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169)

“소신들이 부족하여 제대로 하지못한점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이것은 호조의 실무급 관료들이 작성한 것으로 내용은 상세했다.

조선이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예산.

현재 거두어 들이는 세금의 금액.

그외에도 부족한 부분과 기타 건의사항들까지... 실무와 현장에서 활동하는 인원들이 고심끝에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내용들은 대부분 보고에서 누락되었다.

호조판서와 참판을통해 내쪽에 전달된것은 기껏해야 몇장에 불과한 허위보고서가 전부였다.

즉 호조판서와 참판이 임금인 나를 속인것이다.

성질 같아서는 때려죽이고 싶지만 일단은 참았다.

어차피 6조에있는 수장들중에 내쪽에 협조적인 인물은 2명밖에 없었다.

이전에 강화도까지 나를 데리러왔던 예조판서 장우영.

그리고 6조에서도 가장 낮은 서열이면서 온갖 잡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조판서 김석민이다.

이들 2명은 안동김씨를 포함해 세도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에반해 6조에서도 알짜배기로 속하는 이조, 호조, 병조, 형조의 수장들은 안동김씨 및 세도가와 밀약을통해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조는 6조에서 인사권을 담당했고 총무부와 같은 위치다.

호조는 재무상태와 재정부분.

그리고 형조는 치안과 경찰.

마지막으로 병조는 군사분야다.

이처럼 6조에서 핵심이되는 부서의 수장들은 나에게 적대적이고 기회만되면 속일려고 드는 상황이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것이다.

이후에는 모조리 박살내고 바꿀것이니까 말이다.

첫단계로 호조의 실무진들과 핵심 인재들을 내편으로 만드는게 필요하다.

호조는 돈에관계된 부서이고 매우 중요하니까 말이다.

소집된 10명의 실무진들은 능력도 괜찮았다.

“그대들은 조선의 재정상태가 어떻다고 생각되시오?”

“......”

나의질문에 저마다 눈치를 보았다.

그들도 속으로 답을알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입밖으로 쉽게 내뱉지 못했다.

그들이 호조의 실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이고 임금인 나에게 충정이 있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위에있는 상관들인 호조판서나 호조참판들은 세도가인 김좌근과 안동김씨에 협력하는 자들이다.

내가 예조와 공조의 관료들과는 여러차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친숙하지만 호조의 실무관료들이 나를 직접 만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들에게 신뢰와 충심을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임금의 역활이지.

자발적인 충성과 존경을 끌어내는것.

쉽지는 않지만 한번 성공하면 그것은 평생동안 충성을 바치는 신하를 얻는것이다.

나는 그들이 속으로 두려워하는 부분을 곧바로 치고 들어갔다.

“물론 그대들의 상관인 호조참판이나 호조판서가 안동김씨의 수장인 김좌근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들이란 사실은 알고있소. 때문에 임금인 나에게도 말하기 꺼려하는 그대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오.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그대들이 진정으로 백성을 섬기고 임금을 섬긴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말이오. 그리고 과인이 비록 강화도에서 지냈고 세간에서 강화도령, 또는 강화도의 촌놈이라는 비아낭을 듣고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거 같소이까?”

“......”

나의말에 그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들이 지금까지 나에대해 갖고있던 고정관념이나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릴 숨은뜻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실무관료중에 선임인 유연석이 나를향해 엎드리며 말했다.

“전하. 소인들의 불충을 용서해 주십시요.”

“아니요. 내가 경들을 부른것은 그런 부분을 책망하기 위한것이 아니요. 솔직히 말해서 과인은 경들이 조선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민초들의 생활을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인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전에 과인이 던진 질문에대해 기탄없이 말해보시요.”

“그렇다면 소신 유연석이 한말씀 아뢰겠습니다.”

유연석이 용기를 내었다.

그렇지.

이곳에 소집된 실무관료들 중에서 유연석이 가장 실력이 있었고 나머지 동료들에게도 인정을받고 있었다.

