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응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통해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촌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면 이자리를통해 완전히 부셔주는게 필요했다.
충성맹세를 받아내기
“전하. 그것은 당치도 않은 것입니다. 전하께서 급사라니요. 그리고 소신은 전하께서 후세도 남기지않고 그런 변을 당할거라는건 상상도 할수없습니다.”
“전대 임금께서도 후사가 없었기에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과인이 오늘날 조선의 임금으로 된것이 아니겠소? 따라서 과인 또한 그런일이 생기지말란 법은 없지 않겠소?”
“당치도 않습니다. 전하. 전대 임금께 그런 불상사가 생긴것은 비극이지만 전하께서는 잔병도 없으시고 건장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같은 비극은 다시는 없을것이라고 소신은 확신합니다.”
“흥선군께서 과인의 무사평안을 빌어주신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대답을하며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이 여러차례 변하고 있었다.
지금쯤은 뭔가를 깨닫고 있겠지?
처세술에 능하고 눈치빠른 이하응이라면 말이지.
조금전 내가 던진 말은 간단하다.
혹시라도 왕이되고 싶은 욕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겉으로야 절대없다고 하지만 속마음까지는 아니지.
만약에 내가 세간의 소문처럼 어리버리한 임금이라면 흥선군이 딴 마음을 품을수도 있다.
이순간 그것은 포기해야 할거다.
이하응이 머리를 바닥에대며 외쳤다.
“전하께서는 혹시 소신의 목숨을 원하고 계십니까?”
“그렇소.”
“.....”
“흥선군에게 반역의 죄목이나 역도의 죄목을 붙일려는 것은 아니요. 과인이 원하는것은 그대의 목숨과 모든것을 임금을향해 바칠수 있냐는 것이요. 왜냐하면 앞으로 많은 것이 변화될 것이고 흥선군의 안위도 위험해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소신 이하응. 전하와함께 어디든지 가겠으며 모든것을 바쳐 충의를 실천하겠습니다.”
흥선군의 대답이 떨리고 있었다.
재능도있고 눈치도 빠르고 판단력도 뛰어나다.
그냥 썩히기에는 아까운 인재인건 분명하지.
동시에 그가 조선에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것도 필요했다.
역사에서 이하응하면 조선후기의 정치와함께 흑역사로 떠오르는 쇄국정치다.
후대의 사람들은 흥선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이후,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치를 하는바람에 조선이 근대화에 뒤쳐졌다는 평가도 내린다.
어찌보면 반은맞고 반은 틀린 부분이다.
솔직한 나의 평가로볼때 흥선군이 쇄국을 결정할때에는 이미 개항이든 쇄국이든 조선이 생존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흥선군의 쇄국정치에는 그가 유교 및 성리학 꼰대라서 그런것 보다는 다른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권력기반을 지키겠다는 야심도 포함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흥선군께서는 지금의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하께서 질문하시는 뜻을 소신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물어보겠소. 앞으로 100년후에도 조선이 종묘사직을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존속할수 있을거 같습니까?”
이하응의 눈빛이 떨리는거 같다.
원역사에서 조선은 100년은 커녕 몇십년도 제대로 버티지 못한다.
그리고 이하응에게 원하는 대답은 솔직한 것이다.
단순히 임금인 나의비위나 맞출려고 그리고 처세술이나 유지할려고 한다면 그대로 불합격이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흥선군이 말을 시작했다.
“소신 이하응 전하를향해 솔직한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흥선군께서 과인을향해 강화도의 촌부라고해도 기꺼이 들을 생각이 있습니다.”
“.....”
흥선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원하는건 그의 솔직한 생각이다.
그것이 나의 예상과 다르다해도 상관은 없었다.
“불충한 소신은 처음에 전하께서 정말로 임금의 자질이 있는지를 의심했습니다.”
“세간에는 강화도에서 농사를 하다가 온 촌부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닐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판단하고 계십니까?”
“지금은 소신 이하응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소신은 전하께 드릴 요청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조정의 간신배들과 부패한 무리들을 척결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조선의 종묘사직은 모든것을 잃을것입니다.”
