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69)

배삼덕은 그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전하는 크게 되실분이다. 조선의 역대 선왕들중에 독보적인 분이 되실지도 모른다. 전하를 보는순간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너도 경험하지 않았느냐?”

“그렇기도 합니다.”

동석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산속으로 같이 도망칠때.

동석은 동생을 탈출시킨다는 마음으로 전력을 기울였다.

둘다 비탈에서 굴렀다.

그때 배동석은 철렁했다.

이원범이 죽은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하지만 이원범은 깨어났다.

그뒤의 행동이나 말이 이상하긴 했다.

그건 기절한뒤 정신이 없기에 그런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얼굴이나 목소리는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그후에 이원범이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은 동석을 놀라게할 정도였다.

그때 동석은 동생처럼 생각했던 이원범이 거대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부지 말씀대로 전하를 보필하기위해 목숨까지 바치겠습니다.”

“그것이 너의 사명이다.”

배삼덕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일개백성이 왕을 보필하는 자리에가는 것이다.

배삼덕은 탁주를 가져왔다.

한양으로 떠나는 아들을향해 이별주를 부어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끼리 해쳐먹자

가야금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현을 뜯고있는 여인 매송(梅松).

그녀는 한양에서도 이름난 기녀다.

그녀가 속해있는 기방 강소원에는 하루에도 수십명의 양반들이 찾아왔다.

중앙에서 권력을 잡고있는 관료들도 단골고객에 속한다.

평소라면 각계각층의 손님들이 모여들법도 했다.

그러나 오늘 강소원의 대문은 닫혀있었다.

장사를 안하는건 아니다.

대신 너무나도 큰 손님이 왔다.

때문에 기방의 정문을닫고 더이상 손님을 받지않은 것이다.

대문에서는 토라진 손님들을 달래느라 하인들이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무슨 일이길래 대문을 닫는거야?”

“오늘은 영업을 안하는 날입니다.”

“무슨 소리야? 안에서 가야금타는 소리와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데.”

“너무나도 큰 손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큰 손님이라니? 나도 한가닥하는 손님이야!”

“저... 김씨집안의 손님이라서.”

“정말이야?”

위세를펴던 양반이 움츠러 들었다.

조선에서 그리고 한양에서 김씨집안-이라고 한다면 누구겠는가?

나는새도 떨어 뜨린다는 조선최고의 세도가 안동김씨다.

안동김씨가 손님으로 왔는데 방해한다면?

목이 열개라도 남아나지 않을것이다.

“쳇! 어쩔수없지. 내가 김씨들이 무서워서 그런것이 아니야. 사실 그들에게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 그러는거지.”

갓끈을 고쳐매던 사내가 헛기침을 하였다.

그도 세도가문에 속한다.

다만 한양에서 위세를 날리는 안동김씨나 풍양조씨 만큼은 아니다.

지방에서 알아주는 반남박씨 집안에 속했다.

그리고 전라도를 포함해 삼남지역(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는 위세가 대단했다.

그렇지만 한양에서는 명함도 못내민다.

사내가 대문쪽을 기웃하더니 하인들을 데리고 떠난다.

“이것으로 끝난건가?”

“그렇습니다.”

“아무튼 수고했네.”

“박총관님. 그런데 오늘따라 왜 그분들이 모인 것입니까?”

“짐작은 되지만 더이상 알려고하지 말게나.”

박총관이 눈을 부라렸다.

김씨일가가 하는일에 아랫것들이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박총관은 돌아가는 분위기를봐서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이유를 예상했다.

그러나 함부로 입밖에 낼수는 없었다.

* * *

“식기전에 드시게나!”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올려진 산해진미들.

임금의 수랏상에나 올라갈 정도로 고급스럽다.

음식이나 종류를 봤을때에는 수랏상을 몇배 능가할 수준이다.

조선에서 귀한약재로 쓰이는 인삼들.

그걸 이용해 만든 요리들도 있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흥겨운 운율-

분향을 흘려내는 기녀들의 교태로운 웃음소리.

조선 양반들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긴다는 말은 헛소리에 불과했다.

자연보다는 분향을 풍기는 계집이 옆에있어야 시적감성이 풍부하게 나온다.

거기에 귀한 미주까지 들어간다면 완벽하다.

“대감. 술안주가 푸짐하군요.”

“술안주만이 아닐세. 이것을보게.”

“무엇입니까?”

김좌근의 손에 든것을보며 참석자들이 흥미를 나타낸다.

“청국에서 가져온 백주(바이주)라는 것일세. 그것도 오래된 것이지. 계집은 어릴수록 좋지만 술은 묵힐수록 좋다는 말이있지.”

“대감 말씀이 정답입니다!”

사내들이 소리친다.

상석에 앉아있는 인물-

권력가문인 안동김씨의 수장 김좌근이다.

눈빛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아버지인 김조순이 세도정치의 개막을 하였다.

