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69)

철종 이원범이 과거에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사람이라는 과거는 없어지지 않으니까.

심지어 이것때문에 조선백성들 사이에서도 농사짓던 강화도령이 하루아침에 왕이 되었네.. 라는 말이 퍼졌을 정도다.

그만큼 원역사에서 철종은 왕의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많이 약했다.

다만 철종이 백성들에게 뭔가를 보여주었다면 이런 말도 사라졌겠지만 원역사에서 철종은 이렇다할 행동을 못했다.

“전하의 조금전 말씀은 경천동지할 것입니다. 허나 신은 전하께서 어찌하여 소신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인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크게 궤념치 말게. 다만 이제부터라도 대조선의 웅지를 펼쳐보일 기회가 온것이라 생각하네.”

“그것은...”

“더이상 거론하면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니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네. 그리고 대조선의 웅지를 펼칠려면 조선 내부에대한 단속도 필요하겠지. 앞으로 여기있는 좌부승지를 비롯한 관원들이 많이 도와주기를 바라네.”

“황공하옵니다. 전하!”

“소신 박주선. 충의를 다하여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좌부승지와 관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들의 내부에 불씨가 당겨진 것이다.

이제부터 불씨를 당기고 활활 태우는것은 나의 몫이다.

미끼를 던져 볼까?

오늘로서 국왕 10일차-

거창하게 말했지만 며칠전과 비슷한 일상이다.

조선왕의 기상시간은 상당히 이르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는건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새벽 6시에 기상이라니.

해가 뜨기도전에 일어나야 한다.

왕이 그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으면?

희정당 침소에 대기하던 내관들이 반강제로 깨운다.

침소까지 들어와 흔들면서 깨우는건 아닌데 대놓고 밖에서 부시럭대는 것이다.

무시하고 잘수도 있지만 신경쓰여서 눈이떠진다.

새벽 6시전에 멀리서 터져나오는 수탉의 울음소리.

자명종 시계가 없어도 자연적인 알람이다.

일어난 표시를하면 그때서야 내관들이 들어와서 세숫물을 떠오고 옷을 갈아입는다.

조선왕은 하루에 두끼의 정식적인 수라상을 먹는다.

아침과 저녁이다.

처음에 일어나면 자릿조반이라해서 간단한 죽같은것을 먹는다.

정식아침은 이후에다.

두명의 대비들에게 문안인사를 올린뒤에 아침을 먹었다.

12첩 반상이라고 불리는 수라상.

맛은 좀 싱겁네.

사실 많이 싱겁다.

그런데 양은 상당히 많았다.

원래 조선인들은 대식가다.

조선말 서양에서온 선교사들.

방문한 서양인들도 조선인들이 먹는 밥그릇의 양을보고 놀랐다고 했다.

심지어 평민들의 밥그릇도 엄청나게 컸으니까.

수라상으로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 올라왔지만 임금이 다 먹을 필요는 없었다.

보통은 일부만 먹으면 상궁들이 상을 내간뒤에 나누어 먹는다. 임금의 수라상은 그양도 많지만 요리의 퀄리티 자체가 뛰어나다.

수라상 음식들을 먹으면서 스쳐간 생각 한가지는.

‘이렇게보니 조선의 궁중요리와 퀄리티도 프랑스 궁중요리와 비교해서 뒤지지 않는데...’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인 명성을얻고 널리 퍼진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다.

그전까지 프랑스 서민들에게 요리란 딱딱한 호밀빵을 먹는게 전부였다.

그것도 아니면 야채와 고기를 짬뽕으로 넣고 대충끓인 스튜정도.

하지만 루이 16세가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뒤에 베르사유 궁전에있던 요리사들은 한순간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들중에 베르사유에서 버티다간 자신들도 목이 잘릴것을 두려워해 도망친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고급요리를 만들던 요리사들이 민간을 포함해서 외부로 나가면서 프랑스 요리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요리의 명성에는 퀄리티만이 아니라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이라는 국력의 힘도 작용했다.

즉 프랑스 요리가 프랑스 제국이라는 국력으로 포장된 것이다.

이처럼 요리의 명성이란 퀄리티만으로 결정되는게 아니다.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명성높은 브랜드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하는 것이다.

만약에 조선이 동방에서 생존만 유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강력한 제국이 된다면?

당연히 조선의 궁중요리도 프랑스 요리와같은 명성을 누릴수가 있는 것이다.

잠시 그런 생각을하며 용상에 앉아있을때.

“전하. 신료들이 상참을위해 입궐하고 있습니다.”

시위의 외침으로 정면을 보았다.

지금 있는곳은 대관식을했던 인정전이 아니라 선정전이다.

이곳은 인정전에비해 작은 곳이다.

인정전은 즉위식처럼 궁궐에 큰 행사가 있을때에 주로 사용한다.

신하들의 정식조회인 조참때에도 활용된다.

조참의 경우에는 한달에 4번정도.

그외 매일 실시되는 약식조회인 상참은 선정전에서 개최된다.

희정당에도 약식조회인 상참을 할수있는 장소가 있었다. 희정당에서 상참을 주관하는 임금들도 많았다.

나의 경우에는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상황.

따라서 희정당에서 상참을 할수는 없었다.

신정전까지 가야했던 것이다.

정식조회인 조참에비해 상참에는 각부의 핵심 신하들이 참가한다.

‘보기싫은 얼굴들이 들어오는군.’

입가에 냉소가 떠오른다.

첫번째로 들어온 영의정 정원용의 모습에서는 기분이 괜찮았다.

뒤로 따라들어온 좌의정, 우의정들은 나이만 쳐먹은 꼰대들이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이다.

