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런 상황이니 영국과 유럽에 유학생들을보내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고 조선에와서 직접 가르칠 인원들도 필요하다.
그뿐인가?
조선에도 솜씨좋은 대장장이들이 많지만 야금학이나 금속공학을 제대로익힌 경우는 없었다.
지금 유럽과 미국에는 증기선과 과거 대항해시대의 범선들이 혼합되어 사용중이다.
어쨌든 조선의 선박기술에비해 대양항해를 하기에 적합했고, 따라서 판옥선보다 큰 배를 만들고 관리하는 기술도 배워야한다.
이것저것 필요한것을 넣다보니 1차로 영국에보낼 유학생들의 숫자만도 단번에 250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250명이라해도 현재는 자금이 충분히 모였으니 가능하고 말이지.
“예판은 먼저 1차로 출발할 250명의 인원들을 선발하도록 하시요. 먼저 지원자를통해 받고 그 지원자가 제대로 기초지식이 있는지를 확인한뒤 최종명단에 넣는 절차대로 하십시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예판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던중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중요한 것이 빠졌는데...”
“소신이 보기에는 전하께서 하명하신 부분에 크게 문제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250명이나 되는 인원들을 선발해 보내는 것인데... 이들을 관리하고 책임질 사람을 아직 뽑지 못했다는 것이군요.”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예조판서 장우영이 바로 이해했다.
250명이나 되는 숫자다.
그것도 조선에서 먼 유럽, 영국에서 지내면서 배우고 기술을 익히는 것인데... 각자 알아서 하라고 놔둘수는 없었다.
명색히 국제유학생단-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면 당연히 단장과 부단장이 필요한 법이지.
기왕에 다수의 인원들이 유럽과 영국에 가는 것이라면 이들을통해 조선에 필요한 비밀활동이나 여러가지를 해낼수 있다.
“어떻소. 예판께서 보기에 적당한 인물들이 있습니까?”
“지금 당장은....”
잠시 망설이던 장우영이 반색하는 표정이 되었다.
“소신이 추천하고 싶은 인물이 2명 있습니다. 한명은 과거 조정에서 활동하셨던 대학자인 정약용의 후손이고, 다른 한명은 박제가의 후손입니다. 둘다 입신에 뜻이있어 공부를 하였지만 운이없어 아직 과거에 급제조차 못했습니다. 현재는 초야에 뭍혀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정약용과 박제가의 후손이라....”
일단 성리학 탈레반같은 꼰대들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무작정으로 선임할수는 없으니 예판에게 그들을 창덕궁으로 불러오라 시켰다.
최소한 면접을통해 유학생단의 단장과 부단장을 맡길 수준이 되는지를 판단해야 하니까 말이다.
* * *
해가 저물어가는 마을의 풍경.
그러나 양강촌에 살고있는 조선인들은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했다.
양강촌이 동간도에서 가장 크고, 농업과 상업이 번성한 곳이지만 언제 불타버리고 박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촌장님!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들도 당하는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놈들에게 약탈당하고 불태워진 조선인 마을과 한족 마을만해도 2-30여곳이 넘어갈 정도입니다.”
주민들의 외침에 촌장인 최재민도 갈등했다.
양강촌을 키우기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던가?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개간했다.
그리고 양강촌을 만들고 다수의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서 정착했다.
양강촌이 개간해서 만들어놓은 논밭만해도 주변으로 수십리에 이른다.
이때문에 양강촌 주민들은 열심히 일했고 농사를 지으면서 조선에서 지낼때보다 풍족하게 살았다.
더이상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수확을 한뒤 여유로남는 쌀과 농작물, 그리고 약재까지 팔면서 풍족한 마을로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가 찾아왔다.
조선인들을 멸시하고 노예로 생각하는 만주족들 때문에 말이다.
“자네들의 마음은 알지만 여기를 떠나서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그리고 힘없는 어린애들과 여자들은 또 어떻게하고.”
“.....”
촌장의 대답에 모두가 입을닫았다.
그들에게도 달리 선택이 없었던 것이다.
