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69)

“다행이군요.”

“손에 들고온것은 무엇입니까?”

“이건 선죽상회에서 취급한 홍삼이라는 것입니다. 제이든씨를위해 홍삼차를 준비해 왔습니다.”

“향기가 독특하군요. 영국에서 마시던 홍차와는 또다른 느낌인데.”

제이든이 대답하며 홍삼차를 홀짝거렸다.

따뜻한 찻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제이든의 두눈이 번쩍 뜨였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런 약효를가진 식물이 있다니!”

제이든이 놀란것도 당연했다.

이제는 걸을수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여전히 허벅지의 상처로인해 피로감이 있었다.

그런데 홍삼차를 한잔 들이키는 순간 온몸의 피로가 한꺼번에 씻겨 내려갔고 내부에서 강력한 힘이 솟아올랐다.

제이든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였다.

“조선이라는 국가는 신비한 곳이군. 이럼 엄청난 약재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니! 만약에 이 홍삼차를 영국이나 유럽에있는 귀족들에게 소개한다면 서로 살려고 난리를 치겠어.”

“그정도 입니까?”

“물론이네.”

제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도진은 어릴때부터 홍삼차나 홍삼을 자주 먹었기 때문에 익숙한 상태였지만 제이든에게는 엄청난 경험이였다.

얼마후 김도진은 제이든과 홍삼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였다.

서로에게 궁금한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도진도 호기심이 가득한 소년이였다.

아시아의 보물

“형님. 이런 영광이 생기다니! 마치 꿈만같은 기분입니다.”

“맞습니다. 저희같이 미천한 신분의 백성이 감히 하늘같이 높은 궁궐을 방문하게 되다니!”

한기준의 뒤에서 따라오는 두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태연한척 했지만 한기준도 마찬가지다.

군기시에서는 수석장인, 그리고 병기소관(兵機所官)-이라는 직책이지만 그닥 높은건 아니다.

단순히 병기소에있는 중인들과 현장 기술자들을 관리하고 명령에따라 작업을 진행시키는 직무에 해당될 뿐이다.

한기준처럼 보통의 중인들이 흔히 가지는 신분과 직책중에 하나다.

붓대나 놀리는 높으신 양반들이 볼때에는 비천하고 하찮은 위치.

그런데 양반들도 평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한 조선의 궁궐.

그것도 임금이 계시는 창덕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는 한기준같은 중인이 가고싶다고 갈수있는건 아니다.

그를 포함해 두명의 기술자들인 방정태, 전상문등은 해질녘쯤에 군기시를 찾아온 박규수를 만나고 당황했다.

그럴것이 박규수는 병조의 최고인 병조판서만큼은 아니라도 병조참의라는 상당히 높은 벼슬이자 관료이다.

박규수 앞에서 한기준과 일행들은 엎드렸다.

‘참의 어르신, 그것이 사실입니까?’

‘허허, 내가 여기 군기시까지 찾아와 자네들을 상대로 헛소리라도 할거같은가?’

박규수의 설명에 그들은 안심했다.

병조참의가 온것은 임금이 자신들을 만나고 싶다는거.

이전에는 임금께서 군기시를 찾아온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들을 창덕궁으로 데려오라는 어명이였다.

한기준은 임금이 박규수를보낸 사실을듣자 곧바로 만남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이번에는 전하께서 또 어떤 신묘한 것들을 보여주시고, 깨우침을 주실것인지...’

한기준의 속마음은 기대감으로 넘쳤다.

얼마후 병조참의 박규수는 현장의 기술자인 한기준 포함 3명외에 군기시에서 재능이 뛰어난 관료 윤민수도 데려왔다.

윤민수는 철종이 군기시를 방문했을때에 군기시가 처해있는 여러가지 상황과 어려움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개선점을 내놓은 뛰어난 인재였다.

때문에 철종 이원범은 윤민수에대해 기억했고 이후에 키울 인재들중에 한명으로 점찍어둔 상태다.

얼마후 그들은 창덕궁에 도착했다.

다만 정문으로 들어가는것이 아니라 후문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는 호위청과 금군의 병사들이 보였다.

창덕궁에있는 무관이나 병사들이 휴대한 철포를 본순간 한기준과 윤민수등은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임금에게 지시받은 백두철포를 개발하고 개량하는 힘든 작업.

그후에는 보병들을위한 보총 현무철포도 개발하고 개량했다.

군기시에서는 매일마다 작업이 진행되었고 수많은 장인과 기술자들이 땀을흘렸다.

이윽고 매일마다 생산되고 개량되는 신형 철포들의 숫자는 늘어갔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강력한 기병총과 보총들을 창덕궁의 병사들이 장비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부심을 느낄만도 하였다.

