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169)

앞으로 공조판서가 해야할 일이 더 늘어나겠는걸.

“여기모인 거상들이 저마다 각자의 지역과 분야에서 활동을 해주고 있으니 과인은 든든한 기분이요.”

“황송하옵니다. 전하.”

칭찬을 들었기 때문일까?

소집된 거상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의 음성에는 감격에겨워 목이메인 경우도 있었다.

하긴 사농공상의 신분에서 가장 말단이고 하찮은 상인들에게 하늘같은 임금이 칭찬을 해줬으니 당연하다고 할까.

여기 소집된 거상들을 잠시 띄워준것도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저들을 여기로 부른것에는 다름 아니라.

“그대들도 공조판서를통해 대충은 들었겠지만 과인은 앞으로 조선의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키고자 여러가지 정책을 펼칠것이요. 그것을 여기모인 그대들에게 먼저 알려주기위해 불렀던 것입니다.”

“.....”

거상들이 고개를들어 나를 보았다.

그들중에 몇명은 눈이 마주치자 다시금 고개를 숙인다.

임금과 시선을 마주보는것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저들이 좀더 편하게 나를 대했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기껏 첫만남일 뿐이다.

임금이라면 어느정도 권위를 유지하는것도 필요하니까 말이다.

상인들을 상대로는 그래야한다.

상인들이 눈치빠르게 행동하는것도 있지만 재물이 걸려 있을때에는 앞뒤 안가리고 덤비면서 사고를 칠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적절하게 관리하는게 뭣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조선의 발전을위해 상업과 공업을 장려하고 키울 예정이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또 조선의 발전을위해 노력할 인재들의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요.”

“인재의 발굴이라면 내년에 진행될 특별시를 통해서도 발굴할 예정이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소.”

평안도를 대표하는 거상을향해 대답했다.

상인들은 정보에 민감한 법이고 내년에 진행될 특별시에 대한것도 그들의 귀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조선후기의 과거제도는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그들이라고 모르지는 않을터.

“내년에 진행될 특별시를 한다해도 제대로된 인재들이 들어온다는 보장이없소.”

나의 푸념에 일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대충은 눈치채고 있었다.

어차피 내년에 진행될 특별시에서 이조판서인 김좌근을 중심으로한 세력들이 과거에 부정을 저지를 것이란 사실을.

그때문에 상당수의 실력있는 유생들은 특별시에대한 소식을 들었어도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다.

“다만 내년에 진행될 특별시는 시간이 많이남았소. 그리고 과인은 과거시험만으로 인재를 등용할 생각은 없소. 그보다는 스스로 노력하고 실력을키운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요.”

나의말에 몇명은 온몸을 부들거렸다.

그들은 내말에 함축된 의미를 분명해 깨달았던 것이다.

과거시험을통한 등용이라면 그들의 자식들이 과거에 통과할 가능성은 아예없었다.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힘들테니까.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인재를 등용한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기회는 생긴다.

거상들이 상업을통해 재물을 모았고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그들의 위치는 항상 천대받았다.

때문에 자신의 후대들은 입신양명을해서 출세하기를 바랬다.

그중에 하나가 과거시험인데 애초부터 그것은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했다.

얼마후 몇몇 거상이 질문을 하였다.

“전하께서 말씀하시는 다채로운 방법을통해 인재양성과 선발이라면 어떤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소인들은 머리가 아둔하여 짐작하기 힘듭니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그들도 머리속으로 짐작은 하고있었다.

다만 임금의 입으로 구체적이고 자세한 대답을 듣고 싶다는 것일테다.

“지금까지 조선은 유교와 성리학을 학문의 중심으로 여겨왔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요. 특히 조선이 부국강병을하고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양의 발전된 학문을 익히는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과인이 조정에 등용할 인재들은 그런 학문과 재능을갖춘 인재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일 것이요.”

여기까지 대답하자 소집된 거상들이 웅성거렸다.

유학과 성리학의 공부에서는 양반집의 자제들이 앞서 있었고, 그들의 자식들이 끼어들틈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학문과 기술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말한 서양의 학문들은 양반집의 유생들이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출발선이 같아진다.

진짜로 능력있는 인재만이 출세할수 있다는 것이다.

“전하께서 그런 계획을 갖고 계시다니! 소인들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다고 너무 황송할것은 없소. 사실 조금전에도 말했지만 조선의 능력있는 인재들이 서양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데는 많은 돈과자금이 필요한것도 사실이요. 다만 지금 과인이 유용할수있는 돈과 자금에는 한계가 있소. 더 급한곳에 써야할 곳이 있다는 뜻이요.”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이제야 그들도 속마음을 이해한듯 보였다.

조선의 인재들을 선발해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

그것에는 상당한 자금도 필요하지만 또 팔도를 대표하는 거상들이 보유하고있는 외국과의 네트워크도 중요했다.

