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69)

준비된 상태를 보는것은 이후에라도 충분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것은 불시에 방문해 그곳에있는 관원들에게 존재감을 심어주는 것이니까.

영국에 박살난 청나라의 비밀

“이보게들.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게.”

“아닙니다. 좌부승지 어르신. 조정에 새 임금께서 옹립되셨으니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많을것입니다. 오늘 즉위식에대한 부분만해도 문서로 작성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듣고보니 그렇구만.”

좌부승지 박주선이 관원들에게 대답했다.

승정원 청사인 은대에는 야심한 밤인데도 불이켜져 있었다.

은대가 담당하는 업무들은 다양했다.

조정에서 그리고 궁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

국정운영에 관련된 논의를 포함해 조선임금에대한 부분들까지.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관한다.

수집된 자료들을 검토해서 이후에는 승정원 일기-라는 방대한 기록물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은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탁월했다.

때문에 승정원 청사에 소속된 관료들의 숫자도 꽤 되었다.

승정원의 책임자는 도승지다.

아래에 좌승지, 우승지가 상급이다.

중급으로는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등의 관료들이 있었다.

승정원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이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등의 3인방이다.

때문에 좌부승지인 박주선은 상관들이 퇴궐한 상황인데도 늦게까지남아 승정원 관원들과 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좌부승지 어르신. 혹시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이번에 등극하신 전하께서는 범상한 인물이 아니신듯 보입니다.”

“왕실의 핏줄을 타고나신 분들은 평범한 인물이 아닐세.”

박주선이 무심코 대답했다.

원론적인 생각이다.

그만큼 왕가의 핏줄이란 특별한 존재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관원들이 말한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였다.

“강화도에서 한양까지 가마를 거부하시고 말을타고 오셨다고 하더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도성에서 마중나온 한성의 민초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인가?”

“도성내에 그에대한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하급관원의 말을듣자 박주선이 놀랐다.

오늘낮에 벌어진 인정전의 즉위식에서 박주선은 용상에 앉아있는 임금을 보기는 하였다.

도승지를 필두로 승정원 부서에대한 알현을 할때였다.

박주선이 가졌던 첫느낌은 기골이 강대한 임금이다.. 라는 것이다.

영조의 아들로서 강대한 무골을 타고났다는 사도세자의 느낌이다.

‘기골이 장대하신건 사실이나 그것으로 국사를 운영할 자질이 있다는건 아니다. 지금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다른것이 필요한 법인데...’

박주선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골이 장대한 임금은 한번꺽이면 그것으로 완전히 무너진다.

박주선은 새로 즉위한 임금이 그런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박주선이 고개를 내저을때 책상에 앉아있던 관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들의 두눈은 경악으로 커졌고 일부는 다리까지 떨었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눈앞에 그들이 뒷다마까던 새 임금이 출현한 것이다.

* * *

“전하!”

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엎드렸다.

승정원 청사로 먼저 들어간건 내관이였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은대(승정원 청사)까지 갔지만 종걸의 지시를받은 내관이 그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달리기하면 내가 이길수도 있지만.

임금체면에 100미터 전력질주를 할수도 없고.

먼저 도착한 내관이 뭐라고 하기도전에 내가 뒤에서 들이닥친 셈이다.

관원들의 놀란모습이 초소에서 딴짓하던 경계병들이 일직사령을 만났을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뜻이겠지.

그게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

혹시 나의 뒷다마.

그럴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제 갓 즉위식을 마친 새로운 국왕에 대한것은 모든 이들에게 화제의 중심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걸 저들에게 캐물을 필요는없지.

“모두 일어나시요.”

“아니옵니다. 주상전하를 앞에두고 어찌...”

“그렇다면 고개를 들라.”

선두에서 엎드린 신하가 대답했다.

저 인물이 좌부승지 박주선 이였던가.

아무래도 맞는거같다.

오늘의 즉위식후에 각부서의 관료들에대한 알현을 받았다.

한꺼번에 많은 숫자들이여서 모두 기억할수는 없다.

