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을 무조건 기용할 생각은 아니다.
최소한 면접이라도 봐야하지 않겠어?
역사에서 흥선군도 상당부분 유교꼰대의 측면이 있었다.
그것이 생각외로 심하고 만약에 방해가 된다면 버리는 카드로 해야한다.
흥선군에대한 밑밥을 투척하면서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런것도 권모술수 중에 하나라고 해야할까?
권모술수도 사익을위해 쓰면 욕먹지만 공익을위해 쓴다면 인정받을 부분이다.
필요하다면 써야지.
21세기의 잔머리와 짱돌도 팍팍 굴리면서 말이다.
* * *
“몇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다니.”
노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미간이 꿈틀거렸고 표정은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그가 있는곳은 허름한 작업장이다.
주변에는 군데군데 쇳대를 포함해 금속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탁자위에도 먼지가 가득한 곳이 보였다.
그러나 한기준은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왔고 자신의 피땀이 어려있는 장소다.
어릴때 처음본 화승총이란 무기에 매료되었다.
그뒤에는 굉음을내며 육중한 쇠포탄을 발사하는 대포의 모습에 빠져들었다.
어릴때 아버지가 화약무기들을 수리하고 작업할 때마다 구경했다.
그뒤에 한기준은 아버지의 신분과 업무를 물려받아 조선내 최고의 병기장인이 되었다.
중인인 그의 신분상 다른 분야에도 투신할수 있었지만 한기준은 어릴때부터 자신이 해야할 일을 정하였다.
그의 아버지였던 한명국은 아들이 역관이 되기를 희망했다.
잡학과 기술을지닌 중인계급의 신분으로서는 가장 좋은 직업이다.
하지만 역관이 되기위해서는 어릴때부터 교육기관을 다녀야했고 소질도 필요했다.
한기준은 역관이 중인으로서 좋은 직업이란걸 알았지만 어릴때부터 자신을 매료했고 관심을 가졌던 병기개발과 제작을 포기할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한기준에게는 그 분야의 재능이 있었다.
조선에서 각종 무기와 군사장비를 제작하는 군기시에 들어간후에 그는 단기간에 최고의 장인자리에 올랐다.
특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건 화포와 총포등의 화약무기다.
조선군이 사용하는 화승총에 대해서는 눈감고도 제작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을지닌 그였다.
하지만 탁자위에 놓여진 녹슬고 일부가 부서진 화승총을 내려보며 한계에 부딪쳤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조선이 오래전 이런 정교한 화승총을 외국에서 들여 왔음에도 조선인 스스로 이것을 만들어 낼수가 없다니.”
군기시에서 최고 장인인 그조차도 재현이 불가능 하다면 조선내의 누구도 가능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한기준은 자신이 살펴보는 화승총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잘알고 있었다.
“화승심지를 사용하지않고 화약을 접시위에 올려놓고 방아쇠를 당기는 방식이라니. 이것이라면 얼마나 편리한가? 노서아(러시아)인들은 전부터 이런 화승총을 사용하고 있었다니. 놀라울 정도다.”
그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나왔다.
조선이 사용하는 화승총도 역사를거쳐 몇차례 개량이 되기는 하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발사방식이나 격발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화승심지를 사용해야했고 화승총을 사용하는 사수는 화승심지의 불이 꺼지지않게 보관해야했다.
경험이많은 사수라면 이부분을 어떻게 할수있지만 보통의 병졸들에게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런데 과거에 조선군이 나선정벌에서 노서아로부터 노획한 화승총은 화승심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부싯돌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불꽃을 일으키며 화약에 불을붙이는 것이다.
이것이 한기준이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이다.
문제는 방아쇠를 당겼을때의 격발장치였다.
부품들이 대부분 녹슬어 있었고 어떤것들은 부서지거나 없는 상태다.
때문에 자신의 손으로 재현하고 복원할려고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실패의 연속이였다.
조선은 오래전에 나선정벌때의 사건을통해 러시아에서 구형의 플린트락 머스킷을 몇자루 노획했다.
그러나 성능의 우수성을 확인했음에도 그대로 방치해버린 것이다.
후대에와서 뛰어난 병기기술자인 한기준이 연구를하며 같은 복제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할수가 없었다.
노획한 구형의 플린트락 머스켓이 녹슬고 부품마저 일부분은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손기술이좋은 한기준도 한계에 부딪치는건 당연했다.