이 부분들은 첩보조직인 비호국을통해.

그리고 승정원에있는 측근들을통해 얻어낸 정보들이다.

상대를 회유하고 나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에대한 정보부터 파악하는것이 기본이다.

그래야 어느부분을 공략하고 파고들 것인인지를 결정할수 있으니까 말이다.

얼마후 유연석이 설명을 시작했다.

역시 호조판서나 호조참판같이 실력없는 무능력자들보다 훨씬더 여러가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해도 경제에대한 세밀한 개념들을 파악하고 있는건 아니기에 100%의 해답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충분했다.

“경의 말대로 지금 조선의 조세수입이나 기타 재정상태는 이전보다 더 열악한 상태요. 어쩌면 조선이 개국하고 태평성대와 부국강병을 이루었던 세종대왕의 시기와 비교하면 채 3할도 되지못할 것입니다.”

“전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진짜로 많이 봐줘서 3할이다.

지금 조선이 갖고있는 경제력이나 조세수입 그리고 국력은 한없이 퇴보한 것이다.

국가란 것은 개국시에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고 발전해야 하는데 조선은 거꾸로가는 상황이다.

이런 기묘한 국가가 어디에 또 있나?

조선의 역대임금인 세종대왕때와 비교하면 더 처참하다.

그때도 농본정책으로 조선의 산업이 농업을 위주로 하였지만 상당한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세종대왕때의 조선이 보유한 국력은 그당시 전세계의 강대국 TOP-5 안에 들어도 충분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조선의 국력은?

처참할 수준이다.

“과인은 앞으로 조선을 크게 변화시킬 계획이요. 그렇다고 조선이 국시로 내걸고있는 농본정책과 경자유전의 정책을 무조건 버릴 생각은없소. 오히려 과인은 그것을 더 발전시키고 개혁할 마음을 갖고있소.”

내가 조선을 산업국가로 만들 생각을 갖고있지만 그렇다고 농업을 무조건 반대할 생각은 아니다.

그럴것이 지금 1850년대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되었고 유럽의 열강들이 자국의 산업발전을 진행하고 있는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국과 프랑스, 프로이센, 그리고 심지어 미국까지도 농업생산량은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에 미국은 전세계를 압도할 정도의 농업생산량을 과시할 것이다.

때문에 조선이 농업을 버린다는건 멍청한 짓이다.

대신에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전근대적이고 주먹구구식의 비효율적인 농업이 아니라 당대에서 선진적인 농업시스템을 만드는게 중요했다.

그것이 이후 조선의 농업정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그 부분에대한 구상들은 나의 머리속에 들어있다.

지금은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기위해 준비작업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과인이 경들을 여기로 부른것은 그대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과인에게 어떤 도움이 될것인지를 알아보고 싶었소.”

“전하. 소신들은 종묘사직과 백성을위해 충정을 맹세할 것입니다.”

“고맙소.”

그들에게 칭찬을 해준뒤에 한차례 둘러보았다.

나와시선이 마주치는 그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드러났다.

바로 이거지.

이제 그들은 나에대해 소문으로 들어왔던 사실들이 모두 헛소문임을 깨닫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속으로 이번에 왕이된 이원범은 기껏해야 세도가와 안동김씨 그리고 간신인 김좌근의 손아귀에서 허수아비 노릇이나 할것으로 예상했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였다해도 비슷할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철종은 제대로 임금노릇을 못했으니까.

속마음이야 어떻든 결과로 드러난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원범의 몸속에있는 존재는 현대인의 온갖 속임수와 술수를 알고있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사악한 인간은 아니였다.

다만 내가 태어나고 생활했던 21세기 한국에는 법이란것이 존재했고 그 법의 테두리안에서 생활해야 전과자란 낙인이 찍히지않는 것이다.

머리속으로는 온갖 사악한 생각이나 술수와 망상을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순간 매장된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조선시대이고 임금의 말과 명령이 법위에 존재한다.

