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69)

“그 부분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왕의 교육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10년정도는 대왕대비께서 수렴청정을 하셔야되지 않겠소?”

“어허~ 10년이라니? 농사나짓던 무지렁이가 겨우 10년의 교육을통해 군주의 됨됨이를 갖출수 있겠소? 못해도 15년, 20년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15년에서 20년이라... 대감의 말씀을 듣고보니 정답입니다. 하하!”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대비인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이 계속되는한 조선은 안동김씨의 것이다.

“대비마마께서 노쇠하셔서 15년, 20년이나 수렴청정이 가능하실지 모르겠군요.”

“그럴때를위해 안동김씨의 자제들이 대비마마를 적극적으로 도와야하지 않겠소. 대비마마께서 수렴청정을 하는동안 근심하지 않도록 우리들이 방해되는 놈들을 제거하고 조정과 종묘사직을 평안하게 만들어야 하는것이요.”

“책임이 막중하군요.”

안동김씨 친인척들이 술잔을 들었다.

겉으로는 대왕대비를 돕는다는 명목-

실제로는 모든것을 쥐고 흔들겠다는 야심이다.

* * *

이럇! 말고삐를 잡아챘다.

다그닥, 다그닥! 건장한 흑마가 지면을 박차며 나간다.

경주마들의 속도는 시속 60km 수준.

어떤 경우에는 시속 70km-를 돌파할 때도 있다.

말이 전력으로 달릴때의 속도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할 때에는 시속 40km-의 수준?

100미터 단거리 육상선수가 전력으로 뛸때의 속도보다 빠른편이다.

이거 차를 운전할 때보다 재밌는데.

21세기 한국에서 지낼때 자가용을 타고다녔다.

오프로드용으로 개발된 4WD SUV-였다.

이걸 구입한 이유는 한가지다.

서바이벌 게임한다고 동호회 멤버들과 지방으로 자주 다녔기 때문이다.

장비를 갖추고 서바이벌 게임을 할려면 지방에있는 장소들이 적당했다.

한적한 장소를 찾다보면 비포장 도로가많은 게임장등을 가야할 때도 많이있었다.

그럴때 4WD SUV-가 위력을 발휘한다.

서바이벌 게임용 장비와 군장.

기타 물품까지 싣기 위해서는 적재공간이 제법있는 차종이 유리하니까.

“다들 어떻게 지낼까?”

순간 동호회 멤버들이 생각나네.

내가 부회장으로 있던 서바이벌 동호회 이름은 블랙 스와트(Black SWAT)다.

블랙이라는 강렬한 이름과 스와트(SWAT)-는 미국에서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출동하는 경찰특공대의 약자다.

미국에는 뉴욕이나 LA-같은 대도시에 SWAT-경찰 특수부대가 있다.

우리 동호회는 전국 서바이벌 대회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즉 네임드 동회회라는 뜻이다.

서바이벌 동호회간에 벌이는 클럽전에서도 승률이 꽤 잘 나왔다.

블랙스와트는 밀리터리 매니아들로 구성된 팀이다.

다만 어설프게 군복이나 BB-탄총에 이끌려 멤버가된 인원들은 별로없었다.

각각의 밀덕분야에서 실력좋은 고인물들이다.

역사학도를 꿈꿨던 내가 밀리터리 동호회의 멤버가 된것.

이후에는 네임드 동호회의 부회장까지 올라갔다.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 전쟁사였다.

전세계의 다양한 국가에서 벌어졌던 전쟁사를 조사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역사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그때는 한국에서 역사학도가 되는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현실과의 괴리가 얼마나 큰것인지를 몰랐다.

역사학도로서 전공을 선택했다.

대학교 2학년까지 마쳤을때.

결국은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졸업해도 먹고살 방법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역사를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거창한 말이지만 역사학도가 밥먹고 살 기회는 너무나도 적었던 것이다.

현실과 타협해 다시 선택한것이 경영학-

경영학을 공부하고 졸업한뒤.

중견기업에 취직해 그럭저럭 생활은 되었다.

포기했던 역사학도의 꿈-

어릴때부터 가졌던 밀덕매니아의 취미.

그것이 나를 블랙스와트(Black SWAT) 동호회의 멤버로 만들었던 것이다.

직장생활보다 동호회 멤버로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고.

전쟁사와 밀리터리 분야에대해 멤버들과 대화하고 토론할때가 재밌긴했다.

가만, 그래서 모쏠이 된건가?

밀덕에 취미를 가지면 모쏠이 된다고 했는데.

반쯤은 들어맞았다.

여친이나 애인이 아예 없었던건 아니었다.

다만 잠깐 사귀어본게 전부였다.

그러나 나의 관심과 취미를 이해해줄 상대를 만나는것도 쉽지않았다.

그럴 기회도 잘 없었으니 말이다.

‘21세기 한국의 밀덕이 조선의 25대 국왕, 철종이 된것인데.

이런 경우가 또 있을까?’

쓴웃음이 떠올랐다.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지.