거상들이 갖고있는 네트워크라해도 기껏해야 일본, 중국이 한계지만 거기까지 유학생들을 보내는건 가능해진다.

그곳부터는 또다른 지원을통해 유학생들을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 프로이센, 그리고 미국등지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돈만 투입한다고 되는것이 아니다.

거상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소인들은 전하의 성은에 보답하기위해 모든것을 바치겠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하명을 내려 주십시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소. 그리고 여기모인 팔도의 거상들이 과인에게 힘을 보태준것에 대해서는 절대 읹지 않을것이요. 이후에 유무형의 보답이 돌아갈 것이니 기대를해도 좋소.”

대답한뒤에 필요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였다.

첫번째로 유학생들을 파견하기위한 경비와 자금의 조달.

이부분은 공조판서와 협의를통해 진행하기로 했다.

임금인 내가 성의를 보태라고 운을 떼어놓았다.

따라서 이자리에 모인 거상들이 그것을 거부할수는 없을것이다.

두번째로 그들이 일본과 중국에있는 현지의 인원들을통해 서양인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학생들을 유럽으로 인도하고 현지에서 관리와 지원을 하는것은 그들이 담당하게 되기때문이다.

유학생들도 재능이 있기에 빠르면 6개월, 늦어도 1년정도면 충분히 현지생활에 적응할수 있을것이다.

그때에는 더이상 서양인들의 도움이 필요없어도 된다.

이렇게 현지에 적응한 인원들중에 일부는 계속해서 유럽과 미국등에 남아서 이후에 도착하는 새로운 유학생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 역활을 담당한다.

그러면 이후에는 좀더 대규모의 유학생들을 파견할수 있을것이고 교육기간도 더 줄어들 것이다.

내가 가진 복안중에는 현지에 적응한 조선인들을 중심으로 유럽과 미주지역에 강력한 정보조직과 비밀조직을 구축하는것도 있었다.

21세기가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19세기도 당연히 정보를 먼저 얻는쪽이 유리했다.

그럴려면 현지에 비밀조직을 만드는것은 필수다.

조선이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않기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앞으로 조선의 부국강병을위해 공조판서의 역활이 더 중대할 것입니다.”

“전하의 성은에 보답하기위해 백골난망 하겠습니다.”

공조판서가 고개를 숙였다.

거상들과의 면담을 마친뒤에 공조판서를 포함해서 몇몇 관료들과 따로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들과의 만남을 가진것은 팔도의 거상들이 있는 곳에서는 할수없는 다른주제와 이야기들 때문이다.

“오늘 모인 팔도의 거상들이 어느정도 성의를 보일거 같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소신에게 맡겨주십시요.”

공조판서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조선팔도를 대표하는 거상들이 재물이많고 대규모의 식솔들을 거느렸다해도 그들의 지위는 낮았다.

공조의 중하급 관리들 앞에서도 쩔쩔대며 기어야하는 신세다.

때문에 공조판서가 나선다면 아무도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거상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기는 했지만 무작정으로 돈을 강탈하거나 요구하는건 이치에맞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중간에서 타협점을 제시하였다.

“오늘모인 거상들에게 지원금을 받는다고 하지만, 아무런 대가나 약속없이 하는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만들수 있소.”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어떤방법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지원금만큼 어음이나 채권을 발행해 주시요. 그 어음과 채권은 조선왕실이 보증하는, 아니 조선왕실의 내탕금과 관리기관에서 보증하는 것으로 하는게 좋겠소. 경도 알다시피 조선에있는 은광과 금광에대한 본격적인 개발과 채굴이 진행되고 있소. 지금 당장은 왕실의 금고가 넉넉하지 않지만 이후에는 여유가 충분히 생길것이요. 따라서 오늘 모인 팔도의 거상들에게는 임금을향해 돈을 내놓는것이 단순하게 쓸모없는게 아니라 중요한 투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요.”

“전하께서는 거기까지 생각해두신 것이군요.”

“당연하오. 그래야 팔도를 대표하는 거상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조를 끌어낼수 있는것이요. 특히 그들이 외국에 갖고있는 인맥들을 활용해서 유학생들을 파견하는 부분에서는 팔도의 거상들이 주도적으로 일을해야 하니까 말이요.”

“알겠습니다. 전하.”

공조판서가 고개를 숙였다.

일단 거상들이 지원금을 내는 문제와 그것을 어떤식으로 보증하고 댓가를 줄것인지에대한 부분은 토론을 마쳤다.

다음문제는 공무역에대한 것이다.

팔도를 대표하는 거상들을 이용하는건 사무역의 부분이다.

하지만 사무역의 경우에는 한계가 있었다.

국가가 직접나서서 국제무역을 담당하는 공무역도 중요했고 어떤 경우에는 민간무역을 월등하게 능가할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가지 생각해둔 부분이 있었다.

첩보활동의 교범

“홍삼을 공무역에 포함시킨다는 뜻입니까?”

