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69)

“어떻게 조선백성이 오랑캐들이 득실거리는 양이들의 국가에 간다는 것입니까?”

“자네들이 놀라는것도 당연할 것일세. 하지만 이번에 양이들 국가에보낼 유학생들의 모집에는 쇠를다루는 인재들도 선발할 것이라고 하더군. 소문으로 듣기에 양이들은 쇠를다루는 기술이 뛰어나고 신출귀몰한 것들도 만들어 낸다고 하더군. 나도 직접 본적은 없지만 말일세.”

박정식의 말을듣자 두명의 아들들은 주먹을 쥐었다.

그중에서도 둘째인 송대진은 기대감으로 흥분되었다.

양이들의 국가로 간다니?

생각해 본적도없는 일이다.

“나로서는 자네들의 재능이 아깝기 때문에 이런말을 해본것이네.”

“감사합니다. 나리!”

송진우가 고개를 숙였다.

박정식을 배웅하고 돌아온 송진우가 두명의 아들을 불렀다.

“조금전 무관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랑캐들 국가인 양이들이 가득한 곳으로 가는 것이라니! 무엇보다 아버지를두고 떠날수는 없습니다.”

“이녀석들! 양이들도 다같은 사람이다. 그놈들이 너희들을 잡아 먹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하지만.”

“애비는 결심을 굳혔다. 너희들은 나를통해 쇠를다루는 기술을 배웠고 앞으로 가르칠것도 별로없다. 하지만 무관 나리가 말한것처럼 양이들이 쇠를 다루는 기술은 또 다를것이다. 조정에서 그런것을 배울 학생들을 선발한다고 하니 이런기회는 천금이나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더 큰 세계로가서 더 많은것을 배우기를 원한다.”

송진우가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얼마후 아버지의 뜻을 전해들은 두명은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양이들의 국가로 간다는것에 두렵고 어색했지만, 송진우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 * *

“의원 나으리!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들놈의 병세가 좋아져서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사부님에게 배운대로 했을뿐입니다. 여기에 약재들이 있으니 앞으로 며칠동안 다려서 먹이면 완쾌될 것입니다.”

유홍기가 미소를 지었다.

의술에 뜻이있어 십대나이에 사부의 밑에서 공부하며 여러가지를 보좌하고 있었다.

그의 사부는 뛰어난 의원이였다.

조선은 물론 동양의학에서 발전을 이루어낸 동의보감의 내용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실력은 궁궐에서 어의로 활약하기에도 충분할 수준이였다.

그러나 빈민들의 구제와 민초들의 삶에 도움을 주기위해 도성외곽에서 자그마한 의원을 열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였지만 민초들을 치료하며 지내는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유홍기는 조선의 민초들이 걸리는 다양한 질병들중에는 어떤 약재를써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생기는걸 발견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사부도 비통함을 느꼈다.

“조선에 동의보감같은 뛰어난 의학서까지 보유하고 있지만 세상의 질병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배워할것이 많구나.”

유흥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때부터 명석했고 의술에도 상당한 발전을이룬 유흥기다.

그러나 지금까지 듣고보고 한것은 주로 동양의학이다.

동양의학도 여러가지 질병등에 효과가 좋았다.

다만 본질적으로 동양의학에는 한계가 있었다.

신체의 내부에 발생하는 각종 종양이나 괴질, 그외에도 이질이나 전염병등에는 손쓸 도리가 별로없었다.

동양의학에서는 신체를 훼손하는것을 금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조건 과거부터 된것은 아니다.

고대의 뛰어난 의술인이였던 화타-

그는 서양에서 발전된 외과수술을 고대부터 실시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후 중국의 의학은 신체를 훼손하지않고 약물과 약초를통해 병을 치료하는 기법으로 발전했다.

