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169)

“일단 거래방법이나 취급하는 품목이 특이한건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영국 상거래법상 크게 위반되는건 아닙니다. 물론 기왕이면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히 처리하고 진행하는것이 최선이긴 하지요.”

“역시 니콜슨, 당신의 실력은 훌륭하군요.”

제이든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니콜슨이 법을공부한 변호사이긴 하지만 고리타분하게 앞뒤가 꽉 막힌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들이 속해있는 동방, 그리고 아시아같은 신개척지에서는 유연함이 더 중요했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무기거래를 하는 방법

“이번 거래만 성공시키면 우리가 신생회사라해도 광저우에서 단기간에 자리를 잡을거 같습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네.”

제이든이 마이클을향해 대답했다.

한편 제이든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떠올랐다.

그가 북아프리카에서 생활할 때에는 시필드 가문의 차남이란 부분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러 신분을 감추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 광저우에와서 그리고 조선에서온 선죽상회의 부행수인 김도영과의 협상을 한뒤에는 달라졌다.

노련한 변호사인 니콜슨의 도움을받아 신생회사인 이스트 프론티어(East Frontier)-를 설립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가문 그리고 가진것들을 이용했다.

동시에 과거에는 적당히 거리만 유지했던 광저우내의 영국령 동인도회사의 간부들과의 친목과 사교모임에도 적극 참가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이든은 광저우에있는 영국령 동인도회사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했다.

영국령 동인도회사의 주무대는 인도쪽이다.

때문에 광저우에있는 동인도회사는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고, 일정부분은 최우선 대상이 아니였다.

그렇다보니 인도에 거점을 마련한 본사에대한 불만도 나왔다.

‘차후에는 이스트 프론티어가 광저우의 영국령 동인도 회사를 접수하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군.’

동인도회사가 영국령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기업과 같은 상황이다.

따라서 같은 영국계 회사가 광저우의 동인도 회사를 접수하는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은 그 목표를위한 갈길이 멀었지만 불가능한 부분은 아니다.

특히 자신에게 엄청난 기회를주는 조선과의 연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그것을통해 막대한 이득을 축적한다면 말이다.

얼마후 두사람이 타고있는 마차는 여러개의 대형창고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부사장인 마이클이 먼저내렸고 제이든은 마차에서 밖으로 나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제이든이 주로 지내는 브리티쉬 타운(British Town)에서는 상당히 떨어진 장소다.

하지만 광저우의 동인도 회사에게는 중요한 구역중에 하나였고 정문쪽에는 무장한 경비병들이 있었다.

다만 경비병들의 모습이 좀 특이하다.

장교나 하사관으로 짐작되는 인원은 영국인이다.

하지만 말단 병사들은 대부분이 짙은 피부색을지닌 인도인 병사들이다.

이들은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인도인 용병들이고 광저우에도 배치를받아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창고들의 규모가 상당하군요.”

부사장인 마이클이 감탄했다.

그는 제이든보다 나이많은 중년이지만 제이든을 신뢰했다.

무엇보다 제이든을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은것이니 말이다.

마이클이 명문대를 나왔거나 집안이 좋은건 아니다.

하지만 광저우에서 오랜동안 생활했고 경험도 풍부했다.

제이든에게는 마이클이 신생회사인 이스트 프론티어의 부사장으로 적격이였고 그에게 일을 맡기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윽고 두사람이 잠시 기다리고 있던중 안쪽에서 두명의 병사들을 대동하고 누군가가 나왔다.

“어서 오십시요. 제이든씨. 안그래도 연락을받고 기다리던 중이였습니다.”

제이든을향해 고개까지 숙여가며 인사하는 인물은 광저우의 동인도회사에 소속된 병기관 이스턴이다.

그는 상관인 브라이슨에게 연락을 받았다.

오후쯤에 귀중한 방문자가 올것이다.

그 방문자는 이스트 프론티어의 사장인 제이든이고, 동인도회사가 관리중인 화약창고와 병기창고에대한 안내를 해달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

이처럼 제이든이 시필드 가문의 후광을통해 동인도회사의 사교모임에서 포섭한 대상이 바로 브라이슨이다.

제이든이 선죽상회 그리고 조선왕에게 요청받은 거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내부에 협력자를 만드는건 반드시 필요했다.

동시에 제이든이 포섭한 브라이슨, 그리고 지금 눈앞에 마중나온 병기관 이스턴도 돈에 욕심이 많았다.

애초에 동인도회사 자체가 돈과 이익을위해 결성된 회사였으니 당연할 것이다.

* * *

끼이익! 창고의 정문이 좌우로 열렸다.

그러자 내부에서는 매케한 화약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따금씩 눅눅한 곰팡이 냄새도 뒤섞여 있었다.

