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르신. 우리들이 작업중인 것이 정확하게 무엇입니까?”
“전하께서는 그것을 뇌홍(뇌관)이라고 하셨다.”
“어떤 물질인지 짐작조차 되지않습니다.”
“우리들이 만들고 작업하던 화약과 비슷하다. 하지만 화약은 불을붙이면 폭발하는 것에비해 뇌홍(뇌관)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폭발하는 성질을지닌 특이한 물질이다. 화약보다 더 민감하고 위험한 물질이라는 뜻이다.”
“.....”
한기준의 설명을듣자 작업반원들이 긴장했다.
이번임무는 임금께서 직접내린 것이다.
실패는 생각조차 할수없었다.
전하께서는 그들에게 일러놓은 부분이 있었다.
작업하다가 막히거나 한다면 주저없이 송내관을통해 보고하라는 것이다.
무리하게 하다보면 큰 사고가 생긴다는걸 강조했다.
이것을볼때 한기준은 전하께서 뇌홍(뇌관)에대해 충분한 지식을갖고 작업을 시킨것이라 확신했다.
머스킷(전장식소총)의 최종 진화형인 퍼커션캡-
처음 개발된것은 1807년이다.
군사전문가나 병기연구가가 개발한것도 아니다.
퍼커션캡 방식의 머스킷이 본격적으로 실용화되고 군대에 보급되기 시작한것은 1842년부터다.
유럽군대에서는 퍼커션캡 이전의 플린트락(부싯돌)방식의 머스킷으로도 전투하는데 충분했기 때문이다.
발사시의 즉응성에서는 이전의 플린트락 머스킷과 퍼커션캡 머스킷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다만 플린트락 머스킷 경우에는 장전시에 화약접시에 화약을 넣어야하는 불편한 단계가 있었다.
그리고 퍼커션캡 소총은 군대에서 병기연구가에의해 개발된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나온것이라 실용화에 시간이 제법 걸렸다.
몇년전에 발생한 1차 아편전쟁에서도 영국군은 플린트락(부싯돌)머스킷을 주로 사용했다.
육상전에서 청나라 팔기군을 포함해 화승총으로 무장한 청군을 압도적으로 박살냈다.
이처럼 전장식 소총이라도 발사시스템과 격발시의 즉응성에따라 전투승패가 갈리고 엄청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형인 퍼커션캡 방식의 머스킷을 장비한 조선군 부대의 전투력은 단순한 화승총 부대와는 차원이 틀려버린다.
하지만 퍼커션캡 소총에서 핵심적인 요소이자 부품은 바로 뇌홍(뇌관이다).
화승총의 구조는 비슷한 전장식 소총이기에 크게 다른부분은 없었다.
방아쇠를 개조하고 공이를달고 심지를 넣는부분에 퍼커션캡(뇌홍)이 터지면서 일으킨 불꽃이 도달하도록 연소관을 만들어주면 되는것이다.
조선의 장인들이 보유한 손재주와 기술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뇌홍(뇌관)이다.
이것의 제작은 조선의 화약장인들이 쉽게 만들수있는 성질이 아니다.
흑색화약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초산은 기본으로 들어가지만 그외에 수은과 에틸알콜이 더 필요하다.
수은은 이전부터 조선에서 구할수있는 물품이다.
에틸알콜은 전통소주등을 고순도로 증류해서 준비가 가능하다.
하지만 수은을 질산으로 녹이고 에틸알콜을 첨가해 침전물을 만들어내는 조합과 과정은 화약장인들이 단시간에 할수없는 것이다.
수년간 아니 수십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겨우 손에넣을수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죽을수도 있었다.
때문에 철종 이원범은 그들앞에서 뇌홍(뇌관)을 제작하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여준 것이다.
기술과 능력이 좋았던 책임자인 한기준은 모든 과정들을 머리속에 기억했다.
철종의 설명을통해 필요한 사전지식도 얻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은덕에 보답하겠습니다.”
한기준이 각오를 다졌다.
* * *
“한번만 용서를 해주십시요.”
“다시는 잠채따위를 하지 않겠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된 사내들이 흐느꼈다.
숫자만해도 수십명에 이른다.
이들을 바라보던 공조좌랑 박종갑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주상전하의 지시대로 전국에서 잠채하던 놈들을 잡는건 식은죽 먹기구나.’
예상했던 일이였다.
공조에 한가지 특명이 내려져 있었다.
그것은 조선내에서 잠채하는 인원들을 신속하게 적발하라는것.
