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힘이있으면 상대를 박살낼 것인지, 먹을것인지, 그냥 둘 것인지를 얼마든지 결정할수 있다.
그것이 힘있는 국가와 힘없는 국가의 차이다.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쨌든 힘없는 국가는 선택권이 없다.
나는 그것이 죽도록 싫고 견딜수가 없다.
힘없는 국가의 왕으로 살다가 죽는것.
조선시대의 임금으로 환생한 보람도없고 가치도 없는것이다.
“어차피 말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
탁자위에있는 지도를 펼쳤다.
이것은 조선을 포함해 동아시아의 모습이 그려진 지도다.
그렇다해도 그다지 정확한건 아니다.
조선영토의 크기도 실제보다 더 크게 그려져있다.
조선판 국뽕인가.
하지만 이것을통해 이후의 진행될 조선의 대외정책과 대전략을 구상하는데는 도움이된다.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
청제국의 수도인 북경이다.
그곳에서 조금 우측으로 이동하면 요동이 나온다.
더가면 남만주와 북만주, 그리고 블라디보스톡까지 연결되는 연해주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압록강이 조선과 청의 국경을 표시하듯이 길게 늘어서있다.
“역시 좀더 정교하고 제대로된 지도가 필요하다. 조선이 아니라 저곳에대한 연구로서 말이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과거 고구려때, 그리고 발해시절만해도 요동과 만주는 선조들에게 익숙한 장소였고 삶의 터전이였다.
하지만 이후부터 한민족은 압록강 남쪽의 반도에 갇혀서 살아가는 신세가 된것이다.
그때문일까?
예조와 공조에있는 관원들을시켜, 요동과 만주, 그리고 연해주에대한 지역자료와 지리서들을 탐문했지만 제대로 발견할수 없었다.
어느새 조선에게 있어서 요동과 만주, 연해주는 미지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대로된 지리정보가 없으니 저곳에서 뭔가를 할려해도 쉽지가 않다.
“역시 미리부터 준비를 해놓는게 좋겠군.”
어차피 청제국과의 전쟁이나 전투는 피할수없는 상황이다.
물론 내가 중국, 그리고 청나라에게 바짝 엎드리고 비굴하게 살아간다면 한동안은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것은 성격에 맞지않았다.
오히려 내쪽에서 준비만 된다면 일부러 시비를 걸어서라도 한판 붙고싶은 기분인데 말이지.
나도 모르게 폭군과 정복군주의 근성이 나오네.
역시 성군이 되기에는 글렀다.
하긴 애초부터 나의 본성자체가 착한 놈이 아닌데.
“준비라....”
잠시동안 몇차례나 중얼거렸다.
이후에 진행될 군사작전, 그리고 다양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지형지물에대한 정보와 지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한동안 고민하던 차에 머리속으로 뭔가, 아니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조선에서는 드물게 제법 정교하고 뛰어난 지도를 만든 위인이 있었지.
그것도 조선후기에 말이다.
다만 그가 역사에서 빛을 제대로 발휘하는건 좀더 시간이 지난뒤의 일이지만 어차피 상관없지.
이미 그가 지닌 능력은 충분하니까.
그렇다면 그 재능과 실력을 미리 당겨서 쓰는것도 필요한 법.
이렇게 생각하자 머리속이 맑아지며 바로 정리가 되었다.
* * *
“지시하신대로 가져왔습니다.”
“저기에 올려놓게.”
“알겠습니다.”
김정호의 말에 말단관원이 대답했다.
탁자위에 6권의 두터운 책자들이 놓였고 김정호는 그것을 하나둘씩 살펴보았다.
밤이 늦었지만 김정호와 그를 보좌하는 말단관원은 퇴궐도 못한채 밤을 새우고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에 말단관원은 불평할수도 있었지만 그런 표식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상관이 양반도 아니고 기껏해야 중인에 불과한 신분이지만 김정호에게는 사대부를 능가하는 기품과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호도 그다지 높은 관직은 아니다.