동간도 일대와 두만강 북쪽을 휩쓸고 다니는 만주족 약탈부대의 공포-
그것은 양강촌까지 전해졌고 다른 마을에서 피난온 사람들도 있었다.
최재민과 주민들이 탄식하고 있을때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촌장님! 마을쪽으로 기병부대가 출현했다고 합니다.”
“그럴수가...”
아직 대책도 세우지 못했는데.
최재민이 몇몇 주민들과함께 달려갔다.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때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쇄도해오는 군마들이 보였다.
“즉시 타종을 쳐라!”
“알겠습니다.”
땡땡땡- 양강촌 내부로 울려퍼지는 종소리.
그때문에 저녁을 준비하던 아낙네들부터 시작해 모두가 혼란에 빠져들었다.
촌장인 최재민은 방어를위해 젊은이들을 모았다.
만주족의 약탈부대가 이렇게 빨리 올줄은 예상못했다.
몇몇은 숨겨두었던 장창과 곡도를 꺼내면서 준비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미 여러곳의 조선인 마을들이 당해버렸고 폐허로 변했다.
그래도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봐야했다.
최소한 여자와 아이들이 도망칠 시간이라도 벌어야 하니까 말이다.
이처럼 촌장인 최재민과 주민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있을때.
돌진해오던 기병부대의 선두에서 누군가가 빠르고 달려왔다.
얼마후 그 모습은 촌장인 최재민에게 낯설지 않았다.
“가만, 저 친구는 장산국이 아닌가?”
“맞습니다! 양강촌에도 자주왔던 상인, 장산국이 맞습니다.”
주민들이 수근거리는 사이 말을타고 달려오던 장산국이 외쳤다.
“양강촌 주민들은 안심하십시요! 지금 오는것은 조선군 입니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으시요.”
“조선군이라고 설마?”
“진짜다! 조선군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
“이제 우리들은 살았다.”
두려움과 공포로 얼어있던 주민들이 소리쳤다.
양강촌을향해 진격해오는 조선군 부대의 모습.
그들이 과거에 알고있던 조선군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처음본 무기들을 등뒤로 매었고 군마를타고 나아가는 위세도 당당했다.
* * *
“그것이 정말입니까?”
“그렇소. 이제부터 조선군이 동간도의 양강촌을 포함해서 주민들을 지켜줄 것이요. 동시에 이것은 새로 등극하신 전하의 어명에따른 것입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최재민이 남쪽과 한성쪽을향해 절을 올렸다.
촌장의 모습을보며 마을 주민들도 감사를 표시했다.
홍상준은 이것을보며 한성에서 여기까지 온 보람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임금이 자신에게 내린 명령이다.
조선인들을 보호하고 약탈과 범죄를 저지른 만주족을 응징하는것.
잠시후 홍상준의 옆으로 부하가 다가왔다.
“어떤가? 지르칼손 놈의 부대가 여기로 올거 같은가?”
“현재까지 수집된 첩보들을 볼때 확실하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지르칼손의 부대 전체가 오지는 않겠지만, 그놈의 지시를받은 약탈부대가 양강촌을 그냥 지나칠리는 없습니다.”
“하긴 양강촌이 동간도에서 가장 큰 촌락이고, 여기있는 주민들의 숫자는 물론이고 수확한 식량들도 상당히 많으니까.”
“뿐만아니라, 놈들은 조선의 여자와 아이들을 끌고가서 노예로 파는 짓거리도 하고 있습니다.”
“개같은 놈들이...!”
홍상준이 주먹을 쥐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양강촌의 여자와 아이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모여있다.
저들을 지키는것이 자신의 임무였고 이제는 강력한 신무기를통해 자신감도 얻었다.
양강촌에 들어온 기병부대, 그리고 후에 도착한 조선군의 보병부대들도 군기시에서 개발한 기병총과 보총의 사용법까지 익혀둔 상태였다.
병력의 숫자에서는 상대보다 적어도 판세는 더 유리했다.
잠시후 홍상준이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주민들을 근처의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매복작전을 개시한다! 이곳이 만주족 놈들의 무덤이 될것이다.”
“알겠습니다.”
