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발판으로 그녀는 청제국 말기.
최고 권력자인 서태후로 올라가는 날개짓을 시작한 것이다.
고려봉 맛이 어떠냐?
“리앙쉰이 없다보니 이처럼 곤란한 일이 생길줄이야.”
참담한 표정으로 시필드 제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어느정도 광저우 지리나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판단했는데, 오만에 불과했던 것이다.
제이든이 리앙쉰과함께 다녔던 길들은 광저우에서도 번화한 대로변이고 안전한 장소들이 대부분이다.
그때문에 리앙쉰이 동남아시아 말라카지역으로 떠났을 때에도 제이든은 걱정하지 않았다.
광저우에 있으면서 경험도 쌓였고 혼자서 활동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제이든은 광저우가 얼마나 큰 도시이고.
이방인인 자신이 알지못하는 어두운 장소가 훨씬더 많다는걸 몰랐다.
중국인들에게 양이(서양오랑캐)로 취급되는 자신이 제대로된 안내자나 경호도없이 다니면 어떤상황에 놓이게 되는지는 더 몰랐던 것이다.
이것에는 제이든이 북아프리카에서 지냈던 경험을통해 호기를 부린것도 있었다.
‘리앙쉰과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한 결과인가?’
제이든이 주위를 살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수조차 없었다.
숙소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곳이다.
제이든이 지내는 숙소는 광저우에서도 외국인들.
특히 영국인들의 밀집해있는 주택가쪽이다.
여기는 이후에 영국의 조차지역으로 변하면서 나중에는 광저우에서 브리티쉬 타운(British Town)이라는 명칭이 생기기도 하였다.
평소에 제이든은 브리티쉬 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다른 지역으로 가본적은 별로 없었다.
때문에 중국 빈민들이 지내는 장소로 들어온 제이든에게 골목들은 미로처럼 뻗어있었다.
깊은 밤에되면서 주변에 불빛조차 없는 상태가되자 그는 암흑속을 헤메는듯한 기분이였다.
제이든은 광저우 외국인들 밀집지역에서 보았던 중국의 모습에서 중국이란 국가가 어떤 곳인지를 실감하고 있었다.
제이든이 미로같은 골목에서 헤매고있는 장소는 광저우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빈민촌들이 곳곳에 있었다.
광저우와 중국을 강타한 아편의 폐악으로 인해 군데군데 아편굴도 존재했다.
제이든은 여기까지 오면서 3~4개의 아편굴을 지나쳤다.
그때마다 아편굴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소음과 코를찌르는 악취에 속이 울렁거렸다.
지금은 그런걸 따질때가 아니였다.
본능적으로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던 것이다.
저벅! 저벅! 후미진 어둠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정체를 알수없는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제이든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사냥감을쫓는 늑대의 것이다.
그중에는 아편으로 폐인이되어 입에서 침까지 흘리는 놈들도 있었다.
한두명이라면 어떻게 해볼수도 있지만 숫자는 점점 증가했다.
타다닥! 제이든이 눈치를 보더니 달렸다.
제이든을향해 외치는 중국어가 사방에서 터져나온다.
“잡아라. 놓치면 안돼!”
“돈도 많아보이는 양이놈인데 제대로 걸렸다!”
그들이 제이든을 노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빈민가에는 어울리지않은 번듯한 양복차림.
거기다 돈도 많아 보이는 양이(서양오랑캐)다.
그들의 판단대로 제이든이 갖고있는 귀중품도 꽤 된다.
금으로된 회중시계는 기본이고 명문가인 시필드 가문의 차남이라는 그의 몸값까지 생각한다면 굴러다니는 금덩이인 셈이다.
제이든이 다급하게 영어로 그들에게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달려드는 그들중에는 무기까지 손에쥐었고 시퍼런 칼날이 어둠속에서 드러났다.
저들에게 잡히면 무슨꼴을 당할지는 뻔했다.
귀중품을 강탈당한 뒤에는 사지가 절단되어서 길바닥에 뒹굴것이다.
“설마 이런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될줄이야.”
선두에서 달려드는 한명을 주먹으로 갈긴뒤에 간격을 벌렸다.
그것으로는 최후의 순간이 몇초정도 연장되었을 뿐이다.