제이든이 반사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죄송합니다. 제이든씨! 이곳 창고는 오랜동안 관리가 안된 상태다보니.”

“아닙니다.”

제이든이 애써 표정관리를하며 손을 내저었다.

잠시후에 부사장인 마이클이 들어왔다.

그는 광저우에서 밑바닥 생활도 해봤기에 곰팡이와 악취가 가득한 창고내부의 모습에대해 크게 동요하는건 아니였다.

대신에 그의 시선을 끈것은 따로 있었다.

“사장님! 저걸 보십시요. 광저우의 동인도회사에서 상당한 양의 화약들을 보과중이란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창고 한가득 쌓여 있을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정도면 로열네이비(영국해군)의 전열함이 포함된 2-3개 함대들이 사용할만큼의 수준은 될거 같습니다.”

“그 정도로 엄청난 것인가?”

“물론입니다. 가격으로 따져도... 휘유~~”

마이클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사장인 제이든과는 다르게 과거에 선원생활도 좀 했고, 영국군 하사관들을통해 이것저것 들은것이 있었다.

전문적인 병기관이나 담당관의 수준은 아니라해도 나름 영국군의 무기와 장비에대해 지식이 있었다.

제이든에게 부족한 경험이나 지식들을 보충해주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악취와 냄새가나는 창고를 보여준것에 멋쩍어하던 병기관 이스턴이 말했다.

“여기에 쌓여있는 화약들이 많기는 하지만 상당량은 이미 보관상의 문제로 바로 쓸수는 없습니다. 다만 몇번정도 재처리를하면 가능하지만 그럴러면 또 돈이들지요. 그외에도 지금은 광저우를 포함해 인도에있는 동인도회사의 창고들에도 신형화약과 화포들이 들어오는 상황이라 저렇게 과거에 쌓아놓은 구형 화약들은 그냥 자리만 차지하는 상태지요.”

“과연 그렇군요.”

병기관 이스턴의 설명을 들으며 제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품속에서 은화들이 담겨있는 주머니를 꺼내었다.

자연스럽게 이스턴을향해 건네었다.

그러자 이스턴의 표정이 밝아지며 탐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설명대로 광저우에있는 동인도회사에도 영국에서 생산된 신형화약과 화포들이 상당부분 들어왔고 이런것들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지는 상황이다.

일개 민간기업에 불과한 동인도회사가 어째서 화약과 화포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는것인가?

누군가는 이것에 의문을 품을수 있지만 제국주의 시절의 민간회사들, 특히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등의 개척지에 진출하는 회사들은 무력을 사용해서 거점을 만든다.

동시에 서구의 열강들은 이런 동인도회사들의 악행을 묵인해 주면서 식민지 개척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한편 광저우에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들어와 있어도 청나라 관리들이 두눈뜨고 지켜보는것도 이런 이유였다.

물론 과거 아편전쟁의 패배로 오지게 당한것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광저우와 광동성의 청나라 관리들이 영국령 동인도회사와 연합해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중이였다.

이처럼 청나라는 내부적으로 썩어가는 상황이였고 이것이 유럽에서온 제이든의 눈에도 뻔히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청나라의 문제일뿐, 자신에게는 조선과의 거래를 성공시키는게 더 중요했다.

“여기말고 다른 창고들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구형의 화포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관심이 있으실거 같습니다.”

“물론일세. 안내를 부탁하네.”

제이든이 대답했고 뇌물을받은 병기관 이스턴이 앞장섰다.

* * *

주위가 어둑하게 변해가는 부두가.

그곳에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부두에 정박한 선박은 보통의 중국의 화물선에 비해서도 상당히 큰 수준이다.

선박의 갑판상부에 거중기라고 부르는 특이한 장치도 있었다.

거중기는 조선이 자체적으로 제작해낸 크레인과같은 장비다.

정조때에는 거중기를 이용해 수원성을 보강하고 축조하는데 상당한 역활을 하였던 것이다.

조선이 보유한 보통의 화물용 운반선에 이런 거중기를 장착한 경우는 없었다.

주로 화물을 실을때도 짐꾼들이 모든 물품들을 직접 들고 움직였다.

그렇게만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원범이 선죽상회에내린 비밀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량된 화물선이 필요했다.

그리고 선박에 장착된 거중기는 김도영이 철종의 지시를받아 설치하고 개조한 것이다.

거중기는 강도가높은 참나무를 이용해 제작되었다.

때문에 무거운 중량도 충분히 들어올릴수 있었다.

“전하는 대단하시군. 만약 배에 거중기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저많은 화포들을 싣는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형님.”

