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169)

선배의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경석은 다르게 생각되었다. 그도 새로운 견문을 몰랐을때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고 조선에게는 청국과 왜국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중국이나 왜국말고도 더많은 국가들이 존재했다.

바깥세계는 너무나도 크고 광대했다.

영길리의 말을 틈틈히 배우면서 구라파에있는 영길리국이 얼마나 강력한 과학기술과 해군을 가지고 있는지도 느끼게 되었다.

‘기회를얻어 구라파에 간다면 더많은 세계를보고 배울수 있을텐데...’

오경석의 마음속에는 희망과 도전정신이 솟아올랐다.

얼마후 오경석은 선배를통해 해외에 파견할 유학생들을 선발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냈다.

예조의 하부에 신설된 자그마한 기관이였다.

그곳으로 향하면서 오경석은 마음이 두근거렸다.

걱정도 앞섰다.

당연했다.

해외로 공부하러 가는것인데 비용만도 엄청날 것이다.

이제 신임역관으로 활동하는 그에게는 이런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포기할수 없었다.

일단은 어떤곳은지, 혹시라도 자신에게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얼마후 그곳에 도착한 오경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해외로가는 유학생들을 선발한다는 곳이기에 집안좋은 양반집 자제들이 몰릴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이런 오경석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곳은 한산했다.

참가신청을위해 모여든 사람들 상당부분이 권세좋은 양반집의 자제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허름한 옷에 갓끈을맨 몰락한 양반인 잔반들도 있었다.

자신처럼 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더 신분이낮은 상인집의 자제들이나 농민출신도 있었다.

“어떻게 오셨소?”

“여기가 구라파와 미주지역으로 파견할 유학생들을 모집한다는 곳입니까?”

“그렇소.”

하급관리가 대답하며 오경석을 위아래로 보았다.

눈빛은 하대하는 것이 아닌 흥미를 나타내는 표정이다.

살펴보던 하급관리가 말했다.

“신청한다고 모두가 갈수있는건 아니요. 이번에 선발할 유학생들 경우에는 저마다 특기와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유학생으로 가게되면 어떤것을 배우고 싶은지 그리고 자신의 포부를 제대로 밝힐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요.”

“그렇군요.”

관리의말에 오경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이미 역관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다만 그것으로 성에차지 않았다.

더 큰 세계.

다양한 외국의 언어를 배우고 조선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후 오경석은 신청을받는 관리에게 자신의 목표를 설명했다.

“놀랍군요. 당신은 역관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중이고,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새로운 곳으로가서 경험과 공부를 하고싶다는 뜻이요?”

“그렇습니다. 소인의 목표는 구라파의 말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앞으로 조선의 발전을위해 중요한 역활을 할것으로 확신합니다.”

오경석의 대답을듣자 그곳에있는 3명의 담당자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철종과 예조판서의 지시를받아 특별히 임명된 관료들이다.

이원범이 직접 그들과 면담하였다.

이원범은 유학생 선발관들에게 중요한 지침을 내렸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재능과 열정이있는 인재를 선발할것.

그들이 선발할 인원들과 각각의 분야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지시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중에는 오경석이 지원하는 외국어와 역관분야도 있었다.

이원범이 보기에도 조선에는 영어나 프랑스어, 그리고 프로이센의 독일어등까지... 유럽국가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수있는 역관들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유럽국가의 언어들을 할수있는 역관들을 대량으로 배출하고 키워내는건 중요했다.

역관들의 지원을통해 이후에도 유럽에서 공부하고 실력을키울 유학생들을 관리할수 있다.

그외에도 조선의 힘이커지고 해외진출이 진행되면서 역관들은 전세계를 상대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다수의 역관들은 외국의 선진기술이나 서적, 그리고 다양한 분야들의 번역에도 참가할수 있다.

지식의 습득중에 빠른것이 바로 서적이다.

외국의 서적들이 신속하게 번역되고, 그것이 조선에있는 학생들에게 공급된다면, 기술발전과 전파속도는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이원범은 역관들의 육성을통한, 그리고 번역을통한 지식과 기술의 전파와 공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지원신청을한 오경석같이 뛰어난 역관들은 결코 놓칠수없는 인재들이다.

오경석은 상당히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에 파견할 유학생들중 당신같이 뛰어난 역관들이 더 많이 참가했으면 좋겠는데 그 부분에대해 힘을 써줄수 있겠는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오경석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놀라운 사실도 들었다.

학비를 포함해 유학생활의 비용에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모든것은 국가에서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양반집의 자제들은 참가신청을 안했다.

오경석같은 중인이나 상민 그외에 몰락한 잔반들의 자제들이나 신청을하는 수준이였다.

권세있는 양반가의 자식들에게 있어 대국이라 칭하는 청나라도 아닌, 기껏해야 서양 오랑캐의 국가로 유학을 간다는건 모욕이였다.

그들중에 몇명은 해외유학생의 파견에대한 소식을 들었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유학생들을 이후에 국가에서 등용한다거나 과거시험에 특혜를 준다는 발표도 없었다.

이부분은 철종이 일부러 숨겼던 것이다.

이원범의 본심은 유학생들을 장차 조선의 핵심적인 관료나 인재로 사용할 계획이다.

그것을 미리 밝힐 필요는 없었다.

철종과 뜻을 같이하는 수뇌부만 알고있으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얼마후 오경석의 주도로 역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던 하급관리들중 일부가 해외유학생의 신청을 하였다.

그들에게 동료인 오경석은 뛰어난 인재였다.

오경석이 모든것을 던지고 새로운 세상을향해 뛰어들었다.

때문에 그들도 오경석과함께 제 2 의 인생을향해 나아간 것이다.

* * *

두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번갈아가며 망치질을 시작했다.

