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169)

강화도에서처럼 어리버리 할수는 없었다.

이전부터 눈치빠른 배동석 이였기에 제법 적응했다.

‘철모르던 원범이가 저렇게 변해있다니. 정말로 같은 사람이 맞는건가?’

희정당에서 철종을만난 배동석은 경악하고 말았다.

동생처럼 여기던 이원범의 옛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대한 산이 자신앞에 있는듯한 느낌이다.

배동석은 아버지가 말한 부분을 이해했다.

진정한 왕족의 피와 혈통-

강력한 기세에 배동석은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왕이된 이원범은 배동석에게 친근하게 말했지만 매 음성마다 거역할수없는 힘이 있었다.

‘한양생활은 어떠십니까?’

‘전하의 성은으로 불편함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해야할 일이 많을겁니다.’

철종의 말에 배동석은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말씀.

목숨걸고 임금을 보살피고 충성을 행하라는것.

한양에와서 먹고자고 쉴수있는것도 임금의 덕분이였다.

그뿐이랴?

배동석의 집안은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

과거에는 땅조차없어 농사를해도 모두 지주에게 바쳤다.

이제 배동석의 아버지인 배삼덕은 상당한 토지를 하사받았고, 소작농들과함께 일하고 있었다.

땅주인이 되었기에 일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배삼덕은 과거 고생했던 기억들을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희정당에서 철종과의 만남후에 배동석의 삶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자신에게는 임금의 특명이 내려져 있었다.

그것을위해 배동석은 실력을 기르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쌀은 나보다 굶주려있는 저 아주머니에게 필요하니까.’

구걸하던 아낙네에게 쌀자루를 적선했던 배동석이 미소를 지었다.

임금이 말한대로 한양에있는 민초들의 삶은 가혹했다.

배동석에게는 민초들의 삶을 지켜보며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배동석이 중년 아낙에게 감사인사를 받던중.

끼익-

문이열린다.

이곳에 거지와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은것은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대궐같이 거대한 기와집들과 저택들이 늘어선 이곳.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저택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자인 김좌근의 집이였다.

썩어버린 고인물에 날파리떼가 몰리듯 김좌근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과 심복들도 주인을 닮아있었다.

“비천한 놈들은 뭐야? 조금후 중요한 손님들이 오기로 되어있는데. 이놈들이 집 주변에 있으면 방해가 된다. 어서 치워라!”

“알겠습니다. 나으리.”

저택에서 관리하던 총관의 외침에 하인들이 명령을 수행했다. 지시가 떨어지고 몇명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몽둥이를 들고나왔다.

“잡것들! 여기가 어디라고 구걸질이야?”

“몽둥이 맛을봐야 다음부터 얼씬을 못하지.”

“살려 주십시요.”

“크억!”

갈기에 앉아있던 거지들에게 구타가 시작되었다.

굶주림에 지친 거지들은 숫적으로 많았지만 상대가 안되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은 덩치도 크고 잘 먹어 힘이 월등했던 것이다.

몽둥이질을 해대는 하인들의 표정에는 잔혹함과 희열이 가득했다.

자신들보다 낮은 상대를 괴롭히고 분풀이를 한다는 욕망이다.

곳곳에서 구타소리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저 개같은 놈들이...!”

배동석이 발끈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하인들을 박살내고 싶었다.

하지만 배동석은 앙상한 팔로 붙잡고있는 중년 아낙네의 모습에 좌절했다.

고개를 내저으며 말리는 표정.

그녀도 알고있는 것이다.

쌀을 적선해준 청년을 살릴려면 붙잡아야 한다는것.

배동석은 울컥했지만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덩치좋은 배동석이 날뛰면 저들중에 몇명의 하인들은 때려눕힐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뒤에는?

배동석은 관아로 끌려가거나 보복을 당할것이다.

자신에게는 임금이내린 특명이 있었다.

사소한 감정으로 망칠수는 없었다.

“두고보자. 이놈들!”

배동석이 주먹을 쥐었다.

저곳이 누구의 집인지 알고 있었다.

현재 그는 철종의 밀명을받아 한양내에서 김좌근과 안동김씨 세력들의 주변을 정탐하고 있었다.

임금이 자신에게 명령을내린 이유는 하나였다.

이후에 때가되면 한양과 조선을 좀먹는 간신들과 적폐세력들을 한순간에 처리할 것이다.

배동석은 임금에게 그럴만한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걸 확신했다.

조선의 태평성대를 만들기위해 반드시 필요한것.

저놈들에게 천벌을 내리는 것이다.

‘지금은 기세좋게 날뛰어라. 그것도 얼마가지 못할 것이다.’

배동석이 노려보더니 자신을 말렸던 중년 아낙네와 어린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다.

자신이 할수있는 최대한이다.

몸둥이 찜질과 구타가 진행되자 구걸하던 거지들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김좌근의 하인들은 그것을보며 히죽거렸다.

“크하핫! 멍청한 놈들! 한번더 기웃거려봐라. 그때에는 멍석말이를 시켜주마.”

“......”

하인들의 외침에 도망치던 거지들은 억울했지만 분을삼켰다. 주변으로 지나가던 행인들도 하인들이 벌이는 만행을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거지들에게 적선은 못할망정 저런 짓을 하다니!

누구도 나서지 못하였다.

한양에서, 조선팔도에서 김좌근의 목표가되면 그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뻔했으니까 말이다.

* * *

“밖이 왜 소란스러운 것인가?”