김도영의 말에 김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중기가 육중한 화포를 매달아 들어올리는 광경을보며 놀라는 사람은 또 있었다.

“저것은 중국의 선박들에도 본적이 없는데... 조선은 정말로 신비롭군.”

화물선에 수동용 크레인을 설치하는건 영국 선박들도 이제 도입하는 수준이다.

영국의 신형 화물선에 장착된 크레인은 강철로 만들어진 상태다.

조선선박에있는 것보다 훨씬더 튼튼하다.

목재로 제작되기는 했지만 조선선박이 저런 장비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제이든도 감탄하고 있었다.

화물을싣는 작업은 야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럴것이 벌건대낮에 이런작업을 할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문제가 생긴다해도 제이든은 준비를해둔 상태다.

여기있는 화물들은 제이든이 설립한 회사의 소유이니까 말이다.

만약 청나라의 관원들이 온다해도 그들이 화물을 압수하거나 할수는 없었다.

“단시간에 많은양의 화약과 화포들을 조달하게 된것도 모두 당신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저로서는 여러분과 조선왕 덕분에 엄청난 기회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왕께서는 이 모든것을 예상하고 계셨던거 같습니다.”

제이든이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김도영과 철종의 요구를 수행하기위해 제이든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조선왕의 요구사항은 또 있었다.

그것은 조선왕이 영국령 동인도회사로부터 직접 대량의 화약과 화포를 구입하는것이 아니라 중개상을통해 간접구입하는 방식을 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설명을듣자 제이든은 단번에 이해했다.

동인도회사의 졸부들이 탐욕에물든 놈들이긴해도 바보는 아니다.

조선에서 온 상인들이 자신들에게 화약과 화포를 구입할려고 한다면 의심하거나 거부할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황금에 눈이멀어 화약과 화포들을 판매한다해도 잔머리를 굴리면서 몇배나 비싼값에 팔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청제국이 근대화를위해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면서도 뒤통수를 쳐맞고 호구가 되었다.

조선의 경우에도 고종이 일본으로부터 고철이나 마찬가지인 양무호를 몇배나 비싼값에 구입하며 호구짓을 하였다.

철종 이원범이 광저우에 왔다면 그런 헛수작은 애초부터 통하지도 않겠지만 대리인을 보내야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원범은 이번 임무를 담당할 김도영에게 며칠동안 사전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다.

그렇다해도 김도영이 영국령 동인도회사의 탐욕스런 놈들과의 거래에서 성공하기는 힘들다.

애초부터 동양인을 무시하는 놈들이니 결과는 뻔하니까 말이다.

그에반해 김도영이만난 제이든은 믿을수있는 협력자다.

제이든은 김도영이나 조선왕인 철종에대해 감탄했고, 조선을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김도영과 조선왕의 요구사항을듣자 제이든은 김도영에게 받은 자금을 이용해 본인의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이스트 프론티어(East Frontier)-

소유주는 영국에있는 시필드 가문이다.

대표자는 시필드 제이든이다.

얼마전까지 광저우의 뒷골목을 헤매다 죽을위기에까지 처해졌던 제이든은 본인이 설립한 회사의 대표가 된것이다.

이스트 프론티어가 첫번째로 시작한 것이 제이든이 영국령 동인도회사에게 화약과 화포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제이든은 본격적으로 협상력과 능력을 발휘했다.

여기에는 조선왕을통해 김도영에게 전달받은 정보도 큰 역활을 하였다.

조선왕이 원하는건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보유하고있는 대량의 화약과 화포이지만 창고에 오랫동안 쌓아둔 재고품들이다.

보관하는 동안 추가적인 비용만 더 들어가는 상황이다.

동인도회사로서는 적당한 가격에 처분하면 엄청난 이득이 생긴다.

“동인도회사의 신형화약과 화포들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쉽지가 않더군요.”

“아닙니다. 이정도만해도 충분합니다.”

김도영이 대답했다.

동인도회사도 제이든에게 신형화약과 신형화포들을 파는것은 힘들었다.

그에반해 제이든이 요구한것은 창고에 쌓여있는 화약과 화포들이다.

이것들중에 상당수는 관리부족으로 고철로 변해가는 상황이다.

제이든의 제안을 거부하면 재고품도 팔지못해 막대한 손해만 생기는 것이다.

본전이라도 건질 기회가 왔는데 그들이 거부할 까닭은 없었다.

제이든은 본래의 가격보다 저렴하게 계약을 성립했다.

이것은 김도영과 이원범에게도 이득이되는 윈윈(Win-win) 전략이다.

제이든의 이스트 프론티어(East Frontier)가 중개업자로서 20%의 이윤을 남기고 이원범에게 넘기는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본래 가격보다 싸게 구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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