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송내관에게 항상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럴것이 언제 어디서 새로운 문득 떠오를때마다 기록을 해두어야 하기때문이다.
그렇다고 임금인 내가 이걸 늘상 준비해 다닐수는 없으니, 송내관에게 시킨것이다.
얼마후 송내관이 나를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뒤에 호위청 무관들이 있는곳으로 향했다.
지금은 송내관이 옆에있는 것보다 나혼자 생각하며 결정해야할 문제라서 그렇다.
이윽고 붓을꺼내 종이에 적었다.
21세기의 현대에서 지낼때, 토익 900점대의 영어능력자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의 이름과 영어스펠링 정도는 알았다.
물론 송내관이 지금 내가 쓴 영어단어를 본다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려고 한것이다.
이윽고 2개의 영어단어를 써놓고 내려보았다.
며칠동안 고민하던 부분.
옥스퍼드(Oxford)냐? 아니면 케임브리지(Cambridge)?
자꾸만 결정장애가 생긴다.
둘다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이고 전통과 역사만해도 수백년이 넘어간다.
옥스퍼드는 영국에서는 첫번째 유럽에서는 2번째로 세워진 대학이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에서는 영국내에서 최고다.
한편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대학이 케임브리지다.
영국에서는 두개의 명문대학들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합쳐서 옥스브리지-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1850년대의 제국주의 시대.
세계최고의 명문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바로 저 2개의 대학들이다.
내가 태어났던 21세기에는 미국의 하바드가 원탑이지만 미국대학들이 영국대학의 명성을 넘는것은 20세기나 되서야 가능했다.
그럴것이 제국주의 시대에 최강의 국가는 대영제국이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그런 대영제국을 대표하는 2곳의 명문대들이니 말이다.
“돈이 많이 들겠지? 그것도 엄청나게...”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21세기때에도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학비는 어나더 레벨이다.
영국인이 입학할 때에도 1년 학비가 4~5000만원.
외국인의 경우에는 1년 학비가 8000만원~11000만원은 가뿐하게 넘어간다.
중요한것은 아시아의 변두리인 동방의 조선인들.
이들 조선인 유학생들을 어떻게 저 영국의 명문대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에 입학시키느냐의 부분이다.
막연하게 어떤 조선인이 영국에가서 저 학교 들어가고 싶다고 해봐야 어디 동방식민지(인도)에서온 촌놈 취급이나 당할것이다.
“고종때 보냈던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이나 보빙사-같은 전철을 밟거나 등신짓을 할수는 없지. 뭐, 그당시에는 국제정치나 외국사정을 모르던 조선내 상황이였으니, 그게 어쩌면 최상이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고 그결과는 처참했고 말이야.”
조사시찰단과 보빙사-
조선말기 고종때에 나름 근대화를 해보겠다고 일본으로는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 그리고 미국에는 보빙사를 파견했던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런 조사시찰단이나 보빙사의 성과는 별것없다.
그저 근대화를위해 이런 시찰단을 일본과 미국으로 파견했다는 역사적인 의의만 있을뿐 조선의 근대화에 실질적인 역활을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애초에 기껏해야 단기간에 불과하고 유람에 가까운 조사시찰단이나 보빙사를 파견해서 뭔가를 제대로 배운다는 것부터가 현실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의 생각일 뿐이다.
거기다 조사시찰단이나 보빙사에 참가한 인원들만봐도 한심할 정도다.
물론 그중에는 나름 현실을 파악하는 실학적인 인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갓끈이나 매고 에헴~하며 거들먹 거리던 성리학 탈레반과 양반들이였다.
이러니 막대한 비용을들여 미국을 갔다온 뒤에도 양이놈들은 예절을 모르는 천한것들이라며 정신승리나 해댔으니 말이다.
이때문에 내가 임금이 되고나서도 조선의 인재들을 외국으로 파견해서 배우도록 하는것.
즉 국제유학생들을 보내는 부분에서는 몇번이고 검토하고 계획을 수정했던 것이다.
단순히 조선인들중에 일부를 뽑아서 외국나가서 배워와라- 한다고 될 부분이 아니다.
무엇을 배울것인가?
어떻게 배울것인가?
그리고 어디서 배울것인가... 를 명확하게 해둬야했다.
“지금 시대에서 영국이 최우선 선택지인건 분명한데 문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옥스퍼드냐, 아니면 케임브리지냐의 선택이다.
영국을 선택한건 1850년대의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만큼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곳이 없다는 것이다.
통칭 기술하면 독일의 과학기술은 세계최고-
이런 멘트도 있기는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십수년뒤에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에서 미친듯한 인재들과 과학자들이 나오고, 그것을 기반으로 독일제국이 성립되고 나서부터다.
현재로서는 영국이 학문과 과학의 선두주자다.
