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169)

하지만 감성으로 모든것이 해결되는건 아니다.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을 박살낼려면 결정적인 기회가 올때까지 기다려야했다.

다만 그전에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준비를 하는건 필요했다.

홍삼판매의 신기술과 유통방법

개성은 고려왕조 500년의 역사동안 수도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난뒤에 수도가 한양(한성)으로 옮겨진 뒤에도 개성은 독자적인 위치를 갖고 있었다.

특히 상업에 있어서는 고려시대에 벽란도를통해 성행했던 국제무역을 지금도 진행하는 중이다.

다만 벽란도 대신에 새로운 나루터들이 생기면서 그것을 대체하게 되었다.

특히 예성강 하구쪽은 개성에있는 상인들이 조선의 각지에서 모은 특산품들을 외국으로 수출하기에 더없이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었던 것이다.

“이번에 금산에서 사들인 홍삼들인가?”

“그렇습니다. 도련님!”

“품질은 괜찮군.”

김도영이 말린 홍삼들을 살펴보았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서는 어떤것이 상품이고 하품인지가 단번에 구분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그스럼한 색깔들.

그러나 차이는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단지 겉으로 드러난 색깔만이 아니다.

냄새도 맡아보고 손으로 몇번정도 만져보면서 확인을 하는것이다.

어릴때부터 아버지를통해 홍삼에대한 것이라면 몇권의 책을 쓸정도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었다.

그때문에 선죽상회(鮮竹商會)에서 취급하는 홍삼에대한 검사는 김도영이 담당했다.

조선팔도의 유명한 거상들 중에서 홍삼을 가장 많이 취급하고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고있는건 개성을 기반으로 하는 송상이다.

그중에서도 선죽상회는 봉동상회와 더불어 개성에서 알아주는 거상이다.

이전부터 송상을 대표하는건 봉동상회였다.

그러나 선죽상회는 몇년전부터 단기간에 성장하며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것에는 선죽상회를 책임지는 김상태의 첫째아들인 김도영의 역활이 상당했다.

조선내의 거상들에도 속칭 재능있는 젊은피들이 하나둘씩 등장했고, 개성의 송상들중에는 선죽상회의 김도영이 그 주인공이다.

얼마후 검사가끝난 홍삼들은 일꾼들에의해 하나씩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었다.

최상품의 홍삼은 가격만도 상당할 수준이다.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물량이 모자를 정도다.

이처럼 조선의 홍삼은 재화의 수요공급 곡선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품목이다.

그럼에도 보관이나 운송중에 파손이라도 일어나면 엄청난 손해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김도영은 비싸게 돈주고산 홍삼들을 제대로 보관하기 위해서 독자적인 포장기법과 보관기술을 개발했다.

그것은 한지를 이용해 최대한 습기의 침투를 방지하고, 홍삼 본연의 향과품질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였다.

그 덕분에 선죽상회가 운반하는 홍삼들은 장거리 운송에서도 안전했다.

전국의 많은 인삼 재배업자들이 선죽상회에게 자신들이 생산한 물품을 맡기는 이유였다.

얼마후 작업지시를 마무리하고 있을때 선죽상회의 관리를 담당하는 총관이 찾아왔다.

“객주 어르신께서 도련님을 찾으십니다.”

“무슨 일인가?”

“한양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셨다고 합니다.”

“혹시 경상(한양상인)쪽에서 볼일이 있는건가?”

김도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총관을 따라갔다.

몇개의 대문을 지났고 선죽상회의 객주인 김상태가 지내는 안방은 깊숙한 곳에 있었다.

선죽상회는 단시간에 급성장을 하였고 수많은 식솔들을 거느렸다.

동시에 많은 식구들이 일하는 객잔의 규모도 상당했다.

내부에는 여러개의 창고들은 물론이고 선죽상회의 식솔들이 지내는 숙소를 포함해서 대장간, 그리고 상회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드는 공방까지도 있었다.

모든것이 김도영의 장기적인 안목에따라 지어졌고 선죽상회의 식솔들은 서로간에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선죽상회에서 취급하는 물품중에 대표적인건 홍삼이지만, 그외에도 선죽상회는 다양한 업무와 물품들을 취급했다.