땅! 따당! 공기를찢는 굉음이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두명다 20대의 청년들이였다.

우측에서 망치를 내려치는 사내가 더 어려보인다.

번갈아 내려치는 망치들이 쇠를 두드리는 간격은 일정했다.

오랜동안 호홉을 맞춰온거 같았다.

망치가 낙하하는 타격점도 정확했다.

두명의 망치질이 더욱 효과를 발휘하는건 앞쪽에서 집게로 쇠덩이를 앞뒤로 뒤집는 중년사내의 덕분이다.

처음에는 시뻘겋게 변해있던 쇠덩이가 여러차례의 망치질로인해 모양이 바뀌었다.

중년사내는 그것을 좌우로 보더니 열기가 치솟고있는 화로내부로 집어넣었다.

“좋은쇠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에 달궈진 쇠가 어떤 모양이 되기를 원하는지 알아야 하는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두명이 대답했다.

중년사내인 송진우는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

1년 365일.

매일마다 거르지않고 망치질 소리와 풀무의 굉음이 흘러나오는 이곳은 한양에서 유명한 대장간이다.

서민들에게는 송가네 대장간이라 불리는 곳인데 여기서 제작된 농기구들은 어느곳보다 튼튼했다.

낫과곡괭이 그리고 호미를 포함해서 무쇠밥솥 등까지... 쇠로된 것이면 못만드는게 없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송진우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다.

어릴때부터 대장간일을 도왔다.

송진우는 두명의 아들들에게 쇠를 다루는 기술을 가르쳤다.

수많은 사람들을 이롭게하는 대장간 일을하고 많은 서민들에게 도움을주고 있었지만 대장장이인 그들의 신분은 비천했다.

조선 최고의 쇠를 만들어내는 장인이라해도 공자왈 맹자왈 주절거리며 헛소리나 떠드는 유생들과 비교하면 발가락의 때만큼도 못한처지다.

송진우와 두아들은 자신들의 일에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좋은기술을 갖고있고 노력해도 어차피 지금의 조선사회에서는 비천한 신세로 살다가 죽을 뿐이였다.

“너희들은 쇠를 만지는것이 좋으냐?”

“물론입니다. 아버지.”

첫째인 송대평과 둘째인 송대진이 동시에 대답했다.

지금까지 불평도없이 자신의 일을 도와온 아들들이다.

송진우는 얼마전부터 회의감이 들었다.

비천한 대장장이 일을 두명의 아들에게까지 물려줘야 하는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대장장이 인생을 시작한 두명의 아들들이 다른것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얼마후 한명의 사내가 대장간을 방문했다.

“오늘도 여전하구만.”

“어서 오십시요. 나리.”

송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들어온 중년사내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건장한 체격이면서 발걸음도 날렵했다.

송진우는 중년사내에게 은혜를 입은적이 있었고 지금은 존경하고 있었다.

허세나 부리고 실력없는 무관들과는 다르게 대장간을 찾아온 훈련도감의 무관인 박정식은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박정식이 대장간을 찾은건 또다른 이유다.

“저번에 부탁한 환도는 어떻게 되었나?”

“나리를 기다리던 참이였습니다.”

송진우가 대답하며 대장간의 안쪽으로 걸어갔다.

잠시후 검집에 꽃혀있는 환도를 가져왔다.

박정식은 뛰어난 무예를 지녔고 틈틈히 수련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검술 훈련에도 집중했다.

그의 검술은 단칼에 여러개의 굵은 대나무를 베어버릴 수준이였고 쾌검으로 속도도 빨랐다.

그러던중 오랜동안 사용해왔던 환도가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다.

기왕에 검이 부러진 상태라 박정식은 이번기회에 송진우를통해 새로운 검을 제작해 달라고 부탁했다.

박정식은 송진우의 실력을 알고있었다.

그가 대장간에서 민초들을위해 여러가지 농기구들도 제작하지만 도검의 제작에도 탁월하다는걸 말이다.

박정식은 다른 도검장인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더 후한값을 제시했고 송진우는 그것에 감사했다.

이윽고 송진우에게 환도를 받아든 박정식이 뽑아보았다.

스르릉- 기분좋은 쇳소리가 울리며 검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냥감들이 없다 ???

“정말로 대단하군.”

“아닙니다. 소인에게는 과분할 따름입니다.”

송진우가 머리를 조아렸다.

박정식은 그것이 겸손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았다.

오랜동안 검술을 닦아온 박정식은 손에쥔 환도가 어떤 보검보다 뛰어나다는걸 확신했다.

새로 제작된 환도의 검날은 청명했다.

이것은 송진우가 쇠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는걸 의미했다.

“정말로 아까운 솜씨로군.”

“소인의 아들 녀석들도 이번기회에 여러가지를 배울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군. 자네와 아들들은 조선에서 최고의 실력을지닌 대장장이들이고 쇠를 다루는 인재들이네.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기회가 없다는것이 아쉽....”

그렇게 말하던 박정식이 송진우를 보았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네들은 저자거리에 붙어있는 방문을 본적이 있는가?”

“어떤 내용입니까?”

“지금 예조와 공조에서 유학생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이있네.”

“그것이 정말입니까? 하지만 유학생이라면 보통 지체높은 유생분들이 대상인데 저희같은 아랫것들이 가당치도 않습니다.”

“아닐세. 예조와 공조에서 선발할 학생들은 유생들이 아니라 잡과에 관련된 사람들일세. 그렇게 선발된 유학생들은 다른 나라로가서 공부를하게 된다고 하는데...”

“......”

박정식의 말에 송진우의 표정은 몇차례나 변하였다.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얼마후 박정식의 설명을듣자 송진우와 두명의 아들들은 경악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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