그후에 들어오는 이조판서 김좌근의 모습-

쥐새끼가 있다면 저 모습일까?

내쪽을향해 건성으로 고개를 숙이는 상황.

자신이 만들어놓은 허수아비를향해 존경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겠지.

6조의 선두인 이조판서 김좌근을 시작으로 나머지 부서의 대신들도 들어온다.

약식조회인 상참의 경우에는 정식조회인 조참에비해 인원수가 상당히 적었다.

각부서의 상급에 해당하는 신하들이 얼굴을 비추는 것이다.

그렇다해도 전체적인 인원은 40명은 넘어보인다.

용상에앉아 그들의 면모를 관찰했다.

저들중 내사람이라고 할수있는 인원들의 숫자는 여전히 부족했다.

대표적으로 영의정인 정원용을 포함해 예조판서, 공조판서, 그리고 예조와 공조의 상위관료들.

승정원에있는 3명의 승지들까지 손가락에 꼽을 수준이다.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지.

상황이 절망적인건 아니다.

삼정승들중에 한명.

그리고 육조중에서 예조와 공조.

여기에는 일정부분 컨트롤 가능하다.

승정원에 대해서도 포섭작업이 진행중인 상태다.

승정원 우두머리인 도승지, 좌승지, 우승지등은 나를 적대한다.

그외 승정원 관원들은 내편이나 마찬가지.

승정원이 돌아가는데는 3명이 없다해도 문제될것은 없으니 말이다.

“대비마마 납시오!”

시위의 외침과함께 순원왕후가 들어왔다.

올해로 61살.

나이가 있는만큼 상궁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움직였다.

순원왕후의 모습을보며 신하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정원용이나 예조판서, 공조판서등은 근심이 가득해 보였는데. 김좌근이나 무리들은 덤덤했다.

저들에게 순원왕후는 권력을 유지하기위한 존재일 뿐이니 말이다.

김좌근은 순원왕후가 친누이인데도 저따위 인성과 모습이라니.

그녀의 아들, 아니 양아들인 나로서 뭔가 울컥한다.

이윽고 김좌근이 얼굴에 가면을쓰고 연기를 하였다.

“상궁들은 뭘했다는 것이냐? 대비마마의 안색이 나날이 나빠지고 있지를 않느냐?”

“소녀들의 불찰이옵니다.”

김좌근이 호통치자 부축하던 상궁들이 쩔쩔맨다.

뻔뻔스런 놈 봐라.

그렇게 걱정되는 놈이 순원왕후를 여기까지 불러내며 반강제로 수렴청정을 시키냐?

김좌근이 상궁들을 질책하자 그녀가 손을들어 말렸다.

“이판대감은 신념치 마시요. 아직은 충분히 제몸을 가눌수 있소이다.”

“망극하옵니다. 대비마마!”

김좌근이 고개를 숙였다.

속보이는 연기와 거짓말에 몇몇 신하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잔머리 굴리는 재주는 제법이구나.’

이건 인정해준다.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만난 것이다.

순원왕후가 용상뒤에 위치하자 약식조회인 상참이 시작되었다.

순원왕후를향해 그날의 업무보고를 간략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충신과 간신배들의 성향이 드러난다.

첫번째로 보고하는 영의정 정원용은 조선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들에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좌의정, 우의정들이 거기에 반박하며 분위기를 망친다.

별것도 아닌것으로 순원왕후를 근심하게 만든다며 따지고 들어간 것이다.

정원용이 삼정승의 첫번째인 영의정이라해도 나머지 두명이 저런식으로 뒤통수치면 별수없다.

이후 육조의 상황에대한 보고.

김좌근이 담당하는 이조, 김좌근의 인맥들인 병조, 형조, 호조등은 모든것이 이상없이 잘되어 갑니다... 어쩌구하며 거짓보고까지 하는 상황이다.

예조와 공조판서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끄집어내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두사람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반대가 나오며 뭍히는 상황이다.

이러니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갈수 있냐?

목을 쳐버려야할 놈들이 여럿보인다.

어차피 안될놈들을 상대로 설득해봐야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쯤에서 저놈들에게 미끼를 하나 던져볼까?’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김좌근 무리들은 자신들이 뒷방늙은이 취급하는 순원왕후에게 보고를 끝낸뒤에 해산할려는 모양새였다.

내쪽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안쓴다.

꿰다놓은 보릿자루란 뜻이겠지?

역사에서 철종은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기간동안 아무것도 못했지만 나는 다르지.

“대비마마. 상참을위해 중신들이 모였으니 한가지 문제를 논의하여도 좋을거 같습니다.”

“금상! 어떤 것입니까?”

순원왕후의 표정이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좌근 무리들은 내쪽을 향했다.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네놈이 뭘하려고...? 그런 표정이다.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며 말했다.

“선대의 뒤를이어 과인이 새로운 임금이 되었고 또한 대비마마께서 수렴청정을 하시는데 새로운 인재들이 필요할듯 합니다. 그래서 내년에 조선내 만백성을향해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시험을 하는것이 어떤가 생각됩니다.”

“듣고보니 타당한거 같습니다. 경들은 어떻소?”

그녀가 찬동하며 질문했다.

영의정 정원용, 예조판서와 공조판서등이 앞으로 나서며 주장했다.

“소신도 찬성입니다.”

“맞습니다. 조선에는 새로운 인재들이 필요할 때입니다.”

조금전 말을꺼낸 부분은 내년에 특별시를 열겠다는 것이다.

조선의 과거시험은 정기시험인 식년시.

국가에 큰 행사등이 있을때에 치르는 특별시로 나눌수있다.

식년시는 보통 3년마다.

특별시는 제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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