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69)

동인도 회사를 이용하는 전략

“여봐라.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준비를해라.”

“이판대감을 잠깐 만나러 온것인데 너무 과분한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영상대감은 조정신료들중에 큰 어르신인데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으셔야지요.”

김좌근이 재촉했고 정원용도 할수없었다.

잠시후 밖에서 대기중이던 시종이 술과 다과를 준비해왔다.

이것을보며 정원용은 미간을 꿈틀거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럴것이 지금은 한낮이다.

조정내 다른 관료들은 저마다 업무를 하느라 바쁜데, 이조판서인 김좌근은 집무실에서 평소에도 술을 마신다는 소문이 사실인듯 보였다.

김좌근부터 시작해 그의 세력들.

그리고 좌의정과 우의정까지 업무는 내버려두고 창덕궁 내에서 술판을 벌이는 경우도 빈번했다.

오전에 진행되는 조회에 얼굴을 비춘뒤에는 모든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것이다.

그들이 비변사에 모여서 술을먹고 어떤 경우에는 외부에서 기생까지 불러들여 흥청망청 쓰는 일도 있었다.

이 모든것들이 민초들에게 거두어들인 막대한 세금과 조정의 예산을 탕진하면서 벌어지는 짓거리였다.

‘안동김씨들의 패악질이 갈수록 심해지는구나.’

정원용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영의정이란 직책에 있으면서도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의 세력을 막지못한 것에대한 자책감이였다.

한편 정원용은 김좌근과 단독으로 만나면서 임금이 자신에게 이 임무를맡긴 이유를 실감했다.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의 간악함을 체감하는 기회가 된것이다.

얼마후 술상과 다과상이 준비되자 김좌근이 웃으면서 잔을 따랐다.

그 웃음은 간신배의 것이였고 정원용은 술상을 엎어버리고 싶다는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영상대감을위해 귀한 명주를 준비했습니다. 청에서 가져온 것인데 아주 진귀한 맛입니다.”

“그렇군요. 허허.”

정원용이 술잔을 들이키며 대답했다.

김좌근의 말대로 비싼 술이였고 맛도 괜찮았다.

하지만 애민정신이강한 정원용에게는 쓰디쓴 한약을 삼키는 기분이였다.

몇차례 잔을 주고받던 사이에 김좌근이 표정을 바꾸면서 질문했다.

“영상대감과 술자리를 가진것에 기쁘지만 저로서는 대감께서 뭣때문에 여기까지 오신건지가 더 궁금하군요.”

“이판대감께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먼저 일러두는게 좋을것이라 판단해서 왔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그러니까...”

망설이던 정원용이 천천히 설명을 하였다.

술잔을 들이키던 김좌근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술잔을 탁 내려놓았다.

“영상대감. 그것이 사실입니까?”

“허허. 너무 흥분하지 마시요.”

“그럴수밖에 없지 않소이까? 박규수와 이하응을 조정으로 부르겠다니요? 왜 그런 생각을 하셨단 말이요?”

이제는 김좌근이 정원용을향해 따져묻고 있었다.

자신의 아랫사람을향해 추궁하는 태도다.

정원용은 이순간 김좌근이 숨겨왔던 본색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것은 임금인 철종을통해 미리 언질을받은 부분이다.

모든것이 임금의 말대로 진행되었고 김좌근도 그런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역시 전하는 보통인물이 아니구나.’

정원용은 내심 감탄했다.

김좌근의 무도한 짓거리에 분노가 생겼지만 정원용은 계속해서 입가에 미소를 유지했다.

“먼저 박규수는 지방의 현령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그의 재능은 뛰어납니다. 그리고 흥선군 이하응에 대해서는 이판대감께서 불만이 있다는걸 알고있소.”

“그는 왕족이면서 잘못하면 주상전하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존재가 될수도 있습니다.”

김좌근이 반박했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속뜻은 전혀 다르다.

정확히는 이하응이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것에대해 정원용이 웃으며 말했다.

“흥선군은 기껏해야 20대후반의 청년일 뿐입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모든것이 부족한 인물인데, 그가 무엇을 할수있겠소? 이판대감 앞에서 그는 기껏해야 하룻강아지 신세일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허허!”