지시받은 병사들이 행동을 시작했다.
촌장인 최재민을 포함해 양강촌에있는 청년들 중에도 싸우기를 원하는 인원들도 나왔다.
홍상준은 그들을 격려했다.
“자신들의 마을을 지키겠다는 그대들의 뜻을 알겠소. 여봐라! 저들에게도 남아있는 현무철포를 지급하고, 솜씨좋은 포수출신의 병사들을 붙여서 훈련시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홍상준의 지시를받자, 대기중이던 병사들이 나섰다.
기병총인 백두철포를 사용하는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지만, 보총인 현무철포는 사용법도 간단했고,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수 있었던 것이다.
훈련이 진행되는걸보며 홍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양강촌에서 북쪽을 보았다.
얼마후면 저곳에서 만주족 약탈부대가 올것이다.
그리고 여기가 적들의 무덤이 되는것이다.
조선제일의 역관과 대장장이
제법 두꺼워 보이는 서책-
오경석이 그것을 펼쳐보았다.
하지만 내부에 적혀있는건 조선에서 쓰이는 한자들이 아니다.
통상 알파벳-이라고 불리는 서양의 문자다.
몇장을 넘기자 지도들이 나온다.
이것을보며 오경석은 깊은 신음을 삼켰다.
조선의 밖에있는 더 넓은 세계.
“아직도 서역인들의 말에대한 배움이 부족해 제대로 읽고 말할수가 없구나.”
오경석이 살펴보는 서책은 청나라에온 서양인들, 또는 선교사들이 소지하고 있던 것이다.
다만 오경석이 직접 얻은건 아니다.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북경)에는 서양의 책들을 비밀리에 파는 서점들이 있었다.
이런 서적들중에 일부는 청나라를 왕래하는 상인들을통해 가끔씩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오경석은 비싼 돈을 주고 겨우 한권을 구입했던 것이다.
어떻게 책은 얻었는데 자신의 능력으로는 단지 일부만 겨우 해석이 가능했다.
잠시 한숨을 내쉬던 오경석이 그것을 서랍에 넣었다.
얼마후 오경석이 알고지내던 역관들중에 한명이 그의 방을 찾아왔다.
“경석이. 자네 혹시 소식 들었는가?”
“어떤 것입니까?”
“나도 얼핏 소문으로 들었는데 말이야. 지금 한성에서는 외국으로 공부하러갈 유학생들을 모집중이라고 하더군.”
“외국이라면 혹시 청국입니까?”
“그건 아닐세. 뭐라더라? 구라파에있는 여러 국가들이라고 하던데 영길리, 그리고 또...”
“구라파에는 영길리(영국), 불란서(프랑스), 보로셔(프로이센), 화란(네델란드), 서반아(스페인), 오지리(오스트리아)등을 포함해 많은 국가들이 있습니다.”
“역시 잘알고 있구만. 자네는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고있는가?”
“관심이있어 견문으로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청국말을 빠르게 배우더니. 역시 다른 국가들의 견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구나.”
“그런데 조금전 하신 말씀이 정말입니까? 한성(한양)에서 구라파에 갈 유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는거 말입니다.”
“물론이네.”
그말을듣자 오경석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제 약관(20살)의 나이였지만 호기심이 많았다.
어릴때 외국어를 배우고 말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오경석은 16살 나이에 중국어를 능숙하게 말하였고 주변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뒤 운좋게 추천을받아 역관들을 배출하는 기관에서 중국어와 왜어(일본어)를 배우면서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다.
기회가 닿을때에는 영길리의 말이나 단어를 배우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어나 왜어에비해 영길리의 말은 꽤 생소했다.
발음이나 모든것이 생소했다.
그럼에도 하나씩 배울때마다 흥미가 생겼다.
“좋은 소식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구라파(유럽)으로 가서 그곳의 국가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를 학습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양이(서양 오랑캐)들의 말을배워서 뭣에 쓴다고 하는거야? 어차피 역관시험에도 나오지않는 것들인데. 자고로 역관으로 성공하고 싶으면 청국의 말과 왜어를 잘하는게 더 중요한 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