“병사들이 휴대한 백두철포, 그리고 현무철포를보니 그간의 고생과 노고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맞습니다.”

한기준이 윤민수를향해 대답했다.

윤민수가 양반출신이고 중인인 한기준에비해 직책도 월등하게 높았다.

그럼에도 두사람은 철종이 군기시를 방문한 이후부터 호홉이 잘 맞았다.

실제로 군기시에서 진행되는 백두철포, 현무철포의 제작과 생산은 윤민수가 상당부분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문에 철종이 윤민수를 창덕궁으로 부른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 * *

“전하! 병조참의 박규수와 군기시에서 온 관료와 장인들이 도착해 있습니다.”

“기다리던 참이였는데 잘되었군. 송내관은 그들을 안내하고 이야기가 길어질것도 같으니 고기와 술, 그리고 다과상을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송내관이 고개숙여 대답했다.

희정당에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초조한 마음이였다.

오후쯤에 일부러 병조참의 박규수를 불러서 군기시로 향하도록 하였다.

내가 직접 군기시를 가는것도 있지만 이번에는 군기시에서 활동하는 핵심적인 인재들을 궁궐로 부르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진행되는 무기개발의 보고를 듣는것이 주목적.

한편 그들의 성과를 격려하고 이후의 상황에대한 부분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런것을 하는데에 무능한 병조판서 따위는 필요없다.

솜씨좋은 병조참의 박규수와 필요한 인재들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잠시후 문이열리며 선두로 박규수가 들어왔다.

뒤를이어 군기시의 관료인 윤민수 그리고 백두철포와 현무철포의 개발에 큰 역활을한 수석장인 한기준과 기술자들도 보였다.

* * *

“부담갖지 마시고 천천히 드시요.”

“망극하옵니다. 전하!”

한기준과 기술자들 그리고 윤민수가 머리를 숙였다.

박규수의 경우에는 병조참의로서, 나를 돕는 측근으로서 희정당을 여러차례 방문하였다.

그에반해 나머지 사람들은 희정당에서 임금인 나를 만나는것이 거의 처음이다.

물론 한기준은 백두철포를 개발할때 비밀리에 두번정도 찾아오긴 했지만 그때에는 지금같은 정식적인 만남은 아니였으니 말이다.

“병조참의가 보기에 현재 군기시의 상황은 어떻소?”

“소신이 전라도에서 현감생활을 하던중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몰랐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전하의 부름을받아 한양으로 올라와보니 한성내의 군기시에서는 조선군의 군사력을 단번에 상승시켜줄 이런 신무기들이 개발되고 있었다니! 앞으로 조선의 부국강병이 얼마나 강력할지 기대가 되옵니다.”

대답하던 박규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물렀다.

처음에 박규수와 대면하고 그에게 병조참의를 맡아달라고 할때의 상황이 떠오른다.

병조판서나 병조참판도 아닌 참의다.

서열상으로 따져도 판서와 2명의 참판이 위에있으니 기껏해야 서열 4위나 5위정도.

이때문에 적들이 방심할수 있었고 동시에 박규수가 실무적인 일들을 하는데는 더없이 좋았다.

특히 박규수는 임금인 나의 지시를받아 자주 군기시를 방문해 내가 하달한 명령이나 진행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했다.

그들에게 술잔을 권하면서 넌지시 물었다.

“현재까지 군기시에서 개량한 백두철포와 현무철포의 수량은 어느정도쯤 됩니까?”

“전하의 어명에따라 군기시의 직인들이 밤낮으로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지만 전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점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윤민수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칭찬해 줄만한 성과다.

“보고를 듣자니 지금까지 제작한 백두철포가 1500정 정도, 그리고 현무철포가 대략 3500정. 도합 5000정도의 신형 철포들을 생산해 냈다는 뜻이군요.”

“황송하옵니다. 전하.”

“아니요! 과인이 그대들에게 백두철포의 개발과 제조를 명한것이 불과 몇달전인데, 이처럼 단시간에 대량의 신형 철포들을 만들어 내었으니 그 성과는 대단한 것입니다.”

격려를받자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 내가 본격적으로 원하는건 2-3만정의 백두철포, 그리고 6-7만정에 이르는 현무철포들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룩할려면 시간이 걸리는건 분명했다.

동시에 백두철포와 현무철포의 경우에는 기존에있는 화승총을 일정부분 개량하면 되기에 생산속도가 괜찮은 편이다.