정원용이 일부러 김좌근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김좌근의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

그것을 확인하며 정원용이 설명을 덧붙였다.

“본관이 늙고 노쇠하여 조정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것이 쉽지않기에 흥선군 이하응을 잠시 등용하여 보좌관으로 써볼까 생각해서 말을꺼낸 것이요. 그때문에 이하응에게는 어차피 의정부 정랑이라는 임시직을 맡길 생각입니다. 만약에 흥선군이 제대로 일을 못하거나 딴 생각을 품는다면 이판대감께서 그에게 따끔한 질책을 내려도 괜찮습니다.”

정원용의 말을듣자 김좌근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김좌근은 흥선군 이하응을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하응이 조정의 관료중에 그것도 임시직이고 별로 실권도없는 관료로 들어온다면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것이다.

이하응에게 제대로 복수할 기회가 생길수도 있다는것.

김좌근의 표정변화를 살펴보며 정원용은 당근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의정부에서 일할 새로운 관료를 김좌근에게 추천해 달라는것.

이것을듣자 김좌근이 술잔을들며 말했다.

“영상대감께서는 현명하십니다. 모든것은 서로 도와가면서 해야 큰문제도 생기지않고 조정의 평온이 유지되는 법이지요.”

“이번일에 대해서는 대비마마께서도 허락을 하셨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저도 영상대감의 뜻에따라 새로운 인재를 추천하겠습니다.”

자신의 누이인 순원왕후도 일정부분 허락한 상태.

김좌근은 의정부에 자신의 세력들을 몇명이나 집어넣을수있는 기회가 생겼다.

결과적으로 볼때 이득인 것이다.

술잔을 들이키던 김좌근의 표정이 탐욕으로 변하였다.

정원용은 그 표정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속으로 안도했다.

임금의 예상대로 김좌근은 미끼를 물었다.

정원용은 김좌근 세력을 능숙하게 상대하는 임금의 솜씨에 감탄했다.

* * *

갈수록 돈을 쓸곳이 늘어간다.

그나마 운산금광의 개발을 일찍부터 시작한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물론 운상금광의 매장량이 아시아 최고의 수준이고, SSS-급 금광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의 산업화, 그리고 군사력 강화를위한 자금을 운산금광에만 의지할수는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조선이 아무것도 없는 기초단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준이다.

동시에 운산금광에서 캐낸 금들은 왕실의 금고에 차곡차곡 저장되지만 이후에는 곧바로 다른곳에 쓰기위해 나간다.

즉 돈이 들어오자마자 또 나가는 상태-

다만 그런 상황에서도 내탕금에 조금씩이라도 금괴가 모이는건 다행스런 일이긴 하지만.

“이번에 공조정랑이 큰 수고를 해주었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공조정랑 서인국이 고개를 숙였다.

공조판서인 김석민도 실력이 출중했지만 그는 공조에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총괄하는 자리다.

때문에 임금인 내가 개별적인 임무나 특명을 맡길때에는 이처럼 공조내의 재능있는 관료를 시켜서 진행시키는게 편했다.

물론 이런 개별적인 임무를 맡기는 부분에 대해서도 공판에게 따로 일러두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지금쯤은 개성에서 출발한 상선들이 광주(광저우)에 도착할거 같군요.”

“적어도 내일이나 모래쯤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인국이 대답하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도 이번에 선죽상회에 맡긴 특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선죽상회에 특명을 맡기기위해 상당한 돈을 투자했다.

실패하면 조선이 제국주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마지막 기회마저 날아간다.

“소신이 보기에 선죽상회의 부행수는 눈치도 빠르고 청국을 자주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전하께서 그들에게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집어 주셨으니, 어명을 받들기위해 신명을 바칠 것입니다.”

“공조정랑이 그렇게 대답하니 안심이 되는군요.”

서인국의 공을 격려하며 술잔을 건네었다.

그의말대로 선죽상회의 부행수가 제대로 일을 해낸다면 조선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 * *

눈앞으로 출렁이는 파도-

풍랑은 거칠지 않았다.

선체가 순풍을받아 빠르게 나아갔다.

