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169)

“그렇네. 전하께서 내린 이 조직의 이름은 현재 임시로 쓰는것이고 이후에는 또다른 이름으로 바꾸시겠다고 하셨으니까.”

“그것보다 더 놀라운것은 전하께서 선배님과 저에게 비호국의 구성과 운영에대한 수많은 지시들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처럼 젊은나이에 이런 능력을 발휘하시다니. 진정 하늘이 내리신 인물이 분명합니다.”

강기석이 감탄사를 토해내었다.

비밀기관을 만들라는 지시를받은 두명은 철종에게 교지를 받았다.

그 교지에는 특명을통해 만들게될 조직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비호국(飛號局)-

이름 자체로는 특별할게 없었다.

내부에는 엄청난 의미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비밀기관과 조직을 만드는건 맨손으로 되는것도 아니다.

조직을 세우고 운영하기위한 활동자금도 중요했다.

이원범은 두명에게 상당한 자금지원을 하면서 앞으로도 운영자금들은 국왕의 금고를통해 주어질 예정이였다.

따라서 이조판서인 김좌근과 세도가의 세력들이 이원범을 감시해도 이것을 알아내기는 힘들것이다.

“전하의 지시대로 조직원을 모은다. 그리고 그들을 훈련시키는 장소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해 보도록 하세.”

“이렇게 튼튼한 돈줄까지 있으니 충분히 가능합니다.”

강기석이 옆에있는 상자를 툭툭 건드렸다.

안에는 상당한 양의 은자들이 가득있었다.

운산금광의 채굴이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가면서 이원범의 개인 금고로 상당한 양의 금괴들이 모여지고 있었다.

그중에 일부를꺼내 비호국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쓰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원범이 직접 쓴 책자도 있었다.

표지에는 <비호국의 설립과 운영법>-이라는 제목이 언문(한글)으로 쓰여져 있었다.

첫번째 표지를 넘기면 상세하게 적혀진 명령과 내용들이 있었다.

이원범은 밀리터리 매니아로서 21세기에 강대국들이 운영하는 첩보기관에대한 다양한 지식이 있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조직의 구성과 활동에대한 여러가지 사항들을 적어놓았고 이것은 첩보활동의 교범과도 같은 것이다.

두명은 임금에게 하사받은 책을 몇번이고 읽으면서 숙지했다.

두사람이 무관으로 생활했고 여러가지 경험들을 하였지만 첩보기관을 운영한 경험은 없었다.

그럴것이 첩보기관의 운영이란것은 또다른 분야였다.

따라서 이원범은 두명에게 첩보세계의 활동에대한 수많은 원칙과 기술들을 미리부터 가르쳐야 했다.

그것을위해 비밀책자를 만들었고 두사람에게 직접 전해준 것이다.

앞으로 해야할 일들이 많았지만 최원상과 강기석은 각오를 다졌다.

그들도 임금이 구상하는 거대한 전략이 무엇인지를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호국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성공을위해 모든것을 바칠 각오였다.

* * *

“가만보자. 그러니까 예조와 공조는 이미 나의 세력권이고, 승정원도 실무진은 나의 측근들이 활약하고 있군. 그리고 호조도 나름 돌아가는 형편이고...”

하나씩 확인하며 표시를 하였다.

제법 큰 한지위에는 도식과 계보가 표시되어 있었다.

가장 위에는 임금인 나의 위치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삼사가 있다.

삼사는 보통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일컫는다.

그리고 사헌부는 조정관리에대한 관리와 감독을하는 기관인데 감찰기능과 탄핵기능까지도 있었다.

사헌부에 대해서는 승정원에있는 실무관료들을 이용해서 그럭저럭 나의 세력을 뻗어놓았다.

문제는 사간원과 홍문관인가?

여기는 속칭 X선비라고 부르는 고리타분하고 앞뒤가 꽉막힌 사대부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걸 보니까 아직도 갈길이 멀다.

하지만 삼사보다 더 중요한 곳이 6조다.

실제로 삼사의 경우에는 실질적인 행정에 관여되는 경우가 적었다.