“김좌근과 안동김씨, 그 무리들의 패악질은 이미 알고있는 부분입니다. 그들이 조선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원인들중에 하나이긴 합니다. 그러나 조선이 처해있는 더 큰 문제 앞에서 그들은 한낱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하오면 더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금 조선이 처해있는 상황이요. 조선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과인은 그것을 바꿀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이 방해가 된다면 그들 또한 제거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충신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흥선군께서 과인에게 힘이 되어줄수 있겠습니까?”
나의 야망을들은 이하응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최소한 그와 나의 생각에는 일정부분 공통된것이 있었다.
얼마후 흥선군이 고개를 숙이며 충성을 맹세하였다.
이번에는 그의 표정에서 진심을 느낄수 있었다.
* * *
저녁이되고 어둠이 깔리는 창덕궁의 내부.
의정부와 6조, 그리고 여러 부처에서 일하던 관료들은 대부분이 퇴궐을한 상황이다.
그중에서는 승정원처럼 밤이 깊은 와중에도, 실무진의 관료들이 남아서 야간작업을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야간작업이라고 한다면 예조와 공조도 빼놓을수는 없었다.
특히 공조의 경우에는, 공조판서 김석민부터 시작해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중이다.
철종이 계획하고 진행중인 조선의 부국강병.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에서 조선이 살아남기위한 전략.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게 공조였기 때문이다.
새롭게 개발되고, 운영되는 광산의 숫자는 늘어갔고.
철종이 공조판서를통해 지시한 정책들도 점점더 늘어갔다.
한편, 예조도 해야할 일들은 많았다.
이후에 조선이 떠오르는 신흥강대국이 되면, 국제관계와 외교에서 예조가 해야할일은 산더미처럼 늘어갈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철종은 이런 예조가 실전에서 활약할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6조내의 또다른 부서인 호조.
그곳에서도 실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은 철종의 특명을 수행하기위해 퇴근조차 못한채 비밀임무를 수행중에 있었다.
“전하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중책을 맡겨주시다니!”
“어깨가 무겁습니다.”
“이것만이 우리들이 전하에게 충정을 보일수있는 방법이다.”
유연석의 말에 나머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작업하는 탁자위에는 수십권이 넘는 각종 책자들과 장계 그리고 서류들이 있었다.
이것들은 호조에서 보관중인 자료들인데 유연석과 동료들이 몰래 가져나온 것이다.
그들이 야간에 작업중인 장소는 통상적인 호조의 관청이 있는 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창덕궁에서도 후원쪽은 주로 임금이 산책을위해 사용하는 구역이다.
때문에 보통의 관료들이 여기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기에는 호조의 실무관료들이 야간에 작업하기에 적당한 전각들이 있었다.
철종인 이원범은 그것들중에 한곳을 호조관원들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여기라면 유연석과 동료들이 마음놓고 작업할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원범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전각의 주변에 호위청에 소속된 무사들을 몇명정도 배치해 두었다.
철종의 지시에따라 유연석을 중심으로한 호조의 실무관료들은 철저하게 그들의 상관들을 속였다.
낮에는 호조의 업무를 보았고 호조판서나 호조참판들이 수상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행동했다.
그리고 호조판서와 참판이 퇴궐한 뒤에는 신속하게 이곳으로 와서 야간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때문에 과도한 업무로 피곤함이 얼굴에 드러났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어느때보다 생기가 있었다.
“호조의 재정이 항상 부족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서류를 뒤적이던 관원이 분개했다.
그럴것이 호조에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검토해본 결과 엄청난 혈세가 낭비되고 있었다.
어떤것들은 대놓고 상관인 호조판서와 참판들이 중간에서 가로채간 것이다.
그것을 감추기위해 가짜로 여러가지 서류들을 꾸며놓았지만 실무에 탁월한 그들의 눈을 속일수는 없었다.
이전까지 이런걸 찾아내지 못한것은 다른 이유다
그들조차도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이 담당한 일에만 몰두했다.
여기있는 실무관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호조의 재정에대해 전체적으로 세밀하게 검토한것은 처음이다.