큭! 칼날이 제이든의 허벅지를 가르며 선혈이 솟구친다.
이제는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때 제이든이 알아듣기힘든 괴성이 후방에서 터져나왔다.
광저우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중국어와는 또다른 언어였다.
“아편에찌든 개놈들에게는 몽둥이가 약이지!”
“가오리빵즈(고려봉) 맛이어떠냐?”
퍽! 퍼퍼퍽! 둔탁한 굉음이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제이든을 도륙내기위해 달려들던 적들의 숫자는 못해도 50명에 이르렀다.
제이든의 뒤쪽에서 나타난 사내들의 숫자는 겨우 10명정도.
숫적으로 불리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봉술은 강력했고, 개패듯이 중국인들을 박살내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지?”
“Hey, Come here. Are you wanna die(너 이리로 와. 죽고싶어?)”
“......”
제이든이 당황했다.
상대가 영어로 말한것은 분명한데 발음도 엉성하면서 문맥도 이상하다.
하지만 자신이 살수있는건 한곳.
제이든이 서둘러 김도영쪽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김도영이 제이든을향해 달려들던 적의 머리를 굵은 봉으로 내리쳤다.
퍼억! 머리에 피가 솟구치던 중국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제이든은 상대를 확인할수 있었다.
광저우에서 익히봐왔던 중국인들과는 옷차림이나 많은것이 틀렸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난 영어 조금밖에 몰라.”
김도영이 제이든에게 대답한뒤 계속해서 봉을 휘둘렀다.
그리고 김도영과 함께있던 선죽상회의 식솔들은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하며 적들을 막아냈다.
바닥에 피를뿌리며 30명정도가 쓰러지자 나머지 중국인들이 겁을내며 도망쳤다.
“아무튼 짱개놈들! 개처럼 도망치는 꼴이라니!”
“짱개놈들 패는데는 몽둥이가 최고지! 혹시 다친 사람들은 없나?”
“모두 무사합니다. 부행수님!”
“우리들도 철수하자. 여기서 얼쩡거리다가 청국 관원들에게 들키면 곤란하니까.”
“알겠습니다.”
선죽상회의 식솔들이 대답하며 행동을 개시했다.
죽다가 살아난 제이든은 숨을 헐떡거렸다.
제이든을향해 갓 20살이 될법한 소년이 다가왔다.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여기서 있다가는 시체가 될것입니다.”
영어로 말하며 손짓했다.
그제서야 제이든은 소년과 일행들을따라 움직였다.
지금은 이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생명의 은인들이다.
* * *
“양이(서양오랑캐)의 상태는 어떠냐?”
“허벅지에 상처를입은 것외에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거 같습니다.”
“그놈도 참 멍청하군. 광주(광저우)가 어떤곳인줄 알고 혼자서 헤매고 다니다니!”
“대충보니 아직 이곳 물정을 제대로 모르는 양이 같습니다.”
“하긴 나이도 많지않고 입고있는 행색도 보통의 양이들과는 좀 다르기는 하더구나.”
“형님.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손님이니 계속 양이로 부르는것도 민망한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양놈(양자)은 어떠냐?”
김도영이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에대해 김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두사람이 말하는 양이는 며칠전 광저우의 빈민굴에서 구해낸 시필드 제이든이다.
제이든을 처음 발견한건 동생인 김도진이였다.
금발에 이국적인 복장을 하고있는 제이든의 모습은 중국인들이 가득한 빈민가 지역에서는 눈에띠는 것이니까 말이다.
김도진도 제이든을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칠려고 하였다.
하지만 제이든을 따라 골목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들을 확인했고, 이것을 형인 김도영에게 말했다.
광저우에서의 경험이 오래된 김도영은 곧바로 상황을 판단했다.
빈민가에 들어간 양이가 어떤꼴을 당할지는 뻔하니까 말이다.
그것도 행색이 부유해 보이는 양이는 맛좋은 사냥감에 불과하다.
김도영은 동생에게시켜 양이를 살펴보게 하였고, 얼마후에 막내가 다급하게 신호를 보내었다.
시필드 제이든이 적들에게 쫓길때 들었던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는 막내인 김도진이 보냈던 것이다.
