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69)

연줄과 인맥만 확보되면 과거시험에 급제하는건 식은죽 먹기일뿐.

얼마후 3명은 성균관을 빠져나와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김좌근의 측근이라고 알려진 사람의 집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먼저 움직인것은 아니다.

그들이 도착했을때 앞에는 여러명의 성균관 유생들이 있었다.

“어험. 자네도 왔는가?”

“그렇다면 자네들도...”

눈치를 보면서 헛기침까지 해댄다.

하지만 대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오자 그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순서대로 줄을 서시요. 대감께서도 바쁘신 몸이요.”

권력자의 집에서는 하인도 권세를 부린다.

늘어선 성균관 유생들을 하급자 다루듯이 하면서 위세까지 떨었다.

누구도 여기에대해 반항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급한것은 어떻하든지 줄을대는것.

철종이 내년에 특별시의 과거시험을 발표하자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 유생들은 이런식으로 비리를 저지르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중 누구도 내년에 자신들의 운명이 바닥으로 떨어질거란 사실은 몰랐다.

* * *

“전하. 차맛이 어떠십니까?”

“괜찮구나. 너가 끓인것이냐?”

“소인은 그런 재주가 없사옵니다. 하지만 희정당에는 전하의 편의를위해 다수의 궁녀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는 차를 담당하는 직인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어쨌든 담당직인에게 앞으로도 계속해 지금처럼 맛좋은 차를 준비하도록 지시해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종걸이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표정에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이번에 종걸이가 가져온 차는 향기가 독특했다.

21세기에 바쁘게 살아갔던 나였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들중에 대부분은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전통차를 마신다고하면 주위에서 고리타분한 눈으로 보기도 하니까.

하지만 여기는 조선.

그리고 궁궐내에서 커피를 구할곳은 어디에도 없다.

전세계는 영국을 중심으로 해양무역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커피가 대중화 될려면 시간이 걸린다.

대신 남미를 포함해 커피의 원산지인 이디오피아 등지에서는 원두가 재배되는 중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이것도 엄청난 기회다.

물론 조선이 제대로 이용할수 있을때의 상황이지만.

“전하. 무엇을 유심히 보고 계십니까?”

“이전에 예조판서와 좌부승지에게 설명해준 것들을 머리속에서 정리중이다.”

종걸이에게 대답하며 시선은 아래로 향한다.

얼마전 잠시 중학교 지리선생으로 빙의해 몇시간동안 예조판서와 좌부승지에게 여러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국왕의 강의를듣는 그들의 모습은?

일부는 이해했고 일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많은 신료들을 가르친다는것이 이렇게 힘들줄이야.

그나마 저둘은 심복이였기에 군소리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편이 아닌 세력까지 설득하고 가르칠려면 얼마나 더 진땀을 빼야할까?

아무튼 암기력도 좋은 두명이였기에 이해는 못해도 머리속에 기억은 할것이다.

일단은 그정도로 만족해야지 어쩌겠어?

조선을 벗어나면 거대한 해양이 존재하고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

그것만 이해해도 일단은 성공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시작일 뿐이지.

“영길리 녀석들의 항해지도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수 없지.”

탁자위에 넓게펼쳐진 지구전후도.

청국을 포함해 조선에 전해진 세계지도인 셈이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밀덕으로서 전쟁사에 관심이많고 전세계의 지리에대해 익숙한것이 도움이 되었다.

펼쳐진 지구전후도를 보면서 몇가지 틀린 부분을 고치면서 완성을 시켜나갔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세계지도의 모습이 그럭저럭 나온다.

이렇게보니 조선은 아시아의 끝쪽에있는 자그마한 국가다.

변방이라고 볼수있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해가지지 않은 제국의 명성을 누리는 영국도 사실은 유럽의 끝쪽에있는 변방국가일 뿐이다.

따라서 조선도 미래를 어떻게 개척하느냐에따라 영국같은 대제국이 될수있다.

또는 아시아의 변방국가로 초라한 운명을 맞게될수도 있다.

“먼저 조선이 제대로 크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하는 순간 입가에 조소가 어린다.

조선의 주변에있는 국가들은 어디겠나.

덩치큰 종이 호랑이 청국.

그리고 가만두면 이후에는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를 만들면서 미쳐 날뛰는 일본이 되겠다.

“이 두놈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조선의 미래는 불투명 해지는 것이지.”

지금 조선이 가지고있는 능력이나 세력으로는 쉽지않다.

하지만 내손에있는 조선은 흙속의 진주와도 같은 존재.

어떻게 하느냐에따라 엄청난 보물이 될수도있고 돌보다 못한 쓰레기가 될수도 있다.

“앞으로의 상황이 재밌어 지겠군.”

“전하.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갑자기 지도를 보시더니 웃고 계시다니요.”

“특별한 것은 아니다.”

종걸이를향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눈앞에서 폭군이라도 본듯이 놀라고 있네.

내가 그정도로 악마같은 웃음을 지었나?

앞으로는 표정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 * *

“이것이 관련된 자료들인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공조판서 김석민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뒤에는 몇명의 관료들이 위치했다.

각각 공조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공조정랑과 공조좌랑들이다.

당장에 의정부를 포함해 6조를 내손에쥐고 싶었지만 그것은 쉽지않았다.

대신에 세력이될 기관부터 차례로 장악해 나가는 전술을 사용했다.

예조판서와 공조판서가 내쪽의 인물인건 확실하다.

그외에 이조와 호조, 병조와 형조는 두목격인 판서들이 적대세력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역공을 당한다.

예조와 공조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판서들이 내말을 우습게아는 놈들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부서들에도 세력이될 인재들은 많았다.

실무를 담당하는 정랑/좌랑급 이하의 관료들인데 이들은 안동김씨의 입김이 거의없는 관료들이다.