중국과 더불어 조선에도 유교와 성리학 이념이 기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신체발부는 어쩌고하며... 환자의 신체에 훼손을 가하는것은 의사라도 처벌을 받을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동양의학, 그중에서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동의보감마저도 외과수술같은 부분에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듣기로 서양과 구라파에서는 다양한 수술도구를 이용해서 환자의 신체에있는 종양을 제거하거나 절제수술까지도 한다고 하던데. 하지만 이것을 사부님에게 말하면 큰일나겠지?”

유흥기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사부가 조선에서 제일가는 명의중에 한명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유흥기는 여전히 사부님을 존경했다.

그러나 그의 사부는 동양의학에만 몰두했다.

여전히 서양의학에 대해서는 터부시하는 부분이 있었다.

유흥기도 어느정도 이해했다.

머리가 복잡해지자 유흥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민과 갈등이 가득할 때에는 바깥 바람이라도 쐬는것이 해결책이다.

“골방에갇혀 고민만 한다고 해결될것은 아니다.”

복장을 갖추어서 밖으로 나왔다.

기왕에 외출한 김에 시내에있는 약제상에 들러서 필요한 약초들을 구입하기로 했다.

걸어가던 유흥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신과 사부님이 의술을 시행하며 많은 민초들을 병에서 구해내고 있었지만 한양내의 거리에는 헐벗고 굶주린 인원들이 병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중에 희망이 있었다.

새로 임금이된 주상전하는 한양의 백성들에게 영웅처럼 숭배되었다.

그것은 새임금이 즉위를위해 한양으로 도착했을때 도성의 민초들에게 희망적인 연설을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초들에게 제대로 와닿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될것인지.”

유흥기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할수있는건 별로없었다.

한양에있는 병든 민초들을 치료하며 의술을 행하는것.

그것을 천직으로 생각하던 중이니까 말이다.

그럴즈음 유흥기의 시선이 어느곳으로 향했다.

도성내 사거리에 걸려있는 벽보-

한자와 정음(한글)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유흥기의 시선을 끌었는지 모르겠다.

유흥기가 바쁜 걸음으로 다가갔다.

의술서적을 읽고하는 그였기에 언문병기가 없다해도 한자를 읽는것은 충분했다.

잠시 내용을 살펴본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처음에는 충격.

뒤에는 미소가 드리우며 환호성까지 내지를뻔 했다.

“이게 정말인가? 전하께서 이런것을 하실줄이야?”

유흥기는 믿을수 없었다.

한문과 언문이 병기된 벽보.

거기에는 외국으로 파견하는 유학생들을 선발한다는 공지가 있었다.

선발하는 영역과 분야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유흥기가 몸담고있는 의술분야도 보였다.

상당수 영역이 의술을 포함해 실용적인 학문에 대한 것들이다. 사대부와 양반집의 자제들이 본다면 하찮은 잡학이나 배우기위해 외국까지 사람을 보낸다고 조롱을 할것이다.

서양의 의술에대한 갈망이 가득했던 유흥기에 그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유흥기가 멈칫했다.

사부님에대한 부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떻게할까 망설였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수는 없었다.

사부의 지시를 거스르는 한이 있다해도, 그에대한 처벌은 나중에 받기로했다.

“동양의술과 서양의술을 접목하면 앞으로 수많은 민초들을 구해낼수있다. 이것은 전하께서 비천한 소인에게 내려준 은혜다. 놓칠수 없는 것이다.”

결심을굳힌 유흥기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 * *

수백의 군마들이 나아갔다.

선두에는 지르칼손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인 누데치가 있었다.

그의 눈빛은 흉악하게 변하였다.

앞으로 진행될 살육과 약탈에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의 기병도에의해 반항하던 조선인들이 수십명이나 목이 잘려나갔다.

지르칼손의 부하들에서 누데치는 잔인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그럼에도 지르칼손에게 총애를 받았다.

이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본래 지르칼손은 연경(북경)에서 활동했다.

그것도 연경을 중심으로 편성된 중앙군에 속하는 직례군의 팔기에 있었다.

이처럼 출세가도를 달리던 지르칼손 이였지만 이후에는 만주지역으로 좌천되었다.