신호를받고 달려온 김도영과 선죽상회의 식구들은 호신용으로 갖고있던 막대기와 봉을 휘두르며 한바탕 활극을 펼쳤던 것이다.
그뒤에는 허벅지에 칼을맞고 절뚝거리는 시필드 제이든을 데리고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왔다.
헐떡거리며 도착한 시필드 제이든은 안도감으로 쓰러졌고, 김도영은 근처에있던 의원을불러 상처를 치료하게 해주었다.
얼마후 선죽상회의 식구중에 한명이 김도영에게 말했다.
“부행수님. 양이가 눈을뜬거 같습니다.”
“어디서 뭘하던 놈인지를 확인해볼까. 아참! 도진아. 너도 같이 참석하도록 해라. 그래도 양이의 말을 나보다 잘하는게 막내인 너니까.”
“과찮입니다. 형님.”
막내가 고개를 숙였다.
첫째인 김도영이 막내를 광저우까지 데려온것은 이유가 있었다.
어릴때부터 총명한것은 물론이고 외국어를 습득하는 능력도 자신보다 뛰어났다.
처음에 영길리 말을 가르쳐 준것은 김도영이였지만 지금은 막내의 실력이 탁월할 정도였다.
* * *
“천운이라고 해야하나? 북아프리카에서 지냈던 경험이나 생활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하!”
시필드 제이든이 자조적인 웃음을 토해냈다.
그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나 중동의 이집트, 그리고 몇몇 국가에서 지낼때는 생명이걸린 위험따위는 별로 없었다.
그럴것이 제이든 혼자서 지낸것도 아니고 시필드 가문에서 같이따라온 하인과 시종들도 있었다.
그때에는 시필드 가문의 기반이나 위치도 상당했기 때문에, 제이든에게는 영국을떠나 한가롭게 여행이나 하는 생활이였다.
하지만 광저우에 도착해 시작한 생활은 완전히 틀렸다.
북아프리카에 비해 중국은 영국에서도 상당히 멀었다.
제이든은 여기까지 단독으로 왔고 안내자라고 해봐야 인도에서 만났던 리앙쉰이 전부였다.
하지만 리앙쉰도 말라카지역의 사업을위해 떠난 상태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혼자는 아니였다.
제이든은 브리티쉬 타운에서 지냈다.
그곳에는 동인도회사를 포함해 이주해온 다른 영국인들과 서양인들도 있었기에 그들과의 만남을통해 여러가지 활동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도 대부분은 리앙쉰만큼 광저우를 잘 아는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통역을 대동하고 다니는 중국의 거상들과 만나서 거래하는게 전부였다.
이처럼 시필드는 광저우에서 자신이 철저한 이방인이란 사실을 실감했다.
이곳에서 독자적인 세력과 기반을 만드는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래서 광저우에서 활동의 영역을 넓혀보기 위해서 시도를 하다가 죽을뻔한 위기를 맞이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실수에대해 실망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전화위복이라고 하던가.
제이든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리앙쉰도 가보지못한 조선 사람들을 여기에서 만나게 되다니!”
시필드 제이든에게 조선인들은 대단한 존재들이였다.
첫째로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물론이고 그들은 숫적으로 몇배나 많은 중국인들을 상대로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칼에 허벅지가찔린 고통속에서도 제이든은 조선인들이 휘두르는 묵직한 몽둥이에 나가 떨어지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번째는 비밀에 가려져있던 조선인들중에 영어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20살도안된 소년이 나름 명확한 발음을하며 자신이 하는 말도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을 도와줬던 리앙쉰만큼 유창하게 영어를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제이든은 자신과 대화하는 소년, 김도진을통해 조선에대해 많은것을 물어볼수 있었다.
이것을통해 알게된것은 여러가지다.
그중 하나는 조선은 북쪽으로는 청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남쪽으로는 바다를건너 일본의 사이에 있었다.
영토는 청제국에비해 월등하게 작지만 역사적으로 거대한 중국제국을 상대로 버텨오면서 그들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였다.
얼마후 제이든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즈음 문이열리며 김도진이 들어왔다.
“제이든씨. 몸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충분히 걸어다닐수 있을정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