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169)

체력훈련부터 시작해서 근접전투시의 격투술.

그리고 허리에 휴대한 장검을 사용한 검술까지 다양했다.

철종 이원범이 군기시를 동원해서 개발한 신형보총이 지급되면서 궁수들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다만 현재 보급중인 신형보총의 경우에는 주로 호위청과 금군, 그리고 훈련도감에있는 일부 부대들에게 먼저 지급되는 방식이였다.

‘더이상 과거처럼 궁수들을 많이 양성하는 것보다 신형보총과 신형 기병총을통한 전투가 더 효율적이다.’

강기석은 앞으로 진행될 전투는 총기의 사용이 더 중요해질것을 직감했다.

특히나 조선군이 오랜동안 양성했던 궁병들도 그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전통적인 각궁의 제작이나 관리에도 상당한 예산이 필요했다.

조선군이 주로 사용하는 각궁의 위력이 약한것은 아니다.

사거리도 상당하고 연사속도에 있어서는 여전히 신형보총보다 더 빠를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발한발의 위력은 신형보총이 월등하게 앞섰다.

특히 관통력에 있어서는 강기석도 감탄할 정도였다.

‘앞으로의 전투는 궁병의 시대가 저물고 강력한 보총으로 무장한 보병과 기병들의 시대가 될것이다.’

그 기병도 전통적인 궁기병이 아니라 기병총으로 장비된 신개념의 기병부대가 될것이다.

기병이 화승총을 사용할수 있는건 조선군이 유일할 것이다.

다만 유럽에서는 오래전에 기병총을 사용하는 드라군(용기병)이란 개념이 있었지만 조선을 포함해서 동양권에서는 그런 시도가 없었다.

대부분의 화승총이 기병이 말을탄 상태에서 장전이나 조준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기시에서 개발된 백두철포-같은 기병총은 장전도 간편하면서 기병이 말위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위력을 강기석은 벌써부터 상상할수 있었다.

강기석이 병졸들에게 휴식을 명령하고 있을즈음 잠시 웅성거리는 소음이 흘러나왔다.

“저건 뭐야?”

“궁궐에있는 내관이 뭣때문에 여기까지 온거야?”

“내관은 거기가 없다면서?

병졸들이 숙덕거렸다.

여기는 훈련도감에서도 평소에 훈련량이 빡세기로 소문난 부대다.

그리고 신입병졸부터 시작해 고참병들까지 모두 사내다움이 물씬 풍기는 곳.

이런곳에 사내의 상징인 거시기가 제거되고 목소리까지 여성처럼 변해버린 내관(내시)가 왔으니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병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된 종걸이(송내관)은 반쯤 미칠지경이다.

‘전하도 너무하시지. 왜 나한테 이런 심부름을...’

지금까지 충성을 바쳐왔던 임금이 찰나간 미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어쨌든 자신이 여기에 온것은 비밀임무를 수행하기 위한것.

얼마후 송내관이 주변에있는 병졸을 불러서 질문했다.

“훈련교감인 강기석이라는 군관이 어디에 있는가?”

“그분을 왜 찾으시는 거요?”

병졸이 시선을 위아래로 내린다.

그것에 찰나간 송내관의 양볼이 발그레하게 변했다.

하지만 곧바로 목소리에 최대한 무게를 두면서 말했다.

“상부에서 내려온 중요한 명령이다.”

“그러시구나.”

병졸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상대는 궁궐에서 녹봉을 받고있는 내관이다.

속으로 무시를 한다해도 무턱대고 깔볼수는 없었다.

“그러시다면 어쩔수 없군요. 저깁니다.”

병졸이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송내관은 빠른 걸음을하며 나아갔다.

여기까지 오면서 병졸들의 건장한 체격에 압도되었는데 눈앞에있는 강기석은 그것을 뛰어넘은 수준이다.

진정한 무인의 모습-

그것에 압도된 송내관이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강기석이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뭣때문에 찾아오신 것이요?”

“당신이 강기석이군요. 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니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당신을 필요로하는 분이 계십니다.”

“전출명령이요? 그런데 왜 내관인 당신이 온거요?”

“일단 전출이긴 한데 평범한 수준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의 주인께서 당신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비밀입니다.”

송내관이 빠르게 말하더니 서찰을 강기석에게 건네었다.

그 동작은 신속했고 주변에있던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했다.

또한 강기석은 처음에 눈앞에 나타난 송내관의 모습에 좀 당황했지만 그뒤에 나온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조선의 주인이라면 누구겠는가?

당연히 현재의 임금이고 그 분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찰나간 강기석은 창덕궁이있는 방향으로 절을 하려고 했지만 멈칫했다.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는것.

그것이 의미하는것은 막중했다.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이마에서는 한차례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의 주먹에는 힘이 들어갔다.

무인으로서 큰 뜻을품고 여기까지 왔다.

드디어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 조선의 임금이다.

강기석은 앞으로 어떤 운명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 * *

“어서들 사양말고 드시오!”

“황송하옵니다. 전하!”

술을 따라주자 두손으로 받는다.

임금이주는 술이니 당연하겠다.

두사람의 잔에 한잔씩 따라준뒤에 내잔에도 술을부었다.

시원한 맥주가 땡기는 날씨지만 어쩔수없다.

나중에 기회가되면 궁궐내에 맥주를 생산하는 개인 양조장을 만들어 보는것도 좋겠다.

질좋은 보리는 조선에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 청국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다양한 기술자들이 있었다.