그들중에 상당수는 실력을 검증받은 현장실무형 관료들이다. 단순하게 안동김씨들에게 줄을대 그자리에 오른게 아니다. 하지만 실무형 관료들은 잘해봐야 정랑/좌랑 수준에서 그친다.

그위의 참의(부차관), 참판(차관), 판서(장관)급으로의 승진은 대부분 막혀있는 상태다.

안동김씨에게 줄대고 돈을 바친 무능력한 상관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상황이다.

6조에서 예조와 공조를 제외한 나머지 4개 부서의 경우에는 이런 부패가 만연했다.

그리고 현장과 실무를통해 실력을쌓은 관료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상태다.

“편하게 있도록 하게. 여기는 조회를하는 장소도 아니니까.”

그들에게 대답하며 내관에게 지시했다.

내관들이 차와 다과를 내왔다.

공조판서와 실무 담당자들이 건넨 자료들을 느긋하게 살폈다.

커피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전통차에 익숙해질 수밖에.

궁궐에서 임금에게 바치는 전통차들도 종류가 다양했기에 골라먹는 재미도 있었다.

‘예상한대로 조선의 산업역량 수준은 처참할 정도구나.’

조선은 건국때부터 농본주의를 하였다.

어차피 건국될 당시에는 먹고사는 문제는 농업이 주를 이루었으니 당연하겠다.

그럼에도 조선 전반기에는 상업과 산업을 완전히 무시한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산업을 발전시킬려는 노력도 있었다.

산업과 기술의 발전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세종때에는 조선이 보유한 기술적인 잠재성이 폭발한 시기다. 그당시 조선은 기술선도국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이다.

다양한 기계장치를 만들어 내었고 광산개발도 실시했다.

세계 최초로 은광에서 대량의 순도높은 은을 제련하는 연은분리법까지 개발했을 수준이다.

그런데 웃긴건 조선이 개발한 연은분리법은 제대로 사용조차 못한 상태에서 나중에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일본에서 은광을 개발하고 대량의 은을 추출하는데 사용되었다.

일본은 이렇게 채취한 은을 바탕으로 서양과의 교역에 사용했고 산업을 성장시킨 것이다.

재주는 곰(조선)이 뭐빠지게 부린뒤에 돈은 일본이 챙긴것.

이런 기술발전도 조선전기에만 반짝했을뿐.

이후 조선의 산업역량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 증거가 공조에서 가져온 자료들이다.

황금을 캐보자 !!!

“공조에서 파악하고 관리하는 광산들도 몇개정도는 있구나.”

“하오나 현재는 본격적인 채굴을 하는것은 아니옵니다. 대부분이 폐쇄되었거나 작업이 중단된 상황입니다.”

김석민의 뒤에있던 두명이 대답했다.

공조판서도 잘알고 있었지만 실무에서 이 자료들을 직접 담당한 관료들이 익숙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공조판서만이 아니라 자료작성에 참가한 실무형 관료들도 같이 부른것이다.

조선의 광산개발은 조선전기에 활발하게 하다가 빠르게 쇠퇴하였다.

그것에는 명나라, 이후에는 청나라의 존재때문이다.

조선이 중국을 상대로 조공외교를 펼치면서 2개주고 4개를 받아왔니 마니 하는데 그건 하나만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조공외교로 명에게 하사품 2배로 받아오면 뭘하나?

그뒤에는 조선의 소녀들을 공녀로 수백명 바쳤는데.

그것만으로 끝난것일까?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조선을통해 뜯어간 금과 은의 수량만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금광과 은광에 대해서는 채굴량보다 더많은 금과은을 원하였다.

그래서 조선이 선택한것이 배째라는 형식으로 은광을 폐쇄하거나 채굴자체를 안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명과 청에서는 조선에 사신을 보낼때마다 먼저 요구하는게 금과 은이다.

조공외교로 중국한테 하사품 2배받고 대신에 조선인들을 노예로 바쳐.

병사들을 고기방패로 바쳐.

그리고 조선의 소녀들을 공녀로 바치는 짓거리를 해온게 조선이였다.

조공외교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가려져있는 수탈의 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광산개발을 포기해 버린건 어쩌면 당연했다.

광산에서 뭐빠지게 금과은을 캐면 뭐해?

중국놈들이 모두 털어가는데.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조선의 광산에서 나온것은 조선의 것이다.

그외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들도 조선의 것이 될테니까 말이다.

광산의 자료를 살펴보던중.

“여기에보니 운산광산은 포함이 안되어 있구나.”

“운산광산에는 이전부터 공조의 관원들 사이에 그 이름이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탐사를 해본결과, 특별히 금맥이나 광맥이 발견된 상황은 아니였습니다.”

운산광산에대한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도한것은 훨씬 이후의 상황이다.

그런데 멍청한 후대의 조선왕이 그걸 외국인에게 팔아버렸지.

어차피 고종이나 관련부서에도 운산광산에 얼마나 많은 금맥이 있는줄은 몰랐으니까.

나중에 광산개발권을산 외국인이 채굴해보니 로또 당첨 수준이였지.

“운산광산에대한 탐사를 더 진행해라. 필요한 인원들을 몇배로 늘이고 주변을 샅샅이 조사해라. 필시 저기에는 대단한 금맥이 있을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내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다.

하지만 운산광산을 지정해서 명령을 내렸으니 일단 본격적인 탐사를 할것이다.

그러다보면 일부의 금맥이라도 발견할 것이고 그뒤에는 내말이 맞다는걸 느끼고 개발에 들어갈 것이니까.

지금은 제국주의 시대.

이 시대에 국가간에 통용되는 화폐는 간단했다.

바로 금과 은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