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169)

“전하. 그것에 대해서는 적당히 넘어가는것이 좋을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좋은 생각이구나. 하지만 잊지는 않을것이다.”

“.....”

종걸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표정이 몇차례 복잡하게 바뀌었지만 그래도 눈치가빠른 녀석이다.

내관으로서 직급이 높은것도 아니고 경험이 많은것도 아니지만 상황판단이나 눈치가 상당하다.

나에게는 고지식하고 나이많은 내관보다는 이런 젊은피가 더 필요했다.

조금전 종걸이가 말한것도 사실이다.

임금인 나에게 덕담을들은 호조와 형조의 하급관리들을 호조판서와 형조판서가 몰래 문책한것은 엄연하게 임금에대한 하극상이다.

지금은 이것을 문제삼으면 일이 더 커질뿐이다.

일부러 상대가 경계심을 가지고 반격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가끔은 정말로 농사나짓던 강화도령 역활도 필요할거 같구나.”

“전하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종걸이 너도 알다시피 과인이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온 사람이지 않느냐?”

“그렇다해도 전하는 고귀한 왕가의 핏줄을 타고나신 분이시옵니다. 그때문에 지금 소인이 전하를 곁에서 보필하는 은혜를 얻은것입니다.”

종걸이가 몇차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임금이 이런 소리를 하니까 놀란거같다.

하지만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오고.

그리고 창덕궁으로 입궐한뒤에 즉위식을 거치고 오늘까지 오면서 내가보여온 행동들은 역사에서 기록된 강화도령, 철종의 행보와는 많이달랐다.

김좌근을 포함해 안동김씨들이 원하는 허수아비 임금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것이다.

가끔은 적들이 원하고 예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헛점과 방심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은 나의세력이 적들에비해 약했고 정면대결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럴때에는 속내를 감추면서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것도 필요하다.

조선역사에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했던 상갓집 개 수준의 모양빠진 행동까지는 필요없다.

그저 임금이라면 충분히 할수있고 적당히 느슨해진 모습이면 충분하지.

* * *

“단시간에 엄청난 일을 해내셨군요.”

“아닙니다. 전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기준이 머리를 조아렸다.

얼굴은 피로감으로 초췌하게 변해있었다.

쉬는 시간도없이 밤잠을 설치면서 작업하고 개조했던 것이다.

군기시에서 화약담당의 책임자인 그에게 퍼커션캡 소총의 원리에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뇌홍(뇌관)을 제작하는 시범을 보여준뒤에 한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한기준은 종걸이를통해 나에게 2~3번정도 찾아왔다.

예상대로 뇌홍(뇌관)을 제작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고 중간중간 막혔던적이 있었다.

그것을 예상했기에 나를 찾아오라고 지시했고 한기준은 잘 수행했다.

그가 무리하게 단독으로 뭔가를 할려다가 군기시에서 폭발사고라도 난다면 그것대로 큰일이다.

한기준은 현장의 책임자이며 기술이좋은 장인이였다.

새로운 기술에대한 호기심도 강했다.

손재주도 뛰어났다.

그의 손재주라면 조선의 주무기인 화승총을 충분히 퍼커션캡 스타일의 소총으로 개조하는것도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나의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 * *

“한번 봅시다.”

“여기에 대령했습니다. 전하!”

한기준이 양손으로 소총을 바쳤다.

제법 묵직하다.

통상적인 단열식 화승총의 총신을 병렬로붙인 쌍열식의 소총이다.

대신에 총신길이는 화승총에비해 짧은편이다.

때문에 모양은 양쪽으로 2개의 총신을지닌 더블샷건(Shot Gun)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앞뒤로 본뒤에 노리쇠를 당겼다.

철컥-하는 금속음과함께 노리쇠가 걸린다.

그뒤에 디코킹시킨 방아쇠를 당겼다.

좌측편 노리쇠가 금속음을내며 공이를쳤다.

한번더 방아쇠를 당기자 이번에는 우측편 노리쇠가 전진하며 때린다.

화약을 넣거나 뇌홍(뇌관)을 끼운게 아니기에 폭발음은 아니였다.

“어떻습니까? 전하!”

“손재주가 뛰어나군요. 이정도로 개조를 하다니!”

개조에대한 방향이나 디코킹과 노리쇠를 후퇴고정 시키는 원리등은 그림까지 그려가며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배운것을 실제로 해낸다는건 또다른 부분이다.

그런데 한기준은 성공시킨 것이다.

묵직해 보이는 총열의 소총을 들어보았다.

한손으로 충분히 들수있는 수준이다.

훈련받은 기병이 말위에서 한손이나 두손으로 소총을들고 적을향해 발포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조선이 최강의 드라군(용기병)용 소총을 가지게된 것이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신병기 백두철포의 위력

“이번에는 발사시험을 해보고 싶군요.”

“전하. 그것은 위험할수도 있습니다.”

한기준이 난색을 표시했다.

화약이나 뇌홍(뇌관)이없는 상태에서 개조한 화승총은 안전하다.

그러나 화약을넣고 뇌홍을 장착하면 그뒤에는 총알이 발사되고 잘못하면 폭발할수도 있다.

한기준은 지시한대로 개조를 완벽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임금이 다치거나 한다면 그에게도 엄청난 문책이 따를수있다.

그의 걱정을 덜기위해 말했다.

“걱정마시요. 이런 기물은 여러차례 다뤄본 경험이 있으니까.”

“.....”

한기준도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군생활 하면서 다뤄본 총기만해도 K-5 권총부터 시작해서 M-16, K-1AI, K-2, 그리고 M-60 과 K-3 를 포함해 다양했다.

어쩌다보니 다양한 총포를 취급하는 일을하였고 제대할 때까지 화약냄새를 맡게되었다.