김도영은 선죽상회를 조선에서 가장 큰 거상으로 키우고 싶은 야망과함께 수많은 물품들을 거래하는 종합상회로서의 청사진까지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길이 멀지만 김도영의 열정은 상당했다.

현재 조선내 거상들중에 김도영 만큼의 장기전략과 비전을 가진 인물은 없었다.

그리고 김도영이 이런 생각을 품게된것은 남다른 경험 때문이였다.

* * *

“먼저 인사부터 올려라. 이분은 한양에서 오신 공조정랑 어르신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도영이 인사를 올렸다.

김상태와 동석한 공조정랑 서인국이 김도영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자리에앉은 김도영은 당황했다.

박총관에게 손님이 왔다고 들었지만 설마 조정의 관료가 왔을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공조에서 벼슬이 높은 공조정랑이다.

선죽상회가 개성에서 이름높은 거상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만나는 조정관료라고 해봤자 중하급이 전부였다.

그처럼 조선의 상인들은 신분상 농민보다도 아래였고 돈이 많아도 대접받기는 힘들었다.

“경상인 박홍기가 추천한 인물답게 총기가 밝군요.”

“미천한 아들놈을 그렇게 평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김상태의 표정이 흐믓하게 변하였다.

공조정랑인 서인국이 선죽상회에 온것은 한명의 인물을 만나기 위한것.

자신의 아들이란 사실에 김상태는 보람을 느꼈다.

무엇보다 아들을 추천한 인물이 한양의 거상인 박홍기다.

전국팔도와 지역마다 거상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조선최고의 상인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한양에서 활동하는 경상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상인이라고 할수있고 그중에 박홍기는 김상태도 존경하는 인물이였다.

선죽상회가 개성에서 자리를잡고 지금의 위치까지 오는동안 경상인 박홍기에게 상당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랑 어르신께서 어인일로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시고, 제 아들놈을 만날려고 하신 것입니까?”

“본관이 여기에 온것은 어명을 받들기 위함이네.”

“지금 어명이라고 하셨습니까?”

김상태와 김도영이 화들짝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엎드리며 고개를 숙였다.

어명이적힌 교지를 눈앞에두고 편안하게 있을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두사람의 모습에 공조정랑인 서인국이 손을 내저었다.

“경거망동 하지말게. 무엇보다 어명은 비밀스런 것이네.”

“.....”

서인국의 말에 김도영이 일어나더니 문쪽으로 다가갔다.

안쪽에있는 구멍을통해 바깥을 살폈다.

여기는 믿을수있는 식구들이 대부분인 선죽상회 내부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으니 말이다.

얼마후 김도영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상태가 말했다.

“정랑어르신.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무튼 이번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나는 물론이고 자네들도 목숨이 성치못할 것이네. 하지만 성공한다면 전하의 성은을 받게될 것이네.”

김상태가 침을삼켰다.

상인에 불과한 자신에게 임금이 비밀스런 어명을 내리는 것이라니?

일생일대의 기회이면서 한편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들인 김도영이 차분하게 질문했다.

“어떤 것이옵니까?”

“듣기로 자네들은 청국의 남쪽에있는 항구도시, 광주(광저우)에대해 잘 안다고 하더군.”

“보잘것없는 견문이긴 하지만 선죽상회가 취급하는 홍삼들중에 상당수는 광주에있는 청국 상인들에게 판매를하고 있습니다.”

“그거 잘되었군.”

“혹시 전하께서는 청국 상인들에게 관심이있는 것입니까?”

“물론 청국 상인들에대한 부분도 전하께서 갖고계신 여러가지 복안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아닐세. 듣기로 송상들은 기본적으로 청국말을 유창하게 잘 한다고 하던데.”

“자랑할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상거래를위해 필요한 정도는 됩니다.”

김상태가 대답했다.

송상들만이 아니라 중국과 어느정도 거래가있는 평양의 상인들, 그리고 의주의 상인들도 중국어는 가능했다.

그외에도 호남지역에있는 상인들중에도 중국어가 가능한 경우는 꽤 된다.

“중국의 경우라면 역관들 중에도 능통한 자들이 많습니다.”

“확실히 그렇지. 이번에는 상황이 다른 경우라서 말일세.”

서인국이 대답했다.

김도영의 말대로 중국어라면 역관들이 상인들보다 더 유창했다.