김좌근이 미간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안방의 문이열리며 눈매가 날카로운 여성이 들어왔다.

미모의 얼굴을 가졌지만 심성은 곱지않았다.

그러나 김좌근에게는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존재다.

방으로 들어온 김좌근의 아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택주변에 거렁뱅이들이 많기에 허총관을 시켜서 혼줄을 내주고 있었습니다.”

“입궐하고 퇴궐할 때마다 그 놈들이 신경이 쓰이기는 했는데.”

“이런일은 소녀에게 맡겨두시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저택주변에 거지들이 많으면 안전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주변에서 보기에도 좋지가 않습니다.”

“부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요.”

김좌근이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권세를 누리는데는 부인의 역활도 지대했던 것이다. 능력도 보잘것없던 김좌근이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기까지 부인이 배후에서 공작을 많이 펼쳤던 것이다.

특히나 김좌근의 형들이 의문의 사고와 병으로 죽은것도 어찌보면 기이한 현상들이다.

김좌근은 안동김씨 일족에서도 천대받던 경우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김좌근이 빠르게 이조판서에 오르고 안동김씨의 수장이 되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과거에 무시했던 안동김씨내의 세력들은 김좌근 앞에서 제대로 숨조차 못쉬는 상황이다.

“정말로 부인께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바깥양반과 대감님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계시기에 이런 성과가 나온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계속해 남편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녀가 김좌근의 심복들에게 말했다.

표정과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눈매는 강렬했다.

조금이라도 남편을 배시하는 놈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독기였다.

“부인도 왔으니 한번 의견이나 들어봅시다.”

김좌근이 손짓했다.

지금까지 김좌근이 비리를 저지르고 악행을 할때에는 그옆에 아내가 있었다.

지시를받은 허총관과 하인들은 솜씨좋게 일처리를 하였다.

바깥에서 소란이 한바탕 벌어졌지만 금새 조용해 졌으니 말이다.

김좌근의 아내는 하녀를시켜 술상을 가져오게 하였다.

일행들과함께 자리하며 참가를 시작했다.

김좌근과 심복들의 탁자위에는 서류가 한가득 있었다.

그녀는 무엇인지 금방 알아챘다.

남편의 출세를 배후에서 조력한 덕분에 그녀도 정보와 정세에도 민감했던 것이다.

“대감. 저 서류들은 내년에 진행될 특별시에서 과거급제를 원하는 사람들의 명단입니까?”

“그렇소. 부인의 눈썰미는 대단하다니까.”

김좌근이 감탄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녀는 두툼하게 쌓여있는 서류들을 살펴보며 명단을 확인했다.

내년에 진행될 특별시에서 과거급제를 원하는 자들은 권세가인 김좌근에게 손을쓰며 아부하였다.

그에따른 뇌물도 같이.

워낙에 줄을댈려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후보자들을 선택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살펴보던 그녀가 말했다.

“이번에는 저번과달리 안동김씨 일족에서 보다는 성균관의 유생들에게 많은 할당을 하는것이 어떨까 생각됩니다.”

“허어. 듣고보니...”

김좌근이 무릅을치며 말했다.

지난번 과거시험에서 김좌근은 안동김씨들에게 나름대로 큰 호의를 베푼적이 있었다.

그것으로 안동김씨들중에 출세를 노리는 이들을 모두 만족시킬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내년의 특별시에서 과거시험에 급제시켜줄 후보들에 안동김씨들을 많이넣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다.

같은일족인 안동김씨들을 조정관료들에 넣어 세력을 키우고 다지는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조정관료들을 안동김씨로 채우면 그것도 문제가 생길수 있었다.

김좌근은 자신이 신경쓰지 못한 부분을 아내가 발견한것에 감탄했다.

“성균관 유생들이라...”

“그렇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중에 과거급제자가 너무 나오지 않으면 그것도 상당한 불만세력이 될수도 있습니다. 알다시피 성균관 유생들중에는 여전히 집안배경이 넉넉한 자제들이 많습니다. 만약에 안동김씨와 대감께서 그들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모습을 보이면 어떤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같이있던 심복들도 동의했다.

적당히 몫을 나눠주고 상대를 회유하는것.

권력을 오래도록 유지하는데 필요한 항목이다.

얼마후 김좌근은 조언을받아 성균관 유생들중에 많은 숫자를 포함시켰다.

그들은 대부분 능력없고 김좌근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아부하던 자들이다.

때문에 김좌근에게는 편리하게 사용할 부하들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후 후보자들을 추려낸 그들은 심복중에 한명이 가져온 상자를 열었다.

그안에는 묵직한 금괴들이 가득했다.

내년에 진행될 특별시 합격을위해 수많은 집안에서 뇌물을 보내온 것이다.

“권력이란 좋은 것이군.”

“당연합니다. 이판대감께서 계속해 조정의 중심을 잡고 계시는한 부귀영화가 천세, 만세까지 진행될 것입니다.”

심복들의 아부와 칭찬을 들으며 김좌근이 우쭐거렸다.

조선의 권력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었다.

상황은 이전보다 더 좋았다.

궁궐에는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촌부가 임금의 자리에 있었다.

얼마든지 허수아비로 만들어 조종이 가능했다.

만약에 말을 안듣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때에는 다른 방법도 있었다.

조선의 임금을 만드는건 자신에게 달려있으니 말이다.

잠시후 김좌근과 심복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자만심에 빠졌다.

그들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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