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필요한것을 가르치고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게 중요하지.
“앞으로 조선에서는 구라파(유럽)의 국가들이 사용하는 증기기관을 도입하고 널리 보급하는게 중요한 일입니다.”
“증기기관이란 것은 어떤 기물이옵니까?”
공조판서부터 실무관료까지도 증기기관을 본적이 없으니 당연하겠다.
아니면 소문으로 들은적은 없나?
그들의 표정을 봤지만 역시나...
제국주의 시대.
산업혁명의 핵심이라면 증기기관이지.
증기기관이 없었다면 영국은 지금도 바다에서 범선타고 해적질 하는게 고작이고 전세계 영토의 1/4 을 차지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간단하게 원리를 설명하자면 가마솥에 물을끓이면 어떻게 되나?”
“물이 끓습니다.”
“그것이 전부인가?”
“뜨거운 증기가 올라옵니다.”
“바로 그거네. 증기가 올라오지. 그런데 가마솥 뚜껑을 닫아놓으면 증기들은 어떻게 되나?”
“가마솥 뚜껑의 틈새를 비집고 밖으로 나옵니다.”
“바로 고압의 증기가 가마솥 뚜껑의 미세한 틈을 이용해서 빠져나오는 것이지. 만약에 그 미세한 틈까지도 막아버리면 내부의 뜨거운 증기는 어떻게 되는지 알고있나?”
“.....”
여기까지 설명하자 공조판서와 관료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이 경험으로 가마솥의 뚜껑을통해 증기가 나오는건 이미 아는데 그틈을 모조리 막는다고?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마저 들것이다.
“증기기관이란 조금전말한 뜨거운 가마솥의 증기가 뚜껑으로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모조리 막아버린뒤에 증기의 강력한 힘을 이용해서 뭔가를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네.”
“뜨거운 증기가 그런일을 할수가 있습니까?”
“당연하지. 그 힘은 말 수십마리가 끄는 힘보다 더 강하네. 아니 수백, 수천마리가 끄는 힘보다 더 강할때도 있지.”
영국에서는 수백마력 짜리의 증기기관도 개발된 상태이고.
마력의 개념을 이해시키기위해 쉽게 설명해 주었다.
“도저히 믿을수가 없습니다. 증기의 힘이란것이 그토록 강하다니.”
“강력한 증기기관은 수천, 수만근의 무쇠덩이도 들어올릴 힘을 낼수가 있다네. 이런 증기기관을 이용해서 쇠붙이로된 거대한 마차를 달리게 할수있고 무서운 철갑선도 움직이게 하지.”
“.....”
이후에 직접 보게되면 이해하게 될거다.
지금은 기초설명으로 개념만 심어두는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조선의 기술력으로 증기기관을 만들수는 없다.
이후에 철강산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기계공학과 설계, 그리고 기계공작등의 기술자들이 생기고하면 조선도 자체적으로 증기기관을 만들어 낼수가있다.
그 과정까지가 상당히 멀지만 말이다.
이들에게 당장에라도 증기기관의 구조를 간단하게 그려줄수 있지만 그림으로 그린걸 실제로 만들어 내는건 다른문제다. 증기기관처럼 대형 기계공작물의 경우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을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개념조차 이해못하고 당황했던 그들의 눈빛이 내쪽으로 고정되었다.
새로운 것에대한 호기심과 기대감.
내가 원하던 부분이다.
* * *
“행수님. 이번에는 성과가 좋습니다.”
“정말로 다행이네.”
장산국이 대답했다.
그의 표정에 미소가 스쳐갔다.
햇볕으로 그을린 얼굴에는 지난세월의 다양했던 경험들과 고난들이 스며들어 있었다.
조선내에서 각지역을 대표하는 거상들 수준은 아니였지만 장산국이 거느리는 식솔들의 숫자는 꽤 되었다.
개성의 송상, 또는 각지역의 거상들이 팔도를 대표하는 경우라면 장산국은 조선의 영토밖에서 활동하는 상인이다.
정확히는 조선의 북쪽을 다니면서 여러가지 상품들을 구입하고 중개한다.
그중에서도 장산국의 활동무대는 간도지역과 만주일대다.
간도지역은 조선 민초들에게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다.
청제국이 건국되기전 압록강과 두만강을 주변으로 삼는 동간도와 서간도는 여진족들이 활동하는 곳이였다.
