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69)

다음날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

그사이에 허벅지를 몇번이나 꼬집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것도 오늘로서 끝이다.

오늘은 새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되는 날이니까 말이다.

조선왕의 즉위식은 좀 특이했다.

후계로 추존된 세자가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며 곡을하다가, 이후에 상복에서 곤룡포로 갈아입고 대전으로 가서 즉위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헌종은 후계가없이 죽었기에 내가 왕세자의 역활이라고 할수있다.

그때문에 오늘도 아침부터 상복을입고 빈전에서 곡을 했다. 얼마후 예조판서 장우영이 내쪽으로 다가왔다.

“저하, 즉위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알겠소.”

내관들이 곤룡포를 준비해왔다.

한쪽에 휘장이 쳐졌고 내관들의 도움을받아 상복에서 곤룡포로 옷을 바꾸었다.

조선왕들의 즉위식은 의외로 소박했다.

즉위식을 한다고 궁중에서 풍악을 울리거나 요란을 떠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선대왕의 국상과 슬픔을 일정부분 유지하면서 즉위식이 같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거같다.

대전인 인정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좌우로 다수의 행렬들이 있었다.

창덕궁에서 인정전은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를때에 사용되는 곳이다.

입궐한 수많은 문무백관의 신하들이 도열해 있었다.

왕의 즉위식이기 때문에 의정부와 육조, 그리고 삼사와 승정원, 각 중앙군의 무관들도 모두 참석했다.

모여있는 신료들의 숫자만도 족히 기백명은 넘어보인다.

조선이 19세기말에 열강에 휘둘리고 나라까지 빼앗기는 신세였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체급으로 본다면 인구만해도 1500만에 제법 규모가있는 국가다.

때문에 조정에 속해있는 관료들의 숫자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얼마후 영의정 정원용, 그리고 예조판서 장우영의 주도로 즉위식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철종이 공식적으로 조선의 임금으로 올라가는 순간이다.

* * *

조금전 즉위식이 오픈게임이라면 지금부터가 본게임이다.

즉위식 때에는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예조판서인 장우영이 즉위식 절차에대해 사전정보를 주었기에 그럭저럭 해낼수 있었다.

장우영이 나를 대하는 모습도 강화도에서 만났을때에 비해서는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나를 어리버리 강화도 촌놈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니란것을 느낀듯 보였다.

그런데 예조판서도 안동김씨의 하수인일까?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닌듯 보였다.

안동김씨가 헌종, 철종때에 국정에서 많은 요직들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안동김씨와 그 세력들로 채워진건 아니다.

선대인 헌종도 안동김씨를 견제하기위해 뜻있는 신하들을 중용했던 것이다.

그중에 두명이 영의정 정원용과 예조판서인 장우영이다.

앞으로 해야할 일중에 하나가 나를 지지할 세력.

그리고 나에게 반항할 세력들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것도 중요했다.

전투를 할려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게 첫단계이다.

부하가 될 상대를향해 총을쏘면 그것도 등신이니까.

즉위식을 마친뒤에 용상에 앉았고 복장은 임금의 곤룡포와 면류관을 쓴 상태다.

이제부터 정식으로 임금이된 상황.

임금으로 대우를 받는것과 아닌것은 차이는 크다.

신하들이 임금인 나의앞에서 막말을 할수는 없지만 속으로 딴 생각을 하는건 분명히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부터 문무백관과 신료들이 주상전하를향해 알현을 하옵니다.”

임금인 철종을향해 각부의 신하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다.

이제부터 어떤 인물들이 있는지 좀 볼까?

용상에 자리했지만 뒤편에는 순원왕후인 김씨가 위치했다.

이건 어쩔수없는 상황-

그녀의 수렴청정이 암묵적으로 논의된 상황이고 왕의 즉위식에 왕실의 큰어른인 그녀가 참여하는건 당연하니까.

수렴청정이라해도 무조건 옥좌의 뒤에 주발을치고 대비가 섭정으로서 위치하는건 아니다.