삼사에 김좌근과 안동김씨의 세력들이 자리를 잡고있다해도 나에게는 좀 귀찮은 수준이랄까.

그중에서도 홍문관의 경우에는 임금을 가르치겠다고 날뛰는 놈들이 있기도하다.

조선이 국시로 여기는 성리학적이고 도덕적인 임금.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사대부들의 입맛에 임금인 나를 개조시키겠다는 것이다.

이후에는 임금인 나를 허수아비 취급하겠다는 것이지.

조선시대에서 왕권과 신권의 관계.

이것은 언제나 미묘한 문제였다.

왕권이 지나치게 강하면 연산군같은 폭군이 나오니 어쩌니 떠든다.

그리고 신권이 지나치게 강하면 왕은 허수아비 신세가 된다.

신하들이 정말로 똑똑하고 재능넘쳐서 왕이 일일이 나서지 않아도 될 정도라면 나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지금 조선은 사대부들이나 관료들은 우물안 개구리 신세일 뿐이다.

저들에게 나라를 맡겨두면 그후에는 어떻게될지 뻔하다.

어쨌든 내가 핵심적으로 공략해야할 대상은 6조의 부처들이다.

일단 예조와 공조는 나의 수중에 들어온 상태.

호조도 호조판서와 호조참판들을 허수아비로 만든 상황에서 실무쪽의 관료들은 나에게 충성을 바친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목표를 노려야 하는데.

이조? 김좌근이 두눈을 시퍼렇고 뜨고있는 상태라 쉽지않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병조와 형조인데.

형조보다는 병조에 더 신경을 써야할 때이다.

6조에서 병조는 국방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다.

그리고 병조판서는 현대로치면 국방장관과 같은 위치.

병조판서가 신경을 덜 쓰는 상태에서 신병기 개발의 핵심인 군기시를 내손에 넣었다.

지금도 군기시에서는 나의 지시에따라 신형보총과 신형기병총을 밤낮으로 제작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신병기 개발과 무기개발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추진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병조판서와 참판놈들을 당장에 잘라버리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않았다.

대신 놈들이 아직도 병권을 쥐고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면서 상대의 지위를 안쪽에서 무너뜨려야 한다.

그중에 하나가 병조에 나의 세력을 침투시키는 것이다.

“적당한 후보자가 없을까? 병조에서 나의 지령을받아 활동하면서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어갈 인재가...”

한동안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던중 한 인물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조선후기 국방이 무너져 가는 속에서도 전투에서 나름 활약을 하였고 재능도 뛰어나고 지휘력도 발휘한 인물.

“종걸아!”

“하명하십시요. 전하!”

“이번에도 너가 은밀하게 움직여서 한사람을 데려와야 할거같다.”

“누구입니까?”

“박규수다.”

“전하, 그를 조정으로 다시 부르면 상당한 파장이 생길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정내에서 그를 싫어하는 작자들이 많다는건 알고있다. 그러나 더이상은 머뭇거릴때가 아니다.”

“전하의 결심이 그러하다면 소인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종걸이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녀석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다.

이전에 첩보조직인 비호국의 책임을 담당할 최원상과 강기석을 은밀하게 데려올 때와는 상황이 틀리다는걸 직감한듯 보였다.

당연하겠지.

비호국의 운영을맡긴 두명은 어차피 조정이나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던 군관들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규수의 경우에는 틀리다.

상당한 존재감이 있었고 지금도 한양에서는 박규수에게 이를 바드득 갈아대는 적들이 있었다.

따라서 박규수가 임금의 명령에따라 중앙으로 들어오면 그뒤에는 많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것이 기회다.

지금까지는 너무 조용하게 움직였다.

이제부터는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흔들어줄 필요가 생겼다.

국왕의 친위대

“자네들도 연락을 받은것인가?”

“그렇다네.”

중년사내들은 놀라고 있었다.

오늘은 의정부를 포함해 6조의 업무가없는 휴일이다.

어젯밤에 퇴궐하면서 집으로 향하던 그들.

집앞에서 지키고있던 군관들에게 하나의 서찰을 받았다.