때문에 자신들의 분야에서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숲을 보지못한 것이다.
‘역시 전하의 안목은 대단하시다. 설마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호조에있는 수많은 비리들과 폐단들을 직접 우리들의 손으로 찾아내게 하시다니.’
유연석이 혀를 내둘렀다.
임금이 자신들보다 호조의 업무에 대해서는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임금은 전체적인 큰 그림을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것을 놓칠수는 없었다.
“여기도 이상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자료에는 1만냥을 병조에 보냈다고 되어있지만 조금전 살펴본 병조의 예산과 서류에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정말로 간악하기 이를데가 없군.”
유연석과 동료들은 증거들이 하나둘씩 나올때마다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들이 하는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알고 있었다. 이조판서인 김좌근이나 그 측근들에게 들키는 날에는 어떤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한 것이고 여기서 멈출수는 없었다.
“자네들은 발견한 증거들을 빠짐없이 기록하게.”
“알겠습니다.”
유연석이 지시를 내렸다.
조선에서 거두어들인 막대한 조세수입과 혈세들은 1차로 호조에서 관리된다.
그리고 호조에서 각각의 부서와 기관들에 예산과 자금을 주는것이다.
현재 호조판서와 참판은 김좌근의 수족이였고 중간에서 막대한 거금들을 딴데로 빼돌린 것이다.
이런 자금들이 누구에게 가는지는 뻔했다.
안동김씨의 수장인 김좌근과 그 세력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간다.
호조에 있으면서 예상하던 부분이지만 지금처럼 확연하게 증거를 잡기는 처음이였다.
“지금까지 김좌근 세력들이 호조에서 빼돌린 돈만해도 엄청날 정도입니다.”
“이런 증거들이 모두 주상전하가 이후에 간신배들과 안동김씨를 토벌하기위한 강력한 무기들이 될것이다.”
동료들은 유연석의 말에대해 긍정했다.
자신들은 검을쥐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관료들은 아니였다. 하지만 전투에서의 무기란것은 단순하게 검과 창, 활만이 존재하는건 아니다.
그보다 강력한 무기중에 하나가 붓이다.
뛰어난 문장과 글솜씨는 상대를 방심하게도 만들고 두렵게도 할수있다.
이제 유연석과 동료들은 그 무기를 손에넣은 것이다.
이것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몇배의 위력을 낼수있는 존재는 현재의 임금이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호조에서 빼돌린 자금추적을 계속해야지.”
“물론입니다.”
그들이 밤을새며 작업을 시작했다.
김좌근의 지시를받은 호조판서, 참판들이 빼돌린 자금들은 김좌근이 수장으로있는 이조, 그리고 수족들이 감독하는 병조와 형조등으로도 흘러들어갔다.
이렇게 빼돌린 돈들은 각각의 부서에서 허위로 작성된 문서들과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쓰지도않은 돈과예산을 쓴것처럼해서 위장했다.
그 돈들은 고스란히 김좌근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여러단계를 거치면서 흔적을 지우고 잔머리를 꽤나 굴린 방법이다.
철종인 이원범은 김좌근이 이런 방법을 썼을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원범이 직접 찾아내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그만한 시간도 부족했다.
대신에 이원범은 이런일에 익숙한 유연석과 동료들을 투입했고, 본격적인 성과가 나온것이다.
“나리들 밤늦게까지 고생이 많으시군요.”
“아닐세.”
그들의 작업실로 무사한명이 들어왔다.
손에는 제법 두툼한 보자기가 있었다.
“그것은 뭔가?”
“전하께서 직접 내리신 다과와 고기들 입니다.”
“정말인가?”
유연석이 벌떡 일어나서 두손으로 받았다.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감격했다.
그시간 철종 이원범은 기분좋게 침상에서 자고 있었다.
하지만 유연석과 동료들은 임금이 자신들이 고생하는걸 알고 늦게까지 깨어 있는걸로 생각했다.
그것은 이원범이 취침하기전에 종걸이(송내관)을 시켜서 준비한 것이지만 그들이 제대로 알턱이 없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