“어르신. 이번에도 그 괴상한 노서아의 화승총을 연구하고 계십니까?”
“그렇네.”
“지금까지 몇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안그래도 군기시에있는 상부관원들이 어르신께서 노서아의 화승총을 연구하는것에 불만을 가지는 분들도 계십니다.”
“현실을 모르는 생각일 뿐이다. 조선의 병졸들이 더 좋은 화승총을 가지는것이 뭐가 문제란 것인가.”
후배 기술자의 말에 한기준이 불만을 표시했다.
이것이 현실의 벽이다.
군기시에서 무기와 군사장비를 제작하고 연구하는건 한기준을 비롯한 장인들의 일이였다.
하지만 군기시에서 행정을 포함해 운영을 하는건 먹물깨나 먹었다는 양반들과 사대부 문관들이 휘어잡고 있었다.
이런 문관들은 새로운 것에대한 도전이나 발전을 두려워 하였다.
병조판서인 이규동의 눈치나 보면서 자리를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뿐이다.
군기시와 병조내의 어떤 문관들은 탄환장전에 손이 많이가고 불편한 화승총 대신에 활과 화살을 더많이 제작하라고 압박을 넣기도 하였다.
어떤 문관들은 사대부와 선비의 고귀한 정신을 표현하는데는 활이 중요하다는 멍청한 소리까지 해댔으니 말이다.
“조금만 연구하고 발전시키면 화승총을 제작하는 비용이 각궁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저렴할수도 있는데, 그런것조차 모른다니.”
“저도 어르신의 말에 동의하지만 위에있는 높으신 나리들이 막무가내인걸 어떻게 합니까?”
후배 기술자들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화약무기의 등장이전까지는 조선의 각궁이 뛰어난 무기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작에는 여러가지 재료가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각궁에 사용되는 물소뿔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해야했고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뿐인가?
각궁에 사용되는 활줄은 세심한 관리도 필요했다.
습기가 많거나 비오는 날에는 활줄의 탄성이 급격하게 줄어들기에 그런 부분도 신경써야 했다.
무엇보다 각궁은 한명의 능숙한 궁사를 키우는것 만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조선이 궁사의 민족이라해도 그것은 과거의 영광이자 향수이고, 지금에까지 적용시키면서 활에 집착하는건 멍청한 짓이다.
한기준은 일찍부터 그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 녹슬고 다 부서질거 같은 노서아의 화승총이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까?”
“물론이다. 무엇보다 화승총을 사용하는 병졸들이 화승심지를 붙여서 갖고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한기준의 설명을듣던 후배기술자가 놀랐다.
화승심지를 갖고 다니는건 조선내의 화승총 사수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평소에는 화승심지만을 여러개 휴대하고 다닌다.
그리고 전투에 참가하는 상황이면 거기에 불을붙여서 대나무통에 보관을 한다.
그때에도 화승심지가 꺼지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따라서 갑자기 적이 나타나면 제대로 대응하기 힘든것은 물론이고 시간도 많이걸린다.
이처럼 실전에서의 제약과 불편한 부분이 많다보니 조선군들의 사이에서는 화승총보다 각궁이 더 유리하다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한기준은 앞으로 조선군이 주력해야할 무기는 과거의 유물인 각궁이 아니라 개량된 화승총과 화약무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다만 이런 그의 생각과 주장을 양반과 문관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중인주제에 나선다고 문책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군기시의 최고 기술자인 한기준과 후배 기술자들에게 조만간 새로운 기회가 올것이란 사실은 몰랐다.
그들도 조정에 새로운 임금이 등극할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도 임금의 용안을 본적은 없었지만 한기준은 알수없는 기대감을 느꼈다.
그럴것이 이번의 새임금은 강화도에서 농사를짓던 분이시다.
어쩌면 궁궐에 틀어박혀 왕세자로서 성리학 공부만 줄창하던 임금과는 다를것이란 생각.
그것이 한기준의 마음을 설레게했던 것이다.
칼춤과 피바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안동김씨와 세도가 놈들이 허수아비 국왕을 내세우다니! 그놈들이 앞으로 얼마나 권세를 부릴지 불보듯 뻔합니다.”
“선대께서 단명하시면서 이런 상황이 될줄이야.”
“지금이라도 흥선군을 새로운 임금으로 옹립해야 하는것 아닙니까?”
