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을 먼저 시작한건 너희들이다
“어떻습니까? 조선에서 이 화약들과 화포들을 다시 사용할수 있을거 같습니까?”
“화약은 일부가 보관중에 손상을 입었지만 크게 문제될것은 없습니다. 화포의 경우에도 녹이슨 부분은 군기시의 장인들이 실력을 발휘하면 충분히 원상복구가 가능합니다.”
방정태가 김도영을향해 대답했다.
그는 군기시 최고장인인 한기준의 수제자들중에 한명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한기준에게 화약과 총포, 그리고 화포에 관련된 많은것들을 배웠다.
방정태는 한기준이 철종 이원범에게 지시를받아 기존의 화승총을 뇌홍이 장착된 퍼커션캡의 총포로 개량과 개조를할때 같이참가한 경험도 있었다.
때문에 화약무기에 대해서는 한기준 다음으로 실력자이다.
그는 김도영을 돕기위해 철종 이원범에게 지시를받아 여기 광저우로 온것이다.
그가 맡은 임무는 이스트 프론티어의 대표인 제이든에게 철종 이원범이 구입할려는 화약의 종류, 그리고 화포의 종류와 수량, 그외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역활이였다.
이전에는 화약이나 화포에대해 잘 몰랐던 제이든도 방정태의 도움을통해 이제는 익숙해진 상태다.
방정태와 제이든의 대화에는 김도진이 중간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방정태는 선적을위해 부두가에 운반해온 화약들을 차례로 점검했다.
화약들은 보관상태가 불량해 일부는 손상된 포대들도 보였다.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군기시에서 장인들이 참가하면 손상된것을 제거하고 새롭게 채워넣으면 되니까 말이다.
“양이들이 화약을 만드는 기술은 뛰어나구나.”
제이든이 동인도회사에서 구입한 화약들은 오래된 것이지만, 조선에서 수공업으로 제작된 화약들보다 성능이 좋았다.
그럴것이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가지면서 인도에서 생산된 고순도의 초석을 이용해 흑색화약의 폭발력이나 균질함이 뛰어났던 것이다.
화약의 제조에는 초석이 큰 역활을 담당했다.
화약에는 황이라는 물질도 필요하지만 황의 경우에는 대체로 여러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다.
그에반해 고순도의 초석광산은 특정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중에 한곳이 인도인 것이다.
때문에 영국의 화약생산량은 유럽의 열강들에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방정태는 영국이 보유하고 있는 화포에 관심이 생겼다.
동인도회사가 이스트 프론티어에 판매한 화포들은 대부분이 창고에 쳐박혀있던 구형의 캘버린포가 많았다.
군데군데 녹이슬어 있었다.
당장 사용하기 힘든 상태지만 화포의 전문가인 방정태는 캘버린포가 조선의 화포를 능가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포신도 조선의 화포에비해 짧지만 대신 구경이 더 컸고, 포신내부로 손을넣어 만져보니 정교하게 깍여져 있었다.
조선화포는 주철로 제작되면서 포신내 가공기술이 떨어졌다.
때문에 화약이 터질때 압력과 위력을 제대로 포탄에 전달하지 못해 폭발가스가 새거나 사거리가 짧았다.
하지만 캘버린포는 포신이 짧으면서도 사거리는 조선의 화포보다 최소 2배는 되었다.
‘양이들이 철을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군기시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그로서는 서양의 높은 철강기술에 감탄하며 탐구욕이 솟아올랐다.
성리학에 매몰된 선비와 유생들이라면 이런것을 알아도 체면과 자존심으로 정신승리나 해대고 말았을 것이다.
그에반해 방정태같은 인재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배워야하고 발전시켜야 되는지를 깨달은 상황이다.
“순조롭군요.”
“이것도 당신의 덕분입니다. 제이든씨!”
김도영이 선적과정을 지켜보았다.
장소는 광저우 항구에서도 외진곳에있는 부두가이다.
일부러 이런 장소를 골랐다.
시간도 저녁때를 이용한 것이다.
만약의 상황을위해 주변에는 선죽상회의 식구들을 미리 배치해 두었다.
작업이 완료되자 선장이 보고했다.
한번더 점검을 끝낸뒤 김도영이 막내를 바라보았다.
“여기계신 제이든씨와함께 많은것을 배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김도진이 대답했다.
선죽상회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첫째 김도영은 이후로도 광저우와 조선을 오가면서 이원범의 비밀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신이 김도영은 같이왔던 막내 김도진이 제이든과함께 생활하며 경험을 쌓기를 기대했다.
광저우에는 김도진과 제이든의 이스트 프론티어를 지원하기위해 선죽상회의 식구들중에 몇명이 더 남을 예정이였다.
제이든의 이스트 프론티어가 선죽상회의 광저우 지부가 되는 셈이다.
한편으로 제이든은 김도진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김도진은 총명했고 중국어도 유창하면서 제이든과 영어로 소통하는데 문제도 없었다.
그로서는 말라카지역으로 떠난 리앙쉰의 빈자리를 이제는 김도진이 채워주고 있었다.
동시에 제이든에게는 새로운 동생이 생긴듯한 느낌이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제이든은 자신의 경험과 많은것을 김도진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얼마후 김도영과 대량의 화물을 적재한 선박이 어둠을 헤치며 출발을 시작했다.
* * *
주변의 날씨는 상당히 매서웠다.
두만강을따라 펼쳐진 동간도 지역은 벌써부터 겨울을 맞이하는 중이다.
푸르륵! 말들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울음을 내었다.
그것을 지켜보며 지르갈손이 히죽거린다.
뒤쪽으로 다수의 기마대들이 있었다.
잠시후 그의 앞으로 측근이 다가왔다.
“출동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대청제국의 정예들다운 모습이군.”
