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69)

겨우 사춘기를 벗어난 나이다.

악녀의 등장

“형님. 여기에 계셨군요.”

“어서와라. 막내야.”

김도영이 손짓했다.

동생을 바라보는 표정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막내인 김도진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당연할 것이다.

처음으로 조선을떠나 낯선 이국땅으로 향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선죽상회에는 객주인 김상태의 슬하에 모두 3명의 아들과 2명의 딸들이 있었다.

첫째가 선죽상회를 지금의 위치로 만드는데 큰 역활을한 김도영이고 둘째가 김도광, 막내가 김도진이다.

청국의 항구도시 광저우로 향하는 여정에서 첫째인 김도영은 막내를 데려가고 있었다.

막내인 김도진은 큰형에게 이유를 들었을때 너무도 놀랐다.

“큰형님. 제가 그처럼 큰일을 해낼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걱정마라. 어차피 많은부분은 나와 둘째가 할것이다. 내가 이번에 너를 광주로 데려가는것은 다른 이유다. 앞으로 너는 우리가문과 선죽상회에있어 중요한 핵심이될 인재다. 따라서 너는 좀더 큰 세계에서 배우고 경험하는게 필요하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광주(광저우)에서 너와함께 지내며 도와줄 선죽상회의 식구들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김도영이 느긋하게 말했다.

첫째인 김도영은 이번에 임금과의 만남을통해 눈이 확 떠진 기분이였다.

나름 조선에서 청국도 왕래하고 중국어와 기초적인 영길리국(영국)말도 할수있는 인물이였다.

조선팔도의 거상이나 상인들 중에서는 외국에대한 경험이나 식견이 누구보다 많다고 자부했다.

김도영의 경험이나 외국 문물에대한 지식은 북경을 방문하는 사신단의 관료들보다 높을 수준이다.

그런 자부심이 있었는데 임금과의 만남을통해 김도영은 자신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의 신세였는지를 깨달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임금의 식견은 김도영이 감히 따라갈수 없을 수준이였다.

궁궐안에 있으면서도 청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

심지어 왜국과 구라파의 국가들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도 훤히 아는 수준이다.

김도영을 더 충격에 빠뜨린 말.

전하는 더이상 청국을 조선의 상국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

조선은 청국의 그늘을 벗어나서 독자적인 발전을 할것이며, 그것을위해 양이들과의 교역에도 나설것이라는 계획이였다.

이것이 의미하는건 분명했다.

지금까지 조선의 상인들에게는 청국의 상인들이 주된 거래 상대였다.

일부의 경우에는 왜국의 상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임금의 뜻에따라 조선상인들의 영역이 엄청나게 넓어질 것이라는 부분이다.

그것을위해 김도영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자신이나 둘째의 경우에는 이미 선죽상회의 일들을 담당하고 있기에 쉬운게 아니다.

그에반해 어릴때부터 총명한 막내가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기회를주고 준비시켜야 겠다고 결심했다.

“막내야, 너는 아직까지 전하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미 전하께서는 조선만이 아니라 더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계시다. 너와 나. 아니 우리 가문이 전하의 원대한 뜻에 부응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것이다.”

형님의 뜻대로 많은것을 경험하고 배우겠습니다.”

막내가 대답했다.

얼마후 선장이 다가왔다.

그들이 타고있는 배는 과거에 선죽상회에서 개성과 광주(광저우)를 왕래할때 탑승했던 선박에 비해서 몇배나 큰 수준이다.

조선에있던 대형상선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에 속했다.

김도영이 임금의 특명을받아 은밀하게 구입한 것이다.

지금 그들이 타고있는 선박외에도 선죽상회는 비슷한 크기의 대형선박 한척을 더 구매해서 준비중에 있었다.

2척의 대형 선박들은 앞으로 조선에 필요한 수많은 물품들을 은밀하게 실어나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임금의 비밀 명령에의해 진행되는 것이고 이후에는 운송하는 선박의 숫자들도 계속해 늘어날 것이다.

“조금후면 광주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준비를 해야겠군.”

김도영이 대답하며 대기중이던 선죽상회의 식구들에게 명령했다.

“필시 광주에있는 순찰선에서 검색이 있을것이다. 이번에는 우리들 목숨보다 귀중한 화물이 실려있는만큼 철저하게 위장해야 한다.”

