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강화도는 섬이고 해안쪽에 있으니까.
따라서 임금이 어린시절에 이양선을 봤다해도 저들에게는 납득이 되는것이다.
“이제부터 과인이 그대들에게 강화도에서 지내면서 본 이양선들의 모습을 그려줄 것이네. 자네들은 과인이 그려준 그림과 설명에따라 목공기술을 이용해서 모형으로된 배들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네. 어떤가 가능하겠나?”
“전하의 어명을 신명으로 받들겠습니다.”
최덕진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윽고 송내관을 시켜서 종이를 가져오게 하였다.
밀덕의 지식을 사용하여 현재 유럽에서 운용중인 선박들의 모습을 차례로 그려나갔다.
현재 유럽에서 해상운송에 사용하는 그리고 대양을 항해하는 함선들의 모습은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었다.
지금 1850년대가 증기선의 시대라고 하지만 서구열강들이 사용하는 배들이 모두 증기선인건 아니다.
일종의 과도기 상태라고 볼수있다.
따라서 그전에 사용하던 대형 범선부터 시작해서, 석탄을 적재하고 증기기관을 가동시키는 외륜증기선들까지 다양하다.
한편 증기기관이 장착되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대형범선처럼 항해용의 돗대와 삼각돛을 사용하는 혼합형인 기범선들 까지도 있었다.
“어차피 자네들이 조선군의 판옥선은 알고있으니, 그 부분은 생략하겠네. 다만 판옥선에 대한것도 목공을 이용해서 모형으로 만들게.”
“명심하겠습니다.”
최덕진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결의다.
이윽고 첫번째로 그린건 대항해시대를 주도했던 대형범선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통상 클리퍼(Clipper)선박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조선수군의 판옥선에 비하면 훨씬 대형이다.
웬만한 클리퍼 선박이라해도 1000톤은 가볍게 나갈 정도다.
그에반해 조선수군의 판옥선은 중대형이라해도 180톤에서 200톤이 한계다.
때문에 그들에게 클리퍼선이 조선수군의 판옥선에비해 얼마나 큰지를 설명했다.
내가 원하는건 판옥선과 클리퍼선의 크기차이를 모형 선박에서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이걸 본 사람들이 판옥선이 서양의 선박과 함선에비해 얼마나 왜소하고 소형인지를 실감할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가? 과인이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좋지못하여 이양선의 모습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
“아니옵니다. 전하! 자세한건 이해하기 힘들지만 전하께서 보여준 그림을통해 저 대형범선이 조선의 판옥선과 어떻게 다르고, 저 3개의 돗대들과 곳곳에 붙어있는 삼각형의 돛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파악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목공예에 관련된 장인이지만 최덕진은 선박에대한 이해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클리퍼선도 기본적으로 판옥선과 비슷한 목재로 만든 것이고 돛을 사용해서 나아간다.
때문에 특징적인 부분들을 그려주고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자 금방 알아들은 것이다.
문제는 역시 그다음에 설명해줄 증기선들이다.
오히려 증기선들 모습은 복잡한 돛대가있고 삼각돛이 여러곳에 달려있는 대형범선 클리퍼 선박들보다 표현하기가 쉬웠다.
“여기 이렇게 조금전 그려준 대형범선과 비슷한 모습인데, 대신에 저기에는 돛대가 삼각돛이 없고, 대신 양쪽에 커다란 수차가 달려있네.”
“수차라면 어떤 것입니까?”
“그러니까 물레방아간에서 쓰는 수차말일세. 이렇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사옵니다. 그런데 어째서 배에 저렇게 큰 수차를 붙이는 것입니까?”
“사실은 저 수차들이 움직이면서 바닷물을 헤치고 또한 대형범선보다 더 큰 기선을 나아가게 하는것이지.”
“그렇다면 저 큰 수차들을 돌리는것은 배안에있는 가축이나 말을 쓰는것입니까? 아니면 노꾼이나 선원들을 이용하는 것입니까?”
“과거에 구라파나 양이들의 배중에는 그런식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지. 하지만 양이들중에 한명인 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이 증기기관이란걸 만들어낸 뒤에는 사람이나 가축을 이용하는것이 아닐세. 석탄에 불을붙이고 물을 가열하여 나오는 증기의 힘을 사용하지. 그리고 이 증기의 힘은 정말로 강력해서 판옥선보다 10배나 무거운 기선도 움직이게 만들수 있네.”
“.....”
나의 설명에 최덕진의 입이 벌어졌다.
증기기관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려준 그림을통해 모형선박을 물위에서 스스로 갈수있게 하는 방법은 이해했다.
물론 모형선박에 증기기관을 넣는것이 아니라 대신 다른 방식을 쓰지만 말이다.
한동안 설명하느라 입이 아프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었다.