조선에도 경국대전이란 법전이 있다.

하지만 임금의 능력과 술수에따라 얼마든지 그것을 초월하고 마음대로 이용할수 있는것이다.

결심하기에따라 독재자도 될수있고.

덕치를 베푸는 어진 임금이 될수도 있고.

폭군이 될수도 있다.

그리고 정신줄 놓으면 김좌근같은 놈들에게 꼭두각시 신세처럼 조종을 당하다가 인생이 끝날수도 있고.

다만 내가 원하는건 어느 한가지를 정해놓고 할것은 아니다.

폭군도 괜찮겠군. 상황에 따라서는.

덕치도 베풀거다.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간신배 놈들에게 이용당하는척도 해줄거다.

이후에 역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하고싶은걸 하면서 조선을 바꿀것이다.

“지금부터 과인은 그대들에게 몇가지 부탁이 있소. 그중에 첫번째로....”

호조의 관료들을향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감시자들의 존재

“나리. 한푼만 주세요.”

길가에 앉아있던 중년 아낙네가 행인들을향해 애걸했다.

대부분은 그녀를 힐끗보더니 무시했다.

옆에는 피죽도 못먹어서 몰골이 송연한 아이가 있었다.

배고픔에 어미를 보채고 울기도한듯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몇몇 행인들은 그녀를 연민어린 표정으로 봤지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대부분 그녀와 비슷하게 가난한 서민들이니까 말이다.

조선후기 민초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경신대기근이란 엄청난 재앙이 조선을 휩쓸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간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도 생겼다.

역사에서는 경신대기근이 끝났다고 하지만 계속 진행형이다. 굶주림으로 떼죽음 당하는 상황은 나오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사람들이 고통받는건 여전했던 것이다.

“이거라도 받으세요.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요기거리는 될겁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녀를향해 마침내 구원자가 나왔다.

이제 갓 20살이 될법한 건정한 청년이다.

그는 얼마전만해도 강화도에서 농사를짓던 상황이였다.

일생일대의 행운을 얻었다.

동생처럼 생각하며 친하게 지내던 이원범이 하루아침에 국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원범은 배동석의 집에 찾아와 한양으로 떠나는길에 동행하자고 하였다.

요청의 형태였지만 명령이였다.

거역할수 없는 명령에 배동석은 어명을 받들었다.

그뒤에 진행되는 수많은 일들.

배동석은 정신이없을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본 한양의 모습.

임금이 지내는 창덕궁의 거대함.

한양에 도착한 첫날에 배동석은 이원범과함께 창덕궁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임금인 이원범과 죽마고우라해도 그의 신분은 미천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배동석은 예조판서 장우영이 지시한 관리의 도움을받아 한양내 숙소를 마련했다.

배동석에게는 제 2 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였다.

여러가지 의문은 들었다.

주상전하가 자신같이 미천한 신분의 촌놈을 왜 한양까지 데려온 것일까?

배동석이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처음에는 한양의 지리를 익히고 이것저것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얼마후 외곽에있는 배동석의 숙소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가늘고 긴 음성을지닌 남성-

내관이였고 배동석은 그런 남자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자네가 배동석이란 촌놈인가? 강화도에서 왔다고 들었네만.’

배동석을 찾아온건 송내관이였다.

그리고 배동석은 송내관을따라 야간에 창덕궁 내부로 들어가게 되었다.

미로처럼 펼쳐진 길을따라 이동한 배동석이 도착한 곳은 희정당-

‘주상전하께서 뭣때문에 너같은 촌부를 여기까지 몰래 데려오라고 하신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성은을 입은것이야. 무슨뜻인지 알겠느냐?’

송내관의 말투는 차가웠지만 그가 임금의 심복이고 이원범의 지시를 철저하게 지키는 인물이란 사실을 느낄수 있었다.

한양에서는 눈뜨고도 코를 베어간다고 하지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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