하지만 간도지역을 온전히 여진족과 만주족의 영토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럴것이 여진족들 사이에서 갈등과 세력다툼이 벌어졌고 그것을피해 조선으로 건너왔던 여진족들도 많았다.
한편 그들은 조선인들과 섞이면서 조선의 민초들이 되었다.
이후에는 그들의 자손들이 간도지역으로 이주한 경우도 많았다.
간도를 포함해 만주와 연해주 일대는 한민족의 활동무대였고 넓게본다면 여진족들도 대제국 고구려와 그전에 있었던 고조선에서 한민족과 어울려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처럼 간도에 정착촌을 만든 조선인들중에는 만주에서 생활했던 후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상황이다.
그리고 식솔들을 거느리며 조선과 간도지역을 다니며 장사를하는 장산국도 자신을 조선인이면서 만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럴것이 장산국의 선조들은 오래전 간도와 만주에서 생활했던 여진부족들중에 하나였고 조선으로 건너와 정착했기 때문이다.
“조금있으면 양강촌에 도착한다. 주문받은 물건들을 한번더 점검해라.”
“알겠습니다. 행수님”
장산국의 지시를받자 상인들이 서둘렀다.
10대의 마차에는 다양한 물품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이번에 도착하는 양강촌에서 주문받은 물품들을 구하기위해 장산국의 행상인들은 평양까지 찾아가서 여러가지 물건들을 구매했던 것이다.
물론 장산국이 이런 일들을 해주는것이 공짜는 아니다.
그는 양강촌에서 필요로하는 여러가지 품들을 조선내에서 확보하고 그것을 전달해준다.
대신에 양강촌에서는 장산국에게 농산물을 포함해 양강촌의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여러가지 모피와 약초들을 그 댓가로 제공다.
이런것들은 조선내에서 인기가 좋았고 장산국은 중개상인으로 괜찮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 * *
“천천히 골라보십시요.”
“이번에도 조선에서 진귀한 물건들을 많이 가져 오셨군요.”
양강촌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이곳은 동간도를 대표하는 마을로서 주민들의 숫자도 상당했다.
때문에 그들이 필요로하는 물품들의 수량부터 종류도 다양했던 것이다.
여기서는 조선의 상평통보같은 화폐가 쓰이는건 아니다.
대신에 물물교환의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번에도 먼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아닙니다. 양강촌의 주민들과 촌장님의 덕분입니다.”
장산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강촌에서 마을단위로 필요로하는 물품들에대한 인도는 대충 끝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좌판이 벌어지고 있는것은 마을의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구매하는 상황이다.
즉 장산국의 행상인들은 대량으로 물건을 거래하는 일도 하면서 소규모의 보부상들처럼 다양한 잡화들도 취급하는 것이다.
“얼마전에 조선에서 건너온 주민들이 동간도의 북쪽에 새로운 마을과 정착촌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거기도 한번 들려보게.”
“감사합니다. 촌장님의 덕분에 저같은 행상인들이 먹고 사는 것입니다.”
“아닐세. 자네들이 큰일을 해주고 있는 것일세.”
촌장이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
양강촌을 대표하는 큰어른인 최재민은 장산국을 아들처럼 생각했다.
실제로 장산국이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르고 사업수완을 발휘하도록 큰 도움을 준것이 촌장인 최재민이다.
그때문에 장산국도 동간도에 올때마다 우선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한동안 지켜보던 장산국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것을 눈치챈 촌장 최재민이 질문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요즘들어 수상한 소문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어떤것인가?”
“요동쪽에있는 청군의 부대들이 만주일대에서 자주 출몰하고, 순찰을 강화중이라고 합니다.”
“그럴수가...”
촌장의 표정도 당황했다.
만주일대가 청의 영토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현재 청제국은 중원을 차지했고, 북경을 중심으로 모든것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그때문에 청제국의 조상들이 살고있던 만주지역은 버려진 상태였다.
이런 이유로 조선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했던 다수의 민초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서 만주로 왔다.
그리고 양강촌같은 정착촌과 마을을 이루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조선에서 건너온 민초들중에 상당수는 과거 여진족의 후예들도 많았기에 어떻게보면 과거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온것도 된다.
