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69)

어떤왕들은 신하들 눈치에.

주변왕실의 눈치때문에 평생동안 눈치밥만 먹다가 가버린 경우도 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왕이 될까?

역사에서 철종은 궁궐에서 눈치밥만 먹다가 아무것도 못한채 죽었다.

그런신세가 되는건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다.

차라리 내앞에 다 꿇어! 해버리는게 편하지.

그럴려면 힘과 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중에 먼저 구워삶고 지지세력으로 만들어야할 두명이 순원왕후와 신정왕후다.

“예판대감 부탁하겠소.”

희정당을 나왔다.

앞에는 임금의 행차시에 참가하는 호위대의 시위들.

그리고 내관들이 있었다.

조선왕은 궁궐내에서도 단독으로 움직일수 없었다.

많은 인원들이 동행했다.

사생활과 프라이버시가 없는 상황.

이것 또한 관습이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겠네.

* * *

“대비마마께서 침소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희정당을나와 순원왕후가 지내는 곳에 도착했다.

창덕궁에서 왕비의 침소를 포함해 세자궁 그리고 대비들이 지내는 장소는 후원쪽에 위치해 있었다.

연락을받은 상궁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선두의 나이 지긋한 여자가 자밀상궁이다.

대비의 침소 그리고 왕비의 침소등에서 책임을 맡고있는 자리다.

이윽고 안내를 받으며 들어갔다.

상복을 입고있지만 고고한 기품이 느껴지는 한명의 여인이 앉아있었다.

올해 61세로 순조의 왕비였고 안동김씨 세도를연 김조순의 자녀인 순원왕후 김씨다.

문안인사를 올리자 만면에 미소를띠며 맞이했다.

안동김씨들의 조언을받아 선택한 차기국왕이 나였으니 말이다.

“강화도에서 고생이 심하셨을 터인데 이렇게 장성한 모습을보니 정말로 기쁩니다.”

“모든것이 선대와 대비마마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겸손의 미덕까지 갖추고 있다니 분명히 어진 임금이 되실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녀가 좋아할 말을골라서 대답했다.

그런데 겸손?

나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인간인데.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들킬수는 없지.

“지금 당장은 입궐해서 모든것이 생소하고 어렵겠지만 익숙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배워야 할것이 많습니다.”

“입궐한뒤 빈전을 방문해 선대의 넋을위해 곡을 했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보잘것없는 부분이지만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말을 들으니 본녀도 마음이 놓이는군요. 앞으로 어진 임금이 되기위해 많은것을 보고 배워야 할것입니다. 신료들의 말을 경청하고 본녀도 덕완군을 돕기위해 힘을 쏟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속에 내포된 뜻이 있었다.

역사에 나온것처럼 그녀는 철종이 즉위하고 3년동안 수렴첨정을 하였다.

그당시 상황을볼때 어쩔수 없었다.

다만 원역사의 철종과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수렴청정?

그따위거 필요도 없다.

다만 이걸 거부할 명분이 지금은 딱히없었다.

당장에 나의 세력도 없었다.

일단은 지켜보면서 기회를 노려야 하니까 말이다.

“대비마마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덕완군은 본녀의 양아들이 되는 셈입니다. 오늘은 첫날이고 하니까 어쩔수 없지만 이후부터는 본녀를 어머니라 불러주시면 좋을듯 하군요.”

“.....”

잠시 말문이 막혔다.

원역사에서 철종은 순원왕후 김씨의 양아들로 입적된뒤 다시 즉위를하는 과정을 거쳤다.

순원왕후가 생각해도 그것이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이원범을 무조건 왕으로 올리는것보다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되니 눈앞에있는 그녀가 엄마가된 셈이다.

엄마, 아니 어머니.

그말이 당장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도 이해한듯 미소를 지었다.

철종으로 환생한뒤 난데없이 새엄마가 생겨버렸다.

고등학생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없는 삶을 살았다.

거기다 나는 외동이였다.

때문에 인생의 모든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이였다.

그래도 어릴때부터 부모가없는 애들에 비해서는 괜찮았다고 해야할 것이다.

환생하고나니 왕이되고 새엄마가 생겼다는것.

나쁘지는 않다.

그녀를통해 내가 원하는걸 해나갈 든든한 뒷배경이 될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어머니라 부르겠습니다.”

“그말을 들으니 본녀도 기쁩니다.”

내앞으로 다가와 손을잡았다.

우직한 크기를 자랑하는 나의 손에비해 그녀의 손은 작고 매말랐다.

그녀가 나를 아들로 생각하는 감정이 있는거처럼 보였다.

순원왕후와의 첫만남은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네.

문제는 신정왕후 쪽인데.