“걱정마십시요. 조선에서 가져온 화물상자들 사이에 이중으로 공간을 만들어서 넣어두었습니다. 순찰선의 청국관원들이 화물상자들을 모조리 뜯어보지 않는한 발견할수는 없을겁니다.”

“그놈들이 원하는건 화물검색을 핑계로 푼돈이나 벌겠다는 것이니까.”

김도영이 냉소를 지었다.

청제국의 남방에 위치한 최대의 항구도시 광주(광저우).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척에 이르는 화물선박들이 입항하거나 출항을 반복했다.

그중에는 중국내에서 화물을 수송하는 선박들도 있었고, 타국에서 들어오는 선박들도 있었다.

때문에 광저우 근해에는 군데군데 순찰선들이 배치되어서 출입하는 화물 선박들에대해 검색을 하기도했다.

하지만 이 검색절차란게 제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것이 철저하게 되었다면 애초에 중국의 내부로 대량의 아편이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청나라가 영국에게 패배하는 아편전쟁도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 1 차 아편전쟁의 발단이된 임칙서의 아편몰수도 그가 단지 정상적인 검색절차만 수행했는데도 그처럼 엄청난 양이 발견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선박내에 다량의 아편들이 실려있어도 대충 눈감아주고 통과시켜주는게 관행이였다.

공짜는 아니고 검색나온 관원들에게 상당한 뇌물을 쥐어주고 말이다.

이처럼 광저우에있는 청나라 관원들의 부정부패와 탐욕은 상당했기 때문에 김도영은 자신감이 있었다.

* * *

“첫째 태자께서 그 노래를 좋아하신다는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만약에 거짓말 한거면 너의 그것을 짤라.... 아니, 넌 없구나.”

“못된년. 너가 나한테 그런말을 하다니.”

“미안해. 하지만 만약에 내가잘되면 너한테도 보상을 두둑히 해줄테니까 걱정마.”

“그 약속 꼭 지켜라.”

“물론이지.”

젊은 환관을향해 대답하며 행아(杏兒)가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속에는 나중에 이녀석이 방해되면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해야겠다는 구상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정보를 넘겨주던 환관 양구동은 그런것을 전혀몰랐다.

그리고 양구동은 눈앞에있는 여자가 이후에 희대의 악녀인 서태후가 된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행아에게 귀중한 정보를 전해준 환관 양구동은 주위 눈치를 살피더니 서둘러 사라졌다.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두명다 그날로 마지막일 테니까 말이다.

자금성에서는 사내의 상징인 그것이 잘려버린 환관이라해도 어린 궁녀들과 사적으로 접촉하는게 허용되지 않았다.

그럴것이 자금성에있는 궁녀들은 오로지 청나라 황제만을위해 존재하니까 말이다.

‘일평생을 평범한 궁녀로 살다가 죽을수는 없지.’

행아가 주먹을 쥐었다.

십대의 어린나이에 자금성에 궁녀로 들어온 행아는 누구보다 야심이 가득했다.

세상을 지배하는건 남자.

그런 남자를 지배하는건 여자다.

그녀가 원칙으로 믿고있는 부분이다.

현재 자금성에서 최고의 권력자는 황제다.

그러나 현 자금성 황제인 도광제는 노쇠하였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청조의 신하들 사이에서는 차기황제가 누가 될것인가에대해 파벌이 갈리는 중이다.

눈치빠른 행아는 궁에서 지내는동안 그것을 파악했다.

‘많은 사람들은 둘째 태자인 혁흔이 차기황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세상일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도 생기잖아. 그리고 둘째 태자인 혁흔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볼수있는 기회도 없고.’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자금성에는 그녀외에도 수많은 궁녀들이 있었다.

궁녀들의 가장 큰 소망은 황제에게 간택받거나 또는 차기 황제가될 인물에게 간택을받아 한방에 신분상승을 하는것이다. 그녀같은 일반궁녀들에게 그런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차기황제로 유력시되는 둘째태자인 혁흔을 그녀가 구워삶을 기회는 애초부터 없었다.

때문에 그녀가 노린것은 첫째 태자인 혁저이다.

그럴려면 첫째태자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아야 했다.

남자는 경국지색의 미모를지닌 여자에게 끌린다.

다만 행아의 미모가 중국역사에나온 4대 미녀정도는 아니였다. 애초에 행아가 궁녀로 뽑힐만큼 고향에서는 나름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준이긴 했다.