“이미 늦었소. 우리들이 무슨힘이 있겠소? 잘못하면 흥선군 마저도 김씨일파 놈들에게 역모죄로 누명을써 참형을 당할수 있소.”
“그럴수가.”
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비밀장소에 모여있는 십수명의 사람들.
주위에 보는눈이 있을까싶어 동료들 2명이 외부에서 망까지 보고있었다.
궁궐에서는 언제나 말조심을 해야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들은 기껏해야 당상관 이하의 중급관리들에 불과했다.
다만 그들이 속해있는 관청들은 중요한 부서들이다.
사간원과 사헌부, 홍문관등의 삼사. 그리고 병조와 형조, 이조를 포함해 6조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직책들이다.
위에있는 상관들은 안동김씨와 세도가에게 아첨해 자리를 꿰어찬 무능력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력을 갈고닦아 관직에 진출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지금 조선에서는 세도가문에 줄을대지 않으면 높은자리로 올라갈수 없었다.
청운의 꿈을가지고 관직에 진출했던 그들.
그들이 생각한 적합한 후보자는 흥선군 이하응이였다.
어릴때부터 총명했고 재능이 뛰어났다.
흥선군 이하응에게 기대를걸고 계획을 추진했다.
신정왕후도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권력을 손에쥔 안동김씨와 세도가들의 비열한 방법을 막을수는 없었다.
안동김씨와 세도가가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촌부를 새로운 국왕으로 추대한다는 소식을듣자 그들은 분노했다.
자신들은 힘이 부족했다.
그사이에 허수아비 국왕으로 내정된 강화도령 이원범은 창덕궁에 입궐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 것이다.
새로운 국왕이 입궐했으니 모든것은 무너진 것이다.
“주상전하도 불쌍하시군요. 지금부터 안동김씨 놈들과 그에 동조하는 간신배들에게 시달림을 받게될 것이니.”
“하지만 어떻하겠소? 그것이 운명인것을.”
절망적인 대답들이 나오고 있었다.
얼마후 비밀장소로 두명의 사내들이 오고있었다.
서둘러 달려온듯 보였고 숨까지 헐떡이는 중이다.
“큰일이 벌어졌소.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요.”
“무엇때문에 그러시요?”
“새로운 주상전하에대한 소문이요. 그것때문에 지금 한양에는 떠들썩한 분위기 입니다.”
“안그래도 그것에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이였소. 앞으로 안동김씨 세력들과 세도가들에게 고초를 겪으실 주상전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요.”
“경들도 새로운 주상전하께서 허수아비 임금이 될걸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다를것입니다. 어쩌면 조선에서 천지개벽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어서 말해보시요.”
모임을 주도하던 박민수가 서둘러 질문했다.
달려왔던 두사람은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용은 강화도령 이원범이 한양으로 들어와서 벌인 일들과 말에대한 것이다.
설명을 듣고나자 그들은 놀랐다.
“그것이 사실이란 말이요?”
“어찌 한입으로 두말을 하겠소? 지금 도성의 민초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고 있소. 얼마후에는 조선팔도 곳곳으로 지금 이야기가 전해질 것이요.”
“듣기로 새로운 임금께서는 강화도에서 농사를짓던 분으로 알고있는데.”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주상께서 강화도로 유배를 가신것은 14살때의 일이요. 그전까지 주상께서는 줄곧 한양에 지내시면서 공부를 하신분이요. 다만 14살때까지 공부한 부분이 큰것은 아닐지라도 이미 군주의 됨됨이와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요.”
“이런일이 생기다니!”
“지금쯤 김씨일파들과 세도가 놈들도 이 사실을 듣게되면 속이 뒤집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놈들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것입니다.”
“물론이요. 처음에는 우리들도 주상께서 허수아비 국왕이 되실분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아둔한 생각일 뿐이였소. 이제부터 우리들이 해야할일은 정해졌소.”
“맞습니다. 지금같은 때일수록 전하를 보필하고 김씨일가와 세도가 놈들에게서 전하의 안위를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참석자들이 대답했다.
모임을 주도했던 박민수가 주먹을 쥐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이 보인것이다.
* * *
“아이고! 아이고! 선대의 넋을 어찌 위로할 것인가? 흑흑!”
이제는 목소리도 쉬어서 제대로 안나오네.
하지만 어쩔수없다.
창덕궁에 입궐한 첫날에 헌종의 시신이 안치된 빈전에서 통곡쇼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