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169)

다만 몇가지 부분에서는 특별한 지시사항들을 따르도록 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철광석을 가열시키고 쇳물을 만들기위해 사용하는 재료를 목탄이아닌 다른것을 사용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이것에대해 정도영은 처음에 코웃음을치며 비웃었다.

그럴것이 조선에서 손쉽게 구할수 있는것이 목재와 목탄이고, 이것으로 반평생동안 철광을 녹이고 쇳물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도영과 작업원들에게 제공된것은 목탄이아닌 검은색의 돌덩이였다.

새로운 철강제조법

‘이것으로 대체 뭘 하라는 것인가? 설마 공조의 관헌들이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것인가?’

정도영과 작업원들이 전달받은 재료들.

그것은 이미 유럽, 특히 영국의 제철소등에서 대량으로 사용하는 코크스(Koks)-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코크스(Koks)는 석탄을 인위적으로 가공해서 만들어진 재료이다.

즉 탄광에서캐낸 석탄에 몇가지 재료를 추가해서 화력과 활용성을 높인것이다.

그중에서도 제철이나 용광로에 사용되는 가공된 석탄을 코크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은 산업혁명 당시에 이런 코크스를 제철소와 용광로에 사용하면서 혁신적인 제철혁명과 철강혁명을 이루어 내었다.

영국의 철강생산 능력은 단번에 상승했고 막대한 양의 철강생산을통해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에반해 아시아와 동양에서는 여전히 목탄과 목재를 사용한 제철방식과 쇳물을 만들었다.

이것은 철강 생산량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후의 산업발전에서도 서양이 동양과 아시아를 압도하는 큰 요인중에 하나가 되었다.

철종 이원범은 이것을 제대로 파악한 상태였다.

때문에 운산금광의 개발이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가자 새로운 광산개발을 진행했다.

운산금광은 조선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자금을 마련하고 왕실의 금고를 든든하게 만들기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선이 스스로 질좋은 강철을 생산할수있는 능력을 가지는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을위해 2가지 단계를 동시에 진행했다.

새로운 탄광을 개발하는것과 철광을 개발하는 것.

탄광은 코크스를 만드는데 필요한 갈탄과 역청탄을 생산하는걸 중점으로 하였다.

조선에는 여러곳에 탄광개발이 가능한 장소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연탄이다.

그나마 함경도와 개마고원의 지역에는 제철과 용광로에 사용이 가능한 갈탄과 역청탄이 나오는곳이 있었다.

철종 이원범은 그곳의 탄광에대한 탐사과 개발을 시작했고 얼마후에 상당한 양의 코크스용 석탄들을 채굴하는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석탄들을 코크스로 가공을 시킨뒤에 조선내의 곳곳에있는 철광산에 운송시켰다.

여전히 초기단계라서 총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전에비해 조선의 철생산량은 빠르게 증가했다.

과거 목탄과 목재를 이용해 쇳물을 뽑아내던것에비해 시간이 절약되었고 과정도 단축되었으니까 말이다.

덜컹! 덜컹!

코크스가 한가득 실려있는 수레를 움직이며 철광산의 주위에 만들어진 소형 제철로에 공급을 하였다.

현재 조선이 보유한 기술로는 대형의 용광로는 물론이고 제철소도 만들수는 없었다.

대신에 조선이 과거부터 써왔던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소형의 용광로를 곳곳에 제작해서 한꺼번에 많은 쇳물을 다양한 장소에서 뽑아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조선초기에는 철강생산량이 상당한 수준에 오르기도 하였다.

“조금후면 10번로에서 쇳물이 나온다. 모두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정도영의 지시에따라 작업반원들이 긴장했다.

쇳물을 뽑아낼 때에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큰 사고가 생길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1000도에 가까운 고열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때문에 열기도 상당하고, 자칫 잘못하면 이런 고열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도 생긴다.

그러나 경험많은 정도영의 감독하에 지금까지 그들은 큰 사고없이 상당한 양의 쇳물을 뽑아내고 철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의 지시를받는 장인들과 기술자들은 정도영에대해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조선제일의 철쟁이-라는 칭호가 붙어도 충분할 수준이니까 말이다.