갑판에 나와있는 김도영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내생전 전하를 직접 독대하는 영광을 누리다니... 하지만 어깨가 무겁구나.’

길게 숨을 들이켰다.

한달동안 김도영에게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그중에서 놀라운건 상인의 신분으로는 범접조차 못할 창덕궁으로 입궐한 것이다.

한낮에 정문으로 들어간건 아니고 야심한 밤에 궁궐의 호위를 담당하는 무관의 안내를받아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김도영에게는 난생처음의 경험이다.

그것만이 아니였다.

임금이 지내는 침소 희정당에 초대를받아 간것이다.

조정의 높은 관리들도 대부분 임금의 침소인 희정당의 근처로도 못간다.

그런데 일개 상것인 자신이 그런 영광을 누렸다.

김도영은 그곳에서 하늘이내린 조선왕이 어떤 모습인지를 목격했다.

‘조선임금이 아니라 중원제국의 천자와같은 모습이다. 조선에 이런 천인이 나타날 줄이야.’

김도영이 고개를 저었다.

소문으로 듣기에 전하는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임금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헛소문인지를 뼈속으로 체감했다.

지금 조선은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얼마후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그 폭풍을 순풍으로 타느냐 아니면 역풍을 맞느냐의 문제였다.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선죽상회는 순풍을타는 행운을 얻었다.

더좋은 순풍을 타기 위해서는 이번에 맡긴 밀명을 반드시 완수해야 했다.

처음 김도영은 임금의 밀명을받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양이들을 상대로 대량의 화약과 화포등을 구매하는 임무.

김도영이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고 화약과 화포등에 대해서도 지식이 많은것도 아니였다.

어떤 화약을 구매하고 어떤 화포를 사야되는지도 몰랐다.

그것을 양이들한테서 어떻게 사들인다는 것인가?

광주(광저우)에서 지나가는 양이(서양인)를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수도 없다.

잘못 하다가는 광저우에있는 청국 관원들에게 체포당해 어떤 벌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김도영은 임금을향해 대답조차 못한채 벌벌떨었다.

그런데 임금은 김도영의 상황을 알기라도 한듯이 해답을 내려주었다.

영길리국의 동인도회사-

임금은 김도영을향해 판매자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동인도회사에 대해서는 김도영도 광저우에서 활동할때 소문은 들었다.

아편을 대량으로 취급했고 동인도회사에 소속된 철선들의 숫자도 많았다.

청의 상인들은 영길리국 동인도회사에 대해서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때문에 김도영도 영길리국 동인도회사에 대해서는 절대로 가까이 해서는안될 놈들로 생각했다.

아편을 거래하는 놈들이기 때문에 잘못엮이면 조선으로 귀국조차 못하고 청국의 감옥에서 죽을때까지 지내거나, 참수형을 당할수도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임금은 그것도 이미 알고있었다.

앉아서 천리를 보는듯한 모습이다.

임금은 예언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동인도회사 놈들은 머지않아 궤멸될 것이라고.

그전에 임금은 영길리국 동인도회사를 이용해 필요한것을 얻겠다고 말이다.

목표는 광저우의 동인도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다량의 화약과 화포들이였다.

임금은 동인도회사를통해 어떤 화약과 화포들을 구매해야 하는지까지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이정도까지 상세하게 지시를받은 상황이면 충분한 승산이 있었다.

임금은 김도영에게 상당한 금괴까지 주었다.

그중에 일부는 김도영과 일행들이 광저우에서 임금의 밀명을 수행하기위한 활동자금이다.

나머지는 임금이 원하는 막대한 양의 화약과 화포에대한 구입대금과 선수금이다.

김도영은 며칠동안 비밀리에 창덕궁으로 입궐했다.

희정당에서 임금과 면담하며 여러가지 사항들을 전수받았다.

처음에는 임금의 특명을 완수할수 있을지 불안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잘난체하던 청국 거상들도 영길리국의 동인도회사 한테는 여지없이 당하고 나가떨어졌다.

이번일을 거만하게 까불던 청국 거상들도 눌러버리는 쾌거가 될것이다.

김도영이 결의를 다지고 있을즈음 옆으로 한명이 다가왔다.

30대초반의 김도영에 비해서는 꽤 어려보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