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169)

검과창을 휘두르는 기병들의 두눈이 살육으로 번들거렸다.

후방에서는 지르칼손이 조선인 마을에대한 기습작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선놈들이 반항을 시작하는군.”

“걱정 마십시요. 대장님! 제깟 놈들이 버텨봐야 소용도 없습니다.”

부하의 대답에 지르칼손이 비릿하게 웃었다.

얼마후 부하의 말대로 측면이 뚫려버린 정착촌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정착촌 자경대원들은 후퇴하면서 새롭게 방어선을 만들었다.

이때문에 측면이 뚫렸다고 기세좋게 나아가던 기병들이 반격을 당하며 후퇴했다.

한족들의 마을이였다면 오래전 박살났을 것이다.

만주족의 기병들을 보자마자 겁을먹고 달아났을 것이니까 말이다.

지르칼손은 간도지역에있는 조선족 정착촌만이 아니라 만주에있는 한족들 마을도 약탈했다.

이곳으로 오기전 한족들 마을을 3~4 곳 습격했고 그곳에있던 한족들은 반항조차 못한채 무너졌던 것이다.

그에반해 조선족들 정착촌은 예상보다 오래 버티는 상황이다.

지르칼손이 자신의 기병부대중 일부만 보내서 정착촌을 공격했다면 성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때문일까?

지르칼손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버러지같은 조선놈들이 청제국의 기병대를향해 반항을 해? 나머지 부대도 돌진시켜. 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지르칼손이 분노한 것에는 다른이유도 있다.

정착촌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기마병들의 피해가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큰 타격을 받은것은 아니지만 지르칼손의 자존심에 금이 간 상태다.

정착촌에대한 습격에서 제역활을 못하는건 한족들로 구성된 기마부대다.

“쓸모없는 놈들!”

지르칼손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족의 기마병들은 만주족만큼의 용맹성이나 투지가 없었다.

처음에는 정착촌에서 한족 기마병들이 피를뿌리며 쓰러질 때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피해상황이 점차 늘어나자 그냥 둘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방에 대기시켜 놓았던 만주족 기마부대를 투입했고 이것이 정착촌에는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촌장님! 더이상 버틸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한계란 말인가?”

쓰러지는 자경대원들을 바라보며 촌장이 절규했다.

여기서 포기할수는 없었다.

간도에는 자신들 말고도 곳곳에 조선인들의 마을이 있었다.

만주족들의 습격과 학살을 서둘러 알려야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수가 있을것이다.

촌장은 더이상 버티는게 무리인것을 깨닫고 여자와 아이들을 피신시키기위해 노력했다.

자신이 할수있는 최선을 시도한 것이다.

촌장을 따르는 자경대원들은 최후의 결전을위해 나섰다.

“죽어라! 이놈들!”

촌장이 창을찔렀고 돌진해오던 만주족 기마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혈투는 치열했다.

혼자서 5명의 기마병들을 해치웠다.

하지만 적들의 기세는 강력했고 양쪽에서 습격해오고 있었다.

얼마후 촌장은 후방에서 휘둘러온 검날에 피를쏟으며 쓰러졌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자경대원들도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사항전으로 정착촌에있던 여자와 아이들은 일부가 도망칠수 있었다.

모두 피하지는 못하였다.

“조선의 계집년이 어디를 도망칠려고?”

“아아악!”

거친손길에 머리카락이 잡혀진 소녀가 비명을 토해냈다.

그녀들은 시체로 변해버린 오빠와 아버지 그리고 남동생들의 모습을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들을 내려보며 만주족 기병들이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후 지르칼손과 측근들이 학살이 벌어진 마을로 들어왔다.

부하들은 곳곳을 다니면서 식량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왔다.

“조선놈들이 대청제국을향해 반항을 하다니!”

“대장님! 습격작전은 성공적인거 같습니다.”

“그렇군.”

지르칼손이 대답하며 히죽거렸다.

한족 기마병들의 피해가 큰편이지만 자신이 아끼는 만주족 기마병들은 경미한 손해만 생겼을 뿐이다.

부하들이 약탈해온 식량도 상당히 많았다.