지르갈손이 한차례 둘러보았다.
군데군데 눈에띠는 한족들로 구성된 기병부대들.
이것에 지르갈손이 미간을 찌푸렸다.
만주일대를 활보하는 기병부대였지만 순수 만주족들만으로 채워진건 아니다.
어쩔수없는 상황이다.
한족에비해 만주족들의 숫자가 부족했다.
때문에 지르갈손이 지휘하는 기병부대도 순수 만주족은 기껏해야 반정도다.
나머지는 한족들이다.
처음에 지르갈손은 기병부대에 한족들이 포함된것에 불만이 있었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만주족에게 한족들은 청제국의 이익을위해 봉사하는것이 숙명이였으니 말이다.
얼마후 기병부대들을 이끄는 부대장들이 도열했다.
“너희들이 얼마나 큰 공을 세울지 지켜보겠다.”
“맡겨만 주십시요.”
부대장들이 대답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르갈손도 만족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작전은 식은죽 먹기다.
강력한 적을 상대로 싸우는것도 아니다.
그저 동간도에있는 조선인들의 마을을 습격해 약탈을 해오면 되는거니까 말이다.
청나라가 쇠락해가는 과정.
부정부패와 아편중독이 퍼지면서 청의 경제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황제인 도광제가 노쇠했고 관료들의 착취로인해 타격을 받은것은 청나라 군대였다.
중앙군의 경우에는 보급이나 지원이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변방인 요동군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요동지역과 만주에 배치된 청나라 부대들은 군기가 문란해졌다.
현지에서 식량과 보급을 취하는 방식들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어쩔수없이 몇번정도 하였다가 이제는 약탈자체를 즐기는 상황에 온것이다.
그중에서도 손쉬운 사냥감과 먹잇감은 조선인들 마을이다.
그것도 추수가 끝나는 10월부터 겨울동안에 실시하는 약탈과 토벌작전은 이득이 많았다.
조선인 정착민들이 1년내내 뼈빠지게 모아놓은 것들을 한꺼번에 털어갈수 있었으니 말이다.
“반항하는 놈들은 가차없이 베어버려라! 대청제국의 땅에 몰래 들어온 버러지같은 조선놈들이다.”
“당연합니다. 흐흐흐!”
지르갈손의 지시에 부대장들이 히죽거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기병부대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아갔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와 힘들게 살아가던 조선인들과 그들의 마을을 습격하는 것.
* * *
콰두두두! 굉음을내며 군마들이 달려갔다.
선두에는 건장한 체격을지닌 누데치가 있었다.
지르칼손의 측근이며 오른팔로 불리는 존재였다.
그가 지휘하는 기마부대는 대부분 만주족들로 구성된 상태다.
“먼저 조선놈들의 마을을 습격하고 전리품을 챙기는건 우리부대의 몫이다.”
“당연합니다. 대장님!”
측면에서 따라가던 부하가 대답했다.
그들의 앞으로 마을이 보였다.
누데치는 부하를시켜 조선인 마을의 위치를 파악해 두었다.
상관인 지르칼손의 명령을받자 먼저 진격했던 것이다. 마을에있는 초가들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녁을 준비하는듯 보였다.
조선인 마을에 식량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지르칼손의 기병부대가 조선인 마을을 습격하는건 단순한 식량때문이 아니다.
식량보다 돈이되고 짭짤한 수입이 생기는것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계집애와 어린 놈들은 포로로 잡아라. 그것들은 우리에게 상당한 돈벌이가 되니까 말이다.”
“대장님의 말씀을 들었느냐?”
“물론입니다.”
후방에서 따라오던 만주족 기병들이 대답했다.
눈빛은 살육과 탐욕으로 가득했다.
열등하고 노예나 다름없는 조선인들을 습격하는 것이다.
사냥한다는 기분이였고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대장님. 저놈들이 우리들의 습격을 눈치챈거 같습니다.”
“그래?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늦었으니까.”
누데치가 조소를 띠었다.
조선인들의 정착촌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경계를 하였다.
그러나 만주족 기병들을 당해낼수는 없었다.
누데치 부대가 선두로 나섰을뿐 이후에는 다른 부대도 도착할 것이다.
“여자와 아이들을 대피시켜라!”
“개같은 만주족 놈들!”
정착촌에서 혼란이 벌어졌다.
촌장이 나서며 마을에있는 장정들을 지휘하며 대응을 시도했다.
하지만 청의 기마병은 조선의 정규군도 당해내지 못할 수준이였다.
조선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통해 청나라 기병의 공포를 경험했던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착촌에있는 주민들은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크억! 이놈들이?”
“죽어라 오랑캐놈들!”
기세좋게 돌진해가던 선두의 기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착촌에서 구성된 자경대원들이 입구쪽에서 장창을 이용해 방어전을 펼친것이다.
보병에대한 기마병의 돌진은 엄청날 정도였고 그것자체로 두려움을 일으킨다.
하지만 보병이 대응할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그중 하나가 장창을 이용한 방어전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강력한 장창보병들이 기마부대를 궤멸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인 마을의 경우에는 운이 나빴다.
선두에서 돌진해온 누데치 기마부대만 있었다면 그런대로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다.
“촌장님! 만주족 놈들이 측면에서 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럴수가.”
주민의 외침에 촌장의 표정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만주족 부대가 몇개로 나뉘어서 정착촌을 기습해온 것이다.
“크아앗!”
비명소리가 터지며 정착촌 자경대원들이 피를뿌리며 쓰러졌다.
그 사이로 만주족 기병대가 파고들며 검을 휘둘렀다.
마을 입구쪽에서는 방어선을 유지했지만 측면이 뚫리면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반항하는 녀석들은 모두 죽여라!”
“크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