하지만 자금성에있는 궁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수준도 아니였다.

중국내 각 지역에서 예쁘다고 선발된 궁녀들이 모여있는 자금성에서는 중상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

대신 그녀에게는 다른 무기가 있었다.

뛰어난 노래 솜씨.

어릴때부터 노래를 불렀고 고향에서도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 노래나 부른다고 첫째태자가 자신에게 끌리는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계획을 세웠다.

태자궁에서 일하는 환관들중에서 적당한 놈을 골라서 좀 친해졌다.

그리고 첫째태자가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를 알아낸 것이다.

‘역시 첫째태자는 어릴때 죽은 자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그녀가 환관을통해 첫째태자가 좋아한다고 알아낸 노래.

그것은 원역사에서 함풍제가 10살때 사망한 자신의 생모, 효전성황후가 자장가처럼 불러주던 노래였다.

성년을 앞에두고있는 첫째태자는 여전히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훌쩍거리는 마마보이같은 상태였고, 행아는 자신감이 생겼다.

첫째태자 혁저에비해 둘째태자인 혁흔은 기골이 강성했고 어릴때부터 사냥을 좋아하며 용맹했다.

그리고 첫째인 혁저와 둘째인 혁흔은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형제다.

자금성내 신하들 사이에서는 같은 도광제의 밑에서 저렇게 성향이다른 두명의 태자가 존재하는건 역시나 어머니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수근대었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면 도광제의 분노를받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제 모든 준비는 갖추어졌어. 행동으로 옮기는거만 남은거야.’

행아가 결심했다.

지금까지는 자금성에서 평범한 궁녀로 살았지만, 야망을위해 모든걸 던지기로 한것이다.

* * *

“태자전하! 무슨 일이시옵니까?”

“조금전 노래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시종을향해 질문하며 첫째태자 혁저가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다.

이복동생인 혁흔이 사냥을 나간다고 하면서 동참을 요청했지만 혁저는 거부했다.

사냥같이 활동적으로 움직이는게 자신에게는 맞지않았고 사냥을 나갔다가 말을 잘못타서 낙마직전의 경우까지 있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혁저의 대답에 혁흔은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거기에는 자신에대한 존경심은 별로없었다.

혁저는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수 없었다.

많은 신하들이 이복동생인 혁흔이 차기황제가 될거라며 줄을 서고있는 상황이다.

혁저도 은연중에 그것을 느낄수밖에 없었고 동생을 상대로 문제를 일으키면 불리한건 자기쪽이다.

‘혁흔 이놈! 어릴때 귀엽다고 봐줬더니 이제는 내 머리위로 기어오를려고 해?’

속으로 울컥하는 마음을 달래려고 혁저는 태자궁을 나서서 자금성 후원쪽을 거닐었다.

그때 자신의 귀에 익숙한 노래소리가 들린것이다.

어릴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장가로 불러주던 노래.

대중적인 노래는 아니기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저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 있다니?

“태자전하. 어디를 가시는 것입니까?”

“잠자코 따라오너라.”

시종을향해 대답하며 혁저가 걸음을 서둘렀다.

얼마후 그의 눈에 한명의 여자가 보였다.

“처음본 궁녀로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나도...”

혁저가 뒷말을 잇지못했다.

작은 연못가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 궁녀의 나이는 자신보다 몇살은 어려보였다.

경국지색이나 절세미녀는 아니였지만 충분히 아름답게 보였다. 무엇보다.

혁저는 어릴때 어머니가 불러주던 그리운 자장가를 노래로 부르는 그녀에게 홀딱 빠지고 말았다.

혁저가 노래가락에 홀리듯이 다가갔다.

흥얼거리듯 노래를 부르던 행아(서태후)가 놀란듯이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태자전하!”

“아니다. 방해해서 미안하구나. 그대신 조금전 네가 부르던 노래를 계속해서 불러보아라.”

혁저가 조급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이것에대해 행아는 주저하는 모습으로 혁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첫째태자인 혁저가 자신의 노래에 완전히 빠져있다는걸.

‘역시 환관녀석이 가져다준 정보가 정확하구나. 호호호!’

행아가 속으로 웃으면서 표정관리를 하였다.

어린나이에 자금성으로 들어와서 몇년동안 허드렛일을 했다. 그리고 기회를 노리던 그녀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제 그녀는 첫째태자(함풍제)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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