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169)

“.....”

두명이 침을삼켰다.

팔기군이라고 한다면 조선인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그처럼 강력한 팔기군도 양이들 앞에서는 박살난다는 것.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소신들은 전하께서 얼마나 큰 세상을 보고 계신지를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경들이 보고 배워야할 것들은 많을것이네. 다만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는 법이지.”

계몽이란건 단시간에 후딱 이뤄지는건 아니다.

하지만 두명은 과거급제까지 했고 머리는 좋은 편이다.

올바른 일에 재능을 쓴다면 그 효과는 몇배로 증가된다.

지금 조선은 최악의 상태다.

청에비하면 국토는 작고 기술이 뛰어난것도 아니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군사력이 강한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르치고 기회를주면 역사의 혁명을 이뤄낼 인재들은 충분히 있었다.

조선국왕인 나로서는 그것을 활용할 것이다.

“종걸아!”

“예. 전하.”

“두사람과의 대화가 길어질거 같으니까 차와 다과를 준비해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종걸이가 대답하며 하급내관들에게 지시했다.

잠시후 종걸이와함께 내관들이 들어왔다.

두사람을 상대로 떠들었더니 목이마르다.

하지만 세계정세에대한 강의를 해야할 부분이 더 많았으니 시작일 뿐이다.

무슨 일타강사도 아니고.

하지만 어쩌겠냐?

가르쳐서 써먹을수있는 인재라면 그것만도 감지덕지인 상황이지.

본격적인 일타강사의 강의가 시작되자 두사람은 연속해 감탄사를 토해냈다.

두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조절을 하였다.

나에게도 유익한 시간이다.

아는것들을 쉽게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니까.

다만 알고있는 미래의 지식이란걸 모두 말할수는 없었다.

그저 두사람이 나의 손발이되어 일할수있게 가르치는 수준이면 충분했다.

* * *

일본의 관서지방에있는 교토.

이곳은 오래전부터 일본 덴노가의 궁궐이 존재하는 장소다.

일본학자들은 덴노가문의 역사가 기원전 660년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거짓일 뿐이다.

조선이나 중국에비해 역사가 짧은 일본은 덴노가문에대해 어떻하든지 포장을해 자존심을 세울려고 했던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때 덴노가문의 존재는 일본에서 기껏해야 상징성에 불과했다.

“덴노폐하. 요즘 폐하께서 불손한 무리들을 가까이 하신다는 소문이 돌고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고메이덴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것을보며 관백인 다카쓰카사 마사미치의 입가에 냉소가 스쳐갔다.

관백이라는 직책은 덴노를 보좌하는 측근중에 수석의 지위다.

그러나 관백인 마사미치는 고메이덴노가 임명한 인물이 아니였다.

덴노의 궁궐에서 관백을 누구로 할것인지를 결정하는건 전적으로 도쿠가와 막부의 손에 달려있었다.

일본에서 덴노가문과 막부 사이에는 특이한 부분이 존재했다.

덴노가 상징성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사람들은 거의없다.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있는건 막부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덴노가문은 막부와 쇼군의 용인하에 명맥을 유지한다해도 좋을것이다.

그리고 측근인 관백의 자리는 교토에있는 덴노가문과 에도에있는 도쿠가와 막부의 사이에 중재자의 역활을 담당했다.

겉으로 중재자라 하지만 실제로는 막부에서 덴노에대해 감시역활.

덴노가 막부의 말을 듣도록 하는 역활이 더컸다.

때문에 막부에서는 관백자리에 임명되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골랐다.

고메이덴노를향해 충고하는 인물인 마사미치도 실제로는 막부와 연결된 신하였다.

그때문에 고메이덴노는 마사미치를 볼때마다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이 막부의 꼭두각시 내지 허수아비 신세란걸 느끼게 해주는 인물이다.

‘개같은 영감탱이. 이번에는 뭘 알아내서 막부에 고자질을 할려고?’