보통의 군관들이라면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국왕의 친위부대인 호위청과 금군소속의 군관들이였다.

그들에게 전해진 서찰은 임금의 친필과함께 직인이 찍혀있는 것이다.

임금의 서찰을 받았기에 그들은 예를 갖출수밖에 없었고 서찰의 내용을 확인했다.

긴장했지만 서찰의 내용은 간단했다.

내일은 6조의 업무가없는 휴일이지만 창덕궁으로 입궐하라는 것.

다만 통상적으로 입궐시에 사용하던 정문대신 후문을통해 오라는 것이다.

서찰내용은 절대로 발설하면 안되고 본후에 즉시 폐기하라는 지시였다.

철종에게 비밀서찰을 받은 그들은 잠을 제대로 잘수도 없었다.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란 예감은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 그들은 아침일찍 창덕궁으로 향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도착했을때 그곳에는 무장한 호위청 군관들이 있었다.

요즘들어 호위청이나 금군의 군관들이 휴대하는 무기들은 생소한 것이였다.

화승총처럼 생겼지만 길이는 훨씬 짧았다.

때문에 군관들은 그것을 등뒤로매어 휴대하고 있었다.

“귀관들이 갖고있는 병기는 기묘하군요.”

“전하께서 군기시에 지시를내려 이전의 화승총을 개량한 백두철포-입니다.”

“우리들 호위청과 금군의 군관들은 주상께서 내려주신 백두철포의 은혜에 감개무량할 정도입니다.”

그들에게 대답하던 군관의 말은 진심이였다.

철종 이원범은 군기시의 한기준이 개량한 화승총 백두철포를 직접 시험사격했고 결과에 만족했다.

이후에 한기준과 군기시의 기술자들은 상당한 지원을 받으면서 나머지 화승총들을 개량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첫단계로 호위청과 금군이 보유하고있던 500여정의 구형 화승총들을 백두철포로 개조하는 작업이였다.

개조를마친 화승총들은 사격훈련을 거친뒤에 호위청과 금군의 군관들에게 지급되었다.

첫단계인 500정의 화승총에대한 개량이 완료되었고 지금은 나머지 1000여정의 화승총들을 백두철포로 개량하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신형 무기를 지급받은 호위청과 금군의 군관들은 사기가 어느때보다 높았다.

진정한 국왕 친위대의 전투력과 능력을 갖게된 것이다.

그들은 군관들의 안내를받아 창덕궁의 뒤편에있는 후원으로 모였다.

그곳에는 미리온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도 익히 아는 얼굴들이다.

그럴것이 여기에 소집된 인원들 10명은 6조중에 하나인 호조에서 직무를 수행하던 관료들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책은 호조판서나 호조참판처럼 높은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중급의 관료였다.

하지만 그들이 호조의 실무와 현장에 관련된 일들을 담당했다.

* * *

“전하. 분부하신대로 전원이 모여있습니다.”

“그런가? 수고했네.”

최원상을향해 말했다.

그는 비밀조직인 비호국(飛組)을 관리하는 역활을 담당했다.

그가 지휘하는 비호국 요원들이 상당한 일을 해준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났고 최원상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갔다.

뒤에는 송내관이 양손에 보자기 가득히 뭔가를 들고왔다. 한쪽에는 서책들이 있었고 다른쪽에는 내가 준비한 선물들이다.

도착하니 그곳에는 10명의 호조 관료들이 있었다.

선임인 유연석이 나를보더니 놀라며 엎드렸다.

나머지 인원들도 엎드리며 말했다.

“전하를 뵈옵니다.”

“오늘은 6조의 업무도 쉬는날이니 격식을차릴 필요는 없소. 일어나시요.”

내말을듣자 그들이 일어났고 자리를 잡았다.

준비된 상석으로 가서 착석했고 송내관에게 손짓했다.

송내관이 보자기를 가져왔다.

그것을 풀어내자 5권의 서책들이 나왔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요?”

“물론입니다. 전하. 저희쪽 호조에서 아니 여기에있는 동료 관원들과 함께 작성한 예산계획서와 재무상태에대한 기록들입니다.”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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