김조순은 흑막에서 조종하며 전면으로 나서지 않았다.

김좌근의 형들도 김조순의 뒤를이어 안동김씨 가문의 수장들이 되었지만 비슷한 태도를 취하였다.

다만 김좌근은 그것에 불만이 많았다.

자신의 형들에게 적극적으로 나설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셋째인 김좌근이 목소리를 낼수있는 형편은 아니였다.

그런데 상황이 변해버린 것이다.

김좌근의 큰형과 둘째형이 차례로 사망했다.

드디어 김좌근이 원하던 세상이 되었다.

안동김씨 가문의 수장이 된것은 물론이다.

안동김씨를향해 도전하는 세력들과 반대파들을 차례로 숙청했다.

그에게 유배되고 살해당한 신료들의 숫자는 헤아릴수 없을정도다.

‘조선에는 임금이 있지만 조선을 지배하는건 김좌근과 안동김씨다. 비록 풍양조씨들이 위협이긴 하지만 그들에게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당근을주면 되니까.’

풍양조씨들과의 공생방법이다.

풍양조씨를 포함해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 가차없이 박살낼 것이다.

김좌근과 안동김씨는 그럴만한 권력을 쥐고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인일로 소생들을 불렀습니까?”

술을 마시던 사촌이 질문하였다.

수십명의 사내들은 안동김씨의 친인척들이다.

그들은 김좌근 덕분에 굵직한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김좌근.

기녀인 매송을향해 신호했다.

그러자 방안에있던 기녀들이 지시에따라 밖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들은 아녀자들이 들어서 좋을것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김좌근의 말에 참석자들이 대답했다.

“우리들의 뜻대로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촌부녀석을 새로운 임금으로 추대하는데 성공하였소.”

“촌부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이원범이요.”

“새파란 애송이는 우리들 덕분에 팔자가 바뀐거 아니겠습니까? 강화도에서 농사짓다가 죽을 운명이였는데 이제는 조선의 국왕이 되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김좌근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첨과 아부들.

“대감께서 대비마마를 설득하셨기에 이런 경사가 난것이 아닙니까? 만약에 신정대비의 뜻대로 흥선군(이하응)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면 모든것이 무너질뻔 했습니다.”

“그것은 기우일 뿐이요. 어찌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뜻을 거스를수 있겠습니까? 대비께서는 조정의 가장 큰 어르신인데.”

김좌근이 큰소리를 내었다.

신정왕후 조씨는 과거에 순조의 아들로써, 그리고 조선의 개혁을위해 투신했던 효명세자의 세자빈이다.

그러나 효명세자는 단명하였다.

이후에 그의 아들이 헌종이 된다.

헌종도 23살의 나이에 단명하면서 왕실의 직계와 혈통이 끊겨버린 것이다.

새로운 국왕을 선출하는 과정.

신정왕후 조씨는 흥선군 이하응을 마음에 두었다.

어릴때부터 총명하다고 소문났기 때문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안동김씨에게는 허수아비 국왕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낸 인물이 강화도령인 이원범이다.

강화도에서 농사만하던 촌부를 국왕으로 한다는것.

여기에는 큰어른이자 대왕대비인 순원왕후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때 안동김씨의 권력을위해 본격적으로 나선것이 김좌근이다.

누이인 순원왕후를 수차례 설득했다.

설득에 넘어간 순원왕후는 강화도령 이원범에게 방점을 주었다.

그리고 이원범이 25대 국왕인 철종으로 추대된 것이다.

잠시후 김좌근이 술잔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문제는 대비께서 하시게될 수렴청정이요.”

“대비께서는 전대국왕 시절에 하시지 않았습니까?”

“물론이요. 7년동안 하셨지요.”

김좌근이 대답했다.

순원왕후 김씨는 헌종이 어린나이에 임금이되자 수렴청정을 하였다.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에 안동김씨는 권력을 손에쥐었다.

김조순에게 순원왕후는 말 잘듣는 딸이였다.

김좌근을 포함해 그의 형들에게는 안동김씨 세력을 떠받치는 기둥이였다.

이번에도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은 예견된 부분이다.

헌종이 즉위때에는 8살이란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7년동안의 수렴청점이 가능했다.

이번에 한양으로올 이원범은 19살이다.

성인이나 마찬가지인 나이다.

명목상으로 수렴청정의 기간이 짧을수밖에 없었다.

다만 수렴청정이 끝난다해도 이원범이 농사나짓던 촌부였기에 안동김씨를향해 맞설능력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김좌근은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싶었다.

“이원범이란 촌부녀석이 올해 19살이니 성년이나 마찬가진 상황이요.”

한명이 김좌근을향해 말했다.

김좌근은 입가를 씰룩거렸다.

“그녀석은 제왕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알다시피 제왕의 교육이란 왕족이 출생때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원범은 혈통만 왕족이지 교육이나 성품등에서 부족한게 많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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