하지만 핵심이되는 승정원 관료들에 대해서는 눈여겨 두었다. 도승지부터 시작해 6명의 승지들에대해 면면을 살펴본 것이다.

“그대가 좌부승지 박주선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박주선의 음성이 약간떨린다.

임금이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뜻이니까.

“고개를들고 일어나시요. 오늘 은대(승정원 청사)에 온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승지와 관원들을 직접 보고 그대들의 노고를 칭찬해주고 싶어서요.”

“황송하옵니다. 전하.”

박주선과 관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얼마후 관원들은 한쪽으로 물러섰고 박주선이 나와 마주했다.

“도승지는 아무리도 퇴궐한거 같군요.”

“그렇사옵니다. 연로하기도 하고 늦게까지 잡무를 보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든줄 아옵니다.”

“그것을 책망할 뜻은 없소.”

넌지시 대답했다.

대충보니 야작(야간작업)은 6명의 승지들중에서 중급에 속하는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들 3명이 돌아가면서 하는듯 보였다.

이건 한국에서도 내려오는 관습이니 어쩔수없지.

높은 상관들은 일찍 퇴근하고 남은 작업에 대해서는 아래쪽이 뺑뺑이 치는거니까.

문제는 내앞에있는 좌부승지인 박주선이 쓸만한 인재인가에대한 것이다.

유교적 관념에 매몰된 성리학 탈레반의 수준이라면 답이없다.

“언제 등용되었는가?”

“관직에 진출한지 5년이 되옵니다.”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였는가?”

“.....”

나의질문에 박주선이 멈칫했다.

상당수의 과거 급제자들.

그중에서 문과 급제자들의 경우에는 성균관 출신들이 많다.

조선을 대표하는 상급 교육기관.

그리고 조선에서 골수 유교탈레반들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초기에 성균관은 그런 성격이 아니였는데 사림파가 득세하면서 변하였다.

“신의 공부가 부족하여 성균관을 다니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을 따질려는 것은 아닐세. 과인에게 있어 성균관 출신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네. 중요한것은 국정을위해 봉사할 인재인가의 부분이지.”

“황송하옵니다.”

박주선이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성균관 출신이 아니란 사실에 자괴감이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해소해 주었으니 말이다.

나로서는 성균관에서 유교탈레반 사상을 배워나온 인물이라면 웬지 꺼려지는 상황이다.

성균관 출신이 모두 앞뒤 꽉막힌 놈들은 아니겠지만 그중에 상당수가 그럴 가능성이 많으니까.

“경이 보기에 지금 조선은 어떤 상황인거 같은가?”

“.....”

나의 질문에 머뭇거렸다.

솔직한 생각을 말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었다.

쉽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박주선을향해 던진 화두이자 면접의 내용이다.

한동안 침묵하던 박주선이 침을삼켰다.

“신하된 자로서 어찌 임금에게 거짓을 고할수 있겠습니까? 지금 조선은 안팎으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악화될 것입니다.”

“내우외환이라... 그렇군. 하지만 조선의 상국인 청국에서 조선에게 길을 인도해 줄수 있지 않겠는가?”

넌지시 말해보았다.

박주선이 눈치있는 인재라면 지금 내말이 진심이 아니란 것쯤은 알아챌 것이다.

애초에 그정도로 멍청한 임금이 야심한 밤에 승정원을 방문해서 승지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내쪽을 바라보던 박주신이 고개를 숙인다.

“청이 상국이라하나 이미 그들도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찌 조선에게 길을 인도해줄수 있겠습니까?”

“양이(서양오랑캐)인 영길리국이 몇년전에 청국의 남부에서 난을 일으켰다는 소문은 들었네. 하지만 청국에서 그 양이들의 난을 손쉽게 진압했고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인가?”

좌부승지 박주선이 몇차례나 내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전 사건은 조선에서는 일부의 사람들만이 알고있는 부분이다.