이제 최덕진은 임금인 내가 원하는 선박모형이 정확히 어떤것들인지를 파악했던 것이다.
“최덕진, 자네의 솜씨를 믿겠네. 이번일을 잘 해내면 후하게 상을 내릴것일세. 물론 앞으로도 여러대의 선박모형들을 계속 만들고 해야하니, 계속 수고를 해주게나.”
“전하! 소인의 모든것을 걸고서 반드시 완성시키겠습니다.”
최덕진과 제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완성될 선박모형들이 기대된다.
그리고 조금전에 최덕진에게 말한대로 이번만으로 끝나는건 아니다.
원래 제대로된 해상작전이나 계획을 세울려면 이런 모형선박들과 함선들을 이용하는것이 필수다.
과거 임진왜란때의 충무공(이순신)께서도 판옥선과 거북선의 모형들을 만들어 작전을짜고 일본수군들을 상대했던 것이다.
이런걸보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시대를 앞서간 전략전술가였다.
이제부터 조선수군도 그처럼 강력한 대양해군이 될것이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만들것이다.
동시에 그 야망을위한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된 상태니까.
* * *
콰두두두! 굉음을내며 10명의 기병들이 달려나갔다.
흙먼지가 튀어오르고 기세는 어느때보다 강렬했다.
회령숙영지에는 병사들의 훈련을위한 넓은 공터가 있었다.
이곳에는 기병들을 포함해 보병들의 진법과 전투기술들을 연마하는 곳이다.
돌진하는 기병들의 전방으로 목표물이 보인다.
돌격해가는 기병들의 무장은 특이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창이나 방패를들고 앞서 나가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손으로 말고삐를 쥐었고 다른손에는 짧은 총신을가진 총포가 있었다.
훈련을 지휘하던 군관이 소리쳤다.
“거총!!!”
처처척- 돌진해가던 기병들이 총포를 들었다.
얼마전 회령숙영지에 도착한 홍상준 부대가 가져온 백두철포들이다.
쌍열총신으로 되어있지만 총신의 길이가 화승총에비해 훨씬 짧았다.
때문에 기병들이 한손으로 들고 사용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신호를받자 기병들이 백두철포를 한손으로 들었다.
전방에있는 목표를향해 발사했다.
탕! 타타탕! 공기를 진동시키는 굉음이 터지며 탄환이 쇄도했다.
발사된 백두철포의 탄환들이 표적지를 관통했다.
첫번째 목표를 지나치며 기병들은 속도를 유지했다.
곧이어 2번째 표적지들이 나왔다.
조준을 완료한 기병들이 두번째 표적을향해 탄환을 발사했다.
이번에도 명중이다.
쌍열총신을지닌 백두철포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만호 어르신! 한양에서 가져온 백두철포의 위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부하의 말에 신재식도 동의했다.
중앙에서 신무기를 가져왔다고 들었지만 이정도 위력일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기병이 강력한 철포를 마음껏 사용할수가 있다니?
그것도 달리는 말위에서 2발이나 연속으로 사격해서 적을 격멸시킬수 있었다.
말위에서 백두철포를 재장전 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였다.
한명의 기병당 2정의 백두철포를 휴대했다.
그렇다면 장전을 해놓으면 4명의 적들을 차례로 섬멸시킨다.
그뒤에 상황에따라 말에서내려 신속하게 다음 장전을 마치면 수차례에걸쳐 더많은 적들을 상대할수 있었던 것이다. 기병이지닌 속도와 기동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게 가능해진다.
무관으로 잔뼈가굵은 신재식은 단번에 가능성을 파악한 것이다.
기병들의 사격연습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쪽에서도 총포의 굉음이 울린다.
그곳에는 10명씩 줄을 맞춘 보병들이 새로 지급받은 보총을 장전하고 있었다.
“장전개시!”
구령이 떨어지자 보병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총구에 화약이 들어있는 1회용의 약포를 입으로 찢으면서 털어넣었다.
이것을보며 기존의 화승총을 사용하던 보병들은 감탄했다. 이전에는 화약의 양을 조절한다고 신경이 쓰였고 잘못해서 많이넣거나 적게넣는 경우도 생겼다.
그런데 한지로만든 약포에는 항상 일정량의 화약이 있었기에 너무나도 간편했던 것이다.
탄환을 넣은뒤에는 약포에 같이 붙어있던 나무를 넣었다.
이것은 총신의 구경과같은 크기로 깍아진 나무조각인데 뒤쪽에는 오목하게 홈이 파여져 있었다.
이것이 총구안으로 들어가면서 총구에 장약이 제대로 모이도록 해준 것이다.
장약이 폭발시에 압력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밀봉하는 기능도 있었다.
과거 조선군이 사용하던 화승총에는 장약의 폭발압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고 압력가스가 새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개량된 보총은 그런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다.