순원왕후로서는 이번이 두번째 수렴청정이 되는것이고.

때문에 딱히 주발을 칠 필요도 없었다.

* * *

“의정부의 신료들이 주상전하를 뵈옵니다.”

품계석에 위치해있던 신하들이 앞으로 나온다.

선두에 영의정 정원용이 있었고 뒤로 좌의정, 우의정이 있다.

의정부 3정승들이고 뒤에는 의정부에 속해있는 관료들이다.

조선에서 의정부는 왕과 육조의 사이에 여러가지를 조율하는 역활이다.

의정부를 잘 이용하면 편한데 그렇지 않으면 무지 피곤하다.

선두로 알현하는 의정부의 신료들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3정승들중 내가믿을건 영의정 정원용밖에 없군.

나머지 좌의정이나 우의정은 임금인 나를향해 고개를 숙이지만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의정부에 소속된 상급 관료들중에 일부도 냉소적인 표정이다.

속으로 안동김씨에의해 세워진 허수아비 왕이 해봐야 뭘 하겠어... 라는 심정인가?

지금은 저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이후에 하나씩 파악해 안될것들은 과감하게 쳐내고 필요한 놈들만 골라쓰면 되니까 말이다.

“이조판서 김좌근이 주상전하를 알현합니다.”

의정부 차례다음에 6조의 선두인 이조의 차례다.

여기서 최종보스 놈이 나오네.

김좌근이 내쪽을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조의 관리들과함께 인사를 한다.

현재 안동김씨의 수장으로 있는 놈.

저놈이 다른것도 아닌 6조중에서 이조판서를 꿰차고 있는 목적이 증명된다.

6조중에서 이조는 인사분야를 담당한다.

관료의 임명부터 시작해서 해임 그리고 여러가지 분야에서 관련된 것이다.

안동김씨에게 딸랑거리는 놈들에게는 벼슬을주고 반대하는 관료들을 작살낸다.

그것을위해 이조판서의 자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이조판서인 김좌근의 뒤로 도열해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는 놈들도 비슷했다.

부패한 놈들이 덩어리로 뭉쳐져있다.

속에서 울컥거렸지만 참았다.

“다음은 호조판서인 이건명과 호조의 관원들 이옵니다.”

이조의 다음에는 호조의 신하들 차례였다.

호조는 육조에서 자금과 재물을 담당하는 곳이다.

현대에서는 재무부와 같은 부서.

예상대로 호조판서인 이건명과 김좌근의 사이에 시선이 오간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같은놈이다.

이건명이 안동김씨는 아니지만 안동김씨의 뒷배로 호조판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안동김씨의 요구에따라 조선재정을 악화로 몰고가고 지금의 상태로 만들었다.

역시나 호조에있는 판서, 참판, 판의란 것들도 비슷하다.

역시 호조의 상급 관료들도 싹수가 누렇고 제대로된 인물들이 없나?

한숨을 쉬고있을때 뒤쪽에있는 젊은 신하들은 내쪽을향해 시선을두며 눈빛을 반짝인다.

일부는 기대감이 섞인 모습도 있는데.

역시 호조가 모두 썩은건 아니다.

그래도 과거에 급제하고 청운의 꿈을가진 신진관료들은 나름대로 할려는 의지가 있었다.

어느 부서간에 윗대가리가 썩어가고 있으면 그밑의 하급 관리들은 울분을 토하게 마련이지.

나로서는 저들을 내편으로 만들고 이용할수 있겠다.

대체로 조선이 이웃인 청나라에비해 가난한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돈이 아예없는건 아니였다.

조선도 세금을걷고 재정을 넉넉하게 만들 방법은 충분히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안동김씨들이 나라의 곳간을 말아먹으니 될턱이 있나?

거기다 알게모르게 지방에서 새어버리는 무수한 자금들까지.

내가 반푼이 역사학도였긴 하지만 경영/경제는 나의 주전공이다.

돈에 관해서라면 21세기에 살아온 내가 너희들 머리 꼭대기에 존재한다.