일부에서는 청국에서 양이(서양오랑캐)들이 난을 일으켰고 그것을 청의 팔기군이 진압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양이들중에 누가 난을 일으켰는지를 알고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내가 조금전 말한 내용은 제 1 차 아편전쟁이다.

하지만 청에서는 조선에대해 수치스런 사건을 철저하게 숨겼다. 청이 영국에게 털린 부분은 숨겼고 자신들이 승자라고 꾸민것이다.

일부에서는 청이 양이들의 난을 진압하는데 실패했을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청국을 상국으로 생각하며 사대주의에 몰입된 유교탈레반들은 중국이 패배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신의 판단이 정확한것은 아니오나 청조정에서는 연경(북경)으로 찾아온 조선 사신들을향해 남쪽에서의 양난(서양 오랑캐의 난)은 진압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소문으로는 청의 군사력이 약해서 양이들의 난을 진압하기는 커녕, 오히려 수치스런 상황을 당했다는 말도 있기는 합니다. 따라서 신의 판단으로 볼때 후자가 좀더 합당하다고 생각되며 이것을 볼때 현재 청국의 상황은 위태하다고 사료되옵니다.”

박주신의 대답을 들으며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조선에 인재가 없는건 아니다.

제대로 이끌어줄 임금이 없었기에 그런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지금 조선에서는 아인쉬타인급의 과학자가 백정일을 하고 있고, 비스마르크 급의 유능한 재상이 제대로 등용조차 못된 상태에서 한직을 떠도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바뀐다.

내가 모든것을 변화시킬 것이니까.

“좌부승지가 제대로 보았네. 청국은 수년전에 시작된 양이와의 전쟁에서 철저하게 패배했네. 전쟁을 개시한 양이, 즉 영길리국은 수도인 연경(북경)의 코앞까지있는 천진을 점령하기도 하였지. 이에 청의 조정은 혼란에 빠졌고, 그들은 양이인 영길리국을 달래기위해 화친조약을 맺었네. 그 조약에서 청국은 남쪽에있는 향항(홍콩)을 강제로 할양했고, 광주(광저우)을 포함해서 5개의 항구까지도 영길리국에게 개방해야했지. 이것이 지금 조선의 중신들이 상국이라고 부르는 청국의 상황일세.”

“.....”

좌부승지가 눈을 껌벅거렸다.

그뿐이 아니다.

뒤쪽으로 물러나 지켜보던 승정원 하급관원들도 경악하고 있었다.

조선의 임금이 청의 숨겨진 치부를 한방에 드러내었으니 말이다.

그것보다 천하의 청제국이 서양 오랑캐에게 박살났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겠지.

청이 흔들리고 있다.

양이(서양 오랑캐)에의해 수모를 당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부분은 엄청났다.

청제국은 조선이 넘볼수없는 강력한 존재였다.

중화의 제국이였던 명을 무너뜨렸고 조선을 침략해서 역사에남을 수모와 치욕을 안겨주었다.

그후 청을 상국으로 생각하며 조선은 청제국에 사대외교를 행하고 있지만 그것은 힘에의한 굴복이지 정신적인 굴복은 아니였다.

당장에 효종때만해도 북벌론에 많은 사대부들이 찬동했다.

현실적인 여건으로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 하다는걸 그들도 느끼고 있었긴 했지만.

다만 북벌론의 좌절이후 조선도 시간이 지나면서 청에대해 정신적으로 굴복되어가는 상황이다.

조정내의 관료들도 청제국을 인정하고 청황제를 중원의 천자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선에서 청에대한 반발의 불씨는 남아있다.

그중에는 소박한 반항심으로 만보당을 세우고 창덕궁의 내부에도 대보단을 만들어서 청나라 몰래 사라진 명에대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런것들이 조선내 소중화 사상의 기반이되며 더 답없는 상황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적절히 이용하면 도움이된다.

“과인이 그대들을향해 허언을 한것으로 보이는가?”

“아니옵니다.”

박주선과 하급 관원들이 대답했다.

그들이 나를향한 표정은 기묘했다.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촌부가 어떻게 저런것을 알고 있을까?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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