국가에서 광산개발을 하지않던 사이에 민간에서는 몰래 광산을 채굴하는 잠채들이 성행하고 있었다.
규모면에서는 국가에서 정식으로 하는것에 비한다면 한계가 분명했다.
이원범은 공조를통해 조선내의 광산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시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인들이 몰래 광산을 채굴하는 잠채를 단속해야 했다.
광산개발을 민간에게 정식으로 넘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원범이 보기에도 그것은 효과가 없었다.
그럴것이 민간에 넘겨봐야 우후죽순으로 난개발만 될뿐이고 효율적인 개발과 채굴이 되는것도 아니다.
공조의 관원들도 어디에서 잠채가 시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느정도의 수준인지는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단속과 체포에 나서기에는 인력과 상부의 지시가 필요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해결된 셈이다.
공조에서는 이원범의 지원을받아 군관과 포졸들을 대거 동원했다.
그리고 잠채하던 광산기술자들과 작업원들을 잡아들였다.
이렇게 체포된 그들은 공포에 질렸다.
잠채를 하다걸리면 얼마나 큰 처벌을 받는지 그들도 알고 있었다.
돈이나 뇌물을통해 어떻게 해볼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안통할 지경이다.
얼마후 붙잡혀온 광산기술자들의 앞으로 민태혁이 나아갔다.
민태혁은 공조참의(차관보)로 이번에 진행되는 광산개발을 지휘하는 역활이다.
신무기를 만드는 도전자들
“네놈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아느냐?”
“나으리. 용서해 주십시요.”
붙잡혀온 광산기술자들이 애걸했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로 물들었다.
공조참의 민태혁은 이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채한 이놈들의 죄는 괘씸하지만 그것도 여러가지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임금께서는 잠채하던 광산기술자들을 엄벌에 처하기보다 그들을 적절하게 이용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한껏 분위기를 만들며 겁을주었으니 이제는 당근을 내놓을 차례다.
거부하는 놈들이 있다면 결과는 뻔하다.
“잠채라는 극악한 죄를범한 네놈들이지만 주상께서는 네놈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하셨다.”
“.....”
민태혁의 말에 그들이 당황했다.
일부는 살아날 길이 생겼다는 안도감까지 표시했다.
“이제부터 네놈들은 공조와 주상전하를위해 일하게 될것이다. 너희들이 갖고있는 기술과 재주에 걸맞는 보수는 지급될 예정이다. 대신에 지금부터는 잠채따위를 하겠다는 생각은 지우고 국가를위해 헌신해라. 무슨뜻인지 알겠나?”
“나으리께서 소인들에게 기회를 주시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죽다살아난 기분으로 기술자들이 엎드렸다.
언제들킬지 모르는 공포와 두려움속에서 잠채를 하는것에비해, 국가에서 급료를 받으면서 일할수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 * *
“좀 알아봤느냐?”
“예. 전하!”
“그렇다면 상세하게 말해보아라.”
종걸이(송내관)를향해 재촉했다.
그런데 종걸이가 눈치를 살피면서 머뭇거렸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거같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하던가.
현재 종걸이의 상황이 그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종걸이의 경우에는 궁궐에있는 내관들중에서도 그다지 높은직위가 아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보통 한나라의 임금을 모시는 내관이라고 한다면 내관들중에서 직급이높고 경험이많은 사람이 하는게 일반적이다.
제대로 교육받고 경험이쌓인 내관은 나이적은 임금에게 있어서는 좋은 스승이자 길잡이가 될수도 있다.
내관이 간신역활을 하면서 국정을 어지럽히고 막장으로 몰고 갈수도 있다.
중국역사의 경우에는 조선에서 내관과같은 역활을하는 환관들이 수많은 부정부패와 패악을 저질러서 왕조를 몰락시킨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중국역사에도 모든 환관들이 그런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된 환관의 역활로인해 왕권과 황권을 강력하게 만든 경우도 존재한다.
이처럼 내관, 환관의 존재는 양날의 검이다.
이런 역활을 할수있는 내관의 경우에는 나이도있고 경험도 많고 내관들 사이에서 직급이 높은경우가 해당된다.
때문에 나를 허수아비 임금이자 허약한 존재로 만들려했던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에게 위협이될 경험많고 능력있는 내관을 측근으로 붙이는걸 두려워한 것이다.