뿐만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도 사로잡았다.

부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일부를 놓쳤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번 조선족 마을을 약탈해서 보충하면 그만이다.

지르칼손에게 조선인들은 노예였다.

만주족에게 봉사하는 열등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국방 레벨업(Level Up) 프로젝트

“선죽상회가 첫번째 임무를 생각보다 잘 해낸거 같은데.”

숫자가 적혀있는 장부를 확인하며 미소가 떠올랐다.

희정당 비밀장소에 보관중인 여러개의 장부들중에 하나다.

희정당은 임금이 지내는 장소-

때문에 창덕궁 내에서도 보안이 철저하고 안전한 장소라고 할수있다.

그중에서도 임금이 지내는 침소에는 누구도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여기에 나만의 비밀스런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

이곳에는 바깥으로 새어나가면 곤란한 정보들이 적혀있는 장부나 책들이 들어있다.

대부분 직접 작성하고 쓴것인데.

신하들이 본다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그럴것이 대부분 언문(한글)로 작성하면서 축약된 기호들은 물론이고 영어, 그리고 아라비아 숫자도 표기된 상태다.

이것들은 한지를 이용해 만들어진 메모용 노트와 같은것이다.

나의 측근이나 신하들에게도 보여줄수 없었다.

지금 확인중인 장부에는 간단하지만 엄청난 의미가담긴 제목이 쓰여져있다.

군사 및 국방력 레벨업(Level-up) 진행과정-

즉 조선의 군사력과 국방력을 단시간에 상승키기위한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진행과정들을 적어놓은 것이다.

조선의 군사력과 국방력을 제대로 갖춰놓기 위해서는 해야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단계별로 차례차례 하는건 시간도 많이걸리고 언제 성공할지 모른다.

따라서 여러가지 비밀임무와 사업들을 동시에 진행하는 멀티플레이(Multi Play) 방식을 써야한다.

역사에서 이런 방식으로 시도하면 대부분 폭망하고 만다.

하지만 나같은 미래인이 과거로 환생하고.

역사지식과 무기지식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시행착오와 실패를통해 낭비될 시간과 자원을 최대한으로 줄일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지식을 보유한 현대인이 가지는 장점이자 치트키-라고 해야겠다.

물론 조선군의 무기들을 신형으로 바꾸고 군사력을 높이는것이 말처럼 쉬운건 아니다.

현재 나의 머리속에서는 유럽 르네상스때 사용한 구형의 플린트락 머스켓 소총부터 시작해 20세기와 21세기에 사용되었던 수많은 무기들의 개념과 스펙까지도 들어있다.

다만 무기의 발전과 개량등은 단계적인 테크를 밝아가야 한다.

나의 머리속에 유도 미사일이나 전선을 돌파하는 중장갑의 MBT(Main Battle Tank : 주력전차)에대한 아이디어가 있다고해서 당장에 만들수 있는게 아니니까 말이다.

미사일을 개발할려면 유도장치에 사용되는 복잡한 전기및 전자회로가 기본이다.

그리고 중장갑의 MBT(주력전차)를 만들고 싶다면 차체에 들어가는 강력한 디젤터빈이나 가스터빈 엔진을 만들 기술, 그리고 복합재료를 이용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기술들이 바탕이 되어야 기술테크가 올라가는 것이고 그에따라 개발할수있는 무기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선의 기술력이나 수준은...”

한숨이 팍팍 나올 정도지만 그래도 머리를 짜내고, 이것저것 뒤지다보니 한기준같은 솜씨좋은 장인을통해 개발이 가능한게 백두철포와 현무철포다.

솔직히 화포의 성능이나 사거리등에 대해서는 당장 조선의 기술력을 가지고는 서양의 화포를 흉내조차 낼수없다.

그에반해 백두철포와 현무철포의 경우에는 퍼커션캡 방식의 전장식 소총에 사용되는 뇌홍(뇌관)의 생산이 조선의 기술수준과 상황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

이것도 내가 한기준에게 뇌홍(뇌관)을 만들기위한 물질, 그리고 배합방법과 정제와 추출등을 설명해 주었기에 개발과정이 단축된 것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조선에서 개발이 가능한것은 국내에서 만들고, 단시간에 개발이 불가능 하거나 시간이 걸리는건 현질을통한 구매지. 그게 바로 레벨업의 방법 아니겠어?”