역시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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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마마. 덕완군 저하는 임금으로 추존된 분이시옵니다. 대왕대비 마마께 문안인사를 드리고오신 덕완군 저하를 저렇게 문밖에 세워두시는건 앞으로 풍파를 만들수도 있습니다.”

“알고있네. 하지만.”

신정왕후 조씨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를향해 대비전 상궁이 조언하였다.

측근인 상궁 임씨는 신정왕후와 오랜동안 같이 하였다.

그녀가 지금하는 충고는 타당했다.

이일이 알려지면 안동김씨쪽에서 그녀를향해 이를 바득 갈아댈 것이다.

그녀의 배후에는 풍양조씨가 있다.

세력면에서 풍양조씨는 안동김씨에게 한참이나 밀린다.

“어찌하여 강화도의 촌부가 새로운 주상이 된다는 것인가?”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신정왕후 조씨가 헌종의 후계로 생각했던 인물은 흥선군 이하응이였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알겠네. 임상궁의 말에 따르겠네.”

“황송하옵니다.”

신정왕후 조씨가 대답하자 상궁임씨가 안도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 * *

어색한 분위기.

무슨말을 해야할까?

답답했지만 어쩔수 없다.

그냥 나갈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상황만 나빠진다.

신정왕후는 궁궐내에서 일정부분 순원왕후와 대칭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녀도 나의 지지세력으로 만들어야 만사가 편해진다.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조선후기 국가를 말아먹은 대표적 세도가문들이다.

세력면에서 풍양조씨는 안동김씨에 비할바가 못된다.

안동김씨나 풍양조씨나 둘다 별로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쪽이 풍양조씨 쪽이다.

따라서 그녀와 척을지는건 내쪽이 손해인 셈.

잠시후 어색한 분위기를 깬것은 신정왕후 쪽이였다.

“새로운 시숙(남편의 동생)을 만나게 되어서 본녀도 기쁩니다.”

“덕완군이라 부르시는게 저에게도 편합니다.”

“그럴수는 없지요. 덕완군은 대왕대비 마마의 양자로 입적을 하셨으니 항렬상으로 서방님이셨던 익종(효명세자)의 아우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순원왕후에게 문안인사를 했을때에는 하루아침에 새엄마가 생긴 것이다.

신정왕후를 만나는 자리에서는 하루아침에 새로운 형수가 생겨버린 것이다.

사망한 헌종은 나의 조카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이런 경우가 생기지 않는데 나를 새로운 국왕으로 추대하기위해 안동김씨가 수작을 부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안동김씨에게 립써비스로 고맙다고 해야하나?

“시숙께서는 강화도에서 몇년간을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4년정도 민초들과 농사를하며 그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

그녀가 흠칫했다.

표정이 몇차례 바뀌더니 말을이었다.

“민초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시며 어떤 생각을 하였습니까?”

“비록 농사일은 힘들지만 민초들이 바라는것은 좋은 임금을만나 힘든 농사일도 기쁘게 하는것이 그들의 염원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입가에 엷은미소가 지나갔다.

“시숙께서 강화도에서 농사일을 하였지만 본래는 한양에서 출생해서 글공부를 하다가 강화도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어릴때 재능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강화도에서 지내는 4년간의 생활이 그 재능을 퇴색하게 한것은 아니라 다행입니다.”

칭찬인지 비꼬는건지 모르겠네.

조금전 대답을통해 내가 농사만하던 일자무식이 아니란 사실은 대충 증명한 셈이다.

다만 그녀가 밀었던 흥선군 이하응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

하지만 이하응이 가질수 없었던 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내가 21세기에 살았던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틀에갖혀서 보지못하는 엄청난 세계.

수많은 것들을 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21세기의 현대인으로서 내가 도덕군자같은 인간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무식하게 법을어기는 범죄자의 수준은 아니지만.

적당히 타락하고 잔재주도 부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악랄해질수도 있는 존재다.

이쯤에서 그녀에게 한가지 밑밥을 던져볼까?

상궁이 내온 차를마시며 넌지시 말했다.

“소문에 듣기로 흥선군이 학식도 풍부하고 인품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얽힐거같다.

“시숙께서 흥선군을 어찌 아시는지요?”

“왕실의 종친이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왜 흥선군에대한 이야기를 꺼내십니까?”

“그가 훌륭한 인재라고 하니 이후에 기회가 닿으면 국사를위해 그가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것도 어떨까 생각합니다.”

“인재라면 조정의 문무백관과 대소신료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의심하는 눈치다.

그에대해 미소를띠며 대답했다.

“조정과 국사를위해 봉사할 인재들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숙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니 뜻대로 하시지요.”

표정이 여러차례 변하였다.

어쨌든 그녀에게 흥선군 이하응에대한 밑밥을 투척한것은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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