그렇다고 자만하는건 아니다.

총포의 위험을 알고있고 사고도 목격했으니 말이다.

“새로운 총포가 탄생했으니 이것을 뭐라고 명명하면 좋겠소?”

한기준에게 영광의 일부를 주고싶었다.

질문에 그가 대답을못해 머뭇거렸다.

잠시후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소인에게 떠오른 이름이 있기는 합니다.”

“어떤 것이요?”

“소인의 조부께서는 백두산에서 맹수를 사냥하시던 포수였습니다.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 새로운 신형 화승총을 백두철포-라고 하는것이 어떨가 생각됩니다.”

“백두철포라... 좋은 이름이군요.”

한기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잠시후 그와 기술자들이 준비하였다.

백두철포에 사용되는 뇌홍도 수백개가 만들어진 상테다.

그리고 백두철포에는 통상적으로 휴대하는 화약주머니 대신에 원형의 총알과 화약봉지가 세트로 구비되어 있었다.

이것은 퍼커션캡 소총의 후기형에 나오는 카트리지 방식의 휴대품들이다.

과거에는 화약이 통째로 들어있는 화약주머니를 사용했다.

그래서 총알을 넣기전 총구안에 화약주머니의 마개를 열어서 화약을 부었다.

이렇게 화약을 붓는것이 평소에는 적당한 양을 조절할수 있다. 그러나 급박한 전투중에는 적게 넣을수도 있고 많이 넣을수도 있다.

때로는 바람이 심하게 불때에는 총구에넣던 화약이 날리기도 한다.

때문에 언제나 일정량의 화약을 넣을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발전이다.

화약 카트리지는 충분히 만들수있다.

조선에서 쉽게 구할수있는 한지를 이용해 적정량의 화약을 넣어두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지로 만든 카트리지가 수백개정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중에 하나를들어 끝부분을 입으로 물어뜯었다.

입구를 밀착시켜 총구내부로 부었다.

이렇게하면 바람이 불때도 가능하고 전투중에도 규정된 양만큼의 화약을 넣을수있다.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엄청난 차이를 만든것이다.

그뒤에는 총알을 집어들었다.

원형으로 깍아만든 것이다.

이후에 장인들의 기술이 상승하면 미니에탄과 강선을 이용한 라이플의 단계까지 발전시킬수도 있다.

미니에탄과 강선식의 라이플로 변형시키면 사거리와 정확도가 월등하게 높아지고 파괴력도 증가한다.

‘제법 빡빡한데. 이정도쯤 되어야 폭발시의 압력과함께 총알이 고속으로 나아갈 테니까.’

화승총에 달린 쇠꼬챙이로 총알을 밀어넣었다.

몇번씩 힘껏눌러서 안쪽까지 들어가도록 해야한다.

백두철포에는 총신이 두개다.

똑같은 총알을 반대편 총신에도 장전하였다.

2발의 총알이 장전된 2연장 총신의 백두철포가 준비가 된것이다.

마지막 단계로 한기준과 장인들이 고생해서 만들어낸 뇌홍(뇌관)을 끼웠다.

유럽에서 만든 퍼커션캡의 외피는 황동이나 구리를 사용했다.

하지만 뇌홍은 어차피 1회용이다.

내부에있는 질산화합물의 폭발력이 큰것도 아니다.

그정도의 순간적인 압력이나 폭발을 견디는것은 얇은 대나무를 이용해도 충분했다.

대신 압력을 견디기위해 대나무의 외부를 한지에 풀을먹여 감아두는 방식으로 보강했다.

* * *

“전하 표적설치를 마쳤습니다.”

“병기소관(한기준)은 10정의 백두철탄에 탄을 장전해 두시요.”

“알겠습니다.”

한기준이 대답했다.

그사이 장전된 백두철포를들어 정면을 조준했다.

표적과의 거리는 70보정도.

표적의 크기도 가로 30cm, 세로 60cm-에 이를정도다.

저 표적의 크기는 적군의 상체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따라서 표적안에 총알이 들어간다면 상대에게 타격을 줄수있다는 뜻이다.

호위청의 군관들과 송내관, 그리고 군기시의 기술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임금이 직접 개량된 화승총 백두철포를 쏘는것은 전례가없던 상황이다.

하지만 군생활때 총포에 관련된 일을하였다.

관련지식과 경험이 있기때문에 내손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조준선 정렬을 한뒤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묵직한 반동이 느껴진다.

흑색화약을 사용하기에 자욱한 연기가 총열에서 뻗어나왔다.

첫탄을 발사한뒤에 조준을 마치고 두번째탄을 발사했다.

70보 밖에있는 표적에 탄이 적중하는게 보였다.

강선이없는 활강식 총열은 탄도가 안정된것이 아니다.

조준은 표적의 중심을 노렸지만 첫탄은 중심에서 10센티정도 상탄, 두번째탄은 비슷한 거리로 하탄이다.

이런 경우라면 70보 밖에서 적의 심장을 정확하게 노려도 탄도가 휘면서 상대의 복부나 팔에맞기도 한다는 뜻이다.

강선식의 라이플 총열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어쩔수없는 상황이다.

“다음번 백두철포를 가져오게.”

“여기 있습니다.”

한기준이 발빠르게 움직이며 2발이 장전된 백두철탄을 대령했다.

그것을 받은뒤에 재차 사격을 하였다.

그렇게 10개의 백두철포를 사용하며 총 200발의 탄환을 발사한 것이다.

군생활시에 M-16A1 소총은 물론이고, K-A1, 그리고 K-2 소총의 사격까지도 해봤다.

사격실력은 250미터 밖의 표적을 30발중에서 29발을 맞출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직접 200발의 사격을 한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전하.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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