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169)

눈치를 보고있던 종걸이에게 손짓했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가볼데가 있는데 말이야. 네가 준비좀 해줘야겠군.”

“하명하십시요. 소인이 발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종걸이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다.

종걸이가 주변에 대기하고 있으니까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처리하는데 편했다.

그런데 지시를듣자 송내관(종걸이)이 난색을 표시한다.

“전하께서 그런곳까지 가실 필요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할일없이 있는것보다는 더 좋지.”

“할일이 없는것이 아니라 그건 전하께서... 아닙니다.”

째려보자 송내관이 고개를 숙인다.

* * *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한가? 송내관 자네에게 준비하라고 했지만 너무 많은거아냐?”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종걸이가 반박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내앞에 도열해있는 호위청 소속의 무장들.

숫자만도 족히 100명은 넘어보인다.

군대 사열식을 하는것도 아니고.

차라리 몰래 단독으로 나갈걸 그랬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불가능이다.

군기시가 있는곳은 창덕궁의 외부이고 도성내의 장소다.

그 장소에 대해서는 알고있지만 가는길도 정확하게 모르는데 혼자 다니다가는 어디서 어떻게될지 모르지.

애초부터 국왕이 단독으로 창덕궁밖을 나가는것조차 힘들다.

잠행의 경우 몰래나가는 경우에도 주변에는 호위무사, 그리고 내관들이 몇명은 따라붙는다.

그때에는 왕의복장이 아니라 민초의 복장이라해도 완전히 혼자서 움직이는건 불가능이다.

“어쩔수없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포기하자 종걸이가 안도하며 대답했다.

창덕궁 내부에서야 몇명 호위무사들만 대동하며 다닐수는 있지만 오늘은 창덕궁을 벗어나서 가는 것이니까.

“그렇다해도 최대한 조용하게 움직이자구. 기껏해야 군기시를 방문하는 것인데 너무 거창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전하! 역대 국왕들중에 군기시를 직접 방문하는 사례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

종걸이의 말에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지?

군기시는 국방에 있어서 중요한 부서다.

병조에 속해있고 병조에서 관리를 담당한다.

조선왕들에 대해서는 무력이나 국방보다는 덕치와 왕도정치를 강조했다.

왕이 국방분야에 신경을쓸 기회가 없었다.

대부분 경우에는 병조판서에게 지시를 내리는게 전부지.

다만 병조판서가 있기는 하지만 이놈은 김좌근의 수족이고 믿을상대가 아니다.

때문에 직접 나서는게 최선이지.

이번에 군기시를 찾아가는건 다른 목적도 있었다.

그곳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여러가지를 검토하기위한 것이다.

“언제쯤 갈수있겠나?”

“준비는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가능합니다. 전하.”

호위청 소속의 무관이 대답했다.

송내관은 가마를 준비해둔 상태다.

이전에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올때처럼 말을타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군기시에 가는것을 광고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얼마후 가마에 올라타자 일행들이 출발을 시작했다.

* * *

“전하께서 누추한 곳까지 왕림해 주시다니! 소인들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잠시 군기시가 어떤곳인지 알고싶어서 방문한 것이니 부담갖지 말게나.”

대답을 듣고도 엎드린 두명의 신료들은 고개를 숙였다.

군기시를 방문하겠다고 말한뒤 종걸이는 곧바로 파발을 보낸것이다.

깜짝 방문을 하고 싶었지만 애초부터 그것은 불가능 한것. 그리고 파발을 보내지 않았어도 동행해온 예조판서 장우영이 그렇게 했을것이다.

100명에 이르는 호위청 무사들과함께 군기시로 가는 상황이였기에 불시방문이란건 힘들지.

엎드린 두명의 신료들-

우측은 50대를 넘은 나이든 신료이고 좌측은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전하. 군기시 제조인 이광덕과 그 아래에서 실무관리를 담당하는 윤민수입니다.”

예조판서 장우영이 두명에대해 설명했다.

50대의 관료가 군기시의 책임을 담당했고 옆에있는 30대 중반의 인물이 실무자인 것이다.

두명을 바라보았다.

공무원이나 관료조직은 옛날이나 21세기나 비슷하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군기시 제조인 이광덕이 나이많고 무사안일 주의의 관료이지만 김좌근 세력은 아니라는것.

김좌근도 군기시같이 하급기관까지 자신의 수족들을 심을정도는 아니니까 말이다.

이미 병조판서가 김좌근의 수족이라서 그닥 신경쓰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일단 다행이라고 봐야하나.

“경들은 고개를 들라.”

두명을 확인하면서 몇가지를 질문했다.

그리고 군기시 제조의 답변은 예상한대로 판에박힌 상태다.

그러나.

“전하께서 군기시까지 방문해 주셔서 소인은 정말로 망극하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금일 여기로 오신것이 단순한 방문인지 아니면 소신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것인지에대해 궁금할 따름입니다.”

“무엄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듣고있던 장우영이 발끈했다.

당상관도 아닌 기껏 당하관에 속하는 중급 관리따위가 국왕을향해 도발적인 질문을 해댔으니 말이다.

손을들어 예판을 저지한뒤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거지.

조선에 여러가지를 가르쳐주고 변화를 시킬려고해도 따라주는 관료나 세력들이 없다면 도루묵이다.

생기없는 관료들에게는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지.

