 뜬금없이 이양선 이야기를 꺼낸것만도 당혹스러운데, 이제는 또 알아가면 된다고 하니까 말이다.

몇몇 신료들 중에는 혹시 임금께서 이양선을 몰래 숨겨두기라도 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눈빛으로 던진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이라도 증기선이 몇척 뚝딱 하늘에서 떨어지면 좋겠다.

또는 최초의 증기 철갑선이면서 2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 해군과 청황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영국의 증기전함, 네메시스 같은거면 더 땡큐지.

하지만 지금 조선수군이 가진건 기껏해야 판옥선이 전부다.

수백년전 임진왜란때 판옥선이 뛰어난 활약을 하였고, 판옥선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거북선은 공포의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판옥선은 제국주의 시대에 뒤떨어진 함선이고, 서양열강들의 함선과 붙으면 일방적으로 양학(양민학살)을 당한다.

“이제는 술자리도 충분히 되었고하니, 과인이 경들에게 한가지 재밌는걸 보여드리겠소.”

대기중이던 송내관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희정당으로 박규수와 실무관료들을 불러 노고를 치하하며 마셨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필요한 일도 해야지.

잠시후 희정당에서의 술자리를 대강 정리한뒤에 장소를 옮겼다.

* * *

“어떤가?”

“전하께서 어명하신대로 모든걸 준비했사옵니다.”

최덕진이 고개를숙여 대답했다.

박규수 일행들과함께 장소를옮겨 도착한 곳은 창덕궁의 후원쪽이다.

여기는 자주 이용하는 장소중에 하나다.

부용정 연못은 경치도 좋아서 머리속 생각들을 정리하기에는 최상이다.

한편 부용정 연못은 꽤 크지만 그옆에는 송내관에게 지시를내려 만들어진 더 작은 연못이 있다.

난 그걸 소용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실제로는 연못이 아니고 일종의 해상훈련과 작전을위한 모의장소라 불러도 좋을것이다.

그래서 물웅덩이같은 크기를지닌 소용정의 주변으로 박규수와 병조의 관료들이 모였다.

“이제부터 경들에게 구라파(유럽)의 이양선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줄테니,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보게.”

대기중이던 최덕진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그러자 목공장인인 최덕진이 준비된 배모형들을 가져왔다.

저것들은 며칠전에 완성된 것들인데, 최덕진이 완성시킨 작품들을 확인해본결과 정말로 훌륭했다.

“이양선들의 모습이 이렇게 생겼군요.”

“저도 멀리서 얼핏 본적만 있었는데...”

“조선의 판옥선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입니다.”

최덕진과 제자들이 완성시킨 서양배의 모형들을 본 박규수와 병조의 관료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내가 최덕진에게 판옥선의 모형도 만들게 시켰고 이것을통해 그들은 서양의 배들이 얼마나 큰지를 바로 확인할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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