21세기 한국에서 지냈던 생활보다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삶이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조선판 드라군(용기병)

“저하! 옥체를 보전하십시요. 그렇게 달리시면 위험합니다.”

말을탄 군관들이 쫓아왔다.

선두에는 훈련도감에서 파견된 종사관 한민규가 있었다.

표정이 굳어지며 안절부절했다.

아마도 속으로 후회하는거 같다.

괜히 나에게 승마를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하며.

“걱정마시오. 종사관! 빠르게 달린것도 아니니 낙마할 걱정은 없습니다.”

“그렇다해도 만약을 대비해야 합니다.”

종사관이 대답했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도 가마나 타고있었을 것이다.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출발하는 날-

예조판서 장우영은 가마가 준비되었다고 했다.

가서보니 화려한 장식이 되어있는 특대형이다.

가마꾼도 4명인것에비해 두배나많은 8명이다.

8명이 계속해 가마를 지는것은 힘들다.

때문에 교대하는 가마꾼도 준비된 상태다.

그러나 예조판서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의대답은 간결했다.

말을 타겠소!

그뒤에 터져나온 한바탕 소동.

예조판서 장우영은 저하 옥체를 보전하십시요! 한양까지 가는길은 멀기에 가마를 타야한다며 몇번이나 설득했다.

내가 고집을 부리자 이번에는 영의정인 정원용까지 나서서 간청했다.

영의정까지 나서서 만류했을 때에는 살짝 흔들렸다.

영의정은 조선의 최고 대신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끝까지 주장했다.

영의정이 꽤 당황했다.

어쩌면 약관(20살)도 안된 젊은것이 치기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난처해있던 영의정도 결국에는 한발 물러났다.

호기심에 몇번정도 해보고 힘들어 포기하기를 바랬는지도 모르지.

승마를 고집한 것에는 다른것도 있다.

가마를타면 편하지.

강화도에서 한양까지 거리만해도 제법되고 며칠은 가야한다.

빠르게가면 하루나 이틀이면 도착할수도 있지만 행렬의 규모는 상당했다.

얼핏 계산해도 4~500명의 규모.

조선시대의 도로사정도 좋은건 아니다.

한양에서 강화도까지도 포장된 상태가 아니다.

비가오면 진창으로 변하는 길이다.

조선의 도로사정은 이웃인 청나라에 비한다면 형편없다.

일본에 비해서도 열세다.

한때 조선은 일본을 능가하던 문명과 시설을가진 국가였다.

그것이 임진왜란 이후부터 역전된다.

임진왜란의 주범인 토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을 격파하고 정권을잡은 도쿠카와 이에야스-

에도(지금의 도쿄)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권을 열었다.

그것이 에도막부다.

이전까지 일본의 중심은 오사카였다.

도쿄가 중심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열린것이다.

에도막부도 쇄국정책을 펼치긴 했다.

처음부터 외국과의 교류가 된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에도시대에는 외국과의 사적인 교류가 빈번했다.

그결과 일본의 산업과 기반시설들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겪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통신사들이 일본의 발전된 상황을보고 놀란것은 사실이다.

이전부터 왜놈이라며 일본을 낮게보고 있었다.

그런 일본이 발전했기에 당황했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일본은 예법을 모르는 야만인들일 뿐이라며 정신승리까지 했던것이다.

* * *

“지금이라도 가마에 오르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종사관은 내가 가마를 물리치고 말을타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소인은 짐작되지 않습니다.”

“임금이될 사람으로서 가마를타면 조선의 산천과 백성들, 그리고 수많은 것들을 볼수없지 않은가? 강화도에서 한양까지 가는길이 국토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을타고 가면서 체험하고 싶다는 것이네.”

“.....”

종사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좀 감격한 표정?

종사관을향해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다른것이다.

말을 탈수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게 더 크지.

이게 본래 속마음이고.

타고있는 군마는 덩치작은 조랑말 같은게 아니다.

조랑말도 덩치는 작지만 지구력이 좋다.

짐마차나 수레를 끄는데는 더없이 좋았다.

하지만 기병돌격을 펼치거나 가속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그 때문에 군마는 평범한 조랑말이 아니라 크고 힘이좋은 말들을 특별히 관리해 키워야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기병이 돈먹는 하마라는 말이있는데 과장이 아니다. 서양중세에서 전투의 주인공인 기사가 대접 받는것도 특수한 기병이기 때문이다.

기사가 좋은 말을가지면 이득이다.

입고있는 플레이트 갑옷과 장비, 그리고 종자들보다 말이 비싼 경우도 많았다.

기병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부대다.

그리고 실전에서 효과는 돈을 퍼부은 값을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투에서 기병을 잘못 사용하면 폭망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1849년.

유럽과 서양에서는 다양한 무기들과 전술이 나온다.

그럼에도 기병부대의 존재는 오랜동안 유지된다.

심지어 2차대전에도 기병부대를 운용하고 전투에 활용했다.

조선도 기병부대를 전투에 활용했다.

조선의 경우에는 서양식 중갑기병보다 가볍고 빠른 경기병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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