물리에서는 만유인력과함께 역학을 정립한 뉴턴.
그리고 경제학에서는 고전경제학의 기본을다진 애덤 스미스.
심지어 산업혁명을 태동시킨 증기기관의 제임스 와트등.
모두가 영국이 배출한 발명가와 학자들이다.
따라서 조선에서 보낼 선두이자, 1차 국제유학생단이 향할곳은 영국이 되는게 당연했다.
동시에 조선인들 유학생들중에 일부를 영국의 2대 명문대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보내서 공부시킬 예정이다.
조선인들이 배울 학문은 기계 / 물리 / 화학 / 의학-등이 되겠고 그외에 경제학 분야도 포함이다.
물론 영국을 선택한 또다른 이유는 런던에 기반을둔 시필드 가문, 그 가문의 차남인 시필드 제이든을 이용할수 있다는 부분도 중요했다.
어차피 시필드 가문은 나와 조선을통해 기회를 얻었고, 차남인 시필드 제이든도 두뇌회전이 돌아가고 대화가 통하는 인물인것도 장점이다.
“역시 옥스퍼드는 무리겠고 차선책으로 케임브리지인가? 하긴 조선인 유학생들이 배울 학문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케임브리지가 더 적합할수도 있겠군. 지금 시대에 옥스퍼드는 주로 문과쪽인 법률이나 정치, 외교등에 더 강점이 있으니까. 그에반해 케임브리지는 주로 이과쪽이 강하고 말이지. 또한 옥스퍼드는 영국 최초의 대학이라는 타이틀과 명성때문에라도 외국인 유학생들이 들어가는게 더 어려우니까. 옥스퍼드가 외부인에대해 상당히 배타적인데반해, 케임브리지는 그래도 일정부분 개방적인 부분도 있고...”
몇번 고심한 끝에 케임브리지로 정했다.
동시에 옥스퍼드는 영국에서도 정치권이나 귀족들이 주로 들어가는 전통성이 크기 때문에 조선인 유학생들이 운좋게 입학해도 오히려 손해가 될수도 있다.
일단 조선인 유학생들을 케임브리지 대학에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건 아니다.
“케임브리지를 선택했다해도 어차피 정식으로 입학하는건 낯선 동방에서온 조선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깝고, 따라서 남은건 편법을 쓰는수밖에 없겠군. 결국 학비외에도 추가로 들어가는 돈이 꽤 되겠는걸.”
케임브리지 대학 총장이나 대학쪽에 얼마를 찔러줘야 할까?
아무리 명성높은 케임브리지 대학이라해도 돈 앞에서는 장사없지.
그것도 황금이면 더 거부하기 힘들고.
물론 내가 보낸 황금을들고 케임브리지 총장과 비밀협상을 진행하는건 런던에있는 시필드 가문이다.
이게 가장 그럴듯하고 모양새도 좋으니까.
기본적인 학비외에 대학측에 몰래 찔러주는 황금을 생각하면 몇배가 소요될 것이다.
다만 그런 자금들이 결코 아까운건 아니다.
어차피 영국의 명문대학인 케임브리지대에서 선진학문을 배우고온 인재들이 이후 조선의 과학발전과 산업화를위해 큰 역활을 할것이니까 말이다.
“이후 조선에 현대적인 대학과 연구소등을 세울려면, 영국을 포함해 유럽의 명문대학에서 배운 인재들이 필요한것도 당연하지.”
조선에도 대학이 있다.
성리학 탈레반을 양성중인 성균관 대학-
물론 성균관 대학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고 새로운 대학을 세울 생각은 없다.
대신에 성균관대를 바꾸면 되는것이다.
신식학문과 제대로된 기술을 가르치는 대학으로 말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역시 외국대학에서 학문을 배우고 경험한 조선의 인재들이 필요했다.
이윽고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결정한뒤에 붓으로 써놓은 종이를 접어서 넣었다.
신호를 보내자 송내관이 달려왔고 잠시 쳐다보았다.
“조금전까지 전하께서 큰 근심이 계셨던거 같은데, 지금은 표정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렇게 보였나? 어쨌든 케임브리지로 정했네.”
“예? 그건 무엇이옵니까?”
“앞으로 조선의 인재들이 학문을 배울곳이지.”
“....”
나의 말에 송내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어차피 나중에 알게될테니까.
지금 설명한다해도 송내관이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것이고.
이윽고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희정당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니까 말이다.
* * *
“전하. 장인들을 데려왔습니다.”
문밖에서 송내관이 보고를 하였다.
안그래도 기다리던 참이였다.
일주일전에 송내관에게 비밀리에 지시를 했는데 나름대로 솜씨좋은 인재를 발굴해낸 것이다.
잠시 탁자위를 보았다.
목공으로 만들어진 조각품들이 보인다.