분노를 삼키며 고메이가 표정을 바꾸었다.

“관백께서 오해하고 계신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폐하께서도 알다시피 덴노가문이 계속해서 존재를 유지하는것은 막부와의 협조를 통해서 입니다.”

“그 부분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소.”

고메이가 짜증을내며 손까지 내젓는다.

자신은 일본의 주인인 덴노인데 막부와 쇼군따위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니?

그러나 현실은 일본의 주인이 막부와 쇼군이란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얼마후 관백인 마사미치는 고메이를향해 몇차례 충고를 한뒤에 자리를 떠났다.

뒷모습을 노려보던 고메이는 그가 완전히 밖으로 나가자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마사미치를향해 그리고 막부와 쇼군을향해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무슨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처럼 일본에서 덴노란 존재는 막부가 키우는 애완동물과도 같은 수준이였다.

‘선대의 덴노들이 막부를향해 고개를 숙이며 살았지만 나는 결코 그렇지 않을것이다. 아니 막부와 쇼군, 그리고 일본의 모든 신민들이 내앞에 무릅을 꿇게 만들것이다.’

고메이가 이를 갈았다.

그때 덴노가 지내는 숙소쪽으로 한명의 사무라이가 다가갔다.

몇차례 방문을 한것인지 그곳에있던 시종들이 고개를 숙였다.

군사용 지도의 제작

“어서 오십시요. 시마즈 요시타카님.”

“덴노께서는 안에 계신가?”

“그렇습니다. 조금전 관백인 마사미치께서 다녀갔습니다.”

“그 늙은이가 이번에는 무슨일로 덴노폐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말인가?”

요시타카가 주먹을 쥐었다.

어떤것인지 짐작은 되었다.

관백인 마사미치는 도쿠가와 막부가 교토와 덴노가에 심어놓은 충견과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요시타카도 마사미치 세력의 눈을피해서 은밀하게 행동해야 했다.

시마즈 요시타카는 사츠마번주인 시마즈 나리오키의 막내 아들이다.

사쓰마번은 일본의 남쪽 큐슈지역에 기반을가진 강력한 지방세력이다.

역사적으로 중앙에있는 도쿠가와 막부와는 서먹한 사이였고 자신들이 일본의 주인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있었다.

‘나리아키라 형님의 식견은 놀라울 정도다. 반드시 이번일을 성공시켜야 한다.’

요시타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사쓰마번주의 장남이자 야심을가진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지시에따라 비밀리에 교토로 파견된 것이다.

그가 교토에서 맡은 임무는 고메이덴노의 비밀측근으로 활동하면서 고메이를향해 막부에 반기를 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부분 성공했다.

역사적으로 덴노가문은 막부에의해 눌리면서 살아왔기에 고메이는 젊은혈기로 분노하고 있었다.

장남인 시마즈 나리아키라를 포함해 반막부파 세력들에게 고메이덴노는 세력을 뭉쳐줄 구심점과 같았다.

때문에 고메이를 자신들 편으로 만드는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종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폐하께서 요시타카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알겠네.”

요시타카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앉은 고메이는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조금전 막부인물인 관백 마사미치를 앞에두고는 쩔쩔매던 상황이였는데 말이다.

“어서오게.”

“폐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마사미치 영감때문에 기분이 상했지만 자네를 보게되니 마음이 풀리는구나.”

“황송하옵니다.”

요시타카가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어떤 소식들을 가져왔는가?”

“폐하를위해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대일본 제국의 식민지가될 조선에대한 소식도 있습니다.”

“궁금하구나. 어서 말해보게.”

요시타카의 망언에 고메이는 어떤 반발도 없었다.

대일본 제국이란 용어.

그리고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라고 표현하는 저런 망언들은 요시타카를 포함한 정한론자들.

일본을 선택된 국가라고 여기는 존왕양이파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나오는 어투였다.

“이번에 조선에서 새로운 왕이 추대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하들을시켜 그것에대해 여러가지 정보들을 입수했습니다.”

