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정신승리의 과정일뿐 실효성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청제국은 발톱빠진 호랑이 신세처럼 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조선의 실력을 몇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존재가 있으니까 말이다.
“전하께서는 청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말하길 대국이고, 상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공조판서를향해 대답하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말한 청이 대국이고 상국이라고 하는것이 진심이 아니란 것쯤은 이해하고 있었다.
잠시후 표정을 바꾸고 대답했다.
“아직은 청이 조선에비해 대국이고 상국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거 같습니까?”
“......”
세명이 더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단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뿐.
* * *
짙은 구름이 드리워진 영국의 수도 런던.
영국은 산업혁명의 출발지이다.
제임스와트의 증기기관을통해 국토의 곳곳에서 석탄을캐며 증기기관을 움직였다.
그것은 수도인 런던도 예외가 아니였다.
그 때문에 런던에있는 수많은 공장들에서는 석탄을 때면서 피어오른 굴뚝연기들이 가득했다.
그로인해 런던의 하늘은 언제나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영국의 날씨자체가 프랑스처럼 파란하늘이 펼쳐진건 아니다.
1년중에 흐린날이 더 많았고 수시로 비가내렸다.
런던의 안개는 유명했다.
아침부터 뿌옇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러자 우산을 들고다니던 런던의 젠틀맨들은 여유롭게 우산을 펼치며 동행하던 귀부인에게 그것을 씌워준다.
런던의 거리 곳곳에깔린 도로위로 마차들이 나아갔다.
마부석의 중년사내는 불시에내린 빗방울에 인상을 찡그리며 마차를 몰았다.
다각! 다각!
고급스런 마차가 도착한 곳은 드넓은 저택이다.
런던 사교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없는 유명한 곳이다.
시필드가문-
다만 그 위세는 얼마전부터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유럽 금융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런던.
시티오브 런던의 발판을 마련한 가문이 시필드였다.
하지만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빼낸다고 시필드 가문이 고생해서 만든 런던 금융가는 로스차일드에게 먹히고 말았다.
시필드 가문이 버티고 있지만 런던 금융인들은 시필드 가문이 몰락하는건 시간문제라는 말도하였다.
로스차일드가 런던금융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필드 가문을 바닥으로 끌어내려야 했으니 말이다.
“괘씸한 로스차일드 놈들! 계속해 우리 가문의 사업을 방해하다니.”
시필드 도넌이 고함을 내질렀다.
윗층에서 흘러나오는 분노에 시필드 제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결방법이 나오는것도 아니다.
로스차일드의 막대한 재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그에반해 시필드 가문은 얼마전에도 큰 손해를 보았다.
제이든은 하녀가 건네준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아냈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의 열정적인 날씨에 비하면 런던날씨는 언제나 우울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시필드 제이든은 런던으로 돌아온지 몇달밖에 안되었는데도 몇년동안 생활했던 모로코의 날씨가 그리워졌다.
하지만 가문이 위기를 맞고있는 상황에서 태평하게 모로코에서 휴가나 즐길수는 없었다.
몇년동안의 휴가라고 하지만 시필드 제이든은 그곳에서 여러가지를 체험하고 배웠다.
영국밖에는 더많은 세계가 있었다.
지금 세계의 중심이자 패권국은 영국이다.
산업혁명을 먼저 시작했고 그때문에 런던의 하늘이 뿌옇게 변하고 길거리에 매캐한 석탄의 냄새가 난다.
하지만 그것은 공업화의 증거였다.
세계에 수많은 식민지를 갖고있는 강대국의 표시이다.
영국해군이 전세계를 누비면서 식민지를 만들고 싸우는 동안 수도인 런던에서는 금융과 상업의 패권을위해 다툼이 있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로스차일드가의 승리가 확정적이다.
로스차일드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자신이속한 시필드 가문은 역사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시티오브 런던의 기반을닦은 유서깊은 가문이 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 놈들에게 먹혀버리는 것이다.
“제길....”
그것을 생각하자 시필드 제이든도 울컥하는 기분이다.
그가 차남이기에 시필드 가문을 승계하는 입장은 아니였다. 그때문에 자유롭게 몇년동안 생활했지만 현실의 위기를 마주해야할 때가 온것이다.
“언제 온거냐?”
서재에서 그의 형인 시필드 매칸티가 나오며 말했다.
그것에 제이든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시선을 위쪽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로스차일드에게 한방 당하신 것인가?”
“금융만이 아니라 우리 가문이 경영하는 다른 사업체에도 녀석들이 압박을 가해오는 상황이니까.”
매칸티가 자리에 앉으며 찻잔을 들었다.
그윽한 홍차향이 자극하자 제이든도 시종에게 주문을 하였다.
“그러고보니 너와같이 차를 마시던것도 오랜만 이구나.”
“예전에는 아버지와함께 마시곤 했었지.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제이든이 찻잔을 홀짝이며 대답했다.
아직도 시필드 가문의 재정상태, 그리고 사업체의 경영등이 자신과 맞지않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그런것은 아버지와 형인 매칸티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밀덕의 치트키, 신병기 개발(01)
“앞으로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
“당장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매칸티가 말끝을 흐렸다.
시필드 가문도 역사가 있기에 쉽게 당하지는 않을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제이든은 그것을 생각했고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런던에서 로스차일드는 기반을잡은 상태고 강했다.
금융이고 다른 사업체고 로스차일드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나왔다.
때문에 제이든이 생각한건 발상의 전환이다.