“공조에서는 저렇게 많은 철강들을 어디에 쓸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나랏님들이 시키는 일이니까 우리들은 맡은 임무만 하면 되는 것이네.”

“하긴 그렇습니다. 공조에서 우리들에게 일거리도 주고 노임도 잘 챙겨줘서 이제는 집에있는 식구들도 맘편하게 지낼수가 있습니다.”

열기로 상기된 작업반원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뽑아낸 쇳물과 생산한 철강들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여기에서 생산된 철강들은 조선의 군사력 증강을위한 신무기의 생산을위해 집중적으로 투자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철종이 군기시를통해 개발을 지시하고 완료한 백두철포, 현무철포의 생산에는 대량의 강철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고, 밀덕인 철종을통해 이후에 개발하고 만들어질 조선의 신무기들은 계속해서 나온다.

이때를 위해서도 미리부터 강철을 생산해서 충분히 비축해 놓는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처럼 정도영과 작업반원들이 자세한 부분은 몰랐지만, 이후에 그들이 이런 숨겨진 사실들을 알게되면 놀랄것이다.

동시에 자신들의 노력과 땀에대한 보상과 자부심이 몇배나 더 커질것이니 말이다.

* * *

“엽전이라도 던져서 결정해야 하나?”

아직도 확신할수 없었다.

나에게 필요한 인재와 세력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고민된적은 없었다.

박규수에 대한것?

그것은 고민하고 말것도 없었다.

박규수의 능력과 재능은 둘째로 하더라도 그가 임금에게 충성하는 신하인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과거에 효명세자와함께 개혁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효명세자의 죽음으로 모든것이 물거품이 되었지만 나를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따라서 박규수는 핵심적인 인재가 될것이고 앞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신하로 남을것이다.

나로서는 이후에 박규수를 얼마나 활용하고 굴릴까에 대한 생각으로 입가가 찢어질 정도다.

다만 박규수를 너무 굴리다가 제명에 못살고 과로사를 해버리면 곤란하다.

그런데 문제는...

“흥선군이라. 이하응이라.”

몇차례나 중얼거렸다.

조선말기의 풍운아.

권력에대한 욕망이강한 인물.

지금 흥선군의 모습을보면 그런걸 느낄수없다.

상갓집 개처럼 살았다는 풍문처럼 흥선군 이하응은 김좌근을 포함한 안동김씨 세도가들의 눈치를보며 엎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흥선군은 실력을 기르며 때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던중 이하응이 권력에대한 욕망으로 설레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전대 국왕인 헌종이 급사하고 난뒤에 진행된 왕위계승 문제다.

결과는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철종.

내가 새 임금으로 올랐지만 헌종의 후계로 흥선군 이하응도 물망에 오르기는 했다.

이때 이하응은 지옥과 천당을 왔다갔다하는 심정이였을 것이다.

그럴것이 흥선군도 자신이 왕위계승의 후보중에 올랐다는 사실은 눈치챘다.

정확히는 안동김씨쪽을 견제할려던 조대비(신정왕후)가 이하응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조정의 관료들 중에서도 중간층에 해당하는 소수의 신하들이 이하응을 지지하던 상황이였다.

하지만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던 안동김씨와 김좌근은 허수아비 국왕이 필요했고 그때문에 나를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이하응을 지지하던 세력의 목소리가 높았다면 흥선군은 제거 대상까지도 오를수 있었다.

이것이 흥선군이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하응은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설수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이 이후 철종의 후계로 고종이 임금에 오르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이하응은 이순간 미약하게나마 헌종의 후계로서 나와 경쟁했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거두고 활용한다는 것.

야심을가진 이하응에게 날개를 달아주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확실히 본래의 철종 이원범이라면 이하응을 제대로 관리조차 못했을거다.’

흥선군이 손해를끼칠 가능성을 생각함에도 그를 포기할수 없는건 다른 이유다.

나의 오른팔로서 적을상대로 물어뜯고 싸우기에 적절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좌근과 안동김씨, 그리고 조선을 병들게 만드는 세력들을 처리하는데도 그의 능력이 필요했다.

임금으로서 피를 두려워할 입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모든 혈풍의 선두에 나설 필요는 없다는것.