지도제작은 주로 공조에서 했다.
그리고 공조에있는 여러부서들 중에서도 그다지 주목받는건 아니였다.
공조의 업무나 행정들이 대부분 양반이나 사대부들이 천시하는 잡학이다.
그중에서도 지도제작이나 관리는 성리학같은 고귀한 학문에 비한다면 잡것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한동안 자료를 살펴보던 김정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리. 뭣때문에 그러십니까?”
“얼마전 중국에서 들여온 지리서를 보았네. 이전에는 조선팔도가 크고 넓다고 생각했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만국의 지리서를보니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가늠조차 되지않을 정도네.”
김정호가 느낀 상실감과 한계였다.
이미 김정호는 순조때 공조에서 지도제작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동여도지>와 <청구도>라는 뛰어난 지도와 업적을 해내었다.
또한 동여도지와 청구도는 이후에 김정호가 필생의 역자라고 할수있는 대동여지도의 기본이되는 자료였다.
이처럼 역사에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라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여러 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실제로 동여도지와 청구도는 대동여지도 만큼은 아니라해도, 조선의 영토와 지리를 상당부분 상세하게 표시한 지도다.
하지만 김정호는 조선의 외부에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걸 알게되었고 그것이 김정호의 탐구심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앞으로 조선이 발전할려면 단순히 조선에대한 지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선을 벗어나서 북으로는 요동과 남만주, 북만주, 그리고 연해주까지의 지리를 알아야한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왜국의 지형을 살펴야하고 바닷길도 중요하지. 듣기로는 왜국의 남쪽으로도 수많은 국가들이 있다고 하던데.’
김정호의 내부에서는 점점 호기심과 탐구욕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기껏해야 공조에서도 평범한 관료인 자신이 외국의 지리서를 제대로 확보하기도 힘들었다.
더욱이 외국의 지형을 직접나가서 살펴보는건 더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청이나 왜국에 사신단의 일원으로 간 사람들을통해 이런저런 자료들을 간접적으로 얻는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기본적으로 사신단에 포함되는 사람들중에 김정호처럼 지리와 형세에 밝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김정호와 말단관원은 얼마안되는 자료들을 검토하며 밤을새웠다.
새벽닭이 울때에 김정호는 피곤한 기색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그리고 잠시 짬을내어 눈을 붙일려고 할때 김정호가 일하는 곳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시필드 가문과 로스차일드
“전하. 공조판서가 도착했습니다.”
“그런가? 들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종걸이(송내관)를향해 대답했다.
송내관이 나가는 모습을보며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마주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이다.
역사적인 인물을 만난다는것.
조선시대로 떨어지고 철종의 육체에 환생을 했기에,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인물이다.
나의 경우에는 평범한 조선민초의 육체에 환생한것도 아니고, 최고의 지위를가진 임금이다.
때문에 임금의 입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역사적 인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내가 이를갈고 싫어하는 이조판서인 김좌근 조차도 역사적 인물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것이 아니라 세도정치의 끝판왕, 그리고 조선 최악의 탐관오리라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그에반해 조금후에 만나게될 김정호-
개인적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지리학자다.
그가 만든 대동여지도나 업적은 조선초기에 과학혁명을 이루어내었던 장영실 만큼이나 크다고 볼수있다.
세종대왕의 후원을받아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낸 장영실.
그를통해 조선초기의 과학기술이 당대에도 상당한 수준이였음을 나타냈다.
그리고 김정호의 경우에는 대동여지도를통해 조선후기의 지도제작이나 지리관련 기술이 정상급에 있었다는걸 증명하는 것이다.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의 정확도는 21세기의 기술로 제작된 한국지도와 비교해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만큼 정교했다.
이것이 김정호의 능력에의해 이루어진 업적인 것이다.
조금후면 그 대단한 인물이 내앞에 나타날 예정이다.
얼마후 문이열리며 공조판서가 들어왔다.
그뒤로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20대 후반의 인물.
맨뒤에는 얼굴을 알고있는 훈련도감의 종사관 한민규이다.