하지만 지금 청제국을 지배하는 여진족과 만주족은 오만했고 이후에 그들이 무슨짓을 벌일지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북쪽땅을위한 공략개시
“조선의 국력이 약해지고 혼란에 빠지니 이제는 만주족과 청군들까지 날뛰고 있구나.”
“하지만 얼마전에 한양에서 새로운 임금이 등극했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그 소식은 나도 들은바 있는데, 새임금은 어떤 분이신가?”
“이전에는 강화도에서 농사를짓던 젊은 도령이라고 하더군요.”
“허허. 그런가?”
촌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선을 이끌어갈 임금치고는 너무나도 황당한 신분과 과거였으니 말이다.
장산국도 그것을 느낀듯 같이 웃다가 말했다.
“촌장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하시는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결코 범상한 임금님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장산국이 촌장을향해 추가적인 설명을 하였다.
지금 조선의 민초들 사이에서 새임금인 철종에대한 소문들은 크게 두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정말로 강화도에서 농사만짓던 멍청한 임금이라는 것.
두번째는 한양으로 입성하면서 수많은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준것 때문에 벌써부터 기대감을 갖고있는 백성들도 많았다.
이런 장산국의 설명에대해 촌장인 최재민도 생각을 달리했다.
“자네의 말을 듣고보니 단순히 겉으로만 보이는게 진실은 아닌거 같네.”
“그렇습니다. 아무쪼록 저로서는 어르신과 양강촌이 앞으로도 잘되기를 바라는 염원입니다.”
“고맙네.”
촌장이 장산국의 손을 맞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난듯 말했다.
“그러고보니 마침 잘되었군. 안그래도 자네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십니까?”
“저멀리 한양에서 오신 분들이 우리마을에 묵고 계신데, 그분들이 이곳 만주와 요동지역의 지리에대해 잘 아는 상인들이나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시더군.”
“정말입니까? 그런데 대체 뭣때문에 한양에서 여기까지...”
장산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것이 장산국이 한양을 간것은 평생동안 단 한번이 고작이다.
그는 주로 평안도와 함경도, 그리고 간도지역과 만주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장산국과 함께 생활하는 식솔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양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고하니 만나서 손해볼것은 없다.
얼마후 장산국은 촌장의 안내를따라 이동했다.
마을중심에있는 회관같은 건물인데 처음에는 좀 움찔했다.
그럴것이 주변으로 허리에 장도를찬 무사들도 보였고, 촌장과 함께오는 장산국을 경계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봤으니 말이다.
잠시후 촌장이 앞으로나가 무관으로 보이는 인물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무관이 내부로 들어갔고 안쪽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나왔다.
중년나이로 보이는 인물인데 인상이 괜찮았다.
“자네가 이곳 간도와 만주일대에서 활동하는 장산국이란 상인인가?”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 겁니까?”
“하하, 소문으로 들었는데 역시나 경험많은 상인의 모습이 보이는군. 안그렇소?”
“제가 보기에도 같은 생각입니다.”
종사관 한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장산국을 만나서 반가워하는 인물은 철종 이원범에게 특명을받고 출발한 김정호였다.
조선팔도를 돌아다닌 경험이 풍부한 김정호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압록강 북쪽의 간도와 만주, 요동은 미지의 영역이였다.
때문에 이곳에서 활동하며 지리와 지형을 잘아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러던중 함경도에서 장산국에대한 소문을 들었고 그를 만나기위해 여기까지 온것이다.
얼마후 김정호가 장산국에게 필요한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철종에게 비밀특명을받고 만주와 요동일대에대한 군사용 지도를 제작한다는 부분은 일부러 숨겼다.
어차피 그것은 필요한 극소수의 인원들만 알고있으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대신에 장산국은 만주와 요동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지도제작에 필요한 여행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는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장사치인데 말이지요.”
“그 부분은 걱정을 하지말게. 물론 공짜로 해달리는것은 아니니까 말일세. 따라서 보수는 두둑히 줄것이네. 동시에 이것이 자네에게도 큰 기회가 되는건 분명하네.”
김정호의 그말을듣자 장산국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양에서 온 높은 분들과 함께하며 보수도 두둑히받고 그들과의 인맥도 쌓는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에있는 무사들은 솜씨도 좋아 보였다.
만주에서 혹시라도 도적떼를 만나더라도 이들과 함께라면 안전도 보장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