상황에 따라서는 나를 대신해 칼부림을 할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포섭한 인물들이나 세력들중에는 그런 일을 제대로할 신하들이 별로없었다.

당연히 명령한 업무들을 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권력싸움과 권모술수에 능한 인재들이 없다는게 아쉬웠다.

다들 순둥이 같단 말이지.

몇차례 고민을 해보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이하응의 재능을 썩히는건 낭비다.

그전에 내눈으로 만나서 최종결정을 하는게 필요했다.

* * *

이사람이 조선말기의 풍운아 흥선군 이하응이란 말이지.

반푼이 사학도였던 내가 흥선군 이하응의 얼굴을 본것은 그가 나이가 들었을때의 모습이다.

세간에 알려진 흥선군 이하응의 초상화도 대부분 그가 고종의 집권이후 대원군으로 활동할때의 모습이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사학도로서 공부할때 확인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느낌은 나이들고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내앞에있는 흥선군 이하응은 겨우 20대 후반의 청년이다.

하지만 19살에 불과한 나보다는 나이가많은 형뻘이라고 해야하나.

그때문에 20대후반 젊은시절 이하응의 모습을 몰랐던 나에게는 느낌이 달랐다.

그러나 이하응은 내부에 야심을 품은채 행동했고 철종시기의 세월을 보내면서 아들이 조선임금이 되도록 물밑작업을 펼친다.

따라서 30살도안된 20대후반의 청년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앞으로 이하응의 일생과 그의 모든것이 오늘 진행되는 만남을통해 변화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특이했다.

흥선군의 미래를 움켜쥐고 있는것이 나란 것이다.

김좌근을 포함해 안동김씨의 미래를 결정하는것도 임금인 나의 역활이다.

그리고 조선에있는 1200만 민초들의 미래를 결정하는것도 나의 몫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어깨가 무겁다.

왕이란 존재는 모든것을 마음대로 할수있으면서 그에따른 책임과 결과도 혼자서 짊어져야 한다.

“임금의 앞이라고 어려워 할것은 없소. 그리고 송내관이 정성들여 다과상까지 준비했는데 맛보시는게 어떻소?”

“황송하옵니다. 전하.”

이하응이 고개를 숙였다.

음성은 좀 떨리고 있었다.

당연하지.

난데없이 임금이 자신을 불렀으니 말이다.

그것도 야심한 밤중에 임금의 숙소이자 집무실인 희정당으로 부른 것이다.

여기로 오면서 이하응은 머리속으로 엄청난 고민을 했을것이다.

왜 자신을 부른것일까?

한동안 고민하던 이하응이 입을열었다.

“전하. 소신에게 베풀어주신 다과상은 정말로 맛좋은 진미입니다. 하오나 소신은 어째서 전하께서 야심한 밤중에 저같이 미천한 놈을 여기까지 오라고 한것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이하응의 심정으로는 다과상이 입에 들어올리가 없지.

대충 이해는 간다.

처세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인물이다.

그때문에 안동김씨들과 세도가들이 능력있는 왕족들을 온갖 모함으로 쳐내고 잘라낼 때에도 흥선군은 살아남았다.

철저하게 몸을 낮추면서 기회를 노린것이다.

권력에대한 기회.

본인의 야망에대한 기회.

이것을 좋은쪽으로 이용하면 나에게는 엄청난 힘이된다.

그런데 잘못 되었을 경우에는 모든것을 위협하는 적이된다.

아직도 결정을 내린것은 아니다.

흥선군을 내편으로 끌여들어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파묻어 둘것인가.

이하응이 없다해도 내가원하는 조선의 변화는 가능하다.

대신에 시간이 걸리고 필요한 성과를내지 못할수도 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담그냐?

무엇보다 15년, 20년후에 나이든 흥선군과 지금의 흥선군은 많이다르다.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게 만들고 그의 재능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끌어내는게 중요하지.

“궁금한것이 많으시군요. 특별한 것은 없소. 그저 흥선군이 과인과 가까운 종친이기에 한번쯤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부른 것이요.”

“그렇다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과인이 만약에라도 급사를 하게되면 흥선군께서 조선의 다음차례 임금이 될 위치라는것도 대강은 알고 있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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