한민규는 강화도에서 지내던 나를 한양으로 데려갈때에 참가했던 군관이다.
그를통해 승마기술을 배웠고 여러가지 이야기도 나누었다.
오랜만에 그를 다시보니 반갑다.
공조판서의 뒤를따라 들어온 김정호.
나의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었다.
* * *
“전하. 그것이 정말이시옵니까?”
“과인이 한입으로 두말을하고 허튼소리를 하는거 같습니까?”
“하오나...”
공조판서가 머뭇거렸다.
같이온 김정호와 종사관 한민규도 놀라는 모습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조금전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꽤나 당혹스러운 것이니까 말이다.
그때문에 예상을했고 이런 반응도 염두에둔 상태였다.
공조판서와 종사관 한민규가 당황한 상태인것에반해 김정호의 표정에는 열정과 도전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본것같다.
앞으로 진행될 요동과 만주, 그리고 연해주를 포함한 동북지역에대한 전략.
그것을 위해서는 해당지역에대한 지형 및 지리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확히는 군사용 지도의 필요성이다.
나에게는 이후에 진행될 작전과 전략을위해 군사용 지도를 얻을 두가지의 방법을 생각해두고 있었다.
첫번째는 김정호처럼 뛰어난 지리학자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지리정보와 지형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해서 군사용 지도를 만드는것.
두번째가 청제국이 갖고있는 지리정보를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청제국이 그것을 조선에게 줄리는 없다.
때문에 다양한 첩보작전을통해 비밀리에 입수하고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다른 문제도 있었다.
실제로 청제국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용 지도가 정확한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밀도나 세밀함에 있어서는 김정호가 완성해낸 대동여지도에 비해서도 한참이나 떨어질 정도다.
때문에 첩보활동을통해 청제국에서 비밀리에 입수하는 지도들도 결국은 김정호같이 뛰어난 지리학자의 손을거쳐 나머지 부분을 보충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호가 갖고있는 지리학자와 지도제작자의 능력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라면 미리부터 하는것이 중요했다.
이것을 위해서 공조판서의 협조도 필수이다.
내가 김정호만 따로 부른게 아니라 이들 3명을 한꺼번에 만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그렇다면 훈련도감 종사관인 한민규를 여기에 부른 이유는?
“종사관 한민규.”
“말씀하십시요. 전하.”
“그대에게는 김정호의 지도 제작반에대한 안전을 책임지고 여러가지 편의를 제공하는 역활을 맡기고싶은 것이요.”
“소신 한민규. 목숨을걸고 어명을 완수하겠나이다.”
한민규가 엎드렸다.
처음에 당황했던 그들도 설명을통해 어느정도 이해하였다.
실제로 종사관 한민규와는 한양까지 오면서 몇번정도 대화를 하였다.
그가 무인으로서 그리고 조선의 부국강병에대한 열망이 크다는걸 파악했다.
따라서 한민규라면 그역활을 수행하는데 지장이 없을것이다.
한민규에 대해서는 이후에 따로 중책을 맡길 계획이있다. 현재로서는 김정호의 지도제작반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활을 맡기는게 중요했다.
동시에 한민규에게 경험을 쌓게하는 목적도 있었다.
앞으로 조선군은 대륙을 목표로 활동하게 될것이다.
그때를위해 미리부터 요동과 만주, 그리고 연해주를 직접 다녀오고 활동한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얼마후 김정호와 한민규에게 몇가지 세부적인 부분들을 알려주었다.
두사람의 시선이 내쪽으로 집중되면서 열정에 불타올랐다.
바로 이런 모습이다.
지금 당장은 청제국을 상대로 군사작전이나 어떤것을 하기는 힘들었다.
나로서는 역사에서 청제국에대한 복수를 다짐하던 효종의 북벌론에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있었다.
막말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그런거?
하지만 결정적으로 효종의 북벌론은 당시 조선의 능력으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것처럼 무모했다.
따라서 북벌론의 생각은 높이 평가하지만 준비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