그뒤에 얇은 헝겁으로 둘러싼 탄환을 넣었다.
헝겁에싼 탄환은 총신내부에 빡빡하게 밀착되기 때문에 보총을 아래쪽으로 내려도 탄환이 총신을따라 흘러나오는걸 막아주었다.
마지막으로 뇌홍(뇌관)을 끼우고 노리쇠를 당기는 절차가 끝나면 언제든지 총알을 발사할수 있는것이다.
“최포수! 뇌홍이란것 정말로 신묘하구만.”
“그러게 말일세. 화승심지를 사용할 때에는 너무나도 불편하고, 장전도 힘들었는데 이거야말로 노리쇠를 당겨놓고 땅-하고 쏘면 바로 나가버리니 말이야.”
동료의 말에 최호식이 대답했다.
최호식은 포수로서 활동했고 사격술도 뛰어났다.
이전에 사용했던 화승총은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다.
어떤 경우에는 화승심지를 붙이느라 사냥감을 놓친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사용중인 보총은 엄청난 신무기였다.
조선군은 동양에서 아니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퍼커션캡(뇌관)방식의 머스켓을 개발하고 사용중인 유일한 국가인 것이다.
이원범이 군사지식을 동원해 개량해낸 조선군의 기병총과 보총(보병총)들이 본격적인 위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총!”
“조준! 발사!”
탕! 타타탕! 굉음과 화염이 터지면서 보총들이 발사되었다.
전방에있는 목표는 통상적인 화승총의 사거리보다 더 먼곳에 있었다.
하지만 개량된 보총은 그 목표들을 완벽하게 관통했다.
“사거리도 길고 명중율도 엄청나구나!”
“이거라면 청의 뒈놈들도 무섭지 않지!”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홍상준은 회령숙영지에서 진행중인 훈련상황을 전체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에대한 훈련은 홍상준의 부하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가져온 백두철포와 보총등의 신무기에 익숙해 지는건 작전을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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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상황은 어떤가?”
“예상한 대로입니다. 함경도에는 이전에 포수로 생활했던 인원들이 많았고 그들의 사격술은 뛰어날 정도입니다. 거기다 군기시에서 제작한 신무기까지 더해지니 전력이 월등하고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백두철포와 새로운 보총들은 이전의 화승총에비해 장전과 조준이 더 편하니까 말이지요.”
부하의 대답에 홍상준이 만족했다.
앞으로 진행될 전투가 머리속에 그려지는 상황이다.
홍상준의 앞으로 군관이 다가왔다.
“나으리! 조금전 김정호가 숙영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혼자인가?”
“그건 아니고 다른 일행들이 몇명더 있습니다.”
“역시 병조참지와 전하께서 안배하신 대로다.”
“김정호가 누구입니까?”
“듣기로는 전하의 밀명을받고 관원들과함께 만주쪽에서 지도제작을 진행중인 인물이라고 하더군.”
“지도제작이라...”
“그렇네. 우리들이 여기까지 왔지만 조선 팔도내의 지형에 대해서는 잘 알고있지.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들이 활동하고 전투를 해야할 지역은 만주라네. 그것도 한곳이 아니라 여러 지역을 움직여야 할것이지. 그렇다면 만주에대한 지형지물이 표시된 지도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지.”
“정말이지 전하께서는 몇수앞을 내다보고 계신겁니까?”
홍상준의 말에 부하가 감탄했다.
그들에게 임금인 이원범은 모든것을 손금보듯이 하는 인물처럼 생각되었다.
현대시대에서 밀덕으로 생활한 이원범의 경우 여러 전사를통해 군사작전을 시행하기전에 지형을 파악하는게 필수라는건 충분히 알고있었다.
때문에 미리부터 김정호를 책임자로해서 만주지역에대한 지도와 지형파악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얼마후 그들이 회령숙영지의 본부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김정호를 포함해 몇명의 관원들이 있었다.
숙영지를 책임지는 만호 신재식도 연락을받고 도착한 상태다.
“그대가 김정호인가?”
“그렇습니다. 어르신”
“만주에대한 지도를 제작중이라고 하던데 어느정도까지 진행된 것인가?”
“지금까지는 각지역별로 파악된 지형도를통해 개략적인 지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접 현지답사를통해 비교를 해야 좀더 정확할수 있지만 그래도 충분히 쓸만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렇군.”
김정호의 대답에 홍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 제작에는 현지에가서 답사를하는 방법과 미리 수집된 각지역별, 마을별로있는 지도들을 종합해서 만드는 방법들도 있었다.
직접 답사의 방법에는 상세하고 정확하지만 대신에 시간이 많이걸린다.
그리고 만주는 넓은 지역이고 김정호가 그곳을 전부 답사할수는 없었다.
대신에 김정호는 다른 관원들과함께 각 마을로 이동하며 해당지역의 지형도등을 수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