그러나 나를향해 질문을한 윤민수처럼 의욕넘치는 관료들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말을 들어보니 군기시에서 어려움이 많은거 같군. 좋아! 기왕에 왔으니 어떤것들이 불만이고 어떤것들이 개선되었으니 좋겠는지 말해보게.”

“......”

나의대답에 윤민수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저렇게 말하고서 자신도 불호령이 떨어질걸 예상하고 있었던듯 보였다.

그러면 의욕넘치는 관료의 사기를 꺽는것이지.

그렇다고 날뛰도록 해줄수도 없는거지만 적당히 조절하면 문제없다.

밀덕의 치트키, 신병기 개발(02)

‘오호, 이거봐라...’

일말의 감탄이 흘러나왔다.

일단 해봐라고 멍석을 깔아주니까 줄줄이 나오네.

그중에서는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아닌것도 있기는 했다. 상당부분은 군기시가 처해있는 문제들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었다.

군기시라는건 병조의 하부조직중에 하나다.

조선군과 조선의 국방에 필요한 무기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부서다.

현대의 한국으로 치면 ADD(국방과학 연구소)같은 개념이랄까?

때문에 군기시에서 개발해낸 병기들은 조선군을 무장시키는데 있어서 핵심이다.

하지만 조선은 임진왜란, 그리고 병자호란이란 큰 재앙을 경험하고도 국방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당장에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의 조총을 연구하고 새로운 무기들도 개발하고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난뒤에는 본래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병자호란은 또 어떤가?

적에대한 능력과 분석조차 게을리 하다가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절을하고 신하가되는 치욕을 겪었다.

그뒤에는 북벌론이 대두되면서 청에게 복수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말만 무성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왜냐고?

말로는 청의 수도인 베이징을 불태울 수준이지만 실제 조선군의 전력이나 무기는 허약했고 압록강도 제대로 건너지 못할 상황이였으니 말이다.

이후에는 청을 명을 대신하는 주인으로 섬기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조판서도 노답인 무능력자였으니 군기시에 제대로된 지원이나 정책이 시행될리 없었다.

직접 찾아오길 백번 잘했다.

이후에 군기시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를 발견하게된 행운도 얻었다.

당상관 이하의 하급이지만 군기시가 처해있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는 윤민수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경의 고변을 잘 들었다. 그 부분을 문서로 작정해서 과인에게 제공할수 있겠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윤민수가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했다.

처음에는 노려보던 예조판서 장우영도 표정이 바뀌었다.

그도 윤민수가 말했던 문제점들에대해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군기시를 어느정도 확장하고 어떤 프로젝트들을 맡기고 변화시킬지 저들도 모를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국방에서 군기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될것은 분명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병조판서를 쳐내고 새로운 인물로 병조를 개혁하고 싶지만 쉽지는 않았다.

차라리 병조의 상부를 그냥두고 하부조직과 기관들을 통제하는것도 한가지 방법이니까 말이다.

“군기시에서는 대량의 화약을 제작중이라고 하던데. 그곳을 안내해 줄수있나?”

“전하. 그곳은 상당히 위험한 곳입니다. 잘못해서 큰일이라도 생기면 전하에 옥체에...”

윤민수도 안절부절 못했다.

조금전까지 외치던 기개는 어디로 간거야?

이해는 한다.

화약을 제작하는 장소에는 여러가지 위험물질들이 가득하다.

누군가가 암살할려고 한다면 최적의 장소중에 하나이지.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수는 없지.

그리고 군기시에온 큰 이유중에 하나가 조선군에게 보급할 새로운 화약과 총포제작을 지시하기 위한것이다.

“과인은 강화도에서 지내면서도 수많은 위험들을 넘기고 지금까지 무사했네. 그러니 걱정말게.”

머뭇하던 윤민수도 결심을했다.

“소신이 직접 안내를 하겠습니다.”

“기대가 되는군.”

준비를마친 그가 안내하였다.

예판 장우영, 호위청 무사들의 일부가 이동을 시작했다.

* * *

예상대로 먼지가 날리고 구질구질한 장소다.

앞에 엎드린 10명의 중년인들.

이들이 화승총을 제작하고 정비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지?

방문한 곳은 군기시에있는 작업장이다.

군기시는 기본적으로 조선군에대해 필요한 무기와 장비들을 제작하고 공급하는 역활을 담당했다.

또한 군기시에서 생산된 무기와 장비들은 창덕궁의 방어를 담당하는 호위청에도 보급된다.

호위청은 금군과함께 국왕에대한 근접경비를 담당하는 부대다.

근접경비의 역활이다보니 장도로 무장한 군관들이 많다.

그러나 화승총도 호위부대의 무기중에 속한다.

근접경호의 경우에는 화승총을 장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덕궁의 외문과 내문.

그리고 성곽등에는 화승총으로 무장한 호위청과 금군의 병사들이 있었다.

“그대들중에 화약을 만들어본 경험은 있는가?”

“있습니다. 전하!”

8명의 인원들이 대답하였다.

작업장에 배속된 10명의 중인들 나이는 제각각이다.

50대를 훌쩍넘은 베테랑 장인부터 기술을 배우는 20대 초반의 청년들까지 다양하다.

조선에는 구형의 화승총이 대부분이지만 자체적으로 보유한 화약의 양은 상당할 정도다.

미친듯한 마개조를통해 강선이있는 화승총까지 만들어냈을 정도다.

강선이있는 화승총 탄생까지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지만 그래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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