그들중 독일인의 경우에는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라도 맥주를 양조할수있는 능력을가진 경우도 꽤 된다.

독일이 맥주로 유명하고 21세기에도 독일에 수백개의 다양한 맥주가 존재하는것도 중세부터 각자의 집에 소규모 양조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맥주를 못만드는 독일인은 독일인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독일인들의 맥주부심은 상당할 정도다.

지금은 조선의 소주로 만족해야 한다.

한국의 현대식 소주와는 다르게 전통적인 주법으로 만든 증류주이다.

그래서인지 도수도 높은 편이다.

너무마시면 필름이 끊길수도 있겠다.

잔을 들어마시자 그들도 따라마셨다.

“어떻소?”

“천하의 명주입니다.”

“그대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것이니 사양하지 마시요.”

“황송하옵니다. 전하.”

갑옷을입고 건장한 체격을지닌 두명의 사내들.

그들은 국왕의 측근 경호를 담당하는 금군과 호위청의 관료들이다.

호위별장인 이종석과 금군별장인 박두식이다.

강화도에서 창덕궁에 들어온 이원범-

개혁을위해 반드시 필요한것은 세력이다.

그중에서도 친위세력과 친위부대를 내편으로 하는것은 물론이고 수족같은 상황으로 만들어야한다.

그것조차 안해놓고 개혁한다고 떠들면 어디서 뒤통수 맞을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조선을 바꿀려면 피바람은 불게 마련이다.

운좋게 한번으로 끝날지 앞으로 몇차례가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주변부터 확실하게 다져놔야 다음단계로 넘어갈수 있었다.

이종석과 박두식은 전형적인 무인출신-

상황에 따라서는 고리타분한 문관들보다 다루기쉽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죽을때까지 충성을 바칠것이다.

무슨 개같은 상황인가?

“그대들의 상급자가 있는데 뭣때문에 따로 불렀는지 알고 있소?”

“저희들은 어리석어서 전하의 깊은뜻을 모르겠사옵니다.”

두명이 당황했다.

처음에 두사람을 이자리에 초대했을때 둘은 머쓱한 표정으로 참석했다.

그럴것이 호위청에는 상급자가 호위대장이다.

금군의 경우에는 금위영의 통제를 받는다.

두명의 상급자들은 무인이 아니라 문관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이 권력을 쥐기위해 무관들이 주축이된 전투부대에도 최상급자를 문관으로 두면서 통제를 한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모든것을 담당하고 아래 군관들을 통제하는건 뼈속까지 무인으로 올라온 그들이다.

그러니 무관들의 불만이 얼마나 많겠는가?

실무는 모르면서 상급자라고 자리를 지키고있는 문관들의 존재.

속으로 불만이 있지만 그것을 드러냈다가는 기득권인 문관들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지금부터는 내가 바꿀것이다.

* * *

“전하.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임금인 내가 그대들에게 허언을 할거같소?”

“아닙니다.”

내말에 두명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음성이 떨리고 감격하는건 분명했다.

오랜동안 설움과 멸시를 받아왔던 무인들의 존재-

조선이 외침을 받거나 환란의 상황에서는 언제나 무인들이 일어나서 조선을 지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지휘관과 군관들이 희생되었다.

임진왜란의 경우에도 왜군을 앞에두고 도망친 장수들중에는 문관들이 월등하게 많았다.

평소에는 무관들을 상대로 큰소리치고 명령하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무관들에게 싸우라고 해놓고 자신은 도망치는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도망친 장수들중에 무관은 대다수가 참수당했지만 문관들은 관직박탈이나 유배등으로 목숨을 건지는 경우도 많았다.

무슨 개같은 상황인가?

“앞서 말한대로 문관은 문관의 책임에맞는 업무와 직책을 줄것이고 무관은 그에맞는 업무와 직책을 갖게될 것이요.”

에둘러서 말했지만 두사람은 충분히 알아들은 것이다.

문관들이 무관들의 위에서 모든것을 통제하면 조직의 전문성은 사라지고 당나라 군대와 부대가될 뿐이다.

무관들은 부대의 최상급 책임자가 문관이기에 창의성도 사라지고 적극성도 사라진다.

모든것이 엉망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일 뿐이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당장에 변화를 시작할수는 없소. 모든것은 때가있는 법. 무슨말인지 알겠소?”

“명심하고 있습니다. 전하!”

두명이 대답했다.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면 그에따른 보상이 주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에게 보상없는 충성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무인들에대해 그것을 요구하는게 문관들이다.

그러면서 문관놈들은 임금인 나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갖고 놀려는 중이다.

조정에있는 모든 문관들이 그런건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가 그런것이고 그중에 옥석을 골라내는것도 내가 해야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겠지?

이제부터 나의 눈과 귀가 되어줄 인재들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 *

“전하께서 무슨일로 나같은 군관을 부르시는 것인가?”

강기석이 중얼거렸다.

궁궐에서온 내관이 자신에게 준 서찰-

거기에는 임금이 사용하는 도장(옥쇄)가 찍혀져 있었다.

다시말해 임금이 내관을통해 직접 비밀명령을 내린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원래 이런 명령은 병조를통해, 그리고 이후에는 상부를통해 자신에게 명령이 하방식으로 전달되는게 정석이다.

하지만 임금은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에게 은밀하게 지령을내린 것이다.

왜 그런것을 했는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훈련도감에서 병졸들을 훈련시키는 교관의 역활을 담당하지만 강기석도 지금 한양과 궁궐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알고있었다.

지금 임금에대한 평판이나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들이 현 임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하지만 또다른 소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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