그리고 지르칼손이 좌천되어 만주로 왔을때에도 누데치는 상관을 따랐을 정도로 제법 의리가 있었다.

이때문에 지르칼손은 누데치에게 정예기병을 주었고 조선인들에대한 약탈과 습격을 맡겼던 것이다.

“이번에 습격할 곳은 어디인가?”

“양강촌이란 조선인들의 촌락입니다. 동간도에있는 조선인들의 마을에서는 가장 큰 곳이고, 꽤 많은 숫자의 주민들이 살고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사냥감들도 충분히 있겠군. 안그래도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몇개의 마을이 텅 비어있어서 노예로 잡아갈 조선의 계집들과 애들도 찾아내지 못했는데 말이야.”

“하긴 조선의 계집들과 애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파는것이 돈이 더 많이 되기는 합니다.”

“당연하지.”

부하의 대답에 누데치가 히죽거렸다.

이들이 조선인 마을을 습격하는 이유는 바로 노예들을 사로잡기 위한것.

그리고 조선인들이 피땀흘려 수확한 곡식과 식량들은 추가로 얻어지는 약탈품들이다.

얼마후 선봉으로 나갔던 기병들이 도착했다.

“누데치님! 전방에 상당히 큰 조선인들 마을이 있습니다.”

“역시 네가 말한 양강촌이군.”

누데치가 만족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이윽고 그가 후방에서 따라오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습격을 개시한다!”

“와아아!”

고함소리가 터져나왔고 수백의 팔기병들이 속도를 높이며 나아갔다.

그러나 마을에 도착하고 난뒤에 누데치의 표정은 구겨졌다.

주민들만도 최소 수천명은 될거같은 규모의 마을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거야? 더러운 조선놈들이 왜 하나도 보이지 않는거야?”

“그놈들이 우리가 온다는걸 미리알고 도망친것이 아닙니까?”

“그럴수도 있지만 놈들이 뛰어봤자 벼룩이다.”

누데치가 미간을 꿈틀거렸다.

“이렇게되면 지르칼손님에게 바칠 사냥감들이 턱없이 모자라는데.”

“어쩌면 마을내부 다른곳에 숨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군! 일단 흩어져서 수색을 개시해라.”

누데치가 명령하자 수백명의 청나라 기병들이 돌진했다.

기병들 중에는 말에서내려 마을의 집과 문을 부수면서 쳐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주민들은 한명도 없었다.

약탈해갈 식량이나 어떤재물도 찾아내지 못했다.

“개같은 놈들! 이렇게 나온다면 맛을 보여주마. 마을에 불을 질러라! 우리를피해 도망친다면 어떤꼴이 되는지를 보여주마.”

“불을 질러라!”

명령을받은 부하들이 행동을 시작했다.

근처에있는 집에다가 불을 놓으려고 움직이던 기마병이 흠칫했다.

조금전 집뒤에서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웬놈이냐?”

소리를 지르고 검을 뽑아들며 돌진해 나갔다.

쑤욱하며 그림자가 나타났다.

상대는 총을들고 있었다.

하지만 기마병은 겁을먹지 않았다.

병자호란때도 청의 기마병들은 화승총으로 무장했던 조선군을 마음껏 유린했다.

“조선군의 화승총은 장전도 느리고 사거리도 얼마안되지. 청기병을 상대로 총을 겨누다니!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기마병이 속도를 높이며 돌진했다.

그런데 화승총을든 상대는 웃고있었다.

군마가 당장이라도 짓밟을듯 쇄도하는데 화승에 불조차 붙이지 않은 상태다.

거리가 좁혀지며 기마병은 조선인이 들고있는 화승총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병전투의 전술

“뭔가 이상한데...”

하지만 적 기마병은 멈출수 없었다.

지금은 돌진해서 베어버리는게 최상.

그때 화승에 불조차 안붙인 조선인이 화승총을 찰나간에 들어서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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