그에따라 내린 결정이 내관들 사이에서도 중급정도의 지위와 나이도 얼마안된 종걸이(송내관)를 희정당의 책임자로 만든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더 행운이다.
머리가 너무 굳어버린 나이든 내관을 상대하면 임금인 내쪽이 피곤해질수 있으니까 말이다.
“뭘 망설이고 있는거냐? 내가 한 명령을 잊었느냐?”
“아닙니다. 전하.”
한차례 호통을 당하자 종걸이가 서둘러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종걸이에게 내린 지시사항.
얼마전 임금인 내가 호조와 형조에대한 불시방문을 한뒤에 내린 명령이다.
대충 예상하고 있었지만 호조와 형조를 불시에 방문했을때. 거기에는 호조와 형조의 책임자라고 할수있는 호조판서나 형조판서 그리고 판서의 보좌를 담당하는 참판이나 참의마저도 없었다.
뿐만아니라 임금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조판서나 형조판서, 참판이나 참의들이 입궐을 안한것이냐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그날 아침의 어전회의에는 다들 참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낮에 호조와 형조를 방문했을때 없었다는건 뻔하지 않는가.
즉 어전회의에 얼굴만 비추고 낮시간에는 다른데서 시간을 보내면서 농땡이 친다는 뜻인데.
이거야말로 월급 아니 녹봉도둑들이 따로없다.
그래서 이후에 종걸이(송내관)에게 비밀리에 지시를 내렸다. 아침의 어전회의에 얼굴을비춘 놈들이 낮시간에는 대체 뭘 하는가라고 말이다.
“역시 그런곳에서 모여있었던 말이지?”
“전하. 비변사에있는 도제조부터 시작해 상급의 관료들은 대부분 의정부와 6조의 관직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알고있는 사실이다.”
중간에서 그만둔 상태지만 사학도로서 여러가지를 배웠고 조선의 중앙관료 조직에 대해서는 지식이 있었다.
비변사-
조선중기와 후기.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그 조직이 비대하게 커지고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곳이다.
조선말기의 풍운아였고 개혁정치를 시도했던 흥선대원군이 모든것을걸고 먼저 박살낸 조직중에 하나가 비변사다.
그럴것이 비변사로인해 조선의 국정이 마비되었고 수많은 부정부패가 나왔으니까 말이다.
처음에 비변사가 창설된 취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비변사는 기존에있는 의정부와 6조의 중앙기구를 뛰어넘는 조직으로 변하였다.
여기에는 비변사에서 도제조부터 시작해 상급의 직위를 차지하는 관료들이 의정부와 6조의 관직을 겸한다는 사실부터 그 출발이 잘못된 것이다.
만약에 비변사의 기능이 제대로 잘 작동한다면 의정부와 6조의 행정을 지원하면서 더 발전하는 것으로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조직과 부처라도 그것이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바뀌면 아무소용도 없었다.
특히 현재의 비변사는 안동김씨의 수장인 김좌근이 자신의 수족들을 부리면서 의정부와 6조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통제하는 장치로 변해버렸다.
종걸이(송내관)가 상세하게 보고한 내용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정보였다.
아침에 어전회의에 얼굴을비춘 김좌근과 그의 수족들은 이후에, 자신들이 담당하는 각부처의 업무는 뒤로한채 비변사에 모여서 온갖 작당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때문에 의정부와 6조에서 처리하고 결재해야할 문서들과 서류들을 각부의 중급관원들이 비변사로 가져가서 결제를 받기도 하였다.
조정내의 수많은 업무들이 비변사로 모아지고 거기서 결정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러니 조선후기의 역사에서 비변사가 임금을 넘어서는 최고의 권력기구라는 말까지 나온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비변사를 당장에 없애버리고 싶지만 그것은 시간을두고 천천히 해야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기회가 생겼을때 진행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전하. 이것은 다른 소문인데...”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일전에 전하께서 호조와 형조를 불시에 방문한 사건때문에 호조판서와 형조판서가 그곳에있던 하부의 관원들을 문책했다고 하더이다.”
“뭣이라고?”
순간 빡침이 올라왔다.
진짜로 비열하고 옹졸한 놈들이네.
아마도 어떤것인지 짐작된다.
이후에 호조판서와 형조판서 놈들이 그당시에있던 하급관원들을 모아놓고 온갖 잡소리를 다 했을 것이다.
임금이 호조와 형조를 방문해서 그곳의 관원들을 치하하는걸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저런 짓거리를 해?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놈들이 나의 행동에따라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런일이 있었다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