“전하께서 내리신 밀명을 수행할려면 청국의 말도 해야하고, 무엇보다 영길리(영국)의 말을 할줄아는 인물이여야 하네.”

“......”

그말을듣자 김도영과 김상태의 시선이 교차되었다.

이제서야 공조정랑이 한양에서 긴급하게 온 이유를 알거 같았다.

“소인은 영길리국(영국)의 말을 하나도 모르지만, 저의 아들은 가능합니다.”

“그것이 정말인가?”

“어릴적 아버님을따라 광주로가서 지내는동안 어깨너머로 배운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초적인 수준이라 황송할 따름입니다.”

김도영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공조정랑 서인국은 그말에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조선내에서 영길리국(영국)의 말을 할줄아는 인물을 찾아낸 것이다.

이것때문에 서인국은 비밀리에 수소문 하느라 밤잠조차 못잘 지경이였다.

“하늘이 도우셨군. 여기서 인재를 발견하다니 말일세.”

“그런데 전하께서는 비천한 소인들에게 무슨 일을 맡기실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지금부터 설명을 하겠네. 이것은 절대 외부로 발설해서는 안되는 것이야.”

공조정랑 서인국이 한차례 힘을 주었다.

두명의 표정이 굳어지며 숨을죽였다.

* * *

“영상께서 저를 찾아오시다니. 참으로 별일이 다 있습니다.”

“허허. 같은 조정신료끼리 친분을 가지는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소?”

영의정 정원용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에반해 이조판서인 김좌근은 경계심이 남아있는 표정이였다.

미리 언질을받아 예상하고 있었지만 김좌근은 자신을 찾아온 정원용을보며 당황하기는 했다.

그럴것이 김좌근에게는 영의정 정원용만 없다면 조정의 모든것을 손아귀에 쥐는것이다.

김좌근은 6조에서도 가장 높은 이조판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세력에는 병조판서, 호조판서, 형조판서들이 있었다.

예조판서 장우영과 공조판서는 김좌근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고 조정내에서도 반대세력에 속한다.

하지만 이조판서인 자신을 포함해 6조중에서 4곳을 장악한 상태였다.

예조판서와 공조판서는 6조에서도 핵심은 아니다.

실제적으로 6조를 손에 넣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의정부에 대해서는 다르다.

의정부에는 3명의 정승들이 있었다.

선두가 영의정, 그뒤로 좌의정, 우의정들이다.

김좌근이 안동김씨 세력의 수장이면서 포섭공작을 펼쳐서 좌의정과 우의정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정부에있는 3명의 정승들중에서 2명을 자신의 세력으로 넣었기에 안심할수 있지만 실제는 달랐다.

의정부의 수장이라고 할수있는 영의정 정원용이 가지고있는 위치나 관료들 사이에서의 신망은 두터웠다.

이것은 나머지 두명의 정승들이 넘보지 못할 수준이다.

그로인해 김좌근은 영의정인 정원용을 껄끄럽게 생각했다.

다만 정원용의 나이가 노쇄한 상태고 영의정에서 물러날 시간도 얼마남지 않았기에 기회만을 노리는 중이였다.

그런데 오전에 정원용으로부터 김좌근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왔다.

이것에대해 김좌근은 잠시 고민했다.

정원용과 김좌근은 조정내에서도 대립하는 일이 간간이 있었고 경계하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저 늙은 영감이 뭣때문에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지?’

김좌근은 처음에 거절할까 생각했다.

그렇게하면 자신이 영의정 정원용이 두려워서 피하는거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왜 그래야 하지?

자신은 조정에서 실권을 쥐고있는 권력자고 안동김씨 세력의 리더인데 말이다.

기껏해야 늙은이 한명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대신에 김좌근은 본래라면 그가 의정부로 가서 영의정인 정원용을 만나는게 예법이였다.

그러나 김좌근은 권위를 세우기위해 상관인 정원용을 이조에있는 집무실로 부른 것이다.

그럼에도 영의정이 온것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까지 띠는 중이다.

정원용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에 온것은 임금의 어명을 수행하기 위한것. 정원용은 어명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할 각오가 있었다.

김좌근이 아니라 푸줏간에서 일하는 천민이나 백정을 만나라고 해도 찾아갈 각오가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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