내가 써놓은 내용들을 점검하고 확인한뒤 비밀장소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문앞에서 대기중인 종걸이(송내관)을 불렀다.

“선죽상회의 부행수는 도착했나?”

“후문쪽에서 전갈이 왔는데 지금 군기시의 방정태와함께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잠시 눈을 붙일테니 그들이 도착하면 깨워라.”

“알겠습니다. 전하!”

종걸이가 대답했다.

의자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마음 같아서는 광저우에서 출발한 선죽상회의 화물선이 도착하는걸 내눈으로 보고싶은 기분이였다.

그럴수는 없었다.

임금이 창덕궁 밖으로 나가는것도 쉬운일이 아닌데 개성까지 간다는건 엄청난 사건이 될테니까 말이다.

아쉬움이 있지만 어쩔수 없었다.

대신 선죽상회의 부행수인 김도영이 올린 상소를 먼저 확인했다.

안에는 김도영이 명령을받고 광저우에 도착하고.

그뒤에는 지시 내용에따라 활동한것.

영국령 동인도회사로부터 대량의 화약과 다수의 화포들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간략하게 적혀있어 상세한 내용들은 김도영과 군기시 장인인 방정태의 입을통해 들어야했다.

궁금한 것도 많았기 때문에.

개성의 부둣가에 도착한 화물들은 선죽상회를통해 군기시에있는 창고로 이동을 완료했다.

선죽상회가 제법 규모가 있고 자체적인 창고들도 있지만 화약과 화포를 다루는 전문적인 기술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화약이란것은 폭발성과 인화성이강해 잘못 관리하면 사고가 생길수도 있었다.

군기시의 장인들에게 새로운 무기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주는것도 필요했다.

현재의 영국이 보유한 최신기술보다는 뒤쳐진 것이기는 하지만 조선에게는 혁명적인 사건일 것이다.

* * *

“시필드 제이든이라는 그 청년이 큰 도움을 주었군.”

“그렇습니다. 전하.”

김도영에게 보고내용을 받으며 생각에 잠겼다.

광저우로 선죽상회를 보낸것은 나의 계획이고 명령이다.

다만 그들이 광저우에서 특명을 제대로 해낼지에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만큼 선죽상회가 맡은 임무는 쉬운게 아니였기 때문이다.

임무가 어려운만큼 선죽상회의 소행수인 김도영에게 여러가지 정보들을 알려주고 행동지침도 전달하였다.

그럼에도 성공확률은 크게잡아도 겨우 10% 안팎-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컸는데 하늘이 조선을 버리지 않았다.

예상밖의 천운도 따라준 것이다.

‘시필드 제이든이라....’

직접본적은 없다.

그러나 김도영의 말에따르면 나이는 20대후반.

영국귀족의 기풍을 드러내는 청년이다.

시필드 제이든... 이름을 몇차례 머리속으로 되뇌이고 그가 영국수도인 런던에서 왔다는 말을듣자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설마 그 시필드 가문인가?

그 가문의 아들이 뭣때문에 중국에까지 온거야?

나비의 날개짓은 지구 반대편에서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낸다.

21세기 현대에 살았던 내가 사고로죽고 과거로 환생.

그것도 조선왕인 철종의 육체에 환생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어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아주작은 변화였다.

시필드 가문의 둘째아들이 중국에 왔다는 것이니까.

그러고보니 금융역사에대해 자료를 찾다가 본적이 있다.

나의 전공이 경영학이다.

그중에는 금융에대한 부분도 배웠다.

나의 경우에는 이것을 깊게 파고들면서 여러가지 자료를 찾다가 얼핏본것이 시필드 가문의 존재였다.

런던금융의 기초를만든 1세대.

시티오브 런던의 기반을다진 가문.

그러나 금융역사에서 시필드 가문은 영국금융을 손아귀에 쥐었던 로스차일드에게 완전히 박살나며 명맥조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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