“하오나 전하. 비록 신형철포의 개량과 생산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하지만 또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조선이 여태까지 비축해놓은 화약의 수량이 많은것이 아니고, 군기시의 모든 장인들이 신형 철포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보니 화포에대한 부분에서는 차질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화약의 부족과 화포라...”

한기준의 직언을 들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런걸보면 군기시의 윤민수나 한기준, 그리고 병조참의인 박규수까지도 병조와 군사분야에대한 식견은 뛰어났다.

조금전 한기준이 말한대로 화약의 생산물량 부족, 그리고 화포에대한 부분에서는 더 심각했다.

이것때문에 미리부터 준비를하고 일을 진행시킨것이 그나마 다행이였다.

“화약의 부족과 화포의 추가 생산에대한 부분은 과인이 따로 준비를 해놓은것이 있소. 따라서 군기시에서는 신형철포의 제작과 수량을 늘리는것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

나의 대답에 윤민수와 한기준등의 장인들이 당황했다.

그들도 조선내의 화약재고와 군기시의 상황을 알고있는 임금이 이런식으로 대답했으니 반박조차 못하고 멈칫거렸다.

내가 생각중인 모든것들을 저들에게 밝힐수는 없다.

하지만 나름 이유를 설명해 주는게 필요하지.

미리 나에게 귀띰을받은 박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서는 임금인 내가 직접말해줘 안심을 시키는게 도리다.

얼마후 그들에게 현재 선죽상회를통해 광저우에서 진행중인 비밀작전을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그들도 양이(서양오랑캐)나 광주(광저우), 심지어는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뭔지도 몰라서 당황했다.

하지만 광저우에있는 동인도회사를통해 대량의 화약과 양이들의 화포들을 조선내부로 들여온다는 설명에는 입이 벌어지는 중이다.

“소신들은 정말로 그런것이 가능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듣기로 양이들이 사용하는 화약이나 화포는 성능이나 품질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어느정도일지 기대가 됩니다.”

윤민수와 한기준, 그리고 기술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에게는 양이들이 사용하는 화약이나 화포등을 직접 눈으로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대한 도전과 호기심.

이것이 저들에게 원하는 부분중에 하나다.

얼마후 술잔을 비운뒤에 천천히 말했다.

“오늘밤 그대들을 희정당으로 부른것에는 군기시에서 진행중인 신형 철포들의 제작과 노고를 격려하기 위함이 첫번째 입니다. 두번째로는 조금전 말했듯이 이후에 조선의 내부로 들어올 대량의 화약들과 화포들에대해 군기시의 장인들이 연구를하고 많은것들을 알아내야 할겁니다. 이후에는 조선의 군기시에서 양이들의 화약과 화포들에 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병기들이 나올것을 기대하겠습니다.”

“전하의 성은에 보답하기위해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윤민수와 한기준등 기술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후에 동인도회사의 화약과 화포들이 조선으로 들어왔을때, 군기시의 장인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뜯고 분해하고 하루종일 갖고 놀것이다.

이미 뛰어난 손기술과 재주를 보여준 군기시의 장인들이다.

영국령 동인도회사의 화약이나 화포들이 조선보다 뛰어난 기술이 사용된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선의 장인들이 실물을 직접보고 연구를 한다면 충분히 비슷한 성능의 무기를 개발하거나 능가할수도 있었다.

* * *

“이거야말로 아시아의 보물이다.”

제이든이 탄성을 토해냈다.

그의 표정은 진흙속에 숨어있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것처럼 들떠있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것-

중국과 광저우에 먼저 진출했던 영국인들.

그리고 다른 유럽인들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홍삼에대한 존재.

유럽에는 인삼에대해 진생(Jinseng)-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관심을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럴것이 유럽인들중 일부가 알고있는 인삼이란것은 대부분 땅속에서 막캐낸 날것이였다.

제대로 보관하기도 힘들었고 조금만 지나도 썩어버린다.

그런데 조선에서온 선죽상회가 갖고있는 홍삼은 그 진생(인삼)을 말리고 건조한 제품이다.

생생한 인삼의 향과 효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으면서 수개월, 심지어는 몇년이라도 보관이 가능할 수준이다.

몇년동안 보관하기 위해서는 포장이나 보관방법을 더 개선시켜야 하겠지만 불가능한건 아니다.

자신과같은 영국인, 그리고 유럽인들에게 인삼은 동방의 신비한 약재이면서 손에 넣기도 힘들었다.

보통은 약재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제이든은 홍삼차를 맛본뒤에는 새로운 발상이 떠올랐다.

이미 홍차가 대중화된 영국.

뜨거운 음료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는 습관이많은 유럽의 부자들에게 홍삼은 또다른 Must-have 아이템이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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