앞으로 너희들에게 그걸 보여주마.

호조판서에 대해서 앞으로 잘하라고 영혼없는 덕담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병조, 형조, 예조, 공조의 부서들이 차례로 나와서 소개를 하였다.

예조의 경우에는 예조판서인 장우영을 필두로 나름 신뢰성이 보였다.

이후에 예조가 할일도 많을거 같다.

예조의 업무중에 국가간의 외교도 포함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병조는... 하아, 답이없다.

조선의 국방체계나 군사력을 생각한다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서양에서는 퍼커션 뇌관총에 신형대포를 찍어내는 상황인데, 조선군은 구닥다리 화승총에 허접한 홍이포를 쓰고 있다.

다만 부대에서는 불량기포도 쓰고 있지만 대구경 화포의 상당수를 이루는건 홍이포다.

그런데 저들은 홍이포를 쓰던 청나라군이 제 1 차 아편전쟁때 영국에게 탈탈 털린것을 알고있을까?

거기다 병조판서는 군사에대해 뭣도 모르는 문관출신이다.

조선에서는 문관 출신인데도 뛰어난 지휘관이나 병조판서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건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문관출신 병조판서는 자리만 지키는 똥별같은 존재일 뿐이다.

‘앞으로 해야할 일이 산더미 같구나’

솔직히 답없는 부서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후에 왕권에대한 태클 전문부서인 삼사의 등장이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저곳에 지지세력을심어 이용하면 왕을위해 충성하는 조직이 될수도 있다.

그렇지 못할때에는 심심하면 태클을 걸어올 것이다.

특히 홍문관 놈들-

내가 너희들의 학생이냐?

홍문관은 왕에대한 경연을 담당하는 부서다.

신하가 왕을 가르치겠다고 나대는 부서이고 정조의 경우에는 홍문과 대제학들이 정조에게 지식빨이 딸려서 멘붕을 먹었다.

그런데 내가 홍문관 작자들에게 배울게 뭐 있을까?

저들이 유교경전 달달 외우는거야 나보다 뛰어날지 몰라도 그외의 것에서는 내가 저들을 가르쳐야할 입장이다.

그야말로 우물안 개구리의 헛 똑똑이들.

그렇다고 아예 쓸모없지는 않겠지.

저들중에도 고쳐쓸 인물은 챙기고 가망없는 것들은 내쳐야지.

삼사의 알현이 끝난뒤에 승정원의 차례다.

가장 내편으로 만들기쉬운 부서.

그럴것이 승정원은 왕의 측근 기관이니까.

현대로치면 대통령 비서실 같은곳.

때문에 그들에게는 왕권이 강하고 왕의 신임을 받는것이 존재이다.

안동김씨들도 수작을부려 승정원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상대로 승정원 서열 1위인 도승지부터가 안동김씨의 세력이다.

제대로 뜯어 고칠려면 칼춤을 추거나 피바람을 일으켜야겠다.

제국주의 시대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

웅성거리는 대화소리.

예상대로 안동김씨의 수장, 이조판서인 김좌근이 주도하고 있었다.

의정부로 시작해 다양한 부서들의 소개를 받은뒤에 간단한 연회시간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술이나온건 아니고 일종의 차와 다과회다.

즉위식이 거행되었다해도 선대왕의 상중이고 대놓고 잔칫상을 마련할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런것도 내일부터는 정상으로 돌아간다.

용상위에서 그들의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어떤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예상되는 부분이지만.

김좌근이 몇몇 신하들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오늘같은 날에 저와 문무백관들이 새로운 주상전하를 뵙게되어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여기있는 많은 대소신료들도 알다시피 주상전하께서 어진 정치와 성정을 베풀기 위해서는 대왕대비 마마의 가르침이 많이 필요할듯 하옵니다.”

“소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명이 시작하자 반대쪽에서 거들며 나선다.

이것들아! 누가 수렴청정을 거부하겠다고 했어?

일단은 수용한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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