로스차일드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준비를하고 반격의 기회를 노린다는 것.
제이든이 찻잔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생각해보니 당장은 런던에서 내가 할수있는건 별로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매칸티가 당황하며 질문했다.
제이든은 예상한듯이 웃음을띠며 말했다.
“얼마전까지 모로코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지중해에서 떠돌아 다니던 신세였는데. 런던에 왔다고 갑자기 뭘 해낼수 있는것도 아냐. 하지만 다른곳으로 가서 기회를 찾는건 가능하지. 어쩌면 그게 나의 주특기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너란 놈은...”
형인 매칸티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동생인 제이든의 돌발행동을 한두번 봐온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때마다 아버지인 시필드 도넌은 대노했지만 결국은 한발 물러섰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볼려는 것이냐?”
“지금 우리들이 마시는 홍차를 생산하는 곳.”
“중국인가? 몇년전 대영제국의 해군과 육전대가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는 했지. 대영제국이 승리를 했지만 겨우 몇개의 항구를 개항하는데 그쳤다고 하더군.”
매칸티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과감하게 밀어부쳐도 될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국이 전쟁을 이겨놓고 중국의 기분을 맞춰주기위해 적당히 봐줬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말이다.
“중국은 인도와 다르니까. 그때문에 의회와 정부에서도 과감하게 나아가질 못한것이지. 그런데 요즘 들어오는 정보나 소문들을 볼때에는 대영제국이 이대로가면 중국에서 본전도 못건질거란 소리도 있어.”
“그말은 또한번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뜻이야?”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제이든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영국이 중국을 상대로 또다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높았다.
제이든이 볼때에 그것은 기회였다.
전쟁이 언제 벌어질지 시기를 특정할수는 없지만 먼저 움직이는게 이득이다.
로스차일드도 나폴레옹 전쟁에서 엄청난 이득을 챙기지 않았던가?
제이든은 시필드 가문도 그런 기회를 잡을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동방은 위험한 곳이야. 네가 지금까지 편하게 지내왔던 곳이랑은 달라.”
“내 한몸 정도는 지킬수 있어. 그리고 정말로 위험하면 시필드 가문의 이름을대고 영국 함선이라도 얻어타고 도망쳐오면 되겠지.”
제이든이 가볍게 대답했다.
다만 매칸티는 제이든이 그런것으로 뭔가를 포기하고 당장에 도망쳐 올것이란 생각은 들지않았다.
지금까지 동생이 어떤 고집과 성격인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당연히 형이 아버지를 설득해줘야 한다는 것이지.”
“못말리는 놈이네.”
매칸티가 고개를 내저었다.
제이든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장담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이든 말대로 그가 런던에 있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건 아니다.
동생의 특기가 기회의 개척이라면 맡겨보는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대충 짐작되지만 말이다.
그날 저녁 제이든이 자신의 계획을 말하였고 시필드 도넌은 집안이 떠나갈듯이 분노했다.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형인 매칸티의 설득.
그리고 제이든이 지금까지 몇차례 벌여왔던 돌발행동들의 영향때문인지 결국은 한발 물러선 것이다.
동방으로 가는것이 결정되자 제이든은 자료와 정보수집을 하였다.
하지만 원하는 정보들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인도에대한 정보들은 그런대로 많았다.
그러나 몇년전에 영국과 전쟁하였던 중국에대한 자료는 정말로 부족했다.
‘이거야말로 현지에가서 부딪치는 수밖에 없구나.’
제이든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에도 제이든이 아시아로 출발할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 *
개혁을 할려해도 힘이없으면 소용없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칼이 펜보다 월등하게 강하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오고있다.
칼한자루가 미쳐버리면 펜이 100개 있어도 소용없는 것이다.
조선의 25대 국왕인 철종이고 임금이라해도 어차피 혼자다.
조선국왕의 힘을 뒷받침 하는건 무엇일까?
첫번째로 국왕이라는 지위와 명분.
두번째로 조선의 민초들이 국왕을 인정하는 민심.
세번째로 국왕을 따르는 신하들의 세력.
네번째로 유사시 국왕을 지킬수있는 무력집단과 군사력. 무력집단과 군사력이 마지막에 위치하지만 중요한 부분중에 하나다.
‘친위세력의 형성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중요한것은 친위부대를 확실하게 만드는 작업이지.’
조선국왕의 친위부대라면 존재하고 있다.
중앙군에 속하는 오군영과 금군, 호위청이 그것이다.
오군영에는 훈련도감부터 시작해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이 존재한다.
오군영의 경우에는 수도인 한양을 방어하는 목적이 더 크다. 친위부대라고 할수있지만 중앙군의 성격이 강하다.
그에반해 금군과 호위청은 궁궐에대한 경비를 포함해 국왕에대한 직접경호를 담당한다.
때문에 창덕궁 곳곳에 배치된 군관과 병사들도 대부분은 금군과 호위청에 속하는 것이다.
금군과 호위청의 인원들을 합쳐봐야 2000명 수준.
그중에서 최일선 경호를 담당하고 정예병에 속하는 인원들은 500명 정도다.
500명의 군대가 큰힘과 전투력을 발휘할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아편전쟁에서 청의 팔기군을 박살낸 영국군 부대의 숫자는 기껏해야 2~3000명 수준.
신식소총으로 무장한 그들의 전투력은 몇배나 많은 청의 팔기군을 쓸어버린 것이다.
전투는 병력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무기의 성능이 승패를 좌우한다.
“500명부터 시작해볼까?”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