나무를 깍아서 만드는 공예품들이 뭐 대단할거 있냐고 할테지만 저 조각들은 상당히 정밀하다.
바로 내가 찾던 목공기술자들인 것이다.
“장인들을 들라해라!”
“알겠습니다. 전하!”
잠시후 문이열리며 송내관을따라 3명의 사내들이 희정당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3명은 임금인 나를 보자마자 바로 엎드린다.
그들중에 임금인 나를 직접 본것은 처음일 것이다.
다만 여기가 국왕이 지내는 창덕궁이고 동시에 송내관을통해 저안에 임금이 있다는 사전정보를 들었으니 당연하겠다.
“미천한 소인들이 전하를 뵈옵니다!”
엎드린 3명의 음성마저 떨리고 있었다.
심지어 선두에있는 중년사내는 손까지 경련을 일으킨다.
이런, 저래서는 내가 요청하는 모형을 만들지도 못하겠는데.
“모두 고개를 들라!”
“미천한 소인들이 감히 어찌...”
“허- 이제부터 자네들에게 임금으로서 명을 내릴 참인데, 그렇게 땅에 머리만 쳐박고 있으면 어떻게 어명을 따르겠는가?”
“망극하옵니다. 전하.”
겨우 대답하며 머리를 들었다.
“자네의 이름이 뭔가?”
“한성의 북쪽, 마상촌에 살고있는 최덕진이라 하옵니다.”
“그래, 손을보니 오랜동안 목공예를 하였고 솜씨좋은 장인이라고 하더군.”
“하찮은 재주일 뿐입니다.”
최덕진이 대답했다.
말은 겸손하게 하였지만 이미 그가 만들어낸 여러 작품들을 확인했기 때문에 솜씨만큼은 인정해줄 수준이다.
그리고 50대인 최덕진의 뒤쪽에있는 2명은 그에게 배우는 수제자들이다.
“송내관은 다과상을 준비하도록 해라. 조선제일의 목공예 기술자들이 왔으니 그들의 노고에 보답해야 겠구나.”
“곧 대령하겠습니다. 전하!”
송내관이 대답하며 준비를 하였다.
얼마후 전통차가 간단하게 들어오고 나서 그들과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꺼내었다.
“과인이 뭣때문에 자네들을 부른것인지 아는가?”
“소인들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그대들이 나무를 가공하고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서 한가지 부탁을 하려는 것이지.”
“무엇이옵니까?”
“이제부터 그대들은 과인의 지시에따라, 양이(서양오랑캐)들이 타고다니는 배의 모형을 만들어 줘야겠네. 흠- 크기와 길이는 대략 이정도, 그러니까 2자(60cm)정도면 되겠군.”
“.....”
최덕진을향해 알기쉽게 양팔을 적당히벌려, 크기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귀신이라고 본듯이 굳어졌고 벙찐 상태다.
하긴 임금의 입에서 갑자기 양이들의 배를 언급하고, 그 선박의 모형까지 만들라고 했으니 당연할거 같다.
신무기를 훈련하다
“자네들은 아직까지 양이들의 배를 본적이 없는가?”
“송구하옵니다. 전하. 비록 소인은 과거에 소문을통해 듣기는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본적은 없사옵니다. 소인이 불충하여 전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걸 통촉하여 주십시요.”
최덕진이 울먹거리며 대답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한것은 아닌데.
하지만 최덕진은 줄곧 한성 근처에서 생활했다.
그가 지내는 북쪽의 마상촌도 바다와 가까운 곳은 아니다.
다만 조선인들중에 해안가에 살고있는 어부들이나 촌민들은 가끔씩 서해나 동해바다에 등장하는 이양선들을 본적이 있지만, 그것도 가까이서 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저 멀리서 크고 기묘한 이상한 배가 바다위를 지나간다는 느낌이 전부일 테니까 말이다.
일단 손을내저어 최덕진과 제자들을 안심시킨뒤 다시 말했다.
“그대들이 이양선을 본적이 없다해도 그걸 탓할 생각은 아닐세. 그렇다면 조선군의 판옥선은 본적이 있는가?”
“판옥선에 대해서는 수차례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친척중에 수군에 종사하는 수병도 있기에 조금은 알고있습니다.”
“그건 다행이로군.”
최덕진을향해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이양선을 본적이 없다하니까 내가 요청한 서양의 선박모형을 만들려해도 쉽지않을 것이다.
한동안 죄라도 지은 표정인 최덕진을향해 설명을 하였다.
“그대들이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나, 과인은 임금이 되기전에 강화도에서 지내면서 서양의 배들을 가끔씩 본적이 있네.”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3명이 놀라면서 쳐다보았다.
어쨌든 그들에게는 임금이 뭔가 특별한 경험을 갖고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보인듯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