“지금은 팔도의 거상들이 진행하는 사무역과 병행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공조에서 그것을 관리하게 될것입니다.”

나의대답에 공조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삼은 조선이 국제무역에서 엄청난 비교우위를 가지는 품목이다.

실제로 조선이 생산하는 홍삼의 품질은 최상급이고 경쟁자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에는 조선의 홍삼을 위협하는 대체품들이 나올수도 있다.

당장은 그 독점적인 위치를 유지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때문에 이 홍삼부분을 공적인 기관이 제대로 통제하는게 중요했다.

즉 팔도를 대표하는 거상들이 일정부분 홍삼의 국제무역을 하도록 허용하지만 그 수량을 관리하는 것이다.

다만 조선내에서 홍삼을 재배하고 좋은 품질을 만드는데에 있어서는 팔도의 거상들이 중요한 역활을 하고있다.

따라서 그들이 좀더 생산에 집중하고 해외판매의 부분에서는 공조에 특별기관을두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게 필요하다.

그래야 국제무역에서 홍삼의 가격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독점권을 쥘수 있으니까 말이다.

“소신은 전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홍삼은 앞으로도 조선의 주요 수출품중 하나가 될것이기에 미리부터 관리를 하는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경들이 과인의 뜻에 동참해 준다니 정말로 고맙소.”

공조판서를 포함해 실무쪽의 관리들은 능력이 출중했다.

나머지 6조마저도 이런식으면 좋겠지만 현재 공조와 예조를 제외하면 이조, 병조, 형조, 호조판서들은 기껏해야 밥만 축내는 무능력자들 뿐이였다.

지금은 일단 6조의 체제로 진행되지만 이후에는 행정부서들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것도 필요했다.

그전까지는 안동김씨 세력들을 포함해 조선의 발전에 방해가되는 장애물들을 철저하게 제거하는게 중요하지만 말이다.

이윽고 공조판서과 실무관료들과 느긋하게 술자리를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전달했다.

실무관료들은 내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위해 몇명은 서책을꺼내 기록하기도 했다.

확실히 나에게는 이런 자리가 편하고 좋다.

모든 관료들이 모여있는 상참이나 조참이나 하는 전체의 조회보다는 소수의 뜻맞는 관료들과함께 여러가지 정책들을 기탄없이 토론하는 자리가 더 즐거운 것이다.

이런 자리를 자주 할수 없다는것이 아쉽지만 현재는 이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얼마후 대략적인 토론을 마친뒤에 공조판서와 실무관료들에게 앞으로 진행할 계획들에대해 보고서를 만들어서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그래야 실무관료들의 보고서를통해 누락된 부분을 검토하고 채워넣을수 있으니까 말이다.

* * *

“전하께서 우리에게 큰 기대를 갖고 계시네. 따라서 결코 실망시켜 드려서는 안될것이야.”

“물론입니다. 선배님.”

강기석이 대답했다.

그가 선배라고 부르는 최원상은 뛰어난 실력과함께 지도력을 겸비한 무관이였다.

때문에 임금에게 특명을받고 비밀임무를 함께 수행하는것에 상당한 기대감이 생겼다.

두명은 자신들이 희정당에 불려간것이 우연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철종 이원범이 고심해서 짜낸 안배였다.

이원범은 송내관을통해 그리고 자신이 포섭한 친위부대의 상급무관과 지휘관들을 이용해 재능있는 무관들에대한 신상명세와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해서 선택한 두명이 최원상과 강기석이였던 것이다.

두명은 서로간에 친밀함이 있었고 아는 사이였다.

조선에대한 충절이 있었고 서로간의 협력을통해 더 큰 성과를 낼것이 분명했다.

이원범은 비호국을 조선의 첩보활동과 작전에서 중추적인 역활을 하는 기관으로 만들 계획이였다.

첩보활동과 정보활동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진 손자병법에도 일종의 정보원.

즉 간자를 운영하는 방법들이 나와있을 정도다.

이처럼 간자를 이용하는 첩보활동의 역사는 상당했지만, 체계적인 운영방법이나 정보조직을 만든 국가는 아직도 없었다.

21세기 현대에는 전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운영했다.

미국의 CIA-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경우에도 국가정보원이라는 기관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본격적인 첩보기관의 역사는 근대시기에 들어서야 겨우 가능해졌다.

그전까지는 주로 어떤 권력자나 배후의 인물들이 필요에따라 간자(간첩)을 고용하고 포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효율성은 낮았고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에반해 철종 이원범이 진행중인 조선의 첩보기관과 정보기관은 출발부터 달랐다.

국왕인 철종의 직속기관이면서 비밀리에 존재하고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석 저장할 예정이였다.

이것에서 핵심을 담당할 두명이 최원상과 강기석이다.

“비호국이라. 전하께서 거대한 뜻을 품고 계신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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