요시타카가 고메이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듣고있던 고메이가 조롱 가득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푸하하핫! 조선은 대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될 수준이구나. 왕이될 재목이 없어서 기껏 왕으로 내세운다는게 시골에서 농사나짓던 천한것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다니!”

“그렇습니다. 폐하! 차라리 일본의 덴노가문에서 고귀한 분을 조선으로 보내어 그들의 왕으로 삼는것이 더 좋을뻔 했습니다.”

“자네의 말이 정답이다.”

고메이가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두명이 조롱하는 대상은 조선의 국왕으로 등극한 철종이다. 철종이 강화도령으로 몇년간 농사를하던 과거가 있다는 사실은 조선내에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요시타카는 왜관쪽에 침투시킨 첩자들을통해 그 정보를 들었고 상관인 고메이를향해 보고한 것이다.

요시타카가 첩자를통해 그 사실을듣자 조선을 우습게 생각하며 조롱했다.

“자네가 가져온 일본서기에 따르면 과거에 대일본제국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조선에대한 왕위 계승권을 갖고있는건 덴노가여야 하는것이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폐하! 그뿐만이 아닙니다.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대일본 제국의 덴노가문은 조선만이 아니라 중국대륙까지도 지배했던 위대한 가문이였습니다.”

“맞아. 지금까지 덴노가문은 막부의 영향력 아래에서 숨만쉬는 존재였지만 더이상은 그럴수가 없지.”

“소신들이 폐하가 대일본제국의 주인이 되도록. 더 나아가 조선을 정벌하고 중원까지 정벌하는 진정한 황제가 되도록 만들겠나이다. 폐하께서는 소신들을 믿고 힘을 보태어 주시옵소서.”

“당연히 그래야지.”

요시타카의 말에 고메이의 입술이 히죽거렸다.

머리속으로는 일본의 주인.

그리고 조선을 정벌한 주인이 된듯한 기분이다.

잠시 망상에 빠져있던 고메이가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관백인 마사미치 늙은이가 뭔가를 눈치챈듯한 기분이네.”

“설마....?”

“장담은 할수없지만 그 늙은이가 내 주위를 조사하는것이 마음에 들지않네.”

고메이의 말뜻을 요시타카는 단번에 알아챘다.

요시타카 세력들도 마사미치를 경계하고있던 참이다.

따라서 마사미치를 놔두면 결국 막부의 귀에 정보가 들어갈 것이고 지금까지 해온 모든것들이 수포로 돌아간다.

살기를 드러내던 요시타카가 대답했다.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기위해 소신들이 행동을 개시할 것입니다.”

“그런가? 역시 믿음직한 충신들이다.”

고메이의 표정이 밝아지며 치켜세운다.

자신을향해 충고하고 감시하던 늙은이가 어떤 꼴을 당하게될지 기대했다.

얼마후 고메이의 침소를나온 요시타카는 은밀하게 행동했다.

* * *

조선제국-

한지에 이 글자를 썼다가 서둘러 지웠다.

제길, 내가 임금인데.

하지만 조선제국이란 명칭은 내 머리속에서만 맴돌뿐 아직은 함부로 꺼낼수가 없다.

임금으로 등극한지 채 1년도 안되는 조선왕이 제국을 꿈꾼다.

그것이 나의 적대세력에게 알려진다면 이후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럼에도 이것은 절대 포기할수없는 부분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나를 제국주의자, 또는 제국주의 욕망에찌든 왕이나 황제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어차피 역사에서 좋은 임금, 덕치를한 임금으로 칭송받을 욕심은 애초부터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것은 내 후대의 임금이나 황제에게 넘겨도 충분하다.

내가 할것은 조선을 바꾸고 강력한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왕이나 황제가 태평성대를 만들려면 국가의 힘이 있어야했다.

그런것도 없이 그냥 우리끼리 평화롭게 살거야... 